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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그 뒤를 좇으라 (수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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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 뒤를 좇으라 (수 3:1~6)


한때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작곡가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어빙 벌린Irving Berlin이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으로 핍박을 받으면서 살던 사람인데, 어느 날 추방명령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 분의 이름이 매우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표한 노래 하나를 알려드리면 금방‘아하! 그 사람이었구나!’하고 당장 무릎을 칠 것이다. 

이 분이 작곡한 노래중 하나가 바로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이다. 이 노래 가사 자체가 하얀 눈으로 뒤덮인 크리스마스를 꿈꾸고 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I a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Just like the ones I used to know. 이 캐롤송은 크리스마스가 존재하는 한 세계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불멸의 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분이 정식으로 음악 수업이나 지도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더 놀라운 것은 그의 학력이 초등학교 2학년이 전부라고 한다.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녀석이 작곡을 한다고 떠들어대니 주위에서 얼마나 한심하게 여겼겠는가? 그는 빈털터리로 미국 땅에 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선창가 한편에 다 쓰러져가는 냄새나는 작은 방을 얻어서 온 가족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않고‘나는 앞으로 세계적인 작곡가가 될 것이다.’라는 비전을 가지고 오로지 작곡에만 매달린 것이다. 그에게도 스승이 유일하게 한분 있었는데 떠돌아다니며 구걸을 일삼던 맹인 거지였다고 한다. 길을 건널 때 손을 잡아주었는데 그 때마다 그는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는 집에 돌아오는 즉시 맹인 거지의 흥얼대던 가락을 떠올리면서 곡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태어난 노래가 바로‘화이트 크리스마스’이다. 

이 노래가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인기가 치솟게 된다. 이를 계기로 브로드웨이 공연 작품을 쓰는 행운도 얻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형편이 나아지면서 점점 작곡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고만 것이다. 예술가들을 보면 위대한 작품이 풍요로울 때보다는 항상 극심한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탄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신적 고통이 크면 클수록 더 심오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먹고 살만한 여유가 생기다 보니 예전처럼 돈 벌기 위해 악착같이 작곡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결국 작곡에 대한 열망을 상실한 채 돈을 펑펑 쓰면서 놀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불어 닥치면서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전락하고 만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런 상황에 처할 경우 ‘아, 이젠 틀렸구나! 여기서 내 인생은 끝났다. 더 이상 재기는 불가능해.’ 하고 낙심하고 포기할만한데 그는 이 위기를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으니 이제부터 내가 좋아하는 작곡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느냐?’ 하면서 그때부터 주옥같은 곡들을 발표했는데 그가 남긴 히트곡들이 무려 800곡에 이른다고 한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곡이‘하나님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God bless America’라는 노래이다. 미국 사람들이 국가적인 경사가 있을 때나 애국심을 고취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애국가 다음으로 즐겨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이다. 

몇 년 전인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문제작 디어 헌터Deer Hunter라는 영화를 보면 베트남전에 참여하게 된 세 젊은이가 마지막 사슴사냥을 나갔다가 한 오두막집에서 불을 피워놓고 이 노래를 부르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그가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그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고 새로운 용기와 도전으로 자기의 인생을 개척해 나갔기 때문이다. 무슨 일에나 위기는 있기 마련이다. 성공을 향한 길에는 더 많은 위험과 더 큰 장애물이 놓여져 있다. 최고의 정상을 향한 길에는 평탄한 초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솟아있을 수도 있고,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협곡이 가로막을 수도 있고,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넘실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실망하고 주저앉는다면 언제 정상에 오를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 나름대로 일가견을 이룬 사람들, 성공을 이룬 위인들을 보면 하나같이 불가능의 위기 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새로운 지평을 향해서 믿음으로 극복해나갔던 것이다. 

결단하고 나아가라

오늘의 본문에 보면 여호수아가 새로운 도전에 맞서 결단을 내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결단하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결단력이다. 

얼마 전에 우리 나라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한 적이 있다. ‘회사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경영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결단력이이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두 번째가 도전 정신이요, 그 다음이 모험심이라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가는 데 있어서 결단력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으랴?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가 라는 기로에 설 때마다 결단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라. 

우리의 인생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느냐 하는 여부도 알고 보면 결단력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여호수아의 마음은 매우 무겁고 착잡했을 것이다. ‘과연 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언제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그가 가졌던 인간적인 고뇌와 함께 그의 신앙적인 결단력을 주시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한 결단력으로 그 위기를 돌파해나가고 있다. 
오늘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여기서 싯딤을 떠났다는 말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싯딤이라는 지역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머물렀던 최후의 종착지였다. 이제는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그런 상황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가나안 정복을 포기하고 싯딤에 그냥 머물러 있기를 결정했다면 아마도 영원히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곳을 향해 가려면 일단 떠나는 결단이 필요하다. 과거에 안주한다든지, 변화가 두려워 머뭇거리거나 망설인다면 결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과거에 집착하거나 안주하려는 안일한 태도라고 할 수가 있다. 사람들이 과거와의 결별을 주저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과거에 머물러 있기를 즐기고 예전에 해오던 습관에 얽매여 지내는 것이다. 이런 자들을 통해서는 결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 대부분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많다. 좀 신선한 인물들을 발굴해서 주인공으로 세우거나 아니면 새로운 스타를 키워내면 좋으련만 대부분 잘 알려진, 낯익은 인물들을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방송국 PD들에게 ‘왜 그렇게 밖에 못하느냐? 신인들을 과감하게 앞세워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면 좀 더 다양하고 신선하지 않겠느냐?’라고 물으면 그들이 하는 말이 이것이다. 

“누군 몰라서 그러는 줄 아는가? 그렇게 하면 좋긴 한데,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그들이 만약 조금이라도 잘못해서 그 프로르램이 망가진다면 내 생명도 그것으로 끝나버린다.” 

이미 검증이 된 연기자들을 뽑아서 진행을 하면 우수작은 못되도 실패작은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이 불투명하면 아예 처음부터 안전위주로 가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은 안전하게 해야 한다. 위험부담을 극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엄청난 위험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뛰어 들어가 방향전환을 시도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만약 가나안 정복이 위험하고 무섭다고 해서, 머뭇거리기만 했다면 가나안 정복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결정해야 할 때가 오자 용단을 내림으로써 마침내 가나안 정복에 성공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결단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5년 전, 10년 전에 이렇게 저렇게 하리라고 결단했던 일들을 지금까지 성실하게 실천해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지금쯤은 몰라보게 달라진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결단만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기 때문에 늘 그 모양 그 꼴을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가나안 정복이라는 과제가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버린다면 우리는 어떠한 성공도 맛볼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결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크게 기대하거나 어떤 소망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망을 가지고 결단을 내렸더라도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소망은 결코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결단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늘 남는 것이 하나 있다. 후회와 갈등이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가 때를 놓쳐버리고 뒤늦게 땅을 치면서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 때 밀고나갔어야 했는데!’, ‘그대로 실천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결단만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있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결단한 바대로 실천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새날의 주인공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떠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떠나야할 땅이 어딘지, 버려야할 땅이 어딘지, 던져버려야 될 땅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고 떠나야할 때 과감히 던져버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시고 위대한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신다.


성결케 하라

가나안 정복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다. 5절 말씀을 보라.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성결케 하라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요단강을 건널 뗏목을 만들라고 하지 않았다. 수영 선수들을 차출해서 건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군사력을 키워서 앞으로 있을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지 않는다. 뭐라고 지시하는가? 스스로 성결케 하라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 성공여부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에 달려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인가? 성결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 성결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높여주시고 어떤 사람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가? 거룩한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일을 허물이 있는 채로 수행해갈 수는 없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주님의 사역에 뛰어들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보다 성결한 도구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주선을 만드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주선 하나를 우주로 쏘아 올리기 위해서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쏟아 붓는다고 한다. 발사과정에서 작은 결함이라도 발견이 되면 당장 발사를 중지시키고 일제히 점검에 들어가는데 가장 먼저 집어넣었던 연료를 밖으로 빼내었다가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다시 채워 넣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연료가 가득 들어있는 상태에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폭발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결함이 생기든지 일단 연료를 빼내고 보는데 이 일이 집어넣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비용이 들고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힘든 일이라고 한다. 

한번 사고가 생길 때마다 수천만 달러가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함이 있는 채로 우주에 날아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감안해서 철저히 준비를 해놔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비행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마칠 수가 있는가? 하나님 앞에 성결해야 한다. 어떤 과업을 맡았을 때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기도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 이 환란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이 문제를 해결해주세요. 이 난관을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세요.’ 이런 기도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할 기도가 있다. “하나님, 나로 성결케 하소서. 하나님, 나를 거룩한 존재로 만들어 주소서.” 

본문에 보면 성결케 하라는 말씀 뒤에 바로 주님의 약속이 뒤따라오고 있다. 그 약속이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우리가 자신을 성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을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모레도 아니고, 글피도 아니고, 한 달 후도 1년 후도 아니고, 내일 당장 기사를 행하여 친히 그 일을 이루어주시리라 약속하신다. 우리 인생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는가? 그러한 장애로 인해서 큰 고통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인간적인 수단 방법을 동원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기 위해 힘쓰라. 성결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친히 해결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결한 사람을 찾으신다. 유능하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아니라, 영성이 살아있는 영적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 가신다.


그 뒤를 따르라

어떻게 해야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비밀스런 명령을 내린다. 그 뒤를 따르라는 것이다. 본문 3절이다.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그 뒤’는 무엇을 말하는가? 두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언약궤를 매고 있는 제사장의 뒤를 따르라는 말로 볼 수 있고, 또 하나는 제사장들이 매고 있는 언약궤의 뒤를 쫓으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둘 다 생각해볼 수 있지만, 원어에 보면 ‘궤 뒤를 쫓으라 Go after the ark’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사람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환경에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주님만을 바라보고 나가라는 것이다. 왜 우리가 실패하는가? 왜 우리가 포기하는가? 왜 우리가 절망하는가?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에 그렇다. 현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자꾸 환경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요단강이 넘실대면 ‘저 강을 어떻게 건너나’ 두려워서 주춤거리고, 앞에 산이라도 막히면 ‘저 산을 어떻게 넘나’ 고민하다가 세월 보내고, 그렇게 해서는 허구한 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눈을 들어 오직 언약궤의 뒤를 쫓아야 한다. 

언약궤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 궤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가? 세 가지 물건이 들어있다. 모세의 십계명 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가 항아리가 그것이다. 이 셋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사건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불가능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고 우리의 삶속에 개입해 들어오셔서 역사하실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언약궤를 가리켜 ‘증거의 궤 The ark of the witness’ 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 하나님께서 오늘도 너희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면 못 하실 일이 없다는 증거, 하나님께서 너희 길을 앞서 인도하신다는 분명한 증거를 증거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 증거들을 바라보며 인생길을 달려갈 때 우리의 인생을 성공하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다. 

이 세상의 변화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 주위가 어떻게 변하든,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든 거기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라. 오직 살아 역사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요단강을 건널 수 있도록 힘주시고 능력주시는 주님의 뒤를 쫓아 나아가라.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열어주셔서 가나안 정복에 성공할 수 있도록 역사해주실 것이다. 

< 기 도 >

거룩하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가나안 정복을 앞에 놓고 믿음으로 결단하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결단력을 주옵소서. 
어떤 위기 앞에서도 결코 뒤로 물러가거나 좌절하지 않게 
하시고 그곳에서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성결케 해주셔서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되게 하시고, 그 뜻을 이뤄가는 일에 부족함이 없게 하소서. 
언제나 주님의 뒤를 따라가며 주님의 영광 위해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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