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바나바에게서 배울점 : 따뜻한 관심 (행 9:26~31)

  • 잡초 잡초
  • 458
  • 0

첨부 1


바나바에게서 배울점 : 따뜻한 관심 (행 9:26~31)
 
  
미국의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교회는 수천 명이 모이는 큰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교회여서 예배 참석자들이 복장이나 예배 태도에 신경을 많이 쓰는 교회였습니다.

어느 날 한 중년 신사가 캐주얼한 복장에 모자까지 쓰고 참석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복장은 둘째 치고 모자라도 벗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사는 막무가내였습니다. 목사님도 이 신사가 무척이나 거슬렸습니다. 예배 후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예배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모자라도 벗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이 신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목사님과 대화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사실 저는 3년 전부터 이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누구도 제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에서야 여러 사람들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것도 순전히 이 모자 때문에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마음이 찔렸습니다. 바로 우리교회이야기일 수 있고, 또 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가 부흥하다보면 교인 개개인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게 됩니다. 우선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물리적으로 교인들 모두에게 다 관심을 기울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역이 많아지다 보니 관심이 온통 사역 자체에 집중되게 됩니다. 이러면서 점점 교인 하나 하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모든 사람에게 다 관심을 기울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다 관심을 끊어서도 안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최선을 다해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고 아예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 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모든 사람에게 다 관심을 기울이느냐고,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다”고 핑계대고 자기 합리화하면서 관심을 접어버리려 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 따라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보려는 성경의 인물은 바나바입니다. 이 바나바는 한 마디로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했던 모든 사역은 바로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바나바라는 사람에 관해서 행 4:36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하니” 이 바나바는 구브로 섬 출신의 레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원래 이 사람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사도들이 바나바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부터 요셉이라는 이름 대신 바나바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입니다. 

왜 사도들이 이 사람을 바나바라고 불렀을까요? 사도들이 볼 때 이 사람은 교회 안에서 늘 위로하는 역할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경 여러 곳에서 바나바는 위로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 소외당하는 사람들, 박해 당하는 사람들 그들 곁에서 위로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바나바가 이렇게 위로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은 그에게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나바가 품었던 사람에 대한 관심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1. 어려운 사람에 대한 관심

바나바의 우선적인 관심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중되어있었습니다. 특히 바나바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깊었습니다. 행 4:34-35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교회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팔아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바로 뒷부분에 일이 이렇게 된 이유를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바로 바나바가 앞장을 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교회 안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 재산을 팔아 그들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행 15:37-39에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지고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퉜다는 것입니다. 1차전도 여행을 함께 잘 다녀왔지만 2차전도 여행은 서로 갈라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마가 때문입니다. 1차전도 여행 때 마가는 도중하차를 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견디기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선교 팀에 큰 타격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차전도 여행을 떠나려고 의논 중입니다. 바나바는 마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제안했습니다. 비록 마가가 한번 실패했지만 다시 해 보겠다고 하니 격려하고 도와서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도록 해 보자는 것입니다.

바울은 반대했습니다. 만일 또 다시 도중하차 한다면 선교 사역에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큰 고통을 겪고 있던 마가를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결과는 잘 됐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바울과 따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바울과 갈라서기까지 하면서 마가를 배려했습니다. 그 후 마가가 잘했습니다. 나중에 바울에게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마가복음을 쓸 정도로 큰 일꾼이 됐습니다. 바로 바나바의 돌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나바는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그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실패의 아픔으로 좌절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들을 위로하고 보살피려고 노력했습니다.

몬테소리 교육의 창시자 몬테소리는 원래 정신과의사였습니다. 이분이 어느 날 정신박약아들이 수용되어 있는 시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아이들을 마치 가축 떼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경멸하는 눈으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동물보다 더 고약해요. 먹을 것을 가져오면 마치 동물처럼 매달려요. 이 애들은 먹기 위해 살고 있다구요.” 

그러나 몬테소리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이 매달리는 것은 음식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손을 놀릴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텅 빈 방에서 아이들은 날라 오는 식기와 빵 조각만이 그들이 손을 놀릴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습니다. 그 때 몬테소리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손을 놀릴 만한 무언가를 주면 이들을 교육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대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엇인가 손으로 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을 주자 정신박약아들의 상태가 현저하게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착안하여 소위 ‘몬테소리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어려움 가운데 있던 아이들을 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나바는 몬테소리처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입니다.


2. 인재에 대한 관심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울을 바울 되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바나바입니다.

행 9장을 보면 어느 날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을 했습니다. 주님을 만나서 사람이 변한 것입니다. 주를 박해하던 사람이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자기들을 잡아 가두던 사람이 자기편이 됐다고 하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자칫 바울은 주의 일을 해 보지도 못하고 사장될 뻔 했습니다.

이 때 바나바가 나섰습니다. 바울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실 것을 내다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믿어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기가 나서서 신원 보증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바울을 맞아주었습니다. 바울이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고, 사역의 길도 열리게 됐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바울은 고향 다소에서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여 사역자가 필요했습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생각했습니다. 바울을 안디옥 교회로 데려왔습니다. 사역을 맡겼습니다. 정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도 부흥했고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바나바는 바울의 가능성을 보고 자기보다 앞에 내세웠습니다. 

행 13:2을 보면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그 일행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13:43, 46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라고 바뀝니다. 심지어 13:13을 보면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라고 까지 합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앞장 세웠다는 것입니다.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이 있습니다.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간다는 뜻입니다. 유비가 젊은 제갈량을 얻기 위해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것에서 나온 고사성어입니다. 유비는 제갈량이라는 인재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체면도 불구하고 그 인재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제갈량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천하를 삼분하여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제갈량을 재상에 앉혔습니다. 나라를 든든하게 세워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재를 알아보고 그를 뒷바라지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뽑으시고 키우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재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조직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공동체인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변에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숨겨진 인재들이 참 많습니다. 저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뒷바라지 잘해서 장차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작은 약점과 허물 때문에 책망하기 보다는 잠재된 능력을 보고 격려하며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3.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

행 11장을 보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게 되는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특히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이 예수를 믿게되었고 큰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11:22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예루살렘 교회가 이 안디옥에 바나바를 보내서 저들을 목회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바나바를 보냈을까요? 바나바가 이방인들에게 열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1:23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보니 정말 듣던 대로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순간 바나바는 정말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 중에 이방인이 예수 믿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행 15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회의내용이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대한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이방인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먼저 유대인이 된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이방인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행 13:1에 주목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당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의 면면입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흑인입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노예입니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은 이방인이면서도 유대인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반감이 있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 하나하나는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교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저들을 지도자로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이방인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바울과 함께 떠난 1차전도 여행 시에 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그후 마가와 함께 떠난 전도여행에도 많은 열매가 거둬졌습니다. 그가 이방인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있어서 저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금년 총회 보고에 의하면 한국교회가 지난 1년 동안 1%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성장연구소는 최근 한국교회의 침체 현상의 원인들 가운데 “불신자들에 대한 관심 부족”을 중요하게 꼽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과거와 달리 불신자에 대한 관심이 식었고 그 결과 전도의 열기가 식게 되어 교회성장이 침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 없는 저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중요합니다. 바나바처럼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저들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의 일꾼으로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저들을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불신자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