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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롬 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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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롬 10:1~15) 


바울의 간절한 열망과 아픔 (10:1-3)

본문 말씀에는 사도 바울의 간절한 열망과 아픔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의 길을 철저히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실패 원인을 3,4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향해 "올바른 지식에 기초한 열심"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외면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해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섬긴다 했지만 실제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올바른 지식"은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도님들이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어떻게 교회생활을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살아계신 하나님과 화해하고 그 분과 깊은 인격적 교제를 누리느냐에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모순과 비극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기 때문이며, 구원 받은 삶이란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교회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귐에 있다는 것을 저는 교회를 다닌 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학생 시절 제가 배운 교회 교육에 대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에서 성경 지식, 회의와 행사 진행, 운동과 예술과 문화 활동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신앙의 핵심이 말씀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 만남에 있다는 것을 저는 제대로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회에서 회장을 맡고 시험을 치면 일등을 하고 많은 봉사를 했지만 저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는 교회를 다니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귐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울 당시 유대인의 문제였고,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본문의 "올바른 지식"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우리가 그 분과 화해하고 사귐을 가질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님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귐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불가능한 시도 (10:5, 롬 3:20, 갈 3:10, 사 64:6) 

한 사람이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에 맞는 자격을 그 사람이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기에 아무나 그 분과 사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보셨을 때 '의롭다' 인정을 받는 사람만이 그 분과 사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바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이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시도였습니다. 율법에 순종하는 노력을 통해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갈 3:10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3:20에서 밝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이것은 현대인들이 중요시하는 돈, 지식, 도덕, 권력, 외모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어떤 것도 우리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지 못합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 64:6) 

선지자는 여기서 우리가 그렇게 귀히 여기는 모든 것이 마치 선악과를 먹은 후 아담과 하와가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치마로 사용했던 무화과 잎과 같다는 것입니다.(창 3:7)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수치를 완벽하게 가려줄 수 없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들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구원의 길 (10:4, 6-10)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인정받아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먼저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찾기 위해 하늘에 올라가고 무저갱에 내려가는 노력이 필요가 없습니다.(6-7절) 오히려 바울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우리의 입' '우리의 마음'만큼이나 가까이에 있습니다. 

성도님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율법 준수, 돈, 명예, 권력, 외모 등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릴 수 없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우리의 입과 마음만큼 가까이에 있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세 가지 놀라운 일을 행해 주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우리를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완벽히 의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둘째,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예수님의 의를 우리의 것이 되게 하셔서 그 분이 만족하실 만큼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로 하나님과 교제가 회복되게 해주십니다. 바울은 9,10절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우리의 입으로 구세주요 주님이심을 시인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제 삶에 있어 가장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순간은 제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사귐을 회복하게 되었던 때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 자신은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과 저를 막고 있는 그 커다란 벽을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예수님께서 저의 모든 죄와 수치와 부끄러움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의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 불렀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 하나님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지만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분이시라는 강한 확신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모든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과 사귐을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기도를 드리면 그 분이 내 소리를 듣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침묵과 어둠뿐인데 나를 향한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사랑, 세상이 줄 수 없는 능력과 지혜를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만남을 통해 비로소 기쁨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의 은혜 (10:11-13)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고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할 때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지 한 번 더 정리를 하겠습니다. 바울은 3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첫째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니다. 어떤 사람도 수치심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은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과 이웃과 자신을 향한 수치심을 벗겨주십니다. 우리의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에 대한 모든 대가를 십자가에서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는 자입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도 수치심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 영혼의 모든 수치심을 벗겨 버리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단순히 물질 뿐만이 아닙니다. 영혼의 고결함, 아름다운 관계, 아름답고 건강한 삶 등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너무도 초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의 이름을 부르며 의지하는 자들을 그들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물질적으로, 관계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부요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단순히 죽어 천국 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그리고 이 이 고난을 영광에 도달하는 기회로 바꾸어 버리십니다. 마침내는 죽음까지도 천국을 향한 출입문이 되게 해 주십니다. 성도님들 어떤 상황을 만나도 좌절하지 마시고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놀라운 구원을 누릴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야만 그들은 믿을 수가 있습니다. 저 역시 교회 속에 불신자로 오랜 시간을 보내었지만 귀한 선배들을 통해 끊임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수고를 통해 저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세월이 지나 목사가 부족하나마 여러분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발걸음도 아름답지만 그 보다 더 귀한 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이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발걸음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이 땅에서 이 아름다운 발걸음에 주인공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한 주 동안 이 복음을 누구에게 전해야 할 지 생각해보시고 행동에 옮겨보십시오. 


결론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사귐을 회복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 있던지 지금 예수님을 마음으로 의지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수치심을 벗겨주십니다.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지금의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주십니다. 또한 이 구원의 감격 가운데 우리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을 전해주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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