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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승부 (잠 21: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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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잠 21 : 29 - 31 
제 목 : 인생의 승부 

우리 인생을 가리켜 사람들은 흔히, 전쟁에다 비유를 하지요.  
그만큼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이 든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세상입니까?  “무한경쟁시대” 라고 불릴 만큼 살아가기 힘이든 세상입니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것 같애요.  오죽하면 아이들이 공부하고 학교 들어가는 것도, “입시 전쟁” 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까?  

남을 이기기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야말로 전쟁과 같은 각박한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이런 살벌한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전쟁이란 표현이 썩 달갑지는 않지만, 이것은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 성도들도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싸우며 살아가야 됩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고고하게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렇게 때문에, 우리 또한 세상에 속하여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전쟁터와 같은 인생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다른 것 있겠습니까?  어쨌든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창 1 : 28절에,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했는데,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인 줄로 믿습니다.  이 창조 명령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주어진 것이었지만, 이 명령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명령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전쟁터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창조 명령을 가슴에 품고, 당당하게 믿음으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해, 세상과 부딪혀 싸워야 하고, 또한 승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삶을 보면 어떻습니까?  이 창조 명령이 제대로  지켜지지가 않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세상과 맞서 싸우지만, 이기기는커녕, 오히려 질 때가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싸우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모두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왜 세상과의 싸움에서, 성도들이 패배하고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열심 속에, 신앙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최선 속에, 믿음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믿음과 신앙이 있는데요?   맞습니다.  
믿음이 있지요.  또 신앙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 그 믿음과 신앙이   흐려지고, 퇴색되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의 문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127 : 1절에 보면,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복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 성도들이 아무리 세상에서 노력하고 재간을 부려도, 승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0절 말씀을 보세요.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 하느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지혜나 명철, 그리고 모략, 이 세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인생의 승리를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나 방법을 가리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생을 승리로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뛰어 보았자 벼룩!” 이란 말이 있잖아요?  벼룩은 근육이 아주 발달되어서 자기 몸 길이의 200배를 뛴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람과 비교해 보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사람의 키가 누구나 1미터는 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람 길이의 200배라면 2백미터 이상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힘을 내서 펄쩍   뛴다고 해도, 얼마나 높이 뛰겠습니까?   2미터 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벼룩은, 자신의 길이 200배를 뛴다고 하니 얼마나 굉장합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이 “뛰어야 벼룩” 이란 말을 합니까?  
워낙 벼룩이 작으니까 뛰어보았자,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난 우리 성도들의 삶이 그와 같다는 것이예요.  
성도들이 아무리 세상에서 노력해봤자, 하나님 보시기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27 : 2절에 보면, 또 뭐라고 말씀합니까?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했습니다. 
아무리 성도들이 노력하고, 심지어 근면 성실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그 인생의 수고가 다 헛수고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이 전쟁과 같은 살벌한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이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믿음과 신앙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피며, 이 시간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과연 어떤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세상과 싸워 이겨 승리할 수 있을까?  첫째는, 하나님 없이는, 결코 인생에서 승리하며 성공할 수 없음을,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이 세상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이 아무리 인간적으로 강함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결코 이길 수 없는 곳이 세상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세상의 배후에는 언제나 사단이 있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개인의 능력으로서는,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세상과 싸워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단이 자기 영역을 빼앗기려 하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감정도 그렇잖아요?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미운 감정을 가지면, 그 사람만 미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식들도 괜히 미워 보이고, 심지어는 애꿎은 그 집 강아지까지도 미워 보입니다.  그래서 간혹 보면, 사람은 때릴 수가 없으니까, 괜히 그 집 강아지를 안 보는데서 그냥 발로 차지 않습니까? 강아지가 미워서이겠습니까?  아니지요?  그 집 주인이 미워서인 것입니다.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 해꼬지 한 적도 없고, 주어진 자신의 삶에 그저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주관자인 사단 마귀는, 이런 우리가 그냥 미운 겁니다.  왜입니까?  우리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누구에게 속한   사람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실력을 발휘하며, 자신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을 이기며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 없이,   그저 자신의 힘만 믿고 덜컥 세상에 들어가 있으니, 사단이 가만히 두겠습니까?  

주인이 없을 때, 그냥 강아지를 발로 힘껏 차 버리듯이, 우리 성도들을 그냥 공격하는 겁니다.  자신에게 속한 온갖 악한 사람들을 동원하고, 또 좋지 못한 모든 세상의 환경들을 총동원해서, 성도들의 가정을 무너뜨리고, 성도들의 산업을  쓰러뜨리는 겁니다.  보호자가 없는 어린 자녀가, 세상에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만,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빠지면, 그야말로 우리는 앙꼬 없는 찐빵 신세입니다.  그야말로 물 없는 오아시스가 되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되고 만다는 것이예요.  

여러분 사울의 인생을 보십시오.  그의 인생이 처음에는 어떠했습니까?  
처음에는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가 왕으로 간택 되었을 때, 데리고 와서 보니 그 키가 다른 사람들보다, 어께 위나 더 크더라고 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사울이 얼마나 강해 보입니까?  그런데 실제로 사울이 강했습니까?  아니요?  덩치만 컸지, 악해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왕으로 간택이 되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어디서 그를 찾았습니까?  마차 뒤에 숨어있던 그를 찾아내, 억지로 끌고 오게 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의 인생이, 원래 이러하다는 겁니다.  
사사시대에는 다 자기 소견대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사울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덩치만 컸지, 힘을 쓸 줄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갑자기 강한 자가 되어졌습니다.  덩치에 걸맞는 진짜 강한 자가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마차 뒤에 숨어 있던 사울이,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니까, 강한 자가 되어   대적 암몬을 그냥 단숨에 물리쳐 버리지 않습니까?  
이 사건 이후로 명실공이 왕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사울은, 계속해서 전쟁에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의 인생 마지막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한낱 소년의 칼에 죽고 말았다는 겁니다.  사울이 이처럼 초라하게 소년의 칼에 죽임을 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말년에 하나님을 떠나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그를 떠나니까, 당장 악신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실 땐, 그의 뒤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감히 건드리지를 못했는데, 이제 사울이 스스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힘을 믿으며, 하나님을 떠나 불신앙의 삶을 살아가니까, 당장에 공격해서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온갖 대적들을 동원해 공격을 하며,   이제까지 쌓은 부와 명성을 다 잃어버리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울을 이은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평생 하나님을 목자와 같이 여기며 따랐습니다. 그가 시 20편에서 또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   하시리로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이 없이 성공할 수 없음을 인정하시고, 다윗과 같이 날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고백으로부터, 우리 인생의 성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 속에,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여러분의 인생은 분명  성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어떤 신앙과 믿음으로 살아가야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제시하는 성공 법이 아닌, 하나님이 제시하는 성공 법을 따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인생의 승부가 달려있으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인생의 성공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1절 말씀을 보세요.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할렐루야!!  
승부는 누구에게 달려 있다고 했습니까?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다윗이 고백한 것과 같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인생의 성공 법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의 방법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하나님 앞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간의 노력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없이 하는 노력은 헛되지만, 신앙 안에서 하는 노력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그 노력을 통해 선한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성도들은 신앙 안에서 모든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1절 서두에 보면,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생의 승부가 하나님에게 달려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인간적인 준비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 어차피 하나님이 승리케 해 주실 테니까, 우리는 빈손으로 가도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도 보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다 이런 기독교 사상이 전제된 속담입니다. 

여러분 요셉을 보세요.  그는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보디발의 가정에 노예로 있을 때도,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도, 그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최선을 다하는 요셉을 하나님이 눈여겨보시고, 그를 그 고난의 현장에서 건져 주시는데,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그를 왕 다음의 높은 총리대신으로 세워 주셨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일을 만나도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능력과 한계는 넘어서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남 보기에 크든 작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나의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인생에 항상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 중에라도, 때때로 인생의  어려움 앞에 실망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때를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과연 내가 그때 최선을 다했는지!  대체로 보면,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최선을 다하기 전까지는, 아직 실망할 때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는 최선을 다해 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고, 낙심하고 포기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 산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에드먼드 힐러리 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산을 정복하기까지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의 청년 시절 에베레스트 산 정복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말았는데, 그는 산을 내려오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산아, 너는 자라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라날 것이다.  나의 기술도, 나의 힘도, 나의 경험도, 나의 장비도 자라날 것이다. 나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기어이 네 정상에 설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53년 5월 29일, 그는 다른 산악인 두 명과 함께 역사상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정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인생 중에 당하는 실패 앞에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신앙의 자세로, 우리의 남은 인생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게임입니다. 서로 치고 때리고 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승자는 결국 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승자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붙드신, 저와 여러분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이 제시하신 인생의 성공 방법인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 전체가 암시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큰 손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손은 조막손입니다. 
조막손을 갖고 아무리 무얼 해보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큰 손이  도와주시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이런 원리를 터득하고서, 범사에 기도함으로   승리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아말렉 족속과 전투를 벌일 때,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맡겨 전쟁터로 보냅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싸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어떻게 했습니까?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이스라엘이 이기다가 지쳐서 기도를 멈추면 집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아론과 훌이 옆에서 두 팔을 받쳐주고 함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파죽지세로 완전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중에라도, 기도를 결코 빼먹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생명 줄과 같이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라고 했습니다.  이런 각오로서 날마다 기도하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인생에, 결코 실패함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기어코라도 붙잡으셔서, 일으켜 세워 주시고, 어느 인생보다 더 큰 승리의 삶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모세는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 후, 그 곳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 라고 붙였습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깃발” 이란 뜻입니다.  하나님만이 승리의 근본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의   고백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 중에도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제시하신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최선의 방법임을   믿으시고, 이 시간부터라도, 항상 기도에 최선을 다하시는 우리 성천 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죄와 사망, 그리고 원수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동시에 인생의 모든 질고와 고통도 이겨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직 승리의 주님만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 되시고, 구원 되시고, 복이 되심을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요셉과 같이 항상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시고, 믿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도 분명 성공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인생 성공 법으로, 꼭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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