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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안에서 쉼을 얻으라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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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마 11 : 28 - 30
제 목 : 주안에서 쉼을 얻으라

얼마 전에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외국 계 모 은행의 한 젊은 지점장이 30대의 젊은 나이로 자살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직장이라는 경쟁 사회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 전부를 그 직장에  쏟아 부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젊은 세대들이 부러워하는 출세가도를 달렸고, 또 인생의   성취를 맛보면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했을까요?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직장의 과중한 업무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라는   무거운 짐을 견디다 못해, 그만 삶을 포기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졌던 그 무거운 짐은, 자신의 자녀와, 아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그 짐이 무겁고, 또 얼마나 그의 삶이 힘들  었으면, 사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했을까? 

이런 것 볼 때,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런 고통스런 삶이, 인생의 참 된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세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다.  정말 이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참 힘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가정환경이라든지, 또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든지, 이런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한 스트레스, 그래서 하루하루 정말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인생, 너무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마다 이런 수고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인생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줄로 압니다.  이런 수고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해,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날마다 수고로움과,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현실에서, 참 안식과 쉼을 누리면서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오늘 성경에서, 주님은 그 방법을 세 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Come to me”  예수님께서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 분이,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예수 그분이 도대체 누구시길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습 3 : 17절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다가와”  
왜 이런 말씀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기대를 가지고 만들고, 또 설레게  만드시는가?  주님이 나를 어떻게 아시기에, 나를 향해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내가 무엇이관대, 왜 나를 향해 기뻐하신다고 말씀 하시고, 또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고, 또 나로 인해 즐거워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참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참 기대가 되고, 소망이 되는 말씀이기는 합니다만, 괜히 이런 말씀 하셔서,   우리로 더 실망된 일을 경험하게 만드시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주님은 우리 인생을 향하여 식언치 아니 하신다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또한 말씀 하신 것에 대해 변개함이 없으시다고 했습니다.  
히 4 : 15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아멘!!!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 분이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이미 다 체험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공생애 기간이 3년이지만, 이를 준비하신 기간은 30년이었습니다.  이 30년이 무슨 기간입니까?  인생을 배우고 느끼는 기간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신 예수가, 이런 인생의 비참함과 고통스러움을 배우고   또 느껴야만 했는가?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고, 또 인생의 문제점들을 친히 해결해 주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알아야 면장도 해 먹는다고, 모르고서는 도와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이 30년 기간 동안, 인생의 고통스러운 모든 것을 다 경험하셨는데, 가난도 경험하시고, 질병도 경험하시고, 인간의 배신도 경험하시고, 모든  인생의 수치와 좌절도 경험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경험하셨습니다.  
하여튼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경험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인생의 고통 속에서, 인간의 감정이 어떠한가를 알게 되어지고, 또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와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다 내게로 오라”  “Come to me”  
자신있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하리라?   쉬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만이 내 인생의 진정한 안식처가 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과 육체와 영혼을, 쉬게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에게 참된 안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신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이 안고 있는 문제, 영육간의 모든 문제,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직장과 사업의 문제, 건강 문제, 경제적인 문제, 자녀의 문제, 모든 육체적인 고통과 질병에서, 마음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참된 쉼을 얻게 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 그 분은 낯을 가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을 구별해서 대우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 구원해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께로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한결같이 대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빈부의 차이, 직위의 고하, 이런 것들을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잘 난 사람, 잘 난 대로 살고, 못 난 사람, 못 난 대로 사는 것이 이 세상이지만, 결코 주님은, 이런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를 향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다 내게로 오라.”  이 말은, 곧 무슨 말입니까?  “나를 전적으로 믿으라” 는 말인 것입니다.  누구를 믿으라는 것입니까?   나를 믿으라.  예수 그리스도,  인생의 구원자요, 모든 인생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자인 나를 믿으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자유롭게 될 것이다.  또한 너희 육체도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의 마음에 평화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이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어야, 주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아, 믿음이 있으니까,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왔지요?”  과연 그러합니까?  
주님이 우리를 보시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중심인 것입니다.  신앙 중심...
내 신앙 중심에, 과연 주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믿음이 있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 믿음 가지고, 주님 바라보며, 날마다 가까이 나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힘이 드십니까?  삶에 지쳐 있습니까?  태안반도의 기름때와 같이, 아직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염려와 걱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습니까?  
이 모든 걱정과 근심을, 인생의 모든 고통을, 오늘 이 시간 주님을 만남으로 다 벗어버리고, 해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와 왔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저절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주님 장난치십니까?  다 오라 할 때는 언제고, 또 오니까 엉뚱한 소리 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세요?  
주님은 그렇게 말장난 할 만큼 한가한 분이 아니십니다.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주님이 하신 말씀도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우리가 끝까지 읽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이어지는, 29절 말씀을 보세요. 
“나의 멍에를 매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다 내게로 오라.  이 말씀 이후에, 또 무슨 말씀을 주셨습니까?   나의 멍에를 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로, 내 인생에 있어 참된 안식과 쉼을 얻기 위해서는,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멍에, 곧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매라고 하십니다.  
멍에, 멍에가 무엇입니까?   멍게 사촌이 멍에입니까? 
소의 등에 메어져 있는, 소를 끄는 기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멍에가 소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것이겠습니까?   이런 멍에가 우리 인생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나를 원치 않는 고난의 길로 이끄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의 멍에인 것입니다.  인생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언제나 어긋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생의 멍에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런 멍에를 좀처럼 벗어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에 참된 안식을 주시겠다고 오라고 하신 예수님도, 기껏 오니까,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신경질 나는 이야기입니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어찌 한 입으로 두 말하는가?  
이런 생각 충분히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조선말은 어떻게 들으라구요?  끝까지 들어라. 
멍에라고 해서, 다 똑같은 멍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슨 멍에를 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의 멍에를 매라.  
누구의 멍에요?   주님이 주시는 멍에...  그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도, 우리에게 이런 힘든 멍에를 매라고 하시는 것일까? 
그 이유는, 곧 나에게 쉼을 얻게 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인생의 멍에는 지고 가면 갈수록, 내가 더 힘들어지고, 힘이 빠지고, 나에게   유익한 것이 없지만,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매고 갈 때는, 처음에는 힘이 든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나중에 가면 점점 더 그 무게가 가벼워지고, 또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상하게 더 힘이 나고, 또 즐겁고, 그로 인해 내 인생에 많은  유익이 생기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소가 멍에를 맨다고 했는데, 소도 임자를 잘 만나면, 그 멍에가 결코 무겁지   않게 느껴집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멍에가 몸에 딱 맞을 때....
멍에가 몸이 잘 맞지 않기 때문에, 그 멍에가 무겁고 거추장스럽고 힘이 든 것입니다.   주인이 소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떠합니까?  우리 인간에게 대한 배려심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에 꼭 맞는 멍에를 준비해 두시고, 그 멍에를 메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멍에를 통해 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전에 보다 더 힘 있게 밭을 갈게 되고, 그래서 훨씬 더 밭이 옥토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밭에서 나는 곡식의 추수, 그 농부가 다 거두어 가십니까?  아니지요.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 곡식 다 어떻게 하십니까? 
열심히 일한 소에게 다 먹이로, 일용할 양식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아니고,   먹으라.  다 먹으라.  할렐루야!!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메어 주시는 멍에는 무엇인가?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의 교육인 것입니다.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왜 우리가 배워야 합니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배워야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엇이 삽니까?  내 영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듯이, 우리의 영혼은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말씀을 들어야 하고, 자꾸만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이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왜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누구보다도 더 잘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아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 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예배의 시간, 오늘 이 주일 예배의 시간도 여러분에게 분명 멍에입니다.   또 성도들이 또 따로 배우는 성경공부 시간, 제자 훈련   프로그램에 속해 배우는 것, 분명 여러분에게는 멍에입니다.  얼마나 힘이 듭니까?  바쁜 일상 가운데, 짬을 내어 이렇게 예배하고, 또  성경을 배우고... 
참 힘든 시간이지요.   그러나 이것을 여러분이 메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멍에가 지금은 힘이든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 멍에 때문에, 결국 여러분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고, 열매 맺기까지 자라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을 힘써 배우게 될 때에, 내게 어떤 변화와 유익이 생기는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라.”  
왜 그 멍에가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1) 수고의 짐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수고와 무거운 짐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 주십니다.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은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날마다 지겹게 반복되는 일, 그러나 그 일이 이제는, 나에게 오히려 주신 축복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죽지 못해 사는 내 인생의 환경이, 이제는 오히려  행복으로 가는 통로와 같이 느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나의 삶이, 이제는 오히려 기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인생의 짐이, 이제는 나를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섭리로 느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눈물을 그치지 않게 했던 문제가, 이제는 나를 기도 하면서, 찬양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까?   내 인생을 보는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말씀으로 인해 내 영안이 열리게 되고, 그로 인해 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패러다임의 변화!!  

주님은 이처럼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나의 짐이, 내 인생의 짐이 가벼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토록 힘들고 어려웠던 내 인생의 문제가, 이제는 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현실은 변화된 것 없지만, 이제는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수고롭지 않고, 오히려 문제 가운데서도,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평안과 안식을 누길 수 있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2) 수고의 짐을 해결하는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성경 말씀에, 모든 인생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오직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아멘!! 
말씀 안에 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말씀은 인생의 가이드북인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그래서 전화위복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멍에가 말씀의 교육이라면, 두 번째 나에게 주시는 멍에는 무엇인가?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성도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신앙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엡 4 : 11 - 12절 말씀을 보세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복음을 전하며 봉사의 일을 할 때, 비로소 온전한 성도가 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성도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닮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첫 사람인 아담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닮아 있을 때, 어떤 환경 속에 거하였습니까?  
에덴동산의 모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바로 대외적인 봉사인 전도와, 교회 안에서의 봉사의 헌신을 통해, 이런 온전한 성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온전한 성도의 모습으로, 첫 사람 아담이 누렸던 그 완전한 축복을 누리기를, 하나님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메고 가야할 멍에, 주님이 우리에게 지워주시는 멍에, 우리에게 주신  사명, 이것은 곧 다른 말로 십자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이 명하신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전도와 봉사의 헌신을 감당하며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에게는, 주님이 자신의 인생의 당한 문제의 십자가를 대신 해 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향한 전도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따른 봉사의 멍에를 지고 가는,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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