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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교제하도록 선택받은 우리 (롬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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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교제하도록 선택받은 우리 (롬 12:5)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자녀가 된다는 말은 다른 자녀들과는 가족이 된다는 말입니다. 가족은 공동운명체입니다. 가족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가족끼리 서로 깊이 사랑하려면 깊은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하고는 말도 잘하고 재미있게 지내지만 가정에 들어가면 입을 닫아버립니다. 밖에서는 인기도 좋은데 집에서는 가족들과 담을 쌓고 살아갑니다. 이런 생활은 바람직하지 못한 생활입니다. 

기독교 신앙생활은 교제하는 생활입니다. 교제는 십자가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수직선은 사람과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우리는 예배나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풍성하면 영적으로 풍성해지고 신령해집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영적으로 병들어 약해지게 되고 결국 사단의 밥이 됩니다. 십자가의 수평선은 성도와 성도의 교제를 말합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수평적인 관계가 잘 되면 행복합니다. 수평적인 관계가 잘못된 사람은 외롭고 어둡습니다. 이런 사람은 물질이 풍성하고 육체가 건강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함께 교제하도록 선택을 받은 우리들이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기 위한 방법들을 알아봄으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교제의 감격을 회복합시다. 

1. 서로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함으로 교제합시다. 

여러분의 가정을 생각해 봅시다. 가정에는 아버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든든합니다. 또 가정에는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정감이 있고 가족들이 가정에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는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가 있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녀도 다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모든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를 몸으로 비유를 합니다. 교회의 지체들은 몸에 붙어 있는 지체 중에 하나입니다. 몸의 모든 지체는 다 필요한 것입니다. 좀 못났어도, 좀 부족해도 없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 자기 코가 못생겼다고 코를 없애거나 눈이 못났다고 눈을 빼버릴 수는 없습니다. 없는 것보다는 좀 못나고 부족해도 있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제 친구 중에는 항문이 막힌 친구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지체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 것 때문에 목숨이 위험합니다. 음식도 많이 먹지 못합니다. 늘 운동을 해야 살 수 있습니다. 항문에 문제가 있지만 그 항문이라도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지체들이 존재합니다. 잘난 지체도 있고 못난 지체도 있습니다. 잘난 지체도 교회에 필요한 것이고 못난 지체도 교회에 필요한 것입니다. 

현대 문화는 개인주의를 미화합니다. 사람들은 독립적이고 자립심이 강하며 혼자서도 잘 생활하는 그런 사람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자신감 있어 보이는 그런 사람도 마음 한 구석에는 외로움과 불안, 상처가 가득하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인들은 외로움이라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로움을 싫어하십니다. 혼자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외로운 것을 하나님은 좋지 않게 생각하시고 하와를 만드셔서 함께 교제하며 살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와 교제하며 외로움을 이겼고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혼자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혼자하면 영적인 외로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필요함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교제하십시오. 그러면 영적인 보호를 받게 될 것이며 영적인 안정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자존심이 강합니다. 특별히 남자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몸의 지체를 보십시오. 다른 지체의 도움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난 지체라도 다른 지체의 도움을 받아야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힘이 좋은 팔도 입이 먹어주고 위장이 소화를 시켜줘야 힘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눈이 봐야 일을 할 수 있고 심장이 펌프질을 해줘야 혈액이 공급돼서 썩지 않는 것입니다. 팔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다른 지체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다른 지체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곁에 있는 지체가 영적이든 육신적이든, 능력이 있든 능력이 없든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서로 헌신함으로 교제합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헌신하며 살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아담의 가정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아담이 갈빗대를 내놓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자녀를 낳기 위해서는 하와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헌신 없이 행복한 가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은 헌신하지 않고 상대의 헌신만을 요구하는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내어놓는 헌신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주시는 헌신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도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공동체 안의 다른 지체들에게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헌신’은 인간적인 ‘투자’와는 다릅니다. 투자는 장차 얻을 수익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 결과, 투자하는 내내 불안합니다. 또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오면 좌절합니다. 나의 유익에만 골몰하다가 주변 사람들마저 잃게 됩니다. 헌신은 유익에 상관없이 기꺼이 나의 것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 결과, 헌신하는 내내 즐겁습니다. 항상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장받습니다. 모두 함께 기쁨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그렇다면, 헌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는 헌신을 하셨습니다. 요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독생자를 주셔서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까?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헌신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도 부모를 위해서 헌신합니다. 친구를 사랑한다면 그 친구를 위해서도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속한 공동체의 형제자매를 사랑한다면 그들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서 시간을 기꺼이 드릴 수 있습니다. 상대를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사랑한다 혹은 헌신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연애해봐서 알잖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온종일 상대를 생각하고 상대를 만나고 함께 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까! 마찬가지로 몸 된 교회와 셀 안에서 헌신하므로 교제한다는 말은 모임을 위한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모이는데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3. 서로 존경함으로 교제합시다. 

롬 12:10에서는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말씀합니다. 
서로 존경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상대를 바라볼 때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상대를 영생을 소유한 존재로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 주고 산 거룩한 존재이며 사 43:4 말씀대로 하나님의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말합니다. 세상 재벌의 상속자를 생각해 봅시다. 키가 작고 뚱뚱하고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고 아무런 재주가 없어도 재벌가의 상속자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상속자는 얼마나 더 대단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모든 주권이 그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상속자인 성도들이 대단한 것입니다. 

대단히 존경하는 사람에게는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먼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신중하게 고민한 후, 지혜롭게 말해야 됩니다. 무례히 행하지 말고 공손하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항상 친절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항상 메아리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대접하면 남도 나를 대접해주는 것입니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도 고운 것처럼 상대를 존경할 때 상대도 나를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존경함으로 상대를 대하면 상대의 닫힌 마음도 쉽게 열수 있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 앨버트 공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앨버트 공이 화가 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리자 여왕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사과하기로 결심하고 남편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요?” 퉁명스러운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영국의 여왕입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여왕은 다시 노크를 했습니다. “누구요?”, “영국 여왕이오”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여왕은 화가 나서 집무실로 돌아갔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여왕은 되돌아와 다시 노크를 했습니다. “누구요?”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러자 방문이 열렸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한 나라의 여왕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돌아가 남편을 대하자 앨버트 공은 아내가 자신을 존중한다는 것을 인식한 것입니다.


4. 서로 지지함으로 교제합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의 삶을 의지하기 원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 지체가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해야 합니다. 한 지체가 기뻐할 때, 함께 웃어야 합니다. 성경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고 말씀합니다. 

부부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부관계를 비밀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남남끼리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룹니다. 20-30년 동안 서로 상관없이 살던 남녀가 만나서 부부가 되면 그때부터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재산도 합하고 서로에게 비밀도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 되고 상대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 됩니다. 만약 상대가 슬픈데 나는 기쁘고 상대는 기쁜데 나는 괴롭다면 건강한 부부가 아닙니다. 건강한 부부는 상대가 울 때 함께 울어주고 상대가 웃을 때 함께 웃어주는 관계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지체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고 지체의 고통이 나의 고통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수준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특히 셀 가족 끼리 그런 관계가 되어 지도록 기도하고 노력하십시오,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서로 지지하려면 두 가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가지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따뜻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온도를 유지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아픔마저도 지지해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 시대는 냉철한 이성보다는 따뜻한 가슴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현대인들은 사람이나 상황을 아주 냉철하게 볼 수 있는 눈과 지식을 가졌습니다. 냉철함은 필요하지만 그 냉철함이 따뜻한 가슴으로 녹여지지 않는다면 판단과 정죄와 다툼만이 가득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사랑은 냉철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눈이 머는 것입니다. 사랑은 따뜻한 가슴을 만들어 줍니다. 가족을 냉철함만으로 보면 가정에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부는 바람보다 더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행복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가족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대해야 합니다. 찬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만들지만 따뜻한 바람은 외투를 벗게 만드는 것처럼 냉철함은 가족들의 마음을 닫게 만들고 따뜻함은 가족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 것입니다. 소그룹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냉철함은 잠시 접어두고 따뜻함으로 다가가십시오. 그러면 모든 셀가족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타인을 자신보다 하찮게 보거나 자신을 다른 사람에 비해 월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지지해줄 수 없습니다.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을 낮추면 얼마든지 상대를 지지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타인이 나를 지지해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만함으로 상대를 대하면 그는 나의 실력을 인정하더라도 지지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의 실력을 알아도 내가 인정받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겸손함으로 상대를 대하면 내가 혹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그는 나를 격려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며 나를 지지해 줄 것입니다. 


5. 서로 잘 지냄으로 교제합시다. 

잘 지내기 위해서는 논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논쟁하기 보다는 나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십시오. 우리는 항상 같은 의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지체들이 조화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동음과 화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모든 악기가 똑같은 음을 연주한다면 매우 지루한 음악이 될 것입니다. 음악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화임이듯이 서로 다른 지체들이 같은 목적을 향해서 화음을 낸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모습일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잘 지내기 위해 몇 가지 지침들을 기억합시다. 

첫째는 자비롭게 반응해야 합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칼 같은 공정함이 아니라, 은혜와 자비의 마음입니다. 아내가 찌개를 끓여줬는데 맛이 별로입니다. 문제는 아내가 맛없는 찌개를 내놓고 “여보, 맛이 어떼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 때 여려분이 마치 국제 심판이 된 것처럼 냉정하게 맛을 평가한다면 여러분의 집은 평안할 리가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은혜와 자비의 마음으로 아내에게 “6.25 이후에 이른 찌개는 처음이야, 기가 막혀”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의 집안은 평안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진리를 판단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진리는 내 생각이나 감정 또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진리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권위는 하나님만이 가지시는 것입니다. 저는 제 판단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과거에는 옳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지난 후에 보니 틀린 경우가 있고 또 과거에는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지난 후에 보니 옳은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잡히실 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임재 없이 홀로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거친 말과 칼 그리고 거짓말과 저주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육신으로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위험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육신으로 반응하지 않고 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는 원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사울을 살려주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적들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안히 눕고 잘 수 있었습니다. 

넷째, 주님의 마음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잠 3:5). 우리가 가진 명철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바르게 보이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잠 14:12).

다섯째, 갈등의 원인은 사단입니다. 우리가 이웃과 싸우면 사단에게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다른 사람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의 세력인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여섯째, 인간적인 무기를 버리고 영적인 무기를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무기는 사기, 험담, 중상모략, 조롱, 위협, 비난, 잔소리, 속임수 그리고 침묵 등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무기로 삼으면 서로 잘 지낼 수 없습니다. 강력한 영적 무기를 사용하십시오. 강력한 영적 무기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엡 6:18). 우리가 기도하면 서로 싸워서는 안 될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닫힌 상대의 마음을 열어서 서로 잘 지낼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또 다른 강력한 무기는 용서입니다. 용서의 힘은 우리의 대적들이 우리를 대적하기위해 사용하는 그 어떤 것보다 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용서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6. 서로 인내함으로 교제합시다.

인내함으로 교제하라는 말은 공동체 안에는 나를 화나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을 때 주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가를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서로에게 화를 낼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인내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서로 다르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보십시오. 오리가 참새에게 “나처럼 헤엄을 쳐봐라”라고 말할 수 없고, 참새가 오리에게 “나처럼 하늘을 날아봐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나처럼 하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내지 말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합니다. 

인내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은 ‘귀의 체질’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전까지 남의 말을 제 멋대로 들었습니다. 남의 말을 들을 때, 함부로 평가하고 함부로 화를 냈습니다. 앞으로는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잠 18:13). 하나님께서 두 귀를 주신만큼, 두 배 더 열심히 들읍시다. 더 많이 이해할수록, 더 많이 인내하게 됩니다. 더 많이 인내할수록, 더 많이 사랑하게 됩니다(고전 13:4). 

저는 과거에 상처로 인한 쓴 뿌리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알게 되니 용서가 되고 용서가 되니 저의 쓴 뿌리가 처리되고 쓴 뿌리가 처리되니 쓴 열매가 사라졌습니다. 이해는 놀라운 치료의 힘이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상처를 치료하고 관계를 치료 합니다. 


7. 서로 정직함으로 교제합시다. 

공동체가 건강해지려면, 서로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하면 우리의 관계는 깊어집니다. 열린 공동체가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집니다(요16:13). 

정직에는 예외가 없음을 기억합시다. 어떤 경우에도 거짓은 허용되지 않습니다(빌 4:8). 그러므로 의도적인 거짓말을 중단합시다. 다른 사람의 속임수를 눈감아주는 거짓도 중단합시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유케 된 자들입니다(요 8:32). 

우리는 옛 사람의 구습인 거짓과 더 이상 상관없는 자들입니다(골 3:9).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며 그분은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데오도르 파커는 4살 때 농장에 놀러 갔다가 거북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돌맹이를 집어 들고 거북이 껍질을 깨뜨리려고 하는데 마음속에서 “그렇게 하면 안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돌맹이를 던져 버리고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야?” 어머니는 그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양심이라고 한단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영혼 속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말하고 싶어. 만일 네가 그 음성을 들으면 더욱 분명히 들릴 것이고 너를 항상 옳은 길로 인도할 것이야. 만약 네가 그 음성을 듣지 않으면 그 소리는 점점 작아져서 결국 너는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될 것이야. 너의 전 생애는 이 양심의 소리를 주의하여 듣는데 달렸단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진리의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정직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도 정직합시다. 성도의 삶은 ‘변명의 삶’이 아니라, ‘변화의 삶’입니다. 

영국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해라. 일주일 행복하고 싶거든 결혼을 해라(저는 이건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통해서 평생 행복해져야 합니다).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지금으로 말하면 자동차겠지요), 한 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 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정직하여라” 저는 여기다가 하나 더 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영원히 행복하려면 예수를 믿어라”

우리는 함께 교제하도록 선택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교제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교제가 되는 방법 일곱 가지를 실천합시다. 

1. 서로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함으로 교제합시다. 
2. 서로 헌신함으로 교제합시다.
3. 서로 존경함으로 교제합시다.
4. 서로 지지함으로 교제합시다.
5. 서로 잘 지냄으로 교제합시다. 
6. 서로 인내함으로 교제합시다. 
7. 서로 정직함으로 교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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