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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신의 사명을 아는 성도 (롬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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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명을 아는 성도 (롬 1:5~7)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해 주셨다. 이를 소명이라 한다. 소명(召命)은 한자로 ‘부를 소, 목숨 명’이다. 이는 ‘왕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을 의미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직분자로 하나님께 봉사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뜻한다. 영어로는 calling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사명(使命)은 한자로 ‘하여금 사, 심부름 사’와, ‘목숨 명’이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심부름을 위해 목숨을 걸라는 말이다. 심부름꾼으로 목숨 걸고 해야 할 일이다. 사명은 영어로 Mission이라 한다. 이 단어 역시 임무를 가지고,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군인에게 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목숨을 걸고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이토록 중요한 사명이 없으면, 인생이 방황한다. 인생에 기쁨이 없고, 소망도 없다.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두렵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목이 마른다. 오래 살아도 의미가 없다. 

사명을 모르고 살면, 사람은 쾌락을 좇아 살아간다. 욕심만 자꾸 커진다. 가져도 만족함이 없다. 더 가지려고, 더 누리려고, 더 소유하려고 욕심 부르다가, 죄 짓고, 결국에는 그 죄 때문에 망하게 된다. 돈과 명예와 인기에 목숨을 걸고, 오래 살기 위해, 잘 먹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시기 바란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목표와 방향이, 그 사명 안에 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주셨다.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을 주셨다. 

축복된 삶은 하나님이 우리를 왜 세상에 보내셨는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사명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미 사명이 주어졌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 다만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본문은 이런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믿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다. 3가지로 말씀드리겠다. 


1. 사도로 부르셨다(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는 말이다. 

은혜와 직분은 따로 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믿고 순종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를 사도로 부르셨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부르셨다.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 χάρις’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호의, 만족스런 태도, 너그러움, 선물”이다. 복수를 해야 할 때, 복수를 하지 않고, 오히려 품어 주고, 사랑해 주는 넓은 마음이 ‘카리스’이다. 이 카리스에서 만들어진 단어가 바로 ‘카리스마, χάρισμα’(선물, 영적인 증여, 은사)이다. 

카리스마의 원래 의미는 은혜다. 카리스마는 강렬한 눈빛이나, 상대방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다른 사람을 품어 주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카리스마가 있다고 한다. 은혜가 넘쳐서,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 
는 존재였다. 죄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 이것이 은혜다. 

사도 바울은 은혜 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사람이다. 스테반 집사님이 순교할 때, 그 옆에서 팔짱끼고, 구경하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혈기가 등등했던 사람이다(행22:4). 

(행9:4-5)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함이,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함이라는 말이다. 

그런 바울을 예수님께서 만나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전령으로 일하도록 사명을 주셨으니, 얼마나 놀라운 감격이고 은혜인가? 우리는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맡길 때, 어떤 사람에게 맡기는가? 똑똑하고 일 처리를 잘 하는, 사람에게 맡긴다. 그동안 나에게 잘했던 사람에게 맡긴다. 

집안에서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킬 때, 믿을 만한 자녀에게 시킨다. 특히 돈 심부름은, 더욱 내가 믿을 수 있고,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자식에게 맡긴다. 세상에서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능력이 있어서 목사가 되고, 집사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법칙은,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 과거를 상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라. 우리 과거를 돌아보면, 온통 죄밖에 없다. 부끄러운 수치감이 있다. 저도 예수님을 믿기 전의 저를 생각해 보면, 온통 죄 뿐이다. 그렇다고 제가 은혜 받고 난 이후에는, 죄를 안 지었나요? 죄를 지었다. 

이렇게 저를 부끄럽게 하는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에게 사명을 주셨다. 우리가 능력이 있고, 열심히 있어서가 아니다. 문제가 있고, 상처가 있고, 여러 가지 잘못이 있지만, 우리를 만나 주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축복주시고, 거기다 사명까지 주셨다. 

그래서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도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도로 살라고 하신다. 사도는 내가 받은 은혜와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도록, 보냄 받은 사람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사도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나에게 은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함이, 사도의 사명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야 한다. 우리에게 왜 직분을 주셨는가? 계급으로 알고 폼잡으라고 가 아니라, 은혜 받지 못한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케 하라고 주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셨다면, 그 은혜를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그러면 지금,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고 있나요? 사도로 산다는 말은,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만 아니다. 

남의 집 문을 두드리면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것만이, 사도로서의 삶이 아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삶, 나의 말, 나의 행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하여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 되어야, 사도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경제계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 교육계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장이기 전에, 사도가 되어야 한다. 직원들과 어떤 결정을 할 때, 나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 되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 회사는 뭔가 다르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만 사도로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도가 되었다. 우리로 인하여 사도가 되었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말을 통해서, 행동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셨다(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여기서 것은 (속격, 탈격)이다. 소유로, ∼로부터 살아야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로, 예수님으로부터 힘을 공급받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을 살려면, 내 신분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까, 부자 친구 앞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주눅 든다. 내가 좋아하는 유명한 사람이 “너는 내 거야!”한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주님은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셨다. 

창조주 하나님이 “넌 내 거야!”해 주셨으니, 얼마나 대단한 영광인데, 왜 부자 친구 앞에서 주눅이 듭니까? 내 남편 예수님이 훨씬 더 부자인데, 신랑 되신 예수님의 재산 목록을 진짜 안다면, 주눅들 일이 없다. 

우리는 세상이 나를 소유하지 못하게 해야 된다. 돈 때문에 일하지 말라. 하나님을 위해 일하시기 바란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저도 돈이 좋다. 그런데 돈을 위해 살면, 그는 반드시 부패한다. 욕심에 빠져서 결국은 돈의 노예가 된다. 돈을 위해 일하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든다. 

돈이 사람의 노예가 되고, 사람이 돈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돈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해요.”, “돈벌이가 안 돼서, 그런 일을 할 수 없어요.” 정말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할까요? 믿음이 없고 사명이 없기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 때문에 감격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의 소유가 된 감격과 은혜를 먼저 누린 다음에, 사람을 만나야 된다. 예수 그리스도도 만나지 못하고, 일을 하려고 하니까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지 못한 사람을 만나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우선권이 되어야 하고, 사람을 만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사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넌 내 꺼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못 만난 사람이다. 

‘내 꺼야’라고 생각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내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것으로 생각하면, 감히 내 마음대로 못한다. 저도 아내가 있지만, 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시 내게 맡기셨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된 감격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존중하게 된 
다. 물론 가끔 말싸움을 하고, 다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존중할 수밖에 없다. 너를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사람은, 매우 위험한 사람이다. 

부모님들은, 자식을 내 것으로 여기지 마시기 바란다. “너는 내 아들이니까, 내 말 들어, 너는 내 딸이야 내가 낳았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란다. 우리의 자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잠시 맡긴 자식을, 돌보고 있는 청지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부모님들이 너는 의대에 가야 된다.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강요한다. 하나님의 자식이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부모가 할 일은,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게 해야 한다. 

자식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된, 감격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아들아 딸아 말씀보고 기도하라. 너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인도하시는지 나도 보고 축복해 주고 싶다”고 말해 줘야 한다. 부모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훌륭한 부모는 자식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감격을 누리게 해주는 부모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아가라고 격려해 주는 부모다. 자식을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기도할 기회를 준다. 우리 교회도, 성도들도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임을 감격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그래서 “주님! 저를 마음껏 주장하시고, 저를 마음껏 사용하시고, 원하시는 대로 쓰시옵소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라고 날마다 고백하기 바란다. 주님 마음대로 사용하심이, 우리의 감격이고 기쁨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3. 성도로 부르셨다(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성도가 되었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거룩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된다. 성도는 하나님께 헌신되어 구별된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소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도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과, 다른 법칙을 가지고,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법칙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다. 성도는 예배당 안에만 모여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성도이어야 한다. 세상 부모들은 대학을 위해서라면 주일에도 공부를 하라고 말하지만, 성도인 부모는 세상의 아버지, 어머니들과 달라야 한다. 

세상의 자녀들은 부모님이 TV끄고 공부해라. 그러시면 “아 이거만 보고요”라고 말하지만, 성도인 자녀들은 “네 어머니”하고 즉시로 순종한다. 직장에서도 세상의 직원들과, 성도인 직원들은 달라야 한다. 성도인 사장님은 세상의 다른 사장님과 달라야 한다. 

학교에서 성도인 학생이, 세상의 학생들과 똑같이 술 먹고 담배피우고 반항하고, 숙제도 안하고, 지각하고 수업 시간에 존다면, 어떻게 성도라고 할 수 있는가? 교회에서는 장로님인데, 국회에서는 뇌물 받고 부정부패에 앞장선다면, 성도라고 할 수 없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성도는 세상법칙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법칙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성도는 세상 사람과 다른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성도는 죄의 유혹을 이겨야 한다. 거룩한 사람들끼리 교회 안에 모여 살면서, 우리는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이 아니다. 죄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 세상 가운데서, 그 죄와 싸워 이기며, 영향력을 발휘함이 우리의 부르심이다. 

요셉에게 권력을 가진 여인이 유혹하였다. 출세와 돈과 앞날을 보장하겠다고 유혹한다. 앞으로의 영향력 있는 인생보다는, 지금의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하라고 유혹한다. 보디발의 아내는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유혹의 손길을 보낸다. 죄의 유혹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사명을 가진 성도들은, 죄의 유혹을 이겨내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하고자 할 때, 여러 가지 형태의 유혹이 손을 내밀며, 타협하자고 한다. 그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외칠 줄 알아야 한다.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로 인하여 내게 불이익이 있고, 죽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선포되어야 한다. 술을 마시자고 할 때, 간이 좋지 않기에,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하자는 말이 아니라, 성도이기에 마실 수 없다고 선포해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나는 그리스도인이기에 타협할 수 없다고 외칠 줄 알아야 한다.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로 인해 내게 불이익이 있고, 죽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선포되어야 한다. 

친구가 유혹할 때, 직장 동료들이 유혹할 때, 세상의 죄악이 유혹의 손길을 내밀 때, ‘안 된다’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종들이라면,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있어야 한다. - 군대 간증 - 

성도에게 제일 심한 욕은, 저 사람 집사 맞아? 장로 맞아? 저 사람 예수 믿는 거 맞아? 이 소리가 우리에게 가장 심한 욕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연예인을 닮았다는 소리를 좋아한다. 그러나 성도에게 있어 최고의 찬사는 ‘저 사람 정말 집사답다, 저 사람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답다’는 말이다. 

그 말은 저 사람 진짜 성도라는 뜻이다. 성도는 세상에 영향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있는 존재들이다. 성도에게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성도에게는 세상을 개혁할 능력이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라와 민족을 살리기 위해, 힘쓰는 성도들이 되자. 


결론이다. 사명을 아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도로 부르셨다.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자.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셨다. 내 마음대로 살지 말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삶을 
살자. 성도로서 삶을 살자.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으로 살자.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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