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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 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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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 5:13~15)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이 자유는 하나님이 완전하게 이루신 구원으로 주어지는 자유이다. 우리가 구원의 자유함을 얻지 못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점수를 따기 위해서 아주 부담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자유가 아니라 오직 점수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고 봉사와 헌금도 해야 할 것이다. 사역과 봉사와 헌금이 오직 구원을 받기 위한 의식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교의식이 되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구원을 베푸셨다. 아버지께서 친히 손을 내밀어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셨다. 

우리의 죄로 인해서 우리가 pay 해야 할 것을 하나님이 pay하셨고, paid in full이라는 도장을 찍어주셨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주어진 것이다. 이로써 우리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생기고, 천국의 소망과 부활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쁨이 주어졌고, 그 기쁨으로 힘이 생겼고, 그 힘으로 주를 위해서 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살게 되었다. 주님이 주신 자유는 이렇게 귀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독립기념관에 가면 수많은 전사자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 중에 세 명의 이름은 참으로 특이하다. 그 세 분은 전사하지 않았지만 전사한 것으로 잘못 기록되어서 그곳에 사망자의 명단 안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 분들은 Memorial Day가 되면 그곳을 찾아가서 자신들의 이름 앞에 서게 되는게, 그 때마다 아주 특별한 감회에 젖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Dead but alive’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살아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복음을 아는 우리들의 간증이기도 하다. 죄와 허물로 이미 죽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것이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놀라운 자유의 힘과 능력이 있다. 본문은 이제 우리가 그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유가 왜 주어졌는지를 또한 설명하고 있다. 자유를 남용하면 우리는 죽고 만다. 물고기가 자기 마음대로 물 밖으로 나오면 곧바로 죽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자유롭게 산다면 우리의 가정은 깨지고 우리 인생도 곧 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1)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13절을 보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자유로 서로에게 종노릇하라고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막10:45에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신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이 오신 이유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고 설명하신다. 이 말씀은 그 분이 섬김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모두가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그러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 분은 높은 분이시고 하늘의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절대적인 권한과 절대적인 자유가 있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 우리도 자유에 대하여 깨달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권한을 누리고 섬김을 받으려 하심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끔찍한 사형도구였던 십자가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Christian High school에 이런 교훈이 있다고 한다. 

‘NOT FOR SELF’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오직 주를 위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며 성공한다는 정신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것을 잘못 이해하여 지금 추락하고 있다. 

15절을 보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나의 권한과 right 만을 강조하다보면, 그리고 나의 자유권만 주장하다보면 이렇게 짐승처럼 서로 물고 뜯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같이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추락할 수 있다. 불완전한 자유는 무질서이다. 내 자유를 가지고 남을 마구 밟아도 된다는 생각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정반대되는 삶을 살았다. 나를 위한 자유가 아니며 나를 위한 권한도 아니다. 나를 위한 자유는 결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남용하라고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창조주의 법칙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절대로 자신을 위한 자유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서로 종노릇하라고 주신 것이다.

13절을 다시 읽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신 분이다. 그리고 우리를 새로운 종노릇의 자리로 옮기셨다. 지금의 죄와 허물에서 풀어 놓으시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고 이제 다른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신 것이다. 

십계명 중에 1 계명부터 4 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5 계명부터 10 계명까지는 성도 간의 수평적인 관계를 말씀하고 있다. 5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고, 6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이고, 7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는 것이고, 8 계명은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이고, 9 계명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이며, 10 계명은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지키려면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 나오는 내용들은 겉으로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으로 품지도 말라는 것이다. 마음으로 여인에게 정욕을 품으면 그것은 곧 간음한 것과 같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섬기지 않으면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 14절을 보자.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수평적인 율법은 곧 사랑이다. 그들을 사랑의 섬김의 대상으로 여겨야 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 가능해진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투투라는 지도자가 있다. 그는 ‘Dream of God’이라는 책에서 그 나라의 언어 중에 ‘우분투’라는 단어를 소개하고 있다. ‘우분투’ 안에 있으면 우리는 남들에게 사랑으로 친절을 행할 수 있고 내게 있는 것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풍요로운 사람이라면 그 물질로 남을 채울 수 있고, 내게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남을 도울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단어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 나라가 큰 내분 없이 평화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가지고 다른 이를 사랑으로 섬기라는 것이다. 이것을 교회의 사명으로 깨달아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집단이고, 다른 이를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행1:8을 영어로 읽어보자.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나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에 주목하자. ‘You will be my witness’ 증인이 되는 것을 ‘will be’라고 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세상을 축복하라는 뜻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는 서로 종노릇하라고 주신 것임을 잊지 말자. 이것은 처음부터 십계명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뜻이다.

최근에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에 최진실씨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멀쩡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두 아이를 두고 자살을 하더라. Broken된 영혼들이고 broken된 세상이다. 이들을 보면서 교회의 역할과 다락방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설교자로서의 세상을 향한 역할도 깊이 생각하였다. 매 주 마다 무슨 말씀을 나누어야 할지를 깊이 묵상하고 기도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유를 주신 이유는 broken된 세상을 섬기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들을 감싸 안으라는 뜻이다. 교회는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한다. 교회가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하셨기 때문이고 그 분이 우리로 하여금 그 일을 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아버지는 (영어 성경을 보면) 되풀이 kiss를 했다. 모든 사람이 포기한 탕자였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달려갔고 그에게 여러번 kiss를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관습상 아버지 나이의 어른들은 절대로 뛸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탕자를 향해서 뛰었다. 이것은 shocking할 image이다. 완전히 broken된 영혼을 포옹하고 kiss하는 것 만이 그들을 회복시키는 방법이다. 이 영적 진리를 알고 있는 자들이 바로 우리이다. Broken된 세상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꼭 필요한 치유와 축복과 소망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식하자. 교회가 하나님의 자유를 가지고 믿음의 공동체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론적으로 보고 싶은 말씀이 있다. 
고전13:10을 보자.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포옹하고 그들을 치유하며 축복할 수 있는가? 여기에 4 가지의 방법이 나오고 있다.

(1) 덮어주는 것이다.(protect) : 아버지 만은 그를 덮을 수 있고 그들 껴안을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영혼을 회복시킬 가치가 있다고 여기신다. 그러므로 주위에 있는 broken된 사람들을 덮어주라.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한다. 돼지 냄새 나는 그들을 누군가 안아 주어야 한다. 바로 우리가 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그들을 protect 해야 한다. 지금까지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그들을 향해서, 그래서 위축 되어있는 그들을 향해서, 너무도 부담스러워 하는 자들을 향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2) 모든 것을 믿어주는 것이다.(Trust) : 나는 당신이 회복될 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로 인해서 영광을 받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Thomas Edison은 초등학교 때에 완전히 버림받은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끝까지 그의 안에 있었던 천재성을 믿었다. 하나님은 모두가 우리를 버려도 우리를 믿어주시는 분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반드시 승리함을 믿어야 한다.

(3)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이다.(Always hope) : 소망은 사람을 살린다. 그러므로 희망이 없는 사람은 죽는다. 마귀는 항상 희망이 없고 가망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 영원히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 안에 소망이 있음을 믿기를 바란다. 그리고 broken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소망임을 알려주자.

(4)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다.(Persevere) :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그들의 곁에서 싸워 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셨기 때문이다. 곁에서 기도로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누군가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면 broken된 사람들은 다시 일어날 수 없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의 종으로 부르셨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자.

우리는 다섯 장의 콜레라 접종 확인서를 들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자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하고 친절과 격려를 받고 싶어한다. 누구든 격려하고 인정해주자. 한 마디의 격려,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격려의 말이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일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이유가 된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통해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나는 네가 나의 일을 해주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이미 그렇게 작정하셨다. 이 시간에 이렇게 함께 외쳐보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존귀한 자로 여기고 계신다. 아멘.
(김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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