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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에 합당한 성도의 삶 (벧전 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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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합당한 성도의 삶 (벧전 1:13~15)


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베드로전서는 사도 베드로가 흩어져 있는 성도들 모두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바라는 심정으로 쓴 편지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특별히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베드로의 구원관을 생각해본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고 했어요. 아멘. 

그런데 이것은 구원의 시작이지 끝은 아닙니다.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구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입니다. 

마태복음 24:35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천지는 변해도 영원히 변치 않는 말씀, 천지는 없어져도 우리 예수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 했어요. 예수님이 언제 오실 런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예수님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르 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는 날은 꼭 노아의 때와 같은데 노아 때에 홍수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저 비가 오다가 그치겠지 생각했지만 계속 비가 와서 나중에는 노아의 식구 외에는 다 멸망을 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그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의 심판으로 자기들이 멸망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노아의 때와 같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도 우리가 평소에 하던 일 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오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둘이서 밭에서 일을 했는데 분명히 둘이서 했거든요? 위를 쳐다보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데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는 거예요. 두 여인이 맷돌을 갈고 있었어요. 분명히 둘이서 갈고 있었는데 하나가 없어진 거예요. 위를 쳐다보니까 올라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 오시는 그날에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그때서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신랑 예수님을 맞이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같은 슬기로운 성도가 있는가 하면 신랑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한 어리석은 다섯 처녀같은 사람도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오는 그날에 그런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4:29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이 오시는 날에는 이 우주에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실 때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족속이 통곡한답니다. 공중에 들리어 올라가지 못하고 예수님 만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통곡을 한답니다. 그런데 누가 제일 슬피 울며 통곡할 것 같아요? 평생 교회 다녔고 평생 교회 생활을 했는데 못 올라간 거예요. 그 사람이 제일 슬피 울며 통곡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심으로 믿고 구원받은 성도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 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님 나타나실 때에 다시 말하면 예수님 재림하시는 그 때를 항상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승천하실 때 그들 옆에 있던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그랬어요. 예수님 승천하실 때 다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너희들이 본 그대로 예수님 승천하시는 것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신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재림하신다는 그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 재림하시기 전에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낙원에 가서 예수님 만나게 돼요.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장수해서 오래오래 살아서 예수님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살게 되면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 어떤 모습으로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했으니까 그저 나는 예수 믿으니까 구원받았지 안심을 하고 가끔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고 그저 몇 푼씩 호주머니에서 천 원 이천 원 걸리는 대로 헌금하고 자기 좋은 대로 자기 기분대로 자기 위주로 신앙생활 하던 사람은 우리 주님 오시는 그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믿음만큼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최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하는데 주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주님보다 자기 몸을 더 사랑하고 주님보다 자기 일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적당하게 신앙생활 하던 사람도 아마 주님 오시는 그날 부끄러운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밤낮 복만 달라고 하면서 복 받기만 원했지 주님을 위해서는 한 일이 아무 것도 없고 십자가를 지기는커녕 작은 짐 하나도 지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도 우리 주님 오시는 그날 부끄러운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또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지 않고 예수 안 믿는 사람처럼 먹고 마시며 세상 향락을 누리다가 아슬아슬하게 회개한 사람도 아마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서울에 있는 어떤 큰 교회에서 되어진 일입니다. 교인이 많으니까 차량도 많이 몰려옵니다. 그래서 차량안내원들이 고생을 많이 해요. 차들을 가지고 오면 차량안내원들이 구석구석에 차곡차곡 정리합니다. 예배 마치고 은혜를 받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데 웬 젊은 사람 하나가 자기 차를 찾아보니까 차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차량 안내하시는 분이 지금 그 교회의 차량안내 위원장인 장로님인 줄도 모르고 자기 차를 엉뚱한 데 갖다놨다고 따귀를 막 때리는 거예요. 그랬더니 차량 안내위원들이 모두가 다 우리 장로님 면류관에 별 하나 더 생겼다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나 따귀를 때린 그 사람은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얼굴을 들 수 있을까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차량안내 하시는 분들이 무슨 월급 받고 하는 줄 압니까? 한가해서 하는 줄 압니까? 더우나 추우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 시간도 차량안내 하느라 수고하는데 고마워할 줄 알아야죠. 그분들 수고하신다고 말 한마디라도 해야죠! . 얼마나 감사한 분들입니까? 그 사람을 따귀를 때리다니... 세상에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겠어요?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때때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 다 주님 재림하시는 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사건이 안 생길 수 있겠어요? 화날 일이 생기죠. 

여러분 교회 안에서 아무리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절대로 화를 내지 마세요. 화를 내지 말고 우세요. 눈물이 안 나오면 휴지 하나 눈에다 대면서 쿡 찌르세요.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럴 거예요. “오, 저분은 성자야. 어이구, 저렇게 화가 나는데도 참고 눈물을 흘리다니 성자야.” 그럴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성질내는 사람은 “개떡 같은 인간, 아이고 저게 집사야, 저게 장로야?” 다 욕을 할 거예요. 

여러분 종이 한 장 차이 같지만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거예요.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했을 때 그의 누이 미리암이 얼마나 성질을 냈던지 문둥병에 걸렸던 것을 여러분 아시죠? 하나님이 가만 안 둬요. 하나님이 치세요. 

웃시야 왕도 나라가 강성해졌을 때 교만해져서 분향하는 일이 제사장이 하는 일인데 자기가 하겠다고 건방지게 나설 때 제사장들이 “왕이여, 그것은 못합니다. 하면 안 됩니다.”하고 야단을 치니까 화를 내는 순간에 이마에 문둥병이 생겨서 늙어죽을 때까지 문둥병으로 고생하다 죽었어요. 

여러분 교회 안에서 절대로 성질내면 안 돼요. 언제나 조심해야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 오시는 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을 거예요. 교인들한테 금방 돌려주겠다고 하면서 돈을 꾸어가지고 10년, 20년 지나도 젊잖게 안 갚고 있는 사람들 있어요. 여러분 교회 안에서는 돈 거래를 해서는 안 돼요. 꾸어주지 말고 그냥 줄 수 있으면 도와주세요. 돈을 꾸어줄 때는 아예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주세요. 그 돈을 꼭 받아야 할 돈이라면 없으면 안 되는 돈이라면 절대 꾸어주지 마세요. 만약 그런 돈 꾸어줬다가 안 갚으면 어떡하겠어요? 돈을 꾸는 사람이 얼마나 형편이 어려우니까 돈을 꾸어 가는데 꼭 갚는다는 보장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못 갚게 되면 사람 잃고 원수 되고 돈 잃어버리고 얼마나 손해가 많아요? 그래서 교회에서는 돈 거래를 아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개척 초기에는 어느 집사님 내외분! 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한 시간 후에 주겠다 두 시간 후에 주겠다.”고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다 다니면서 돈을 꾸어가지고 도망가 버렸어요. 삼십 년이 지나도 안 갚고 있어요. 그 사람 아직 안 죽고 살아 있어요. 얼마나 뻔뻔합니까? 어떤 장로님은 돈이 급하니까 구멍가게 하는 분에게 돈을 꾸어가고, 길바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가 사글세방에 사는데 돈 모아 전세방 얻겠다고 한 그 돈까지 꾸어가서 폭삭 망했어요. 

망하려면 혼자 망하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망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 장로님은 그 교회를 떠났어요. 교회가 초상집 같이 되는 거예요. 자기는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교회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잘 생각해야 됩니다. 돈 문제 깨끗하지 못하면 주님 오시는 날 얼굴 들 수가 없어요.

제가 미국에서 집회하던 교회였어요. 그 교회에서 제일 점잖고 새벽예배도 안 빠지고 목사님한테 인사도 제일 잘하고 그렇게 인정받는 장로님 내외분이 그 교회에서 몇 년 동안을 헌금 계수하면서 반 이상을 다 떼먹었어요. 그런 기술이 있는 분이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헌금이 모자라서 밤낮 어려움을 당했는데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그런 짓을 할 줄 누가 알았어요? 

여러분, 도둑이 꼬리가 길면 다 잡히게 돼 있습니다. 교회가 고발할 수 없어 고발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 집에 알 수 없는 수입금이 너무 많아서 처리할 수 없으니까 집에 계속 쌓아두었는데 수십만 불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몇 년 동안 나쁜 짓을 했어요. 그런데 제일 가슴 아픈 것은 회개의 눈물이 없어요.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여러분 그런 짓을 하고 주님 재림하시는 날 어떻게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 주님 앞에 설지 안 설지 모르지만 얼굴을 들 수 없을 거예요.

우리 주님 재림하실 때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참으로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일 줄 믿습니다. 과거에 범한 죄가 많지만 진심으로 회개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과거에 사기꾼 노릇을 한 적도 있고 도둑질, 강도짓, 깡패짓, 술주정뱅이, 바람둥이 노릇 한 적도 있지만 예수님 믿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은혜 받아서 새 사람이 된 사람들도 재림하시는 주님 만날 때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자요,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내놓을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오직 주님의 은혜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주님의 은혜로 살았고 현재도 주님의 은혜로 살고 있지만 장차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날 때에는 더욱더 주님의 은혜 가운데 주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 뿐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갈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흩어짐이 없는 마음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세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마음관리를 잘하는 거예요. 이 마음관리가 얼마나 중요! 한지 몰라요. 그래서 잠언 4:23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어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돼요.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해요. 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관리를 잘하려면 생각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생각이란 갑자기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 거예요. 그런데 좋은 생각을 자꾸 하다보면 그 생각이 쌓여서 좋은 생각이 좋은 마음을 갖게 하고 좋은 인격을 갖게 하고 좋은 말을 하게 하고 좋은 행동을 하게 하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나쁜 생각, 더러운 생각, 음란한 생각을 자꾸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음란한 말을 하게 되고 음란한 짓을 하게 되고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생각관리를 잘해야 돼요. 또 마음관리를 잘하려면 눈 관리를 잘해야 해요. 눈으로 보는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까? 은혜로운 것을 보면 마음에도 은혜가 되고 좋은 것을 보면 좋은 생각이 들고요. 아멘. 그러나 책이나 영화를 봐도 나쁜 것을 보면 나쁜 마음이 들고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거예요.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입 관리도 잘해야 합니다. 평소에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은혜로운 말을 하면 은혜로운 생각, 은혜로운 마음이 생기고 은혜로운 삶을 살게 돼요. 악하고 더럽고 음란한 말을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더러워지는 거예요. 말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했어요. 우리의 믿음은 자랄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성도는 그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 예수님의 성품과 닮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룩한 자를 기뻐하시고 함께하시고 축복하시고 귀하게 들어 쓰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어떻게든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자원해서 어떤 고난이 있어도 목숨 걸고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거룩하게 살려면 순종하는 자식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전에 알지 못 하고 따르던 사욕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본능을 따라, 욕심을 따라 살았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살았어요. 그러나 이제는 신앙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무엇이든 다 하지 않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안 합니다. 먹고 싶다고 무엇이나 먹지 않습니다.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은 안 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로서 합당한 삶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두 아들 비유가 있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큰 아들 보고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하자 “예, 가겠습니다.” 해놓고는 안 갔어요. 둘째 아들을 불러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하자 “싫어요.” 했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돌아가서 일했다고 했어요. 이 두 아들 보다 더 좋은 아들은 어떤 아들일까요? 대답도 “예, 가겠습니다.”하고 열심히 가서 일하는 아들이 있다면 이 아들이 더 훌륭한 아들일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두 다 이 아들과 같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아들과 같이 되어서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 기쁨으로 주님 맞이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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