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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발을 삼가 잠잠하라 (전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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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을 삼가 잠잠하라 (전 5:1~3) 


술 마시는 한국인

대한민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자랑스러운 1위도 있지만 이혼 증가율 세계 1위, 저출산과 고령화 진행률 세계 1위, 자살률 OECD 국가 중 1위 등 부끄러운 1위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항목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술’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직장인 23%가 알코올 중독 상태라는 충격적인 보고가 나왔습니다. 얼마 전 탤런트 최진실 씨의 충격적인 자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그녀를 자살로 몰아간 것은 인터넷에 떠돈 악성 루머와 악성 댓글이므로 이런 것을 올린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소위 ‘최진실 법’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를 자살로 끌고 들어간 것은 바로 ‘술’이라는 사실입니다. 평상시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술을 정말 많이 마셨고 숨진 날 밤에도 술을 마시고 귀가한 후 자택 안방에서 울다 욕실로 들어가 목을 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코올 중독 수준에 이르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어디 술뿐이겠습니까?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중독이 있습니다. 도박 중독, 인터넷 중독, 음란 중독, 이 모든 중독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끊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누군들 이 무서운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중독자들이 끊어보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하지만 안 되는 데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방송에 나온 알코올 중독자가 그 자신도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보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거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고 결국 알코올에 중독에 빠진 순간 정말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고백한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더랍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와 정반대로 정말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바로 그 순간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은혜에 중독되는 순간입니다.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세상의 쾌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 기쁨에 완전히 사로잡혀 중독되는 그 순간, 우리는 나 자신이 너무도 무기력한 존재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됩니다. 그 순간이 바로 인생 최고의 은혜의 시간이요 코람 데오(Coram Deo)를 가장 강력하게 체험하는 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세 가지 하나님의 명령을 살펴보면서 어떨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이런 일을, 이런 놀라운 은혜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명령 : 네 발을 삼가라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은 “네 발을 삼가라”입니다. 오늘 본문 1절 첫 머리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 요즈음 말로 바꾸면 교회에 들어갈 때를 뜻합니다. 그런데 성전에 들어갈 때, 교회에 들어갈 때 “네 발을 삼가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일까요? 어떤 분들은 이 말을 “발을 깨끗이 하라”(출 30:19) 혹은 “신발을 벗으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마치 호렙산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말씀한 것처럼 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함부로 가까이 오지 말라는 뜻이요 또한 그 앞에서 먼지로 더럽혀진 신발을 벗고 삼가는 마음으로 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신발을 벗거나 발을 깨끗이 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를 삼가는 대표적인 행동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전에 이 말씀 그대로 예배당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게 하거나 최소한 강대상에 올라갈 때 신을 신고 올라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 가보면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이슬람 신자들은 마당에서 물로 발을 깨끗이 씻고 들어갑니다. 물론 이 말처럼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거나 발을 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그런 뜻으로만 좁게 해석하지 말고 더 넓게 해석해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늘 발뿐 아니라 마음도 삼가고, 자세를 삼가야 한다는 뜻으로 보어야 합니다. 

경건한 장소에서는 누구나 옷깃을 여미듯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마음을 여미고,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나를 낮추고 겸손한 모습으로 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에 올 때 옷차림이나 외모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너무 노출이 심한 복장이나 너무 편한 복장 말고 가급적 최선의 예의를 갖춘 복장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복장만 아니라 내 마음의 자세를 삼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올 때, 그리고 기도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떤 자세로 서냐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만나는 것이 너무 좋아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도 들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낮은 자세, 진지하고 엄숙한 마음, 삼가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요즘 교회들은 너무 편리를 추구한 나머지 신앙생활도 너무 자유로워지고 편리 위주로 갑니다. 교회 분위기나 예배당 분위기도 너무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물론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 이 방향으로 가다가 교회를 가벼이 여기고, 예배를 가볍게 생각하고, 하나님조차 그렇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두렵습니다. 

천주교나 동방정교회 같은 곳을 가면 교회 분위기와 특히 예배 분위기가 너무도 엄숙합니다. 우리 개신교인들이 볼 때 고리타분해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편의를 너무 찾는 나머지 자칫 ‘예배의 거룩성’이라는 너무도 중요한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새 하나님 앞에 삼가며 엄숙하고 겸손하게 서는 자세를 일어버린 것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신앙의 가치도 떨어지고 진지함도 사라지고 절박함도 없어지고 신앙이 그저 편리한 선택사항, 우리의 취미생활로 전락하고 맙니다. 두려운 일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 앞(Coram Deo)에 설 때 이 삼가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진정 경외하게 되고 그래야 우리 신앙이 바르게 설 수 있는 법입니다.


❚두 번째 명령 : 잠잠할 지어다

하나님의 두 번째 명령은 “말을 적게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절 뒷부분과 2절에 나옵니다.

1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우리가 어느 때 말을 많이 하게 됩니까? 저도 좀 어려운 분 앞에 가면 말을 잘하지 않습니다. 영 조심스러워서 저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대신 어른이 하시는 말을 잘 듣습니다. 그런데 제가 편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만만하게 생각되는 사람 앞에 가면 정말 말을 많이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만만하고 편하면 말이 많아지지만 어려운 분, 나보다 높은 분 앞에서는 당연히 말을 조심하고 줄여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 앞에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선생님 앞에서 말을 삼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말을 잘 안 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수다를 떠는 편입니까? 교회에서는 기도를 많이 하라고 가르칩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므로 기도를 많이 하고 자꾸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도 많이 해야 하지만 기도는 내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

하고 기도 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경계하고 계십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은 기도하면서 뭔가 계속해서 말을 해야 신이 듣는다고 생각하고 절에 가면 그런 것처럼 무엇인가 계속 중얼거리며 기도합니다. 그러다보면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반복하는 기도, 이것을 중언부언(重言復言)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듣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만 기도하면서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말을 줄이고 대신 그 분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라 부르는 테레사 수녀와의 인터뷰 때 앵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기도할 때 뭐라고 말하나요?” 테레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냥 듣고만 있지요.” 의아하게 생각된 앵커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테레사는 대답합니다. “하나님도 들으신답니다.” 테레사 수녀는 기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도란 내가 하나님께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울러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말을 좀 줄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너무 말이 없어서 문제인 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말이 없어서보다 말이 너무 많아서 문제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가급적 말을 줄이십시오. 하고 싶은 말도 웬만하면 참고 반으로 줄이십시오. 내 생각, 내 주장도 가능하면 줄이십시오. 내 고집은 더 줄이십시오. 그러면 교회가 평안하고 성도들이 편안합니다. 본문에도 나온 것처럼 ‘급한 마음’이나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말을 많이 그리고 너무 빨리 내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나 교회 앞에서 말을 줄이는 것, 이것이 참된 코람 데오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세 번째 명령 : 가만히 서서 보라

이제 결론이 되는 하나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을 찾아 읽읍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홀로 일하시기보다 우리와 함께 일하거나 우리를 통해 일하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하실 때 우리도 함께 일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너무나 긴박하거나 큰 위기의 순간에는 우리가 할 일이 정말 없습니다. 우리가 나설 필요도, 힘쓸 필요도, 심지어 말할 필요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 그 놀라운 역사를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퇴양난의 위험에 빠졌습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뒤에는 애굽의 병거가 쳐들어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위로도 아래로도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렇게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대개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해보려고 더 발버둥을 치지만 아무 소용없고 오히려 상황만 더 악화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할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도 하지 말고, 말조차 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애굽 원수들을 쓸어버리시는 것을 구경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잠잠해야 할, 말하지 말아야 할, 삼가며 가만히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왜일까요? 우리에게 예수님의 보혈과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죄와 아무리 싸워봐야 우리가 죄를 이길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율법도 아닌, 인간의 그 어떤 노력도 아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오늘이 종교개혁주일입니다만 종교개혁자 루터도 죄의 문제 때문에 깊이 번민했습니다. 매일 잠도 못자고 죄의 문제로 고민하고 씨름하다가 급기야 로마에 있는 돌계단, 예수님이 잡히신 밤에 오르셨다는 빌라도 총독의 집무실 계단이라고 알려진 이 계단을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옮겨왔다는 전설이 있는 바로 그 돌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며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나기까지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드디어 인간이 하는 그 어떤 고행이나 노력도 아닌, 어떤 몸부림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죄가 해결됨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모토 중 하나인 “오직 은혜”(Sola Gratia)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기도가 안 됩니다. 성경을 보려고 펴도 웬 잡다한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좀 잘 믿어 보려고, 잘못된 습관을 고쳐보려고 애를 써 봐도 안 됩니다. 죄를 끊으려 해도 잘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아, 그 순간에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단다. 더 이상의 어떤 노력도 몸부림도 중단하고 오직 나의 은혜에 의지하려무나.” 하나님은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부터 네 스스로 끊고자 하는 노력을 중단해라. 절대 네 힘으로는 안 된다. 먼저 나를 만나라, 먼저 내 앞에 서라, 그리고 나의 은혜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힘으로 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노력조차 일체 중단하고 다만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께 항복하십시오. 은혜의 포로가 되고 은혜에 중독되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래야 내 문제가 진정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그 절대적인 은혜의 순간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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