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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 (마 2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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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 (마 23:1~12)
 
  
오늘은 금년도 종교 개혁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 교회 게시판에 교황에게 던지는 95개의 항의문을 붙이면서 교회 개혁 운동은 유럽 전역에 들불처럼 번져갔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교회는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 개혁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교회 개혁의 방향을 찾으려고 합니다.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심하게 꾸짖으신 것입니다. 아니 꾸짖으신 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저주하신 것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믿고 또 잘 섬기는 종교 지도자들을 주님은 꾸짖으셨다는 말입니다. 

먼저 본문 3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무슨 말입니까?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 자체는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일찍이 야고보서 기자도 말한 바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예나 지금이나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오늘 한국 교회가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 교회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는 아주 열심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좀 지나치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가르친 대로, 또 배워서 아는 대로 실천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지 않습니까?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과연 보물을 하늘에 쌓고 있습니까? 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보다 세상 나라를 더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서로 사랑하지 않습니까? 아는 대로, 또 믿는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남에게 행하라고 가르치면서 자기들은 전혀 행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남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웠습니다. 본문 4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제대로 된 지도자들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 열심을 다해서 그 말씀을 지키도록 합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가르쳤는데 왜 너희들은 제대로 지키지 않는가?"
자기들은 마치 잘 하고 있는 것처럼... 참으로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전혀 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상당히 열심히 하려고 했습니다. 박하와 근채와 회향의 십일조를 드릴 정도라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바리새인으로 살았던 사도 바울의 고백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빌립보서 3장 6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결코 과장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적당히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그들을 그토록 심하게 꾸짖으셨습니까? 그 까닭은 그들의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 상반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다녔습니다. 경문은 그 말씀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말씀을 담은 상자나 그 상자를 매는 끈은 결코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옷술을 길고 화려하게 치장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동기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경우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 부부가 땅을 팔아서 그 땅 판 값 얼마를 사도들 발 앞에 갖다 둔 것은 오늘 우리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 부부가 왜 벌을 받아 죽었습니까? 그들이 전부를 바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 당시 소유를 팔아서 교회에 드리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자기들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마음에도 없는 헌금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 땅 판 값 일부를 숨겼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함으로써 자기들을 돋보이게 하려 한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런 위선적인 태도는 오늘 우리에게서도 종종 발견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위선적인 태도를 결코 용납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책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문 6절, 7절 말씀입니다.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들은 자기를 높이기를 원했습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은 일찍이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이 품고 있는 마음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왜 먹었습니까?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먹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자리가 아닌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상석에 앉는 일은 오직 주님에게 돌려야 합니다. 존경의 말로 칭함을 받는 것도 오직 주님에게 돌려야 합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마 23:8~10)

주님의 말씀의 초점은 모든 존귀와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것이 바로 겸손인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은 자연스럽게 섬김으로 연결됩니다. 주님은 본문 11절 말씀으로 섬기는 자가 될 것을 강조하시지 않았습니까?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요즘 한국 교회 안에 섬김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리더십이라는 말도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군림하고 지배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섬기는 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옛날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했습니다.
셋째,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문제점도 똑같지 않습니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개혁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이제 한국 교회는 새로워져야 합니다. 가르침은 충분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저 행동할 때입니다. 사람들의 좋은 평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코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처럼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발견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요즘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설교하지 마!’라는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혁하는 교회로 새로워질 것 같으면 오히려 세상 사람들로부터 복된 말씀을 들려 달라는 주문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제 개혁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같은 시냇물을 마시지만 독사에게서는 독이 나오고 젖소에게서는 젖이 나옵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복의 통로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빚으시는 성령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김으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여지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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