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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교자이신 하나님의 목소리 (눅 2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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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이신 하나님의 목소리 (눅 20:14~15)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눅 20:14~15) 


I. 본문해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교회 생활 속에서 늘 만나는 목회자와, 예배에 있어서 설교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늘 시달리신 일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은 종교지도자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예수님의 참된 신앙사이에 심한 격차를 발견하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꼬거나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핍박하였습니다. 또 백성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기뻐한 것과 달리 그들은 그 백성들을 진리로 가르칠 위치에 있으면서도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께 무슨 권리로 진리를 가르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하시고 나서 이제 포도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소출을 받을 때가 되자 종을 보내었는데 소출을 바쳐야할 농부들은 주인의 종을 심히 때리고 내어 쫓았습니다. 급기야 다시 보낸 종들은 능욕하고 더 심하게 때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까지 보내지만, 농부들은 그 유업을 빼앗자고 하며 아들마저 죽여 버립니다. 

이 비유에는 예수님이 미래에 왜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했는지도 나와 있고 예수님 앞 시대의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의 이야기도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도원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우리는 포도원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소출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대하는 공의와 자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마땅한 삶의 열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 포도원과 같은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셔서 아무런 투자 없이도 온갖 것들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신 모든 것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아래는 인간들을 사랑해서 주님의 계명에 따르고 자신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결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의 뜻을 선지자를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II. 비정상적인 교회생활 

오늘날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준 복음적인 신앙생활과 매우 거리가 먼 비정상적인 교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중심이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지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 되었고 인간은 무슨 목적으로 창조되었으며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덕스러운지 도대체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당신의 경륜을 보존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그 진리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명대로 살도록 끊임없이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진리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오히려 선지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스스로를 주인 삼고자 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의 나타남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그 분을 통해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할 데 없이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밖은 사람들의 마음은 그 자체가 하나님 없이 살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죄의 길을 버리고 십자가 아래로 돌아와 성령의 놀라운 은혜로 초청하는 전도자들을 예수그리스도께 했던 것처럼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의 전파는 피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진리는 우리 영혼의 찬란한 빛이고 그 빛은 하나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자가 아닌 이들이나 신자에게도 동일합니다.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복음을 하나님이 보내신 것으로 알고 기쁨으로 영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고 그 사랑은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람에 대한 기쁨과 교재로 자연스레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한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불신자에게나 성도에게서나 죄는 똑같은 목적과 역할을 지니고 있지 변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거듭난 본성과 진리의 빛이 남아있어서 죄를 거스르고 살 수 있는 힘을 주신 것뿐입니다. 은혜와 참된 복음의 빛으로부터 떨어지면 신자 역시도 필연적으로 진리의 빛을 싫어하게 됩니다.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야 더 많은 진리를 원하지만 삶이 부합하지 못할 때 누가 그 빛을 사모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교회생활이 나오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일주일을 살면서 교회에 와서는 자신의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찾습니다. 일주일 동안 욕심을 따라 살았으면서 지치고 피곤한 마음을 위로하고 달램으로 다시 지난주처럼 걸어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중심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입니까? 그렇게 하나님과의 만남과 진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행복에 관심을 갖습니다. 신앙조차도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단지 좋고 나쁜 교회, 도움이 되고 되지 않는 교회로 교회를 나눕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진리입니다. 진리가 규정하는 제자리로 돌아갈 때만이 인간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버리기로 결의한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제사를 드렸고 언제나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수시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들은 습관적으로 이루어졌고 마치 주일이 되면 자동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처럼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만남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어떻게든지 값 주고 사신 백성들에게 당신의 마음과 뜻, 사랑을 보이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 제사 속에서 때가 묻고 어두워진 부패한 제사장을 통해서 못하셨기 때문에 생생하게 당신을 만나고 당신의 음성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않는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 그의 영광이 무엇인지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 큰 하나님의 위험과 사랑이 무엇인지, 두려우신 하나님의 엄위에 떨고 진실한 사랑에 이끌려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맛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참 하나님의 진리로 돌이키기를 원하는 하나님과 범죄 하는 백성들 사이에서 고통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에게는 복음을 통해서 자기가 박수를 받는다든지 부를 축척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고 그 백성들이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함께 만나고 즐거워하고 섬기기를 소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의 음성을 들으며 말할 수 없이 기뻐하고 가슴을 찢으며 통회했던 시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거짓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실제 하나님께 바쳐야할 삶은 자기가 주인이 되는 삶으로 변질시켰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반감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III. 설교자를 보내신 목적 

설교자는 교인들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바를 따라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진리의 말씀을 전달함으로 백성들을 자기가 주인 된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참된 성도의 의무를 다하게 하는 것이 그를 보내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그의 가장 큰 사명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말씀을 탐구함으로 진리에 대한 앎을 넓혀가고 주님과의 깊은 교제와 기도생활 속에서 자가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을 마음을 알고 사랑으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적인 기능은 이렇게 진리가 선포되는 설교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명한 음성으로서의 설교를 통해 사람들이 진리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진리로 돌이키는 힘이 예배 속에 없다면 이 예배는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 헌금을 걷는 수단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셨을 때를 보십시오. 예수님의 복음이 진리가 아님을 입증하지 못했던 세력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캐고 들어가면 결국 돈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와 돈은 더럽고 추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소명의 진실한 기쁨이 없으면 사람의 박수소리가 그리워지고 모든 인간의 공통점이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불러서 설교자가 되게 하시지 않고 누구나 하나님 만난 사람들이지만 정말 주님을 깊이 만나서 자기 목소리를 전달할 사람들을 목자 삼으셔서 증거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선지자처럼 심오한 은혜의 세계에 진리의 거룩함 눈을 뜨고,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해 준 교통의 세계 속에서 보내심을 받아야 되는데 그저 제도를 따라서 쏟아져 목회자가 나오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거의 못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예배를 채우지 못하고 세상의 쓰레기 같은 지식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사람들의 지성을 어지럽혀서 혼탁하게 한 데에 관하여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설교는 설교라는 이유 때문에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설교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하도록 설교되고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이지 이탈하면 사람의 소리일 뿐입니다. 그런 설교에는 성도들이 순종할 이유도 없고 의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고 진리를 설교하는 설교는 여전히 하나님 말씀이고 순종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거스르는 사람에게는 심각한 진리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겠다는 신중한 마음이나 주의 깊음이 현저하게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게으름과 태만은 그들이 들은 수많은 말씀의 기회 때문에 더욱 책망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고 우리는 큰 의문을 갖게 됩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마지막에 죽임을 당한 아들은 주님이신데 종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종은 종이지만 주인을 일평생 섬겼던 사람이고 주인 역시도 그를 알고 사랑했습니다. 그랬는데 그가 가서 소작료를 받기는커녕 실컷 맞고 피투성이로 돌아옵니다. 두 번째로는 갖은 모욕을 당하고 심하게 때려 죽을 지경까지 됩니다. 그러면 군대도 없이 그 종을 보낸 분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Ⅳ. 하나님의 사랑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신 것처럼 이 일을 위해 목회자를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여러분들을 향한 뜻이 무엇이고 여러분들이 어떤 삶을 살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지 수시로 잊어버려도 목회자는 말씀과 기도 속에서 그것을 발견하여 성도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이들에게는 격려를, 지친 이들에게는 위로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들에게는 준엄한 책망을, 옳지 않은 길로 가는 이들은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에 목회자를 보내신 목적인 것입니다. 


Ⅴ. 결론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대로 살게 하시는 주님을 따라 진실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신앙생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양떼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만약 두 가지가 충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성도가 모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분명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가 바로 이 두 가지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온 마음을 집중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고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릇되게 살면 불같은 말씀을 가진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백성들을 심판할 것으로 마음먹으시면 당신의 음성을 끄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두운 지성으로 갈 수 없는 길이고 끊임없는 진리의 빛과 하나님 앞에서 녹는 진정한 회개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따라 사는 삶과 예배를 통해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고 회개하여야합니다. 그래서 한 때 미끄러졌더라도 다시 주님을 붙들고 일어서야합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교회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손은 강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에 이끌려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매순간 주님을 의지해서 내가 이루었다 함이 아니고 붙잡음도 아니고 주님이 부르신 상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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