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자 (사 41:14~20)

  • 잡초 잡초
  • 362
  • 0

첨부 1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자 (사 41:14~20)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고 하셨다. “내가 너를 날이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만들 터이니, 네가 산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언덕을 겨로 만들 것이다. 네가 산들을 까불면, 바람이 그 가루를 날려 버릴 것이며, 회오리바람이 그것들을 흩을 것이다. 그러나 너만은 나 주와 더불어 기뻐할 것이며,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가련하고 빈궁한 사람들이 물을 찾지 못하여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탈 때에, 나 주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아카시아와 화석류와 들올리브 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회양목을 함께 심겠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주님께서 이 일을 몸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바람이 어디로 불더냐?

여러분, 얼마나 힘겨우십니까? 요즘 저는 사업을 하는 교우들의 얼굴빛을 자꾸 살피게 됩니다. 10여 년 전 IMF 위기 상황 속에서 그분들이 얼마나 어려워하는지를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을 심상하게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지금은 지구상의 유일 강대국인 미국의 지배가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군사강국으로서의 지위는 유지하겠지만, 더 이상 예전 같은 위세를 부릴 수는 없을 거라는 거지요. 

동구권이 해체되면서 소련이 무너진 것이 불과 20년 전입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역사의 변화를 이렇게 극적으로 경험한 세대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교우 한 분이 지금의 현실을 ‘unpredictable'이란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예측불허라는 말입니다. 불확실성이 늘어날 때일수록 마음의 중심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엊그제 새벽에 읽은 스가랴서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스룹바벨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권력으로도 되지 않으며, 오직 나의 영으로만 될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는 평지일 뿐이다.”(4:6-7a)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은 힘이 아닙니다. 권력도 아닙니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하나님의 영이 역사를 만듭니다. 바람은 약한 듯 보이지만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봄바람이 불어 새싹들이 돋아나고, 가을바람이 불어 잎들이 집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신바람이고 생기이고 능력입니다. 그렇기에 스가랴는 말하는 겁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는 평지일 뿐이다.” ‘큰 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어내야 했던 내외의 난관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 앞에서는 어떤 난관도 ‘평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가 꺾일 때마다 스룹바벨 대신 자기 이름을 넣어 이 구절을 암송하면 우리 속에 기운이 생동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내가 너를 돕겠다

이런 상황에서 본문을 읽는 것은 우리 상황을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시리아 제국이 무너진 후 미디안과 바빌론으로 양분되었던 중동의 패권은 다시 엘람의 소공국 왕이었던 고레스가 차지했습니다. 그는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치 맷돌에 빨려들어간 콩들처럼 으깨지고 말았습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수십 년을 살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는 마치 그림자처럼 열패감이 드리웠을 겁니다. 옴치고 뛸 수 없는 상황,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결국에는 이등 시민 신세를 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울었습니다.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시137:1).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이 치유되지 않는 한 역사의 신새벽은 오지 않습니다. 이 때 제2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다가옵니다.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고 하셨다.”(14)

여기서 ‘지렁이’ 혹은 ‘벌레’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면에 깃든 자기 비하의 심정을 반영한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살면서 ‘내가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如常하게 돌아가고, 나의 빈자리는 금방 채워집니다. 인기·권력 같은 것들은 거품처럼 허망하게 스러집니다. 확고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諸行無常이란 말이 실감납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뒤채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낙심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자를 통해 한 소식을 듣습니다.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 이 소리가 들리십니까? 허망한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말씀, 사건을 일으키는 말씀(word event)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이들의 탄식과 눈물을 기도로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역사의 맷돌에 갈려 짓부수어지는 사람들에게 다가오시어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우리는 무력하지만 하나님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에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너를 날이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만들 터이니, 네가 산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언덕을 겨로 만들 것이다. 네가 산들을 까불면, 바람이 그 가루를 날려 버릴 것이며, 회오리바람이 그것들을 흩을 것이다.”(15-16a)
"가련하고 빈궁한 사람들이 물을 찾지 못하여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탈 때에, 나 주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17)

하나님의 백성은 절망의 산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고, 오만의 언덕을 겨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의기소침의 자리, 절망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빛을 발하십시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 기쁨과 찬양의 회복

역사를 새롭게 하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기쁨이고 찬양할 마음입니다. “그러나 너만은 나 주와 더불어 기뻐할 것이며,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41:16b). 이 기쁨은 주님과 함께 하는 이만이 맛볼 수 있는 진미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랑 안에 머물라고 말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요15:1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옥중서신에서 성도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라고 권고하면서, 그리하면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빌2:17-18)라고 말합니다. 이런 기쁨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꿈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주어진 하늘의 선물입니다.

이런 기쁨을 맛보셨는지요? 기쁨이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싹이 터지고 꽃이 터져 나오듯,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고 죽을 몸에서 부활의 생명이 터져 나오듯 기쁨은 그렇게 우리에게 옵니다.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리고, 비열한 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는”(시12:8) 세상을 갱신하시려는 주님의 꿈에 동참하는 이들은 미움의 대상이 되어 박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절감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내줄 수 있을 때, 마음의 비애는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 하신 말씀만 깨달아도 우리 삶은 한결 가벼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곤경에 처한 그 백성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꿈을 보여주십니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아카시아와 화석류와 들올리브 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회양목을 함께 심겠다.”(18-19)

물론 이것은 황폐하게 변해버린 역사를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꿈을 은유적으로 일컬은 것입니다. 메마른 산처럼, 광야처럼, 마른 땅처럼 푸석푸석해진, 그래서 불모의 땅처럼 변해버린 마음에서, 그리고 척박한 역사 가운데서 샘물이 터져 나오고, 나무가 울울창창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예언자는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아름다운 비전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하나의 소명으로 듣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나는 회복되어야 할 지구 생태계의 부름을 듣습니다. 

울란바타르 대학 농장 건너편에 있는 산에 올라 메마른 몽골 초원을 바라보며 나는 이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마치 태초의 시간인양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그곳에서 나는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무들이 자라나고, 물이 흐르고,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하나님은 점점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는 그 땅을 되살리고자 하는 당신의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꿈에 지펴 이미 척박한 몽골에 나무를 심는 녹색의 전사들이 있었습니다. 불편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푸른 아시아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사야가 말하는 ‘헵시바’, 곧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이었고, 그들이 일구는 땅은 ‘쁄라’, 결혼한 여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땅을 아내로 맞아 주는 신랑과 같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감동적인 헌신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 길을 넓히는 일에 동참하려 합니다.


• 한 마리 제비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문제의 크기에 비해서 너무나 작습니다. 하지만 그 크기에 압도되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태만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철옹성 같았던 아시리아와 바빌론도 무너졌습니다. 그 흥망성쇠의 배후에 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은 ‘주님께서 이 일을 몸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없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우리 없이 세상을 구원하기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손과 발이 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바울 사도가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 한 것은 정말 놀라운 통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몸’입니다. 오늘 교회에 주어진 소명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주셨던 소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포괄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불의한 사회 체제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에 울혈이 든 사람들을 고쳐주고, 그들의 품이 되어 주는 것, 우리로 하여금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온갖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몫을 온전히 살도록 돕는 것,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는 이들에게 살맛을 일깨워주는 것, 생의 문제는 ‘나’를 내려놓고 누군가의 유익을 위해 살기 시작할 때 풀린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넓은 의미의 선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여야 합니다. 그것은 생태계의 파괴를 막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일을 지금 시작해야 합니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겨울에 지친 사람들에게 봄이 멀지 않음을 일깨워주듯이, 우리의 헌신이 다른 이들의 가슴에 희망의 씨앗으로 떨어질 수 있다면 고마운 일입니다. 

삶이 힘겹다 해도 ‘내가 너를 돕겠다. 내가 너를 속량한다’ 하신 주님의 약속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의 전령으로 삼으시려는 주님께 감사함으로 응답하십시오. 몸의 나를 위해서만 살지 말고 얼의 나를 위해 사는 연습을 시작하십시오. 주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사십시오. 이 꿈을 품은 공동체인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갓 결혼한 신랑신부가 팔짱을 낀 채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것처럼,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순례의 여정을 기쁘게 시작하십시오. 주님과 더불어 기뻐하며 사십시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