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나의 직업- 고통인가, 쉼의 처소인가?

첨부 1


- 주명수 목사(밝은교회 담임)

세 명의 석공들이 돌을 깎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는 나그네 한 사람이 세 석공중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나는 지금 돌을 깎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나그네는 옆에서 돌을 깎고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나는 지금 돈을 벌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는 마지막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은 “나는 지금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어떤 마음과 어떤 믿음을 가지고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노동이라는 것이 단지 생계의 수단이고 하나의 고통으로 여겨질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전을 짓는 것과 같은 의미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이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부터 비롯된 하나님의 저주라고 말합니다. 그에 의하면 노동은 죄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고 인간에게 부여된 고통의 한 요소인 것입니다. 그들은 “너희가 종신토록 수고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이다.” 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들은 노동 속에서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노동과 안식은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노동하지 않고 놀고 먹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 합니다. 노동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안식일에는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안식일에 노동을 하지 말 것을 법으로 정해 놓은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안식일에는 전혀 노동을 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에 노동을 하면 죄인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바리새인과 예수님 사이에는 자주 논쟁이 되었던 것도 바로 이 안식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안식을 위하여 열심히 종교행위를 하였지만 그들은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하지만 안식을 얻지 못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안식은 노동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하는 가운데서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하는 노동은 큰 의미를 찾습니다.

노동 명령 또는 문화 명령은 인간이 범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일반 명령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명령은 곧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복으로 주신 노동 명령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한 이후에 이 신성한 노동이 고통으로 여겨졌고, 생계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노동할 때에야 비로소 노동의 원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쉬게 하시겠다는 의미는 영어로 ‘refresh’또는 ‘recover’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영적 의미를 갖습니다. 이제부터 참 안식은 노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노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이 땅에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가 하는 노동까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통하여 그 노동 가운데서 일하시기 원하십니다. 이제 그에게 노동은 고통이 아닙니다.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요한 사역이 됩니다. 그에게는 노동이 거룩한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주일이면 교회에서 목사로서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대학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변호사로서 법정에서 변론을 합니다. 토요일이 되면 주로 운동을 즐깁니다. 가정에서는 가장으로 봉사합니다. 이 일들 중에서 어떤 일이 가장 거룩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나에게는 똑같이 거룩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지난 6일 동안 세속 가운데서 잘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친 후 다시 세상으로 갑니다. 신앙과 생활을 이렇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항상 소극적이고 패잔병 같습니다.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사회에서까지 사역의 멍에를 메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평신도를 해방시켜라」라는 책을 쓴 폴 스티븐슨 목사는 그의 저서에서 참된 영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된 영성은 하나님을 위하여 망치질하는 것이며, 정확하게 톱질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는 목회를 하다 갑자기 목수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일예배 때 죄를 고백할 뿐만 아니라 노동하도록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노동하도록 일터를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일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것을 감사합시다. 이럴때 우리는 일터에서 긍정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로 일할 수 있고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하여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노동은 우리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고 가르칩니다. 교회 안에서의 일뿐 아니라 세속 가운데에서의 노동에서도 주를 대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직장에서 상관을 대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십시오.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믿음이 부족했을 때는 믿지 않는 상관을 대하면서 ‘당신이 이 땅에서는 나의 상관이지만 하나님 나라만 가 봐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당신은 마귀의 자녀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이상 겉으로는 순종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만난 후에는 그런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믿지 않는 상관이더라도 마음으로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부터는 그분을 모셔들인 사람은 누구든지 왕 같은 제사장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만인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만인이, 제사장으로서 자기의 직장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차원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가운데 혹시 직장에서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신은 교회의 사역자가 아니니까 자신이 하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직장에서의 일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지고 빨리 예수님이나 재림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직장 일이 고통으로만 생각되고 피하고 싶은 생각만 드십니까?

노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노동의 신성함이 새롭게 회복되는 경험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노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노동하면서 참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