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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은 전도하는 자를 기다린다 (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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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전도하는 자를 기다린다 (욘 1:4~10)


오늘 예수님이 이 설교단에 서계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아마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이 설교단에 서계신다면, 오늘도 역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되풀이하셨을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여전히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를 명령하실 것입니다. 
서론으로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전도에 관한 오해를 잠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전도는 교회 행사다! 

교회 행사니 그저 대충 때워도 된다는 오해입니다. 
네덜란드 신학자 ‘요한네스 블라우’는 전도에 관한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불은 타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교회는 전도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행사 중 하나가 아니라, 행정과 재정, 사역과 조직을 극대화해서 총력전을 펼쳐야 할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어떤 교회는 ‘올해는 총력 전도의 해’라는 표어를 내걸기도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전도하는 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올해도, 내년에도, 그리고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복음전도는 우리의 모든 행정과 재정, 사역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목숨 걸고 해야 할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전도 외에 너무나 하는 일이 많아 문제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전도가 곧 교회의 본질이요, 존재 목적입니다. 


2) 전도는 은사다! 

교우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약처럼 퍼져 있는 잘못된 생각으로, 전도는 ‘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만 하는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어명입니다. 
찬양이 은사입니까? 명령입니까? 

성경에서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찬양은 은사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예배가 은사입니까? 명령입니까? 
예배 또한 명령입니다. 
마찬가지로 전도는 은사가 아니고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은사가 없어서 전도를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예배의 은사가 없어서 예배드리지 못한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어불성설이지요. 
은사와 명령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3) 전도는 어렵다! 

아마도 성도들이 가장 쉽게 말하는 변명일 것입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어렵다’고 말하는 부하들에게 “해봤어?”라고 되물었다고 하잖아요. 
가려 하지 않고, 만나려 하지 않고, 말하려 하지 않기에 전도가 어려운 것입니다. 
온갖 핑계를 대며 가지 않게 하고, 만나지 않게 하고, 말하지 않게 하고, 전도를 힘들고 부담되고 어렵다고 믿게 만드는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에게 속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전도 대상자를 마음에 품으십시오. 
그리고 적절한 때에 전화하십시오. 

지난 수요일 강사로 오신 김기현 목사님의 말씀대로 전도하려는 사람의 장점 50가지를 적은 2,500원짜리 액자라도 만들어, “나 싱거운 짓 한번 해봤어!”라고 수줍게 전달해주십시오. 

그렇지 않고 계속 전도에 대해 부담만 느끼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마귀가 너무나 좋아는 스타일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마귀는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지 모릅니다.  “너는 딱 내 스타일이야!” 

본문의 말씀입니다. 
유대인 요나는 앗수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인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니느웨는 요나가 살던 곳으로부터 동편으로 약 1천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티그리스 강가에 세워진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역하고 니느웨로 가는 대신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선표를 샀습니다. 
요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기 싫은 곳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니느웨를 꼽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요나의 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니느웨는 유대인들에게 악명 높은 성읍이었습니다. 
앗수르의 왕들은 유대인들에게 잔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살리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니, 요나는 당연히 이 임무가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강권적인 이끄심으로 요나는 니느웨로 갔고, 니느웨 성읍은 그의 경고를 듣고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켰습니다. 

요나서를 통하여 우리는 전도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 하나님의 명령, 복음 전도를 외면하면 그 인생은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요나의 행적이 어떤 식으로 요나서에 기록되었는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나1: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요나1:5절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어 깊이 잠이 든지라.” 

요나1:15절에 보면, 폭풍이 몰아쳤을 때, 선원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나 1:17절에 보면 이윽고 요나는 큰 물고기의 뱃속으로 ‘내려갑니다.’ 
요나의 삶은 이상하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성경은 이런 표현들을 통하여 우리 독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싶어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 복음 전도를 외면하면 그 인생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진리입니다. 
새겨보아야 할 말씀입니다. 

그 때 요나는 자기 신세를 이렇게 한탄조로 여호와께 아룁니다. 
요나2:3절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요나2:6절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그런데 요나서는 요나가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모습을 올라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나3:3절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복음을 전할 때 우리 인생의 값어치도 올라감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저가 새벽기도회 때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무당, 점쟁이들이 잘 살고, 그 후손들이 잘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런 얘기를 들으셨다면 저한테 알려주십시오.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반면 우리는 순교자의 자손이 잘 된다는 얘기는 수도 없이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지난 주 우리 남선교회가 강화를 방문했는데, 회원들은 ‘마라우물’이란 곳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제 눈에는 그 주인이 돈을 갈고리로 긁어모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이 바로 토마스 하디 선교사를 공궤했던 믿음의 가정의 7대 손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2) 전도는 하나님이 주도하십니다. 

니느웨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요나로부터 나왔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지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벧후 3: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처음에 요나는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는 양 행동하며 하나님의 의도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동편으로 가는 대신 서편에 있는 다시스로 가려고 했습니다. 
다시스는 어디입니까? 

다시스가 어디인지 찾아내기 위해 성경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 결과 ‘다시스’라는 단어는 광석, 은, 금, 주석 등의 제련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다시스로 향하는 선박은 비싼 수하물을 싣고 다니는 일종의 보물선이었습니다. 
요나가 보기에 다시스의 선박은 부와 사치와 쾌락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니느웨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희생뿐이었습니다. 
선택은 자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나의 선택을 가만히 놔뒀습니까? 
절대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광풍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전도는 철저하게 하나님이 주도하십니다. 

행2: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주체가 누구입니까? 
전도자입니까? 아니면 주님입니까? 
주님이지요! 
주님께서 구원 받을 영혼을 예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나가십시오. 

전도는 하나님과 동업하는 것입니다. 
나는 쉬운 일 하고 하나님은 어려운 일 하십니다. 
홍해를 향하여 손을 내 미는 것은 모세의 할 일이요, 홍해를 가르시는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14:21) 

생기에게 대언하는 일은 에스겔이 해야 할 일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9-10) 

여리고성을 향해 소리치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지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일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수6:20) 

항아리에 물을 갔다가 붓는 것은 하인들이 할 일이지만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일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요2:9) 

전도는 하나님이 주도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작은 일에 순종하면 됩니다. 


<복음성가-참 참 참> 

참 참 참 피 흘리신 예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십자가 따라 생명을 바치겠느냐 
복음의 불길 오른다. 다 같이 일어나거라. 영광의 주님의 나라 다 같이 참예하리라. 
참 참 참 들려오는 구원의 큰 종소리에 복음을 전파하려면 희생을 각오하느냐 
구원은 성도들의 것 진리로 거두리로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 영생의 꽃이 되리라. 
성령의 성령의 불길 성령 불이야. 성령의 성령의 불길 성령 불이야. 
온천하 세계만방에 퍼치자 성령의 불길. 
성령의 성령의 불길 성령 불이야. 성령의 성령의 불길 성령 불이야. 
온천하 세계만방에 퍼치자. 성령의 불길 


3) 세상은 전도자를 기다립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전도자가 일어나 복음을 선포하기를 기대합니다. 
본문에서 이교도인 선장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를 꾸짖는 광경을 보십시오. 

요나1:6절 “선장이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네가 믿는 신에게)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세상은 전도자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이닙니까? 
세상에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이끌어줄 손길을 기다리는 자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세상에는 구원의 소식을 갈망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많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행18:9-10절에 보면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시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명할 때 많은 배척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증명할 때 많은 박해를 받으니 두렵기도 했겠지요! 
실망도 많이 됐겠지요! 
‘이젠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날 밤에 주께서 환상 중에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바울은 모두에게 배척받은 것으로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환상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너의 복음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많단다.” 
“아니다! 네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단다.” 
“아니다! 네가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단다.” 

‘복음’을 희랍어에서는 ‘유앙겔리온’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전쟁을 끝내고 ‘승전보’를 알릴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남정네들이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아낙네들과 아이들은 성문을 굳게 잠그고 이제나 저제나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남편을, 형제를, 자식을 다시 만날 수가 있습니다.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 전쟁에 지면 성은 불타게 될 것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갈 것입니다. 
행복은 끝나고 참혹한 비극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루에서 “전령이 나타났다”고 소리칩니다. 
까만 점과 같은 사람이 언덕에 가려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합니다. 
사람들의 가슴은 점점 더 조여 옵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고 달려온 그 전령이 입에 손을 모으고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그 소리가 얼마나 복 되겠습니까? 
성중의 사람들은 그 소식을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그 소식을 전해 준 발걸음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래서 사52:7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복음을 전하면 이렇게 기뻐하고, 이렇게 반가워하고, 이렇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전도자를 기다립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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