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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험한 시험 물 속에서 (막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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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시험 물 속에서 (막 4:35~41) 


열흘 전, 탈렌트 최진실씨의 자살 사건이 보도되던 날 오후에 안 좋은 소식이 제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로 들어왔다. 격주 수요일 새벽기도회 후에 모이는 목회자 기도 모임의 멤버인 어느 목사님의 28세된 장녀가 죽었다는 것이다. 최진실로 인한 베르테르 효과인가? 근심 가운데 전화로 확인해 보니 심장마비였다는 것이다.

다음 날, 제 아내와 함께 세종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두 분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사모님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 경황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사모님이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감당할 시험 밖에는 내게 당한 것이 없다고 한 말씀대로 내게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신 것 같아요. 주님께서 감당할 힘을 주시겠지요.”

지금도 소리 죽여 가며 눈물 흘릴 그분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려운 개척교회 꾸려가기도 힘든데 어찌 그런 일까지... 하나님 어찌 된 일인가요? 묻고 싶었다.

믿음으로 사는 가정에, 그것도 세상의 열락을 포기하고 사명을 감당하고자 목회자로 헌신한 가정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1.신자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믿는 가정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 4: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

마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께서 갈릴리 호숫가 배에 걸터 앉으시고 육지 경사진 곳에 많은 무리들에게 천국에 관한 비유의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말씀 강좌는 저녁 해질 녘까지 계속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 제자들과 예수님도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음 날의 사역을 위해 그곳을 떠나고자 하셨다. 

제자들 일행이 출발할 때는 호수가 잔잔했다. 예수님도 피곤하셨는지 고물에 베개를 베고 잠에 깊이 빠졌다. 배가 호수 가운데로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파도가 일어나면서 배가 흔들렸고, 배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배 안에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갈릴리 호수는 길이 20km 넓이 11km 깊이 50m의 자연호수인데 사방이 높은 산과 언덕으로 둘러 쌓여 있다. 북쪽의 헐몬산(약 2770m)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아열대성의 기후를 나타내는 호수의 따듯한 공기가 만나서 때때로 이와 같은 광풍 현상이 일어나는데 파고가 2m 정도나 된다고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고, 그 배에는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예수님이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광풍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믿음이 있고, 말씀에 순종하면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 말은 맞지만 때때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만약 예수를 믿는데 광풍을 만나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 나쁜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누가 예수를 믿으려 하겠는가? 너무 겁내지 말라. 문제는 ‘신앙 = 만사형통’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예)처음 나온 신자가 주일날 교통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이 함께 배를 타고 있었어도 광풍이 일어나 죽을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 말을 풀어 설명하자면, 예수 잘 믿어도 때로는 실패도 하고, 사고도 나고, 어려움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께로 나오면 참된 평안과 쉼을 얻을 수 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당장 이해는 되지 않지만 본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는 자리에도 광풍을 만나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 닥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주 안에서 겪는 광풍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의 진정한 도움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막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배가 뒤집어질 상황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동요가 없이 깊은 잠에 빠져 계셨다. 제자들이 이 모습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곤 잡아 흔들어 깨웠다. 

‘선생님, 큰 일 났어요. 우리가 죽게 됐단 말예요. 일어나세요!’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의 요청을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바람은 멈추고 파도는 잔잔해 졌다. 순식간에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이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막 4: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제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우리말 속담에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초신자들은 하나님도, 또 예수님도 잘 알지 못한다. 들어도 그것이 지식적인 수준에 머무를 때가 많다. 

그러나 자신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어려운 사건들을 통해 일시적으로 낙심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그 문제를 극복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두 가지 모습을 보게 된다. 
1)예수님은 인성을 가지신 참된 사람이시라는 것이다. 
그분은 인성을 가지셨기에 피곤을 느끼셨고, 하루 종일 무리들을 가르치셨으므로 피로가 쌓였다. 그래서 풍랑 속에서도 주무실 수 있었다. 우리와 똑같이 희노애락을 느끼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분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것이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2)자연을 다스리시는 권능을 가지신 참된 하나님이심을 배우게 된다. 
그분은 말씀으로 바람을 멈추게 하시고,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자연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렇게 고백했던 것이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그분은 2천 년 전, 성경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오늘날도 동일하게 우리의 삶 가운데서 성령을 통하여서 살아계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제자들은 광풍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소란을 떨었으나 그 일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더 알게 된 것이다. 

인생에 풍랑을 만나거든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그때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도리어 감사하고 기도하라. 

‘주님 이 풍랑 인하여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3.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의 믿음 없을 꾸짖으셨다. 

(막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어떤 설교가는 말하기를, 이미 예수님을 깨어 계셨고 눈 감고 자는 척 하셨다고 설명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셨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추측이 가능하다고 본다. 아무리 피곤하다 할지라도 이런 상황에서 잠을 계속 잘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이 성립될 수 있는 근거가 40절의 말씀이다.

40절 말씀에서,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라고 예수께서 추궁하셨다. 그런데 이 문장에 대하여 다른 번역본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번역하였다. 

‘너희가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라고 번역되었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까지는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광풍이 일어났을 때 두려움과 공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단순히 ‘살려주세요. 도와 주세요!’라는 부르짖음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이 포함된 부르짖음이었다는 것이다. 본문을 다시 보라.

(막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기도를 잘 해야 한다. 원망과 불평이 섞인 기도도 들어주시지만 책망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초신자들이라면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주의 말씀을 듣고,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했던 그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것이다. 
예수 믿은지 3년, 5년, 10년이 지나면,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조에 맞게 믿음도 성숙해져야 한다. 

여러분! 어린아이가 잘못하면 용서받는다. 그러나 어른이 잘못하면 책망을 듣는다. 신앙의 연조가 20-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일 당했다고 원망 불평하면 책망받는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가벼히 생각해서는 안된다. 십자가의 공로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아 영생을 선물로 받은 성도라면 사사로운 일로 인해 시험에 들고 낙심해서는 안된다. 

열흘 전, 큰 딸을 먼저 보낸 사건은 그분들의 인생 항로 중에 갑자기 불어 닥친 광풍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슬픔에 빠져 있지 않았다. 통곡하고 탄식하며 불평 원망하지 않았다. 젊은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욥과 같은 모습이었다.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약하지 않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떤 시련과 풍랑이 닥쳐 온다할지라도 능히 이길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주신다. 그런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길 축원한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시대의 모습이 갈릴리 호수에서 광풍을 만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과 같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닥아온 세계적 경제위기, 그리고 여야의 정치 다툼, 유명 연예인들의 연쇄적 자살 사건등... 지난 한해 동안 단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을 정도로 소란했고 사회적인 불안 요소들이 고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위기적 상황의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본문의 교훈을 통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1)신자들에게도 풍랑이라는 과정을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평안을 주시고 복을 주신다. 그러나 때때로 내 인생길에 새로운 변화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토록 풍랑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잘 믿는 내게도 이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2)풍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 불어 닥친 거대한 풍랑으로 인해 위축되고 말았다. 그 정도의 믿음이 아니라 시험과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믿음으로는 보통의 시험 밖에 극복할 수 없다. 조금 센 파도가 밀려오면 다 쓸려가버리고 만다.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분주해지고 소란해져서 주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시대는 더욱 혼란스럽고 불안해지는데 성도들마져 세파에 흔들거리며 중심을 못 잡고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분주하고 소란한 세상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주님과의 확실한 관계를 유지하는 믿음이 풍랑을 이길 수 있다. 지신의 예배 생활을 점검하라. 기도생활을 점검하라. 

3)예수님이 누구이신지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분은 풍랑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내 인생의 항로에서 불어닥친 광풍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확신해야 한다. 

예수님에 대한 무지는 키가 없이 표류하는 배와 같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의 인생에 키를 붙잡은 선장이 되시면 어떤 풍랑도 능히 이기고 나갈 수 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지도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성화가 있다. 그 그림 앞에 다가 서서 종종 바라 본다. 그 때마다 힘이 솟는다. 짧지만 나의 인생 여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그러나 주께서 함께 하시는 나의 인생 항해에 두려움은 없다. 말씀따라 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귀 타고 육지로 돌아가자고 하지 않으셨다. 배를 타고 건너가자고 하셨다. 갈릴리 호수에 자주 풍랑이 인다는 사실을 다 알고 계셨다. 그러나 주께서 함께 하시면 목적하는 바 두려움 없이 건너편을 향하여 갈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 참된 안정이 무엇인가? 풍랑이 없는 것이 안전은 아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참된 행복이다. 예수님이 함께 하심이 참된 안정이다. 우리 인생의 항해 중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선장으로 삼고 믿음으로 말씀따라 순종하며 용기 있기 나갈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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