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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믿음 (삼상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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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믿음 (삼상 25:1)


1. 머 리 말 
         
다윗은 느닷없이 철부지 17살의 어린 소년에게 찾아와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은 현실로 다가오지는 않은 아직은 미완성의 작품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의 비밀스런 선택이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왕이 되기까지는 무려 13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 동안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한 자질을 하나씩 배워 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에게 사울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왕이 되지 않도록 다윗의 삶을 적극적으로 주관하셔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깨닫게 하십니다. 30세에 왕이 될 때 까지 다윗은 갖은 역경을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법을 배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하나씩 쌓아 나갑니다. 
         
그런 다윗에게 인생에 있어서 3번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2번은 그가 왕이 된 후에 겪은 것으로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는 밧세바와의 동침과 그에 따른 결과로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하나님은 다윗을 책망하십니다. 다행히 다윗은 곧바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다윗이 왕이 된 후 겪게 되는 신앙적인 위기였습니다. 이것 말고도 또 하나의 위기가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이것을 그는 왕이 되기전에 겪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 사무엘상 25장의 내용입니다.


2. 몸 말

ㄱ. 문제제기 
         
오늘 말씀 사무엘상 25장 1절의 말씀은 앞·뒤 문맥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듯 합니다. 24장의 내용은 엔게디 광야에서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25장 2-44절은 다윗과 나발, 그의 아내 아비가일의 이야기입니다. 25장 1절은 앞 뒤 문맥과 전혀 상관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1절은 그저 당대 최고의 예언자이며, 마지막 사사로서 하나님의 전권을 부여받았던 사무엘의 죽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앞· 뒤 문맥을 잘 살펴서 해석을 해야 한다는데, 과연 이것과 다음에 나오는 나발의 얘기와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25장 2절 이하의 내용을 살펴보면 간단합니다.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가기 전에 마온지방에 이릅니다. 다윗은 마온지방에서 가장 갑부인 나발에게 먹을 것을 부탁합니다. 마침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자기의 부하들 가운데서 젊은이 열 사람에게 먹을 것을 얻어오도록 합니다. 전에 다윗이 나발의 양떼들을 지켜주었던 적도 있고 해서 다윗은 나발이 다윗의 부탁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발은 정반대로 대답을 합니다. “도대체 다윗이란 자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내가 어찌, 빵이나 물이나, 양털 깎는 일꾼들에게 주려고 잡은 짐승의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사건의 발단은 여기에서 시작 됩니다. 나발의 대답이 다윗을 분노케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부하들에게 명령합니다. “모두 허리에 칼을 차거라!” 그리고 자신도 허리에 자기의 칼을 차고 600명 중 400명이 나발 한 사람을 죽이려고 달려 갑니다.

그러나, 문맥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토록 인내심 많던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고 온 사방을 돌아 다니는 사울조차도 살려주었던 그 다윗이, 원수도 아닌, 자신의 동족을, 그것도 아무런 군사력도 갖고 있지 않던 한갖 갑부에 불과한 나발을 향해서 칼을 들이댑니다. 아무리 모욕을 당했다고해도 600명의 부하들 중 400명이나 거느리고 나발을 죽이려 합니다. 예전에 그토록 인내심 많고, 신앙적으로 굳건했던 다윗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엇이 과연 다윗을 그토록 흥분시켰습니까? 

ㄴ. 반 론
         
어떤 사람은 위의 사건에 대해 다윗이 인간적인 분노를 표출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다윗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가 나에게 있다” 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나발이 나를 그렇게 대우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나발은 나의 모든 친절을 모욕으로 갚았다. 나발이 나를 그렇게 멸시한 데 대하여 보복을 해야겠다. 이 일은 나의 윗사람이며, 원수인 사울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발과 같이 오만한 자에게는 교훈을 남겨 놓아야 한다.” 라고 다윗은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지금 인간적인 분노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인내력이나 자재력을 상실한채, 자신의 동족인 나발을 죽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다윗의 선의의 행동에 대한 대가가 고작 나발의 무시였기에 다윗이 그토록 흥분했을까요? 사실 다윗은 나발뿐만 아니라 나발의 모든 남자 친족들을 살해하기 위하여 불타는 격분 가운데 400명의 사람들과 함께 출발한 것입니다. 다윗은 인내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다윗이 인간적인 분노에 휩싸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24장에서 자신의 원수인 사울조차도 살려주었던 인내와 너그러움은 사라지고, 그깟 나발의 말에 그토록 분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발과 같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의 몇 마디 모욕적인 언사가 다윗을 그렇게도 살의에 가득차게 만든 원인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다윗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다윗이 그토록 나약한 존재였습니까?

ㄷ. 본문 풀이 
         
문제는 어째서 그토록 인내심 많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던 다윗이 한순간 에 이토록 인간적인 모습을 나타냈는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인간적인 격정에 휩싸이도록 만들었습니까? 그 해답을 우리는 오늘 본문 사무엘상 25장 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애곡하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다윗이 인간적인 격정에 휩싸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사무엘의 죽음’에 있었습니다. 17세의 미성년의 나이에 사무엘로부터 왕이 될거라고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 그 기름부음은 비밀리에 거행됩니다. 오직 자신의 가족들만이 참석한 가운데서,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주었습니다. 왕이 될거라는 예언과 함께. 그때로부터 17살의 소년 다윗은 커다란 꿈을 갖게 됩니다. 언제가는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라고. 
         
그러나, 그의 인생은 사무엘의 예언과는 반대로, 13년 동안 죽음에 직면하는 위기의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바로 사울의 칼이 그의 목을 겨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이 그 모진 고난을 다 겪으면서도 잊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것 하나였습니다. 바로 사무엘의 기름부음. 다윗은 사무엘의 기름부음하나만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매 순간마다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번번히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무엘을 통해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 “네가 이후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미쳐 왕이 되기도 전에, 그토록 자신이 의지하던 사무엘이 갑자기 죽어버린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예언자이며 가장 존경을 받고 있던 사무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행한 사무엘이 죽은 것입니다. 막강한 권력과 권위를 갖고 있던 사무엘의 도움과 힘을 의지하였기에, 도망 다니면서도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믿고 있던 그 무엇인가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보다 인간 사무엘을 더 의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초조해 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심경을 현대어 성경은 보다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즈음에 사무엘이 죽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그를 라마에 있는 집에 장사하였다. 이렇게 사무엘도 죽어서 다윗의 위치가 더욱 불리하게 되자, 다윗은 아예 안전한 시내 반도로 들어가 바란 광야에 자리를 잡았다.” 

사무엘의 죽음은 다윗의 위치를 더욱 불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초조해지기 시작하면, 인내심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끝내는 일을 저지르게 마련입니다. 다윗이 인간적인 분노를 표출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동족에게는 칼을 대지 않았던 다윗이 이제는 자신의 동족에게조차 칼을 드리대려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 ‘사무엘의 죽음’ 은 바로 25장 전체 다윗의 행동을 꿰뚫고 있는 말씀입니다. 


3. 주 제
         
이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인간이란, 자신이 믿고 있던 그 무엇인가가 사라지게 되면  초조하게 되고 불안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그 무엇인가를 더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더욱더 의지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한 것 이상으로 인간 사무엘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갖고 있던 힘, 권위를 그는 의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홍성사출판부에서 나온 엔도슈사쿠의 「위대한 몰락」이라는 소설책이 있습니다. 그 책속에는 베라스코라는 스페인 신부가 등장합니다. 그 신부는 일본으로 선교하러 가기 위해서 조국 스페인을 떠납니다. 지금도 일본은 선교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책속의 시대는 임진왜란후 일본이 다른나라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때였기에, 당시에 일본으로 선교하러 간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을 만큼 위험한 때였습니다. 베라스코 신부가 가기 전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으로 선교하러 갔지만, 모두 순교를 당했기 때문에, 감히 어느 누구도 일본에 선교하러 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는 자원을 합니다. 그리고는 일본에 들어갑니다. 

그가 일본으로 선교하러 가는 목적은 한가지 이유에서 였습니다. 일본에서 선교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허락만 된다면, 자기는 주교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라는 꿈을 앉고 그는 일본을 향해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일본으로 들어가서 정부요원을 만나 협상을 벌입니다. 당시 일본은 서방과의 무역을 반드시 해야만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속에서 스페인과의 통상을 시도하려는 때였기에 스페인 통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 통역사의 역할을 이 베라스코 신부가 맡습니다. 

그러면서 이 베라스코 신부는 일본 정부인사들에게 한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자신이 일본과 스페인의 통상을 성사시킬테니, 그 대신에 일본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락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 신부를 이용하여 그 조건을 수락합니다. 신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일을 진행시킵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조국 스페인으로 돌아갑니다. 교황청에서도 이것을 승인할 것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 신부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어지러운 정세로 말미암아 일본정부가 스페인과의 통상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 신부는 한명의 일본인도 전도하지 못하고 맙니다. 결국, 베라스코 신부는 교황청으로부터 문책만 당하고 아무런 소망도 가지지 못한채, 철저히 절망하고 몰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몰락은 몰락이 아니었습니다. 몰락의 심연속에서 그는 자신과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제서야 비로소 참 믿음이 뭔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그 참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죽음의 땅 일본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적인 모든 도움들이 사라진 곳에서 하나님은 사랑으로써 나타나십니다. 베라스코 신부는 인간적인 모든 가능성이 끊어진 그곳, 바로 몰락의 심연속에서 참 하나님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다윗도 엮시 인간적인 모든 도움들이 사라진 그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나발을 죽이러 가고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그제서야 다윗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어떤 행동인지를 깨닫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립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토록 위급한 때에 그대를 보내주셨으니 그분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토록 슬기롭고 신중하게 행동하여 나의 큰 허물을 미리 막아 준 그대의 슬기에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직접 원수를 갚느라고 수많은 사람을 죽일 뻔하였습니다. 그랬더라면 내가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지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발길을 돌립니다. 죄를 지으려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몸소 음성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다윗의 행위는 분명 후회할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통해 몸소 다윗의 발걸음을 막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에 다윗은 멋지게 응답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4. Message
         
성도 여러분, 혹시 하나님보다 인간적인 그 어떤 것을 더 의지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혹시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지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시 다윗이 느낀 불안감과 초조감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죄의 유혹에 빠져 불안감이나 초조감, 절망감 등을 겪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전에는 인간적인 것을 더욱 의지하던 다윗이, 사랑으로 오시는 하나님께 멋지게 응답하여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듯이, 하나님보다 사람을, 물질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여 불안하고 초조해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몸소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바로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는 죄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몸소 사랑으로 찾아오신 분입니다. 여러분도 사랑으로 오시는 하나님께 다윗처럼 멋지게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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