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슴을 뛰게 하는 복음 (딤후 4:1~8)

  • 잡초 잡초
  • 312
  • 0

첨부 1


가슴을 뛰게 하는 복음 (딤후 4:1~8)


운동 경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기합을 넣습니다. 역도 선수들이 역기를 들어 올릴 때 기합과 함께 역기를 들어 올립니다. 태권도 선수들이 경기를 하면서 기합을 넣으면서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검도 할 때도 보면 짧고 강한 기합과 함께 공격합니다. 구기 종목 선수들이 경기를 하면서 서로 하이 파이브를 하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경기하는 모습을 봅니다. 

여러분, 기합이 선수의 경기력 향상에 영향력을 줄 것 같습니까? 영향력을 주지 않을 것 같습니까? 운동 선수들에게 기합이 경기력을 향상시키는데 어떤 영향력이 있을까? 하는 것을 연구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기합을 넣을 때와 기합을 넣지 않을 때의 경기력의 차이는 약 10-15%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기합은 선수 개인 자신의 내면에 있는 힘을 모으는 역할을 한답니다. 단체 경기에서도 기합은 자신의 힘을 끌어 올릴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을 격려하고 힘을 하나로 모으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영적인 기합이 필요합니다. 감사한 일이 있을 때 영적인 기합은 감사의 기쁨을 더 크게 만듭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에 영적인 기합은 그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줍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영적인 기합이 있겠습니까? ‘아멘, 할렐루야, 주여’ 등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 영적인 기합에 익숙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예배 때에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봉헌으로 헌신과 섬김을 결단할 때 ‘아멘’의 영적 기합이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표 기도를 할 때 기도를 잘하는가 못하는가를 들어 보는 분위기가 아니라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기도에 동참하고 기도하는 분에게 힘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을 부를 때, 특히 성가대가 찬양으로 영광을 돌린 후에 ‘아멘’으로 화답함으로서 찬양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설교를 들을 때 굳은 얼굴로 저를 째려 보지 마시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가운데 설교하는 목사에게 힘도 실어주고, 아멘으로 응답하는 가운데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이 옥토로 기경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은 요한 계시록입니다. 
계시록의 마지막은 22장 21절입니다. 그 성경의 마지막 절을 읽어 드리면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성경의 마지막 단어는 ‘아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그대로 이뤄지기를 소원하면서 고백하는 것이 바로 아멘입니다. ‘아멘’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의 영적인 기합입니다. 아멘이 살아 있는 성도, 아멘이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힘든 세상을 살다가 사랑하는 성도들이 교회에 모였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는 인사를 한번 나눕시다. 서로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인사를 나눕시다. ‘잘 나오셨습니다.’ ‘힘 내십시오’ ‘아멘의 신앙으로 승리합시다’ ‘ 사랑합니다’ 

마라톤에서 서브 스리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마라톤의 42.195km의 정해진 구간을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가지고 있는 꿈이 바로 서브 스리입니다. 우리 교회에 김광진 집사님이 아마추어로서는 강서구에서 유명한 마라토너인데 서브 스리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라톤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일차적인 목표는 42.195km를 완주하는 것입니다. 완주한 다음의 목표는 기록을 단축하는 것이고 그 다음의 목표는 입상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생활을 종종 경주에 비유합니다. 신앙생활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마라톤 경주에 참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을 향해 달려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삽니다. 

사람들 중에 일부의 사람들이 천국을 믿고 천국을 향해 살아갑니다. 천국을 향하여 경주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기에 모여 천국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천국에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천국을 향해 긴 마라톤 코스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천국을 향해 긴 마라톤에 참여 했다고 해서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천국까지 완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을 향한 믿음의 경주에서 모든 사람들이 완주를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중도에 탈락합니다. 초기에 탈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간 지점에 탈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표 지점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안타깝게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천국 마라톤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도 일차적인 목표는 완주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이르는 것입니다. 천국에 이른 후에 다음 목표는 상급입니다. 하나님은 충성한 자에게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바라기는 행복한교회 모든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천국을 향해 경주하는 경주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5장 19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 고 말하면서 믿는 자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천국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천국을 향해 경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 땅의 것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땅의 것을 가지고 도리어 천국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가 천국을 향해 달려갈 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생명을 위협 받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악한 사단 세력들은 바울의 믿음의 경주를 수없이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천국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천국을 향해 달렸습니다. 

충청도 사람들이 느려서 죽는 것도 천천히 죽을 것 같은데 죽음에 관한한 충청도 말이 제일 급하답니다. ‘죽었습니다’라는 말을 경상도 말로 하면 ‘죽었다 아입니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라도 말로 하면 ‘죽어 브렀어라우’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충청도 말은 매우 간단합니다. ‘갔시유’ 

바울은 자신의 죽음의 날이 임박해 왔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갔시유’라는 간단한 표현처럼 바울은 6절 말씀에서 ‘벌써’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죽음이 순식간에 다가 왔음을 말합니다. 바울은 6절에서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죽음의 때가 다가옴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제자인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읽어보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바울에게서 전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함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 당당합니다. 

그는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라고 말씀하며 오히려 남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천국의 소망의 선포합니다. 희망을 노래합니다. 

바울이 죽음 앞에서도 이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천국을 향한 마라톤에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라톤에서 완주를 하고도 힘이 남아 돌아 트랙을 계속 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경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천국을 향한 경주에 온 힘을 기울여 달려 왔다고 말합니다. 천국을 위해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또 한 가지는 바울은 천국의 경주 후에 상급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이에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은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천국에서의 상급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거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희망을 노래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그 희망을 선포합니다. 

요즘 서점에 ‘마지막 강의’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췌장암으로 죽어가면서도 고별 강의를 한 카네기멜런대 교수인 랜디 포시의 삶을 기록한 책입니다. 

대학 관계자는 췌장암을 잘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랜디 포시 교수에게 ‘여정’이라는 특별 수업의 강의를 부탁했습니다. 포시 교수는 기꺼이 승낙하고 강의를 준비하는 중에 주치 의사로부터 췌장암 치료에 실패했다는 것과 얼마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습니다. 포시 교수는 많은 고민을 하는 가운데 주어진 강의를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아내는 강의를 준비하다 보면 더 건강이 악화되고 세 명의 아이들과 마지막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도 갖지 못한다고 반대합니다. 

포시 교수는 아내에게 자신이 얼만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놀아 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겠지만 자신이 죽은 후에 마지막까지 삶에 최선을 다한 아빠의 강의 동영상을 아이들이 본다면 어떤 추억보다도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로서의 영향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아내를 설득합니다. 결국 포시 교수의 강의에 대한 열정에 아내가 동의를 합니다. 포시 교수는 췌장암으로 죽음을 선고 받기 이전의 자신의 삶과 죽음을 선고 받는 후의 삶의 내용을 영상으로 정리하며 강의를 준비합니다. 탈진이 될 정도의 상태에서도 약을 투여하며 강의를 준비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강의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에 나선 포시 교수는 유머을 잃지 않고 웃음을 만들며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준비한 강의를 이어갑니다. 그의 강의는 강의실을 가득 메운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졌고 강의를 듣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강의를 찍은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보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랜디 포시는 마흔 여덟살로 지난 7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강의 동영상과 그의 생애를 기록한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삶의 희망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의 초점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그는 절망 앞에서 희망을 말했습니다. 절망 속에서 절망을 탄식함에는 감동이 없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노래하며 희망을 향해 일어설 때 바로 그곳에 감동이 있고 놀라운 변화와 역사가 있습니다. 

사람은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가치관 중에는 사람의 죽음과 함께 무의미해지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반면에 죽음 앞에서도 도리어 더 빛나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바울과 랜디 포시 교수는 죽음 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산 사람들입니다.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을 목표로 삼아 뛰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물, 명예, 권력, 쾌락, 취미 등에 삶의 목표를 두고 인생의 마라톤을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골인 지점에 도착했을 때 그것들이 모두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죽음 앞에 이르게 되면 재물도, 명예도, 권력도, 지식도, 즐기던 모든 것들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죽음 앞에서 절망하며 탄식합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인생은 헛되고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인생 마라톤의 목표를 천국으로 세우고 경주하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을 목표로 삼고 경주하는 사람들은 죽음 앞에 설 때 절망과 두려움이 아닌 희망과 소망을 노래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승자의 모습을 죽음 앞에서 보입니다. 바울이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바울은 천국을 향한 인생 마라톤의 마지막 부분인 죽음에 도달했을 때 천국의 영광을 바라 보며 노래했습니다. 그는 천국의 문턱에서 천국의 영광을 보며 제자 디모데에게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는 죽음 앞에서도 천국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믿음을 심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한 영혼, 한 영혼이 천국의 백성으로 세워지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가슴은 뛰었습니다. 

바울은 평생 자신의 가슴을 뛰게 했던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며 살았고, 이제는 죽음의 문턱에서 디모데에게 전도자의 사명의 바통을 넘겨 주며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증거하는 일에 힘쓰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가슴을 뛰게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디모데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디모데의 가슴을 뛰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복음으로 가슴이 뛰는 성도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 천국의 기쁨과 평안이 충만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능력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