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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아있는 자가 마음에 두어야 할 것 (전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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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자가 마음에 두어야 할 것 (전 7:1~4)
 
 
본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사람이 사는 동안 유념해야 될 가장 중요한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곧 올바른 삶의 목적과 그 방법입니다. 그는 평생 동안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누렸지만 거기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하였습니다(전 1:2). 

인간이 수고하여 이루어 놓은 업적이나(전 1:3) 끝없는 욕심을 가지고 그것을 채우려는 노력이나(전 1:8) 남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는 것도 다 헛되다고 하였습니다(전 1:18). 그는 또 인생의 죽음이 짐승의 죽음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하였습니다(전 3:19). 이와 같은 인간의 실존문제를 깨닫게 되면 반드시 사는 날 동안 마음에 담아 두어야할 중요한 내용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1. 생명의 존엄성입니다.

생명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거기에 따라서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은 사람의 생명을 최상의 가치로 여깁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입니다.

생명의 원인자는 하나님입니다. 로마서 11:36에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을 만드실 때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고 하였습니다(창 1:26). 그 방법은 먼저 흙을 빚어 육체를 만드시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창 2:7). 하나님께서 육체에 생명을 공급하시는 동작을 이렇게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공급자인 동시에 그것을 거두기도 하십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유일한 주권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솔로몬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사람의 경우 날 때와 죽을 때가 있으나 이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전 3:1-2).


2) 구속(救贖)받은 생명입니다.

이사야 43:1에 “...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구속’하였다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고 사주었다는 뜻입니다. 곧 죄와 마귀의 권세에 얽매여 영원한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을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서 구원해 주었다는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7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0:28에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곧 예수님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고 구원해 주신 자이기에 하나님께서 각별히 아끼시고 존귀하여 여기십니다(롬 8:32).


3) 생명을 함부로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를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남의 생명을 함부로 취급해서도 안 되지만 자기의 생명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의지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자주 일어나는 자살 풍조도 문제가 됩니다. 정치 지도자, 재벌 총수, 인기 연예인 가릴 것 없이 자살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남의 죽음에 따라서 죽는 모방자살까지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형통한 날도 있고 곤고한 날도 있는 법입니다. 형통할 때는 기뻐하고 곤고할 때는 인내하면서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됩니다. 생명을 포기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것은 마귀가 즐겨쓰는 충동요법인 것입니다.


2. 가치 있는 생명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였습니다(마 16:26). 천하보다 귀한 생명은 그 삶을 통하여 존귀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전도서 12:13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허망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 중에 헛되지 않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자는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지으시고 세상에 보내신 주권자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게 사는 것이 사람의 의무요, 본분입니다. 

시편 128:1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세상적인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온갖 영화를 다 누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그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2) 기뻐하며 선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전도서 3:12에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기쁨과 선행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의 요소라는 것입니다. 

디도서 2:14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물질이나 지식이나 재능이나 제게 있는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가지고 나쁜 짓만 일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러는 선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쁜 일을 행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 역시 죄가 됩니다(약 4:17).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선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쁘게 여기시는 일은 악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게 되면 큰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요 15:11).


3) 오래도록 기념이 되는 사람입니다.

1절에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이름’은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뜻합니다. 평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충성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오래도록 기억하십니다. 이와 같은 사람의 이름을 두고 좋은 기름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기름은 값비싼 향유를 뜻합니다. 좋은 기름의 향은 오래도록 멀리 퍼져 나가며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여 줍니다. 일부러 소리를 내고 자기를 과장되게 선전하지 않더라도 말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널리 오래도록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교과서에 오르거나 기념비로 세워져서 하나님의 자랑거리로 남게 되는 이름입니다(욥 1:8, 마 26:13).


3.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1-2절에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고 하였습니다.


1) 영원하지 못한 인생을 알게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 또는 성공한 사람이나 유명한 인물들의 죽음에 접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살아 있을때는 천차만별로 다양한 스타일의 인생을 논하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어떤 경우의 사람이라도 코에 호흡이 끝나고 영혼이 그 육신을 떠나가는 그 순간부터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천년만년 사는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성경은 인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일러줍니다. 욥은 왕족이나 부자들도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는다”고 하였습니다(욥 34:20). 다윗은 자기의 인생이 “손 넓이만큼” 된다고 했고(시 39:5), 모세는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시 90:9).


2) 허망한 인생임을 알게 합니다.

세상에서 권력을 가졌거나 재물을 가진 사람은 사는 날 동안 모든 영화를 다 누리며 오래도록 죽지 않을 궁리를 하곤 합니다. 옛날 진시황(秦始皇)은 불사약(不死藥)을 구해다 먹으면서 불로장생하려 했습니다. 지금도 권력자나 부자들은 죽음을 미화하면서 화려하게 장례를 치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도 다 헛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전도서 3:20에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람이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모두가 허사뿐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39:6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3) 영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 중에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 보다 낫다고 한 것이나,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은 것과 또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고 하는 말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4절에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도 사실상 영생의 도리가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전 3:11).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천당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평소에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사는 도리를 믿기 때문에 차원 높은 삶을 살게 됩니다. 비록 땅에 살아도 하늘의 시민권자로 살면서 그날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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