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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반석 위에 내 교회 (출 33:21~23, 마 16: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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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내 교회 (출 33:21~23, 마 16:18~20)


오늘은 우리교회 창립 114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창립을 축하하는 특별한 행사는 없지만 우리 교회를 주시고 오랜 역사 속에서 친히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돌리는 귀한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114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여러 가지 많은 의미가 있지만 114라고 할 때 가장 익숙한 것은 전화번호 안내 번호입니다. 114에 전화하면 거의 모든 전화번호를 다 알 수 있습니다. 114주년을 맞이하는 우리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안내하는 교회, 길잡이가 되는 교회, 해결사가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교회가 많습니다. 무슨 ‘제일교회’라고 하지만 제일이 아닌 교회도 많습니다. ‘중앙교회’라고 하지만 저기 변두리에 있는 교회도 많습니다. ‘한마음교회’라고 하지만 두 마음, 세 마음인 교회도 있습니다. ‘반석교회’라 부르지만 반석은커녕 흔들바위 같은 교회도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라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주님이 아닌 사람의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는 그 이름에 어울려야 하고, 모든 교회가 주님의 교회이어야 하고, 모든 교회가 반석교회이어야 하고, 모든 교회가 한마음교회여야 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번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부활 후에 예수님을 만난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확신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18에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다음에 예수님께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반석위의 교회를 친히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반석은 베드로입니까? 물론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한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입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기초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베드로도 인간이었습니다. 실수도 많이 하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인격이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가 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 성경을 해석하면서 베드로가 반석이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라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제1대 교황이라고 합니다. 현재 베네딕토 16세는 265대 교황입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도 교회의 기초일 수는 없습니다.
  
반석은 하나님의 별칭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성경에는 반석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 “오직 저만 나의 반석”, “우리 구원의 반석” 등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지칭하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견고하시며, 변치 않으시며, 든든한 기초가 되십니다. 반석은 하나님의 별칭인데 하나님의 별칭을 베드로의 이름으로 붙여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영광이며 명예로운 일입니다.
  
반석이란 말은 구약에서는 ‘수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안전과 방어, 침입할 수 없는 요새를 의미합니다. 신약에서는 ‘페트로스’로서 이 말은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든든한 바위이시며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0:4에는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합니다. 반석 위의 교회는 하나님이 지키시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가 머릿돌인 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반석 위에 세운 든든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교회는 반석 위에 있는 것처럼 견고해야 합니다.

18절에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음부의 권세는 지옥권세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호시탐탐 교회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로 하여금 마귀의 세력이 이기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마귀의 권세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가장 탐내는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세상이 아니라 교회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세상은 이미 자기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연동교회가 내 교회입니까? 모든 교회가 그러하듯이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예수님의 권세가 이겨야합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예수님이 지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교회에 음부의 권세가 어떻게 지배할 수 있습니까? 음부의 권세는 음부를 지배합니다.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내 권세”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내 권세입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교회의 권세가 돼야 합니다.
  
사탄을 보세요. 사탄은 끊임없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까지도 시험합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천하만국 보이며 “내게 절하면” 세상을 다 주겠다고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까지 지배하려고 합니다. 사탄은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데 이제 교회를 자기 권세로 지배하려고 합니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안에 내가 정말 추구해야 할 인간적 자아와 싸우는 두 가지 적이 있다. 하나는 동물적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적 자아이다. 이 둘 중에 더 나쁜 것은 악마적 자아이다. 교회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냉정하고 독선적인 도덕가가 거리의 매춘부보다 훨씬 더 지옥에 가까울 수 있다.” 이런 악마적 위선, 악마적 자아가 교회 안에 존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속에 있는 악마적 요소들 때문입니다. 악마적 자아가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란 공히 신비와 혼란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이중성입니다. 교회는 거룩하면서도 세속적입니다. 교회는 거룩하면서도 거룩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천사표이면서도 간혹은 악마표를 달고 다닙니다. 사탄의 권세가 지배하지는 못하지만 사탄은 하지도 못할 일을 끊임없이 조장하여 교회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 13퍼센트가 심판과 지옥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 절반이 넘는 부분이 죄인들의 영원한 심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옥을 가리키는 가장 강력한 단어인 ‘게헨나’는 성경에 열두 번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그 가운데 열한 번 이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예수님보다 지옥에 대해 더 많이 말한 이는 없습니다. 지옥은 예수님과는 등진 세계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하여는 언제나 원수입니다.
  
시편 40:2에는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옥에서 끌어올리시고, 반석 위에 두셔서 견고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교회를 그렇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음부의 권세가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지옥에서 세 명의 성직자가 만났습니다. 가톨릭 사제와, 유대교 랍비와, 뉴에이지 목사였습니다. 이 세 사람이 왜 지옥에 오게 되었을까요? 가톨릭 사제가 먼저 말했습니다. 그는 술독에 빠져서 너무 술을 좋아해서 지옥에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랍비가 입을 열었습니다. “햄 샌드위치 같은 음식을 먹었어요. 전 그런 음식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뉴 에이지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여기에 오셨지요?” “여긴 지옥입니다. 전 조금도 불편하지 않아요”. 지옥이 불편하지 않으면 곤란하지요? 음부의 권세가 편하면 음부의 편이지요? 음부의 권세가 지배하면 더 이상 교회는 아닙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는 비결을 아십니까? 예수님이 반석이시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이면 가능합니다. 이런 견고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교회는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19절에는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합니다. 교회는 사회의 해결사, 열쇠, 희망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은 해결사이셨습니다.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와 함께 혼인잔치에 참석하셨다가 포도주를 해결하셨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게 하셨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먹을 것 주라”고 하셨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바람과 풍랑 때문에 배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자 바람을 향해 “고요하라”, 풍랑을 향해 “잔잔하라”고 하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형제의 재산문제까지 해결해 달라고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너희의 재판관으로 세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오신 분입니다.
  
교회도 문제의 해결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무슨 문제든지 교회를 통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세상을 향해 인식시켜야 합니다. 교회는 통(通)입니다. 모든 일이 교회를 통하여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성막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성전에서는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은 문제해결의 기본핵심입니다.
  
지금도 교회가 세상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교회는 무슨 문제든지 해결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경제의 문제, 아이들 학업의 문제, 취업과 전업의 문제, 달러 환율까지, 수출문제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가 교회에 있습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을 아시지요?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물쇠와 열쇠는 항상 같이 있습니다. 자물쇠만 팔고 열쇠는 안파는 것을 봤습니까? 열쇠는 파는데 자물쇠를 팔지 않는 것을 봤습니까? “문제해결의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풀 수 있고, 교회가 풀어야 합니다.
  
교회는 양의 문처럼 들어가면 구원을 받습니다.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습니다. 피곤한 자는 능력을 주십니다. 무능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십니다. 교회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어야 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외교, 안보, 모든 인생의 문제에 교회는 해결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해결합니까? 성경을 보세요. 성경대로 사세요. 여기에 열쇠가 있습니다.
  
호텔에는 마스터키가 있습니다. 마스터키는 모든 방을 다 열 수 있습니다. 마스터키 하나만 있으면 모든 방을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입니다. 아마 제가 연동교회에 부임해서 얼마 되지 않은 때였던 것 같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갔는데 두 아이가 다 잠이 들었습니다. 하필 그 날은 열쇠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밖에서 문을 두드려도 안 되고, 집 전화로 벨을 울려도 안 되고, 도무지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경비실에 연락해서 좋은 수가 없는가 물었습니다. 우리 연락을 받고 경비원 아저씨들이 왔습니다. 이곳저곳 한참을 밖에서 살펴보더니 한 경비원 아저씨가 아파트 밖에 있는 가스 파이프를 타고 집 안에 들어가서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경비원 아저씨가 혹시나 다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모릅니다. 열쇠는 손가락 하나 정도의 길이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의 가치는 엄청납니다. 그 것 하나만 있으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문제 해결사 노릇을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모세는 백성들의 재판 문제로 사람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고 그의 장인 이드로는 ‘선하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데 사람과의 관계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문제를 푸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문제를 풀어야 세상과 풀립니다.
  
하나님과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세상과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땅에서만 매면 필요가 없습니다. 땅에서만 풀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요”.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매이기도 하고 풀리기도 한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여는 열쇠이며 세상을 닫는 빗장입니다. 열쇠는 열기만 합니까? 닫기도 합니다.
  
하비 콕스는 세 가지 유형의 교회를 말했습니다. 자유와 정의를 향한 출애굽기의 교회, 감사와 축제가 있는 시편의 교회,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계시록의 교회가 세 가지 유형입니다. 세상과 하늘나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교회가 되어야 진정한 교회입니다. 이 셋 중에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온전한 교회가 아닙니다. 이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해결하는 열쇠가 교회입니다.
  
프랭클린은 “쓰고 있는 열쇠는 항상 빛난다”고 하였습니다. 늘 쓰는 열쇠는 언제나 손에 닳아 빛이 납니다. 자주 쓰지 않는 열쇠는 녹이 슬거나 색깔이 변해 있기 마련입니다. 교회가 늘 살아있어야 녹슬지 않는 열쇠처럼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맥가이버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인입니다. 비록 영화이지만 그의 손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닫혀도 열고 갇혀도 빠져나옵니다. 그의 손이 모든 것을 해결하듯이 교회는 세상을 향한 만능의 마이더스 손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손을 대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손이 닿으면 병이 나았습니다. 바울의 앞치마만 닿아도, 그림자만 닿아도 병이 나았습니다. 바울의 손이 닿으면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났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한 만능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맥가이버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 생동하는 교회,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 가슴이 뜨거운 교회, 손발이 부지런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우리는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은 가톨릭교회, 성공회, 개신교가 함께 하는 신앙 고백서입니다. 그러나 동방정교회는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사도신경은 12사도의 전승에 따라 작성한 것입니다. 초기에는 세례예비자의 문답례로 사용하던 것인데 최종 형식은 6세기말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12세기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공식적인 신앙진술로 인정하였습니다. 사도신경의 한 마디 한 자가 중요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신앙고백이 확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든든한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신앙고백이 분명한 사람이 교회의 일꾼입니다.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입니다. 불확실한 신앙고백은 교회를 뿌리 채 흔들고 맙니다. 지금도 신앙고백은 교회의 기초입니다. 이 든든한 신앙고백이 하늘을 여는 열쇠입니다. 세상을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우리교회가 신앙고백 위에 견고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하늘을 열고 세상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120년, 130년, 주님 오실 때까지 든든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하늘을 여는 열쇠와 같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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