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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자랑 (고후 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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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랑 (고후 1:12~14)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쓰게 된 배경에 관해서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기로 했던 계획을 변경한 이유와 그것에 대한 자기 자신의 신앙적 결단의 배경을 이야기 합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었는데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고린도교회 방문 계획을 취소를 하게 됩니다. 그랬더니 교회 안에서 사도바울을 비난하는 몇 몇 사람이 나타나 사도바울을 가리켜 언행불일치 사람이라, 못 믿을 사람이라, 더 나아가 사도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고 사도바울이 증언하는 복음마저도 잘못된 것이다. 라고 확대해서 비난하는 사람까지도 생겼습니다. 사도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도바울이 자기가 내린 결정이 인간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의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이 내린 결정이 인간적인, 세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양심에 입각한 올바른 행동이었고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이야기 하면서 자기 자신의 양심이 그것을 증언한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이 누구와 이야기 할 때 ‘내 양심을 걸고 이야기하는데 내 양심이 증언이야’이렇게 이야기 하면 그것은 진실 될 가능성이 많겠지요? 왜냐하면 사람이 양심을 버리고 이야기 하고 행동을 하게 되면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 아닙니까?

양심이란 무엇인가요? 양심은 사람의 내면의 세계에 있는 목소리입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분명한 생각,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이것이 바로 사람의 양심입니다. 그런데 이 양심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 체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양심적으로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면 그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왜 자기 자신은 양심적이었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그 사람의 가치체계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검정색 썬그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검게 보이고, 붉은색 썬그라스를 끼고 보면 붉게 보입니다.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사물의 색깔이 바뀌지요! 사람의 양심이 어떻게 되어져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결정이 납니다. 그러니까 양심이 잘못된 사람, 왜곡된 사람은 뭔가를 해냈지만 그것이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객관적으로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요 며칠 전 경기도 안산에서 성매매 업소를 경찰이 집중 단속 했습니다. 한 한 달 동안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성매매업소를 다녀간 기록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성매매업소에 가서 돈 주고 길거리의 여인들을 샀는데 크레딧카드를 사용하였습니다. 카드를 조회했더니 이천 몇 백명이 나왔습니다. 거기에는 의사, 변호사, 교수, 군인, 학생,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나왔습니다. 분명히 국가가 성매매업소를 단속 한다고 여러 차례 공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합니다. 그래서 경찰이 조사를 하니까, 반수 이상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 남자치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더랍니다. 그렇게 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양심이 잘 못 된 사람 아닙니까? 자기 아내를 두고 버젓이 유부남이 아내가 아닌 외간 여자와 거리의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에 전혀 윤리적인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이것이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자기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이지요!

디도서1:15에서 디도 사도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양심이 더러운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자기처럼 더럽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은 그래서 잘못된 것을 잘 됐다고 우겨 됩니다. 그 사람은 이미 올바른 가치 판단 기준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이런 우스개 얘기가 있지요? 어느 사람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상담을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선생님, 저는 요즘 행동을 할 때마다 자꾸만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데 제 양심에 그것이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 괴롭습니다.” 의사가 듣고 하는 말이 “그러면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 억제할 수 있는 강한 힘이 당신에게 필요하겠군요. 양심대로 바로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겠군요.”하였더니 이 사람의 말이 “그것이 아니고 양심을 양심을 무디게 하는 것은 양심을 무디게 하는 것은 없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양심을 무디게 한다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을 주었는데 이 양심대로 살면 문제가 없는데 이 양심의 기준이 잘못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자기 자신이 정말 양심을 가지고 증언할 수 있다고 사도바울은 당당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양심대로 살았다고 증언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요? 사도바울이 어떻게 살았길래 사도바울은 내 양심이 그것을 증언한다고 했을까요? 

첫 번째,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 사도바울은 행동하는데 있어서, 말 하는데 있어서, 뭔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지고 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함에는 세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 거룩함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구약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마다 양이나 염소 같은 희생 제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양이나 염소를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릴 때 자기가 지었던 모든 죄를 양이나 염소에게 덮어씌우고 내가 죽어야 될 것을 대신 양이나 염소가 죽음으로 내 죄가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제도를 마련하셔서 사람들의 죄악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아무 양이나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암컷은 가지고 갈 수 없었어요. 수컷 중에서도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다리가 전다거나 귀나 눈이 하나 없다거나 점이 많거나 이상하게 생긴 것은 절대로 하나님께 가지고 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도 세상의 것과 구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처럼 더럽고 못나고 추한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드리는 모든 것들이 세상에 있는 것과 구별된 거룩한 것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몸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집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우리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몸을 가지고 거리의 여인에게 가고, 돈 주고 성을 사고, 술이나 먹고 담배피고 매일 이 몸을 더럽고 추한 일에 사용한다고 하면 우리의 몸은 세상의 것과 똑같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과 구별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바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 받지 않으십니다. 정말로 우리가 양심대로 내가 살아왔다고 하려면 첫 번째 여러분의 몸을 구별하셔야 합니다. 거룩하게 만드셔야 합니다.

돈은 어떤가요? 평생토록 살아가라고 재물을 주셨습니다. 그 재물, 하나님께 바치는 재물은 구별해서 바쳐야 합니다. 깨끗한 것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거룩한 것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사기를 치고 거짓말을 하고 놀음을 해서 돈을 생각을 해 보세요. 그 돈 가지고 십일조 바치고 감사헌금을 바친다고 하면, 하나님이 그 더러운 재물을 받으실까요? 하나님은 돈이 없어 우리에게 헌금을 하라고 하시나요? 우리의 돈은 세상의 더럽고 추한 것과 구별됩니다. 정말 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합법적인 방법으로 내가 재물을 모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십니다. 

그러니까 재물도 세상의 더러운 것과 구별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부정적인 방법으로 재물을 모았는데 그것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절대 부정한 방법으로 번 돈으로 헌금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우리가 모은 재산 중에 정상적인 깨끗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길 원하십니다. 

몸이 그렇고 돈이 그렇다고 한다면 시간은 어떨까요? 시간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1주일에 주일이라고 하는 날을 구별했습니다. 7시예배, 9시예배, 11시예배, 1시반 예배, 두시 반 예배, 시간을 구별해서 바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를 드릴 때에도 시간도 구별해야 합니다. 아무 때나 구해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나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린다고 하는 것은 시간을 구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서만 시간을 다 쓰지 않고 따로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구별해 놓은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강단에 꽃이 아름답게 장식이 되어있는데요. 이 꽃이 세상에서는 그저 흔한 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에 장식이 될 때에는 이것은 성물이 되는 것입니다. 구별된 깨끗한 꽃이 되는 것이지요?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지고 행동했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과 생각을 구별해서 깨끗하게 하나님께 바치려고 노력을 해 왔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자기 자신의 양심이 증언을 한다고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거룩함에 그 거룩함의 의미는 정결한 것을 의미합니다. 정결한 것은 절대 흠이 있거나 더러운 감춰진 의도나 잘못된 것들이 전혀 가미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생각이 깨끗해야 하지요?

레위기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여러분이 만약에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저녁을 잘 차렸는데 아이들이 놀다가 뛰어 들어왔습니다. 보니까 먼지를 뒤집어쓰고 와 씻지도 않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하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가서 손 씻고 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더러운 아이를 깨끗한 식탁에 초대하지 않습니다. 깨끗하게 씻고 오라고 하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별이 되신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정결한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올 때, 우리보고 너도 깨끗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성만찬 하기 전에 일주일 전에 광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만찬에 참여하는데 1주일 동안 내내 죄짓고 더럽게 산 그 영혼, 그 몸 가지고 어떻게 성만찬에 참여합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깨끗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이 이런 하나님의 거룩함, 구별된 삶, 깨끗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 자기 자신의 양심이 증언하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거룩함의 의미는 완전한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48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은 하나님아버지 앞에 가려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부족함이 없이 있는 것 최선을 다하여 바치고 자기 자신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를 내 몸, 내 정성 되는 대로 대충대충 하는 것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찌꺼기 남은 것 구별하여 바치지 않고, 능력도 재능도 짜투리, 하루 종일 1년 365일 나 자신을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재물을 투자 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재능도 아끼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시간도 내지 않고 정성도 내지 않고 그렇게 부족한 짜투리를 하나님께 드리니 하나님도 짜투리 축복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한 삶을 살라, 구별해야 하고 정결해야 하고 온전한 것을 드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양심이 그것을 증언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도바울은 자신이 행동할 때 하나님의 진실함으로 행했다

고 12절 중반 절에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함으로 행했다는 말은 첫 번째는 투명하게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투명한 것은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것이지요? 두 번째 의미는 따른 숨겨진 감춰진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말은 이렇게 하는데 행동은 엉뚱하게 한다는 것은 투명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이지요. 만약에 장사를 하는데 그렇게 사람들을 대해 보세요. 사람들을 다 압니다. 다시는 절대 그 집에 가지 않습니다. 물건을 팔 건, 직장을 다니건, 어디를 가건 간에 마음이 투명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과 행동과 삶을 보고,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하는데 도대체 저 사람은 마음을 알 수가 없다. 흑막이 있거나 감춰진 뭔가 의도가 있는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진실하심, 하나님의 투명하심, 다른 숨겨진 의도가 없이 깨끗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도 살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이렇게 살지 않고 육체의 지혜대로도 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지혜대로는 사람의 생각대로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경험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고린도교회, 너희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었는데 그 계획을 바꾸고 취소한 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나 경험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에 자기 자신의 경험과 지식대로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육체의 지혜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이 가라는 대로, 하나님이 선택하라는 대로, 하나님이 지시해 주시고 보여주시는 것대로 살아갔다는 것이지요?

요즘에 우리 교우들 가운데서도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육체의 질병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병마에 시달리게 되어 있지요! 그런데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아마 6개월이나 1년 밖에 못삽니다. 하면 실망하시겠지요? 의사가 나를 포기한다고 생각해 절망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하나님께 돌아와 열심히 회개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살려주시면 내 육신 정말 주님을 위하여 평생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기도를 들어 질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분들 많이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지혜나 지식이나 경험에 의하면 그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돌아와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육신의 질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뭔가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지혜대로 살아가려고 하지만 정말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 길을 보여 주세요. 하나님이 치료해 주시고 내 결정에 동의해 주세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길로 갔더니 성공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닙니까?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이 육체의 생각이나 경험, 육체의 지혜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사업이 잘 되지 않고, 밤낮을 자지 않고 열심히 일해도 내 직장이 잘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삶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대로만 된다고 고백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매 순간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은혜를 베푸사 건강하게 하옵시고, 오늘도 은혜를 베푸사 장사하게 하옵시고, 오늘도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이 올바로 살 수 있는 가장 유일한 방법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을 하면서 이렇게 살아온 것, 하나님의 진실함과, 하나님의 거룩함과 육체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대로 살아온 모든 것들이 내 양심이 그것을 증언한다. 라고 하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사도바울의 자랑은 인간적인 자랑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로 양심이 증언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과 하나님의 은혜대로만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지나온 과거의 삶, 사도바울은 이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사도바울이 이렇게 순수하게, 진실되게, 거룩하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왔고 그것에 입각해서 고린도교회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변경한 것에 대해서 오해를 했습니다. 부분적으로 밖에 사도바울을 몰랐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14절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그런데 사도바울은 언젠가 주님이 오시면, 주님은 그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그날이 되면 너희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고, 나는 너희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라는 말로 마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대로 살아가려고, 하나님의 진실함으로 살아가려고, 육체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몰라주고 부분적으로 밖에 모르지만 나중에는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사도바울이 이렇게 바르게 살아왔다는 것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알게 되면 사도바울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자랑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것 아닙니까? 남편을 자랑하고, 아내를 자랑하고, 부모님을 자랑하고 자녀를 자랑하는 것은 예전에는 팔불출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제가 나가서 여러분을 자랑하고 우리 교회를 자랑하고 장로님이나 권사님 집사님을 자랑하고 교회의 아름다운 사역을 자랑하게 되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목사님은 교회를 자랑스럽게 여기는구나 하고 좋아하겠지요? 

그런데 만약에 제가 나가서 여러분을 비난한다면, 제가 누워서 침 뱉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다른 교회, 다른 교인들에게 가서 우리교회 목사님을 자랑하고 우리교회를 자랑한다면 그 사람들이 들을 때마다 저 사람들은 서로 자랑하고픈 사람들이라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비난한다면 그런 공동체는 이미 사랑이 깨진 공동체 아닙니까? 

사도바울은 이야기 합니다. “주님 앞에서 너희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내가 너희를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원하노라”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자랑하는 구나, 그렇게 자랑하는 공동체가 될 때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자랑하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가려고 했던 계획을 취소했던 모든 것들이 이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다. 너희가 지금은 나를 잘 이해 못해 부분적으로 밖에 모르나 언젠가 알게 되면 너희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고 나 또한 그것을 깨달은 너희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리라. 이런 사도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비결, 자신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정결한 마음을 가지시고 세상의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양심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고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 모두가 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자랑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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