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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빗나간 집착은 화를 부릅니다 (삼상 24: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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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집착은 화를 부릅니다 (삼상 24:16~22)


1. 집착

여러분, “집착(執着)”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사전적으로 이 말은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그것을 잊지 못하고 매달림’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은 돈에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그는 권력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유난히 아이에 대한 집착이 강하였다, 그 사람은 난초에게 심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집착하다, 지나간 일에 집착하다’ 등이 이 집착을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이런 집착을 소재로 만든 영화들이 많은데요. 1993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Boxing Helena)>라는 것이 있습니다. 외과 의사인 닉크는 어머니의 비정상적인 영향으로 남성적인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독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닉크가 헬레나라는 여자를 만나는데, 그때부터 헬레나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닉크는 헬레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던 중 파티에 초대받은 헬레나가 닉크의 비정상적인 점에 욕설을 퍼붓고 집을 뛰쳐나가다가 그만 트럭에 치어 중상을 입게 됩니다. 닉크는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직접 양다리 절단 수술을 하여 자기 곁에 둡니다. 그러나 헬레나가 닉크의 간호와 애정 표현을 무시하자 그녀의 양팔마저 절단해 버린다는 내용입니다. 

또 다른 예는, 2004년에 만들어진 일본 영화 <완전한 사육 2 - 사랑의 40일 (完全なる飼育 愛の40日>입니다. 꽃다운 17살의 여고생 츠무라 하루카는 말없고 얌전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40대 남자인 스미카와에게 납치되고, 그 스미카와는 그녀를 감금해 둔 채 음식과 필요한 물건을 제공하면서 그녀의 모든 모습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처럼 동물을 사육하듯이 그렇게 하루카를 사육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집착에 관한 예들은 아주 많습니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집착이 며느리를 견딜 수 없게 만들고 결국은 아들을 죽이고 만다는 우리나라 영화 <올가미>,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가에 대한 집착으로 그를 가두고 마는 <미져리>라는 미국 영화, 한 번 본 여대생에게 반하여 그를 자기 곁에 두고서 지켜보는 <나쁜 남자>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무엇을 사고 싶으면 반드시 사야지 사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경우, 뚱뚱하지 않은데도 살을 빼야 한다며 거기에 집착하는 경우,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온갖 운동에 집착하는 경우 등, 정말 집착의 예들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집착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욕구불만, 정서불안, 사랑의 결핍, 시간관리를 잘 못하는 것 등 입니다. 즉,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으니까 반대로 자신이 무엇인가에 지나친 애정을 쏟아 보고 싶어서, 할 일은 없고 그 대신에 그 시간을 어떤 대상에 대한 훔쳐보기나 과도한 간섭에 매이게 되는 것이죠. 또 어떤 오락이나 취미나 특별한 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집착이란 아주 강하여 병적인 것도 있지만, 비록 그 정도는 약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뭔가에 집착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집착을 ‘정신병’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정신병"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경계성인격장애(BPD)”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집착이 강하면, 자신에 대한 평가 및 자기정체성이 굉장히 낮고 불안하며, 불안정한 정서를 가지고 있어 우울/분노/짜증을 자주 왕복하며, 자제력이 부족하고 충동적이어서 행동이 예측 불가능하고, 심하면 자해와 자살까지도 저지를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엉망이지요. 

오늘 본문에 소개된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이며, 그의 증상은 어떠했고, 그는 이러한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2. 당신은 무엇에 집착합니까?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이 거듭되는 불순종으로 여호와의 버림을 받은 후에(삼상 15장), 소년 다윗이 차기 왕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자,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했습니다(16:13). 그 얼마 후 사울이 악신으로 인하여 괴로워할 때 다윗이 부름을 받아 자신의 음악으로 그를 치료함으로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윗과 사울이 두 번째로 만난 것은 골리앗을 앞세운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투를 벌였던 믹마스에서였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로 갔던 17세의 어린 소년 다윗은 하나님과 그 백성을 조롱하고 저주하는 골리앗을 넘어뜨린 후 그의 목을 베었고, 이것을 시작으로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전투를 벌려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전 후, 이스라엘 여인들은 승리하고 돌아오는 다윗을 향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18:7)." 그리고 그때부터 다윗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골리앗 사건과 그로 인하여 날로 높아가던 다윗의 인기가 사울로 하여금 다윗에 대해 질투심을 갖게 만들었으며, 그것이 다윗을 핍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18:8-9). 

믹마스 전투 이후로 사울 왕은 다윗을 자신의 궁에 머무르게 했습니다(18:2). 그때부터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일을 처리했고, 이것을 본 사울은 다윗을 최연소 군 사령관으로 삼았고, 온 백성과 사울의 신하들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5). 그러면서도 사울은 계속적으로 다윗을 경계했습니다. 다윗의 명성이 자신을 능가해 가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가 질투심에 불탔기 때문일까요? 종종 악신이 사울에게 임하여 그를 괴롭혔고, 다윗이 그것을 치료하기 위하여 수금을 연주하는 중에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요(6~11). 그 후에 사울은 자신의 둘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다윗을 사위로 삼았습니다. 사울은 여호와도 다윗을 사랑하고, 아들 요나단 뿐 아니라 딸 미갈까지도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다윗을 더욱 더 경계하게 됩니다.

그 후에 사울은 요나단과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19:1). 그러나 요나단이 다윗을 크게 사랑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명을 거역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다윗은 블레셋과 싸워 크게 승리했습니다(8). 그 후에 다시 사울에게 악신이 들었고, 다윗이 수금으로 그를 치료하려고 할 때, 사울은 단창을 던져서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 창을 피해 그 날 밤에 집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사울은 군사들을 다윗의 집으로 보내어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계획을 안 그의 딸 미갈이 남편 다윗을 살리고자 창문에 줄을 달아 내려서 그를 도피시켰습니다. 

그 후에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이 있는 라마로 피난했으며,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 일을 모두 사무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사무엘과 함께 계속 머물렀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사울은 다윗을 잡기 위해서 군사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을 잡으러 온 군사들이 사무엘과 선지자들이 있는 것을 본 순간에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그들도 예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체포 작전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굴하지 않고 또 다른 군사들을 라마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파송을 받은 사울의 군사들도 역시 하나님의 신으로 인하여 예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사울의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다윗을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일이 이 정도 되면 사울이 깨달아야 하지 않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지키시니 앞으로는 다윗을 해하지 말자.’ 그러나 사울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다윗을 죽이겠다면서 라마로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도 임하여 그도 역시 선지자들의 무리와 함께 종일토록 예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의 시도는 매번 하나님의 강력한 개입으로 인하여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포기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사울 왕은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다윗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그 후 다윗은 놉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났습니다(21:1). 블레셋의 공격으로 실로의 성막이 파괴된 후에, 성막은 제사장의 성읍인(22:19) '놉'으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다윗은 제사장의 우림과 둠밈으로 자신의 피신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고, 도피 생활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를 구하기 위해서 그리로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사울 왕의 사람은 있었습니다. 사울의 목자장으로 있던 도엑이 그곳에 있으면서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음식과 칼을 준 일을 고자질했습니다. 이것을 안 사울은 제사장 85명을 죽이고, 놉에 있는 모든 남녀와 가축과 젖 먹는 아이까지 죽이는 엄청난 학살을 저질렀습니다(21:6~19). 

블레셋의 영토인 가드로 갔던 다윗은 거기서 돌아와 유다 산지의 아둘람 굴로 피했습니다. 다윗의 피신 소식을 들은 다윗의 부친과 형제와 모든 집안사람들도 그곳으로 왔습니다(22:1). 이는 반역자의 모든 가족들이 처형을 받는 다시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환난 당한 사람들, 빚진 자들, 그리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에게 모여 들었으며,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잠시 모압으로 갔던 다윗은 다시 유다 광야의 헤렛 숲으로 돌아왔으나(22:5) 거기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유다 광야 일대와 십 광야 일대를 떠돌았습니다(23:13,14). 다윗이 옮겨가는 곳마다 사울의 군대는 쫓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유다 광야 남쪽 마온으로 옮겨갔습니다(23:24). 그러자 사울 왕이 직접 다윗을 잡으려고 군사를 이끌고 그곳으로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사울 왕과 그의 군사들은 블레셋을 막기 위하여 최전선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키신 것입니다. 

그 후 다윗은 엔게디 요새로 갔습니다(23:29).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은(24:1) 군사 3,000명을 이끌고 그리로 갔습니다(2). 그곳에 간 사울은 "발을 가리우기 위해서", 즉 용변을 보기 위하여 길 가에 있는 굴로 들어갔는데요, 바로 그 굴 안에 다윗 일행이 숨어 있었습니다(3). 다윗의 부하들은 ‘지금이 바로 사울을 죽일 때’라면서 ‘그를 죽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베었습니다(4). 그 후 다윗은 굴에서 나간 사울을 뒤따라 나가서 그를 불렀습니다. 그는 사울의 옷자락을 보이면서, 자신이 사울을 해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리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사울은 오늘 다윗이 자기를 죽이지 않고 살려 준 일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선으로 갚아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견고하게 될 것을 알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일종의 평화 협정을 맺었고,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24:16~22).

이것으로 사울의 집착이 끝났을까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평화 협정을 맺은 후에도 사울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이 십 광야 앞에 있는 하길라 산에 숨었다고 밀고했습니다(26:1). 사울은 즉시 정예 병사 3,000명을 이끌고 십 황무지로 갔습니다(2). 당시 높은 지대에 있던 다윗은 사울의 모든 움직임을 잘 관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켜보다가 은밀하게 사울의 진으로 갔습니다. 가서 보니 사울은 자고 있었고, 병사들 역시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신하 아비새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겠다’고 했으나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을 해칠 수 없다’고 대답한 후, 사울의 창과 물병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렇게 사울의 진을 떠나서 건너편에 있는 산으로 간 다윗은 거기서 사울과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을 불렀습니다. 

다윗은 아브넬에게 사울을 경호하지 못한 일을 책망한 후에, 사울에게 ‘여호와 앞에서 무고한 자신의 피를 흘리지 말아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다윗이 이번에도 자신을 살려준 것을 알게 된 사울은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고도 했습니다(26:21~25). 

성도 여러분,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집착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을 꺾고 블레셋을 물리친 이후, 여인들이 뛰놀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라고 노래한 말에 열을 받아 화를 내기 시작한 이후로 불같은 질투심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울을 사탄은 가만 버려두질 않았습니다. 사탄은 사울 왕의 질투심으로 인하여 사울의 마음과 영혼과 삶의 전부를 제 마음대로 조종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키시는 사람을 자신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해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집착의 힘은 강했습니다.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늪처럼 사울을 빨아들여 거기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에게도 사울과 같은 집착은 없는지요? 사람에 대한 것, 돈에 대한 것, 일에 대한 것,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취미나 오락 등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즘 근처 어느 교회 성도 한 분이 제게 계속 전화를 합니다. ‘장로로 피택 되신 분이 거의 매일 직장에서 고스톱 카드 훌라 등 노름을 즐기며, 술을 끊지 못했으며, 심지어 명절에 제사까지 지내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장로가 될 수 있냐?’ 그 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사울처럼 옛 습관이나 옛 사람의 취미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둘 경우 자신과 교회에 엄청난 해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집착은 어떤 면에서는 “탐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과 집착은 한이 없습니다. 

옛날 네 사람이 모여 서로의 「희망사항」을 이야기 했습니다. 한 사람이 “나는 금 만 돈을 가져봤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돈만 아는 수전노 같으니라구. 나는 신선이 되어 학처럼 하늘에 올라가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돈이고 뭐고 나는 열 고을을 다스리는 대감이 되었으면 한이 없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마지막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금 만 돈을 가지고 학을 타고 날아 먼 곳에 가서 열 고을을 다스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욕심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탐심과 집착은 '만악(萬惡)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거짓말이 나오고, 도둑질도 하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간음죄를 짓기도 하고, 심지어는 살인도 합니다. 그 결과, 건강을 잃고, 인생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며,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해롭게 하며, 분열과 갈등만 일으키게 됩니다. 잘못하면 자기의 생명까지 잃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이러한 욕심과 집착이 사탄을 불러 사탄이 그 사람의 주인이 되어 제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삶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욕심을 내고, 집착하는 것들을 이 시간 주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것에 대해서 자유로워지고 편해집니다. 사실 욕심을 내고 집착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여러분이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과 집착에 매어 있으면 평안이 없으며, 삶이 엉망이 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빠져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울의 슬픈 인생을 보십시오! 집착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죽음으로서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문제를 주님께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진실로 거기서 벗어나기 원하며 참 자유와 평안을 원한다고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제게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과하게 욕심을 내고, 거기에 집착하여 다른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들이 제게 있습니다. 이것을 벗을 수 있도록, 이것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문제, 여러분을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는 집착을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면, 참된 평안을 누리는 가운데, 더 크고 많은 것, 더 높고 아름다운 것을 얻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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