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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참된 모습 (행 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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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교회의 모습 (행 2:43~47)


예전에 내가 태산아파트에 거주할 때 유리하는 사람을 부른 적이 있었다. 그가 일을 하며 하는 말이 “교회의 목사님은 엄청나게 부자인가봐요?”라고 묻는다. 큰 교회를 짓는 것을 보고 한 말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를 잘 모른다. 이 세상 사람들은 교회도 회사나 친목 단체처럼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사실 세상의 모임과 단체하고는 같을 수가 없다. 교회는 경제적 이익을 남기는 집단이 아니다. 헌금이 목사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힘을 자랑하고 지배와 군림을 목적으로 세워진 것도 더더욱 아니다. 교회가 세워진 목적은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신 일을 하는데 있다. 

예수님은 눅4:18에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주님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목적은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데 있었다. 은혜의 해란 처음 상태로 모든 것을 되돌리는 회복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과 만물, 그리고 이 세상을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의 목적대로 되돌리는 사역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그것이 개인에게는 구원이고 피조물의 세계에서는 새 창조다.

이제부터 우리 성도들은 나 자신이 교회를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며 건물을 이루고 있는 벽돌 한 장이라는 점을 깨달아 올바른 교회 세우기를 위해 애써야 한다. 이런 의미로 오늘 본문에 소개된 초대 교회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초대 교회의 특징들은 정말 유별났다. 세상이 생각하는 어리석은 엉터리 신자들이 자신의 입맛대로 평가하는 류의 교회의 모습이 아니었다. 기존의 모든 발상을 뛰어넘는 교회의 모습이었다.

1.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의 교회 (행2:43)

세상의 모든 모임은 상식으로 통하고 교제한다. 상식만큼만 행동해도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의 시작을 보면 상식을 넘었다.

행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하였다. 기사와 표적이란 상식으로는 이해되기 어렵다. 과학적 상식, 의학적 상식, 세상적 정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교회 안에 가득하였다. 사도들을 사용하셔서 상식을 초월하는 초월의 역사가 교회에 나타났으니 교회는 특별한 기관이다.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는 곳이 되는 것이 교회에서는 상식이어야 한다. 세상은 이해하지 못해도 교회는 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한다. 안수를 받고 암병이 낫고 입신하여 하늘의 비밀을 보는 등 교회는 기적의 전당이어야 한다.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성에서 표적을 행하였다. 더러운 귀신들이 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다. 표적이란 바로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한 현실로 되어지는 것인데 기사와 표적이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에 많이 나타난 것이다. 

교회는 세상적 상식을 초월하는 기적의 전당이다. 그 교회의 존재 방식은 오늘 21세기에도 변함이 없다. 오늘날 과학의 시대 속의 교회일지라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표적과 기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과학적 상식에 맞추려 한다면 교회는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사와 표적을 제한하는 교회가 된다. 기사와 표적을 향해 마음을 연 교회가 되도록 믿음을 구하자.
  

2. 물질을 뛰어넘은 자유함의 교회 (행2:44~45)

행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질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물질은 어느 시대이든 사람들을 지배하는 신이다.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은 물질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나라나 단체, 어느 모임이나 물질이 주인 행세를 한다. 교회도 물질의 다스림에서 자유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진짜 교회는 물질을 뛰어넘는다. 믿는 사람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다. 내 것이 있고 너의 것이 있는데 내 것이 너의 것으로, 너의 것은 내 것으로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필요한 것을 좇아 나눠주었다.

교회가 세상의 모임과 다를 수 있는 것은 물질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물질에서부터 자유로워져서 물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세상살이의 셈법이 아니다. 더 가지려고 더 소유하려고 물질로 인해 죄를 짓고 살인하고 형제를 해하고 사망을 낳는 삶을 얼마나 달음박질하는가? 그러나 120명, 3,000명으로 늘어난 예루살렘교회는 물질을 뛰어넘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교회의 자유한 존재 모습이 이 시대에도 주님이 명령하시는 모습이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이 섬김이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다. 
  

3. 이기적인 자기 중심을 뛰어넘는 사랑의 교회 (행2:46)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예루살렘교회는 모이는데 있어서 프로였다. 어떤 일이 있든지 성전에서 모였고 집에서 모였다. 모여서 무엇을 하였는가? 마음을 같이 하였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마음을 같이 하였다. 교제하는 일에 마음을 같이 하였다. 떡을 떼며 음식을 먹을 때 기쁨으로, 순전한 마음으로 참여하였다.

여기서 이기적인 마음은 찾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중심에 있는 이기적인 죄, 자기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는 죄가 있으면 마음을 같이 하기 어렵다. 순전한 마음을 갖기 어렵다. 그 이기적인 것을 뛰어넘으니까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니까 성전에 모이게 되고 집에서 모이는 교제의 모임에도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크리스챤들은 분주한 시대를 산다고 떠벌리면서 집에서의 모임을 귀찮아 한다. 예배당에 모이는 예배의 모임이면 크리스챤의 사명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교회의 존재하는 양식의 신비는 집에서 떡을 떼며 모이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행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모이는 것을 사랑하고 교제하는 것을 사랑하고 사랑이 있을 때 더 모여서 전도하고 가르치며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삶을 내어던진다. 이 사랑이 흘러넘쳐서 결국 초대 교회에 교회의 모습은 사랑의 공동체가 된 것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의 능력으로, 물질을 뛰어넘는 자유함으로, 자기 중심을 뛰어넘는 사랑으로 서 있는 교회가 된 것이다. 결국 동동체로서의 교회, 그것이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이요, 그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전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과제이다. 

그런데 이 공동체적인 교회의 모습은 왜 우리의 전략으로 안되는가? 왜 우리의 지식과 의지, 방법으로는 잘 안되는가? 솔직히 말해 육적인 힘으로, 우리 사람만의 힘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는 상식을 초월할 수 없고 물질의 매력을 초월할 수 없고 이기심의 죄를 초월할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안된다.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고 공동체가 되는 길은 성령의 역사다. 성령이 오시므로 ①상식을 초월하고 ②물질을 초월하고 물질을 나눈다. ③이기심을 초월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된다. 결국 공동체는 성령의 열매다. 120명의 제자들이 교회를 세울 때 사람의 전략으로 다락방 이사회에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성령을 기다렸고 성령이 임했을 때 공동체는 그들 가운데 창조되었다. 모든 것을 초월하고 뛰어넘는 참된 교회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결국 교회란 인간의 지식으로 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교회란 성령의 역사로 강해지고 놀랍게 세상의 것과 구별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교회의 참모습을 회복하고 거룩한 주님의 신부로 서기 위해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과 연합하자. 신부 단장을 해주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능력 안에 거하자.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보자. 공동체적인 교회가 이루어지니까 두 가지 열매가 맺혔다.

하나는 행2:47上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또 하나는 행2:47下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가 세워진 목적은 날마다 구원 얻는 사람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면 이 초대 교회의 멋지고 놀라운 교회의 모습이 재현될 것이다. 매일 매일 구원 받은 사람이 더하는 교회! 그것이 참교회다. 참교회의 역할이다.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살아나고 인생의 죄더미에서 의인이 되고 허무와 무의미에서 살아나고 방황과 혼돈에서 빠져나오는 구원, 가난과 질병, 사람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는 구원, 미신과 부적에서 나오는 구원, 그것이 참교회의 열매다. 이 모든 것이 주의 신으로 된다. 성령을 사모하자.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갈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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