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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기도문 :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마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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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어느 아주머니가 오랜 노력 끝에 운전면허를 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고차 뽑아 차의 뒷면에 '초보운전'이라고 붙이고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게 왠일인가! 차가 많은 골목에서 운전 미숙으로 시동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뒤에 오던 남자 운전수가 열 받아 "야 집에 가서 밥이나 해"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아니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시험든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운전을 안 한다고 다짐을 하고 운전대를 잡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시는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주 급한 상황이라서 결국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차 뒤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지금 밥하러 가는 중임" 

한 번 상처 받았다고 해서 평생 운전을 안 한다는 것은 자기 손해입니다. 그것을 이기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즉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시험은 사람의 일생에 언제나 있습니다. 시험이 없지는 않지만 시험에 들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게 하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험을 받아도 시험을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험(試驗)이라는 헬라어 명사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ὀ󰐠)는 동사 페이라조(πειραζω) 라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페이라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1) 검사해 보다. 실험해 보다.(test)
검사해보고 실험한다는 것은 긍정적 의미에서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테스트(test)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성도들의 믿음을 알아보기 이런 테스트를 시행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시는 방법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때로 사단이 매개체로 동원되기도 합니다. 
대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한 종으로 또는 선지자로 쓰시기 위하여 시련으로 단련시켜 연마 시키는 경우 (아브라함, 욥, 모세, 바울, 엘리야, 야곱, 바울 등은 이런 시험을 당할 때 도리어 기쁘게 여겼습니다.)

2) 유혹하다. 꾀이다 (temptation)
주기도문의 시험은 유혹에 빠지기 않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사람이 시험(유혹)에 빠져 돌이키지 않으면 일생을 그르칩니다 (유혹)은 신앙생활을 파괴하는 마귀의 올무입니다.
창3:17절 이하에 최초의 인간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빠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떻게 해서 인류가 낙원의 행복을 한 순간에 박탈당하고 저주받은 세상으로 내동 댕이 처지게 됐는지 성경은 불과 6절만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이 사건 은 가볍게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의 그 결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롬5:12). 

창세기 3장 1-6절에 보면 사단이 하와를 유혹할 때 3단계로 하와를 유혹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첫 단계는 빈틈을 찾기 위해 떠 보는 단계입니다. 
1절에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라고 하지 않고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묻 고 있습니다. 아마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라고 했다면 하와가 미리 경계 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사단이 어떤 빈틈을 노려 이렇게 말한 것일까요? 

우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중하게 마음에 담고 있으며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가를 시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마음 속에 어떤 부담감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시험한 것입니다. 

만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금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마치 모든 자유를 속박하고 지나치게 간섭하시는 것처럼 느끼는 무엇이 있었다면 사단이 묻는 말에 그 불만이 낚시에 걸려 올라오듯 올라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마음속에 무슨 반감이나 저항심 같은 것이 없나 하고 떠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사단의 작전은 적중했습니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금방 들통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씀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부정확하게 알든지 잘 모르면 그것이 사단의 유혹에 말려 들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공격의 단계입니다. 
일단 헛점을 발견하자 사단은 공격을 감행합니다.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 자신감을 얻었다는 증거입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4절). 

사단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와는 어느 쪽이든 선택해서 믿어야 하는 갈등 속에 빠졌습니다. 그가 사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여겨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을 의심하거나 부인하는 셈이 되는 것입 니다. 

한 가지 더 사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의심하도록 꾀고 있습니다. 정확한 말씀의 지식이 부족했던 하와는 사단의 새로운 말씀 해석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자존심을 추켜세우거나 비위를 맞추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 선하심, 거룩하심을 의심하도록 속삭이며 하나님을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는 분으로 해석 하도록 끌어들입니다.


세 번째는 유인의 단계입니다. 
사단의 3단계 작전은 육감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선악과 나무 곁으로 하와를 유인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6절). 

하나님이 금하는 것을 불순종하도록 무엇인가 보고 느끼고 맛볼 수 있는 현장으로 끈질기게 유인하는 것이 사단의 최후수단입니다(요한1서2:16).
우리가 하와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하와가 왜 혼자 있었느냐 하는 점입니다. 밀턴의 실락원을 보면 혼자 일하는 하와를 발견한 뱀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보라 여자가 혼자 있으니 무슨 유혹에든 기회만점이로다' 

오늘도 사단은 거룩한 백성 된 우리를 홀로 남도록 해서 할 수 있는 대로 선악과 나무 곁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당신의 선악과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보기에 좋고 먹기에 탐스럽게 보이는 것이면 사단은 쉴 사이 없이 유인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은 유혹을 이기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가 사단을 이기고 죽음에서, 죄에 서, 우리를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시험이 면제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범을 통하여 이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4:1-13절에 보면 성령 충만하여 말씀으로 대적하는 것, 이것이 사단의 시 험을 이기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말씀을 바로 압니다. 그 말씀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압니다. 그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 했습니다. (엡6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예리한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레마’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깨달아서 심령 속에 무장되어진 진리를 의미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레마’를 칼처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가지고 사단을 대적해야 합니다(약4:7). 사단은 대적하는 자 앞에서는 도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동조나 동조를 얻지 않고 우리를 유혹하는데 성공한 사단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유혹에 넘어 갔다면 그것은 동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유혹할 때 즐겨 사용하는 네 마디 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는 말입니다. 
둘째는 “딱 한 번인데 뭘” 이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아직 시간이 있어󰡓라는 말입니다. 
네 번 째는 “누구나 이렇게 사는데 뭘”이라는 말입니다. 

사단의 달콤한 유혹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단의 유혹에 저와 여러분 모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사람을 함정에 몰아넣고 큰 물고기도 작은 미끼에 걸려듭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방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딱 한 번’이라는 말이 들릴 때 경계합시다. 
“아직 시간이 있어... 나중에 믿어도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다구 ” 하는 말에 넘어가 젊은 시절을 허송하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을 강조합니다. 누구나 이렇게 사는데 하는 소리가 들리거든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외치시를 바랍니다. 
“좁은 문”은 군중에 휩쓸리지 않는 삶을 뜻합니다. 인생은 한순간의 결단에 의해 성패가 갈립니다. 결단은 성공의 절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탄들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방법에 대해 장시간 대책회의를 했습니다. 그중에 한 사탄이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소문을 퍼뜨립시다. 그러면 세상은 금방 불신의 땅으로 변할 것입니다” 사탄의 우두머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것은 안 된다. 기독교인들은 시련이 닥치면 더욱 강인해 진다" 
그러자 두 번째 사탄이 말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우깁시다. 그러면 교회 내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자 우두머리는 또 다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것으로는 안 된다. 거짓은 반드시 들통이 난다” 
그때 가장 교활한 사탄이 묘안을 제시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은 엄연히 존재한다고 알립시다. 그러나 그것을 '천천히' 믿으라고 유혹합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생명이 끝날 때까지 '천천히'라는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탄들이 모두 무릎을 치며 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사탄은 항상 ‘천천히’ 와 '나중에'라는 말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신앙은 '예'와 '아니오'를 바로 지금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유혹에 이기는 비결은 사단의 힘보다 더 강한 힘을 우리 안에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과 말씀으로 무장한 속사람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밖에서 오는 사단의 유혹이 아무리 강하고 강하다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연약하여 시험에 걸려 넘어지기 쉽습니다. 사단의 유혹과 시험에 들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아시고 주님은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악은 사단의 올무를 상징합니다. 
마귀의 올무에 걸렸다면 속히 건져내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안 되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악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한계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도우시고 힘써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악에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시험이 와도 시험을 이기고 악을 이길수있는 힘을 얻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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