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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염려를 극복하는 법 (요 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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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를 극복하는 법 (요 10:11~15)


1.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양과 목자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기르시는 목자라는 것입니다. 시편80:1에 “요셉을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였습니다.  신약성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기르시는 양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양과 목자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양의 속성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양은 뿔도 없고 상대방을 물 수 있는 송곳니도 없고 뱀이 갖고 있는 독도 없고 사나운 발톱도 없는 아주 나약한 동물입니다. 그러면서도 양은 고집이 세고 미련합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도 서로 꼭 붙어있고, 추운 겨울에는 붙어 있어야 하는데도 각자 떨어져서 벌벌 떨며 잡니다. 미련 곰탱이입니다. 그래서, 목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양은 자기 혼자서는 자리를 옮길 줄도 모릅니다. 목자가 자리를 잡아 주면 거기에서만 뱅뱅 돌며 풀을 뜯어 먹습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합니다. 여기 풀이 시원하지 못하고 저기 멀리 좋은 초원이 있는데도 스스로 다른 데로 옮기지 못합니다. 그만큼 고집스럽고 어리석고 순진한 것이 양입니다. 이런 양이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스스로는 우리를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이리에게 잡혀 죽든지, 굶어죽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양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고집 세고, 미련하고,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제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목자가 필요합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불쌍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품에 돌아오도록 인도하기 위해 다음 주일에 새생명 초청잔치를 여는 것입니다. 


2. 제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기르는 내 양이다. 내가 너의 선한 목자가 아니냐? 너의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인도해주는 데 뭐 그리 걱정이 많고 염려가 많은고?”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염려를 극복하는 법> 이라고 정했습니다. 양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먹고, 자고, 입고 하는 모든 문제는 목자가 책임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라면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여러 가지 염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자녀교육문제, 건강문제, 사업문제, 취직문제, 손자키우는 문제, 노후의 생활 문제 등 늘 염려가 있습니다. 염려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염려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무덤에 내려간 분들일 것입니다. 살아 있는 한, 염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염려가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데 염려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에게 염려가 많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25-34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먹이고 입히시지 않느냐? 하물며 너희들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그렇게 염려가 많을까요? 
믿음이 적어서 염려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맡겨버릴 때,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요, 우리는 그분이 돌보시는 양이라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면서 염려를 극복하는 법 세 가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단순하게 살아야 합니다. 
양은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목자가 이끄는대로 풀을 뜯어먹고, 물을 마시고, 저녁이 되면 목자가 양떼를 몰고 우리에 데리고 가면 잠을 자면 됩니다. 목자가 알아서 다 해주니까, 양은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양은 단순하게 목자만 따릅니다. 목자만 바라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의식주 문제에 있어서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못 먹는 사람없고 입을 옷이 없는 사람도 없고, 비바람을 가릴 집이 없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염려합니까? 더 좋은 옷을 입으려고, 더 좋은 아파트를 사려고, 자녀교육을 더 잘 시키려고 염려합니다. 내 힘으로 뭔가 더 잘 하려고 하면 그만큼 염려가 늘어납니다.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 가정에 가셔서 옷장을 열어보십시오. 입지 않은 옷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주방에 컵, 식기 등 주방용품 중 쓰지 않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욕심은 밑도 끝도 없습니다. 욕심이 충족되지 않으니까 염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말합니다. 요즘 보통 사람들은 120%를 갖고 산답니다. 그래도 더 갖고 싶어서 안달이랍니다. 75%만 갖고 살면 염려의 많은 부분에서 해방됩니다. 
욕심을 내려놓으십시오. 
좀 더 적게 갖고 살려고 노력하십시오. 

염려한다는 단어의 헬라어는 그 의미가 “마음이 나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고 자꾸 다른 생각을 많이 하니까, 염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 힘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의 문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자꾸 생각하면 염려와 불안으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 집중하면 세상의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자꾸 묵상하다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큰 위로와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내 인생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 얼마나 단순합니까? 


4. 하나님께 집중하여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두 번째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인도를 받지 않고는 꼼짝도 못합니다. 어디를 갔다하면 우리를 찾아오지 못합니다. 양은 늘 목자 곁에 있어야 합니다.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더 풍성한 삶을 누리는 길은 없습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23편을 지은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우리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가 우리를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최선의 것, 최고의 것을 안겨주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지치고 힘들 때,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주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막아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죄수의 신분으로 떨어졌습니다. 소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결코 그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으로 일할 때, 감옥에서 죄수로 고생할 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종의 자리에서도, 죄수의 자리에서도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영광의 길, 성공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인생의 나락에 떨어졌다고 생각하시는 여러분, 결코 여러분의 인생이 그렇게 무너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어렵다고 내일도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내일 일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내일도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안겨주실 참 좋으신 하나님을 믿으시고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 해요.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5.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단순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에게도 때때로 염려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염려할 일이 생길 때에는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염려를 극복하는 세 번째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라. 
  
우리가 염려하는 일들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들과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들입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걱정해도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데 이것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끝까지 용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되는 것은 맡겨버리는 것이 최선입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들은 걱정 할 것이 없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면 됩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앉아서 염려하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든, 할 수 없는 일이든 무슨 일이든 간에 염려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면 되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면 됩니다. 
그래도 염려가 생깁니까? 그 순간에 바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맡겨버리십시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10년 염려하는 것보다 10분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
그렇습니다.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6. 욕심을 버리고 단순하게 사십시오. 세상의 복잡한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그분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참 평안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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