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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차라리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마 26: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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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마 26:19~25)


예수를 파는 유다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귀중히 여김을 받는 것은 큰 복입니다. 
여러분 모두 ‘잘 태어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왜 태어났니?’,‘왜 사니?’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가룟 유다가 그런 사람입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에 대해

“ …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고 하셨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기적을 행하실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12제자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았습니다.

이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유다의 이름에는 좋지 않은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 오늘 본문 25절에는 “예수를 파는 유다”라고 했습니다. 
- 요한복음 6장에는 마귀(요 6:70)라고 소개했고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요 6:70)

- 요한복음 12장에는 도둑(요 12:6)으로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 12:6)
- 요한복음 17장에는“멸망의 자식”(요 17:12)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 17:12)


도둑 유다

유다는 돈 욕심 때문에 죄의 길로 빠진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와 마르다/마리아 자매의 집에 예수님이 방문하셨습니다.(요12:3) 

그 때 마리아가 값지고(비싸고, expensive) 
귀한(마가복음에는 ‘한 여자’라고 되어 있음)
순전한 나드(nard) 한 근의 비싼 향유를 가져왔습니다.
(나드 : perfume,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라는 나드의 뿌리와 잎사귀에서 뽑은 향유)

그 향유는 옥으로 만든 뚜껑이 있는 작은 그릇 옥합(玉盒)에 담겨 있었습니다.
여인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마26:7)
같은 내용을 기록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발에 부었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씻었다고 했습니다. 

그 향은 예수님이 계신 집에 가득할 만큼 진한 냄새가 났습니다.(요12:3)
그러자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여인의 행동에 분을 냈습니다(마26:8, 막14:4)

그렇게 귀한 향유를 예수님을 위해 쏟은 여인을 비난했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마태복음에는 제자들(마26:8) 이라 했고
마가복음에는 예수님 곁에 있었던 “어떤 사람들”(막14:4)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요12:4)라 했습니다.
그들은 “허비”라고 생각하고, 분을 내었습니다.(마26:8, 막14:4)
그리고 여인을 책망했습니다.(막14:5)
그들은 예수님을 가장 귀히 여겨야 할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드리는 봉헌을 허비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는 합당한 관심을 가졌으나 
그 이면에는 봉헌을 자선보다 못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일을 위하여 예수 이름으로 하는 것보다 
- 구제하는 것, 자선을 베푸는 것이 더 귀하다 - 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구제해야 합니다.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더 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가룟 유다가 마리아를 나무란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에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6)고 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 일행의 돈 관리를 맡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3년 동안 사역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녔습니다. 
그 사람들이 은혜 받고, 병 고침을 받았을 때 헌금을 냈을 것입니다.
그 돈 관리를 유다가 맡았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돈 맡은 사람으로서 깨끗하지 못하게 자기 주머니를 따로 찼습니다.
그래서 그를 도둑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그 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그걸 팔면 또 한 번 큰 돈 챙길 기회가 생길 수 있었는데 …
유다는 그럴 기회가 날아간 것에 화가 났던 모양입니다. 

유다는 그 향료의 값이 300데나리온 이라고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12:5) 
300데나리온이란 돈이 어느 정도 되는 돈 같습니까?
마가복음 6장 37절에 보면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어른 남자들만 세어 
5000명이나 되는 군중(막6:44)을 한 끼 먹이는 데 드는 돈이 200데나리온이었습니다.
(데나리온은 당시 팔래스틴에서 사용되던 로마 은전인데 
당시 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된다. 
그러니 300데나리온이라면 300명의 하루 일당에 해당된다. 
보통 노동자의 1년 임금을 말할 때 300데나리온이라고 한다.)
이 향유를 팔면 300데나리온 이상 받을 수 있는데(막14:5)
그 귀한 것을 왜 허비하였느냐고(막14:4) 책망했던 것입니다(막14:5).


욕심, 죄, 사망

그렇게 큰돈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유다의 돈 욕심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스승 예수님을 놓고 대제사장들과 흥정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 26:15~16) 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놓고 흥정한 은 삼십은 그렇게 큰 액수의 돈이 아니었습니다. 
은 삼십은 예수님 당시 노예 1명의 몸값 정도였습니다. 
은 삼십은 현재 우리 돈으로 약 16만원에서 24만원 사이의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은 1g = 540원; 1세겔 = 10~15g; 은 삼십 = 300g~450g)

출애굽기 21장에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출 21:32) 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은 삼십이 종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보상금 정도입니다. 
유다는 큰돈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자신의 선생님을 단지 노예의 몸값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 ”(딤전6:10) 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큰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넘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심은 
동전 1개 같은 작은 것과 함께 사탄이 역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돈 욕심이 커지면 유다처럼 
믿음도, 의리도, 명예도 … 푼돈에도 팔아버리는‘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만 탐욕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유다와 같은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했습니다. 
몸과 마음은 욕망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더 좋은 것을 먹고 싶은 욕망,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더 좋은 명예를 얻고 싶은 욕망,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더 드러나고 싶은(튀고 싶은) 욕망 … 등
인생은 무엇을‘하고자/되고자’하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뜻보다 우선되어지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회개하지 않은 유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고 싶은 욕심에 …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타락했습니다. 
우리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면 
신앙도 예수님도 팔아버리는 유다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유다가 나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 유다는 회개하지 않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경고하며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 …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 ”(요13:10) 고 하셨습니다. 
다는 아니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뒤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요13:11)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그 자리에 있었던 가룟유다는 
자기에 대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유다에게 경고하시고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유월절이 되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
(마26:17~30, 막 14:12~26, 눅 22:7~23, 요 13:21~30)
예수님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예수님은
“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 ”(마 26:21) 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태도는 너무나 뻔뻔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5절에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마 26:25)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너다”(마26:23) 라고 지적까지 하셨습니다.
“ …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마26:23) 
이때는 이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은 삼십에 예수님을 넘기기로 한 뒤였습니다. 
그때 ‘죄송합니다. 제가 돈에 눈이 어두웠습니다.’하며 용서를 구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스승을 팔아버린 죄책감에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마 27:5)

제가 아프리카에 가기 전에 설교 준비를 했기 때문에
가룟 유다가 목매어 죽은 얘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 유명 탤런트가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여러분, 자살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죽여도 ‘살인죄’이지만 자기가 자기를 죽여도 ‘살인죄’입니다.
‘자살한 사람이 지옥에 가느냐, 천국에 가느냐’는 말은 우리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은 죄입니다.
오늘 예배드리고 목매시려고 하신 분이 있다면 마음을 바꾸세요. 
인터넷에 접속하신 분들도 마음을 바꾸세요.

유다는 스승을 팔아넘긴 죄책감에 목매달았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예수님이 붙잡힐 때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은 제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마 26:56)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마 26:69~74)

그러나 베드로는 통곡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마 26:75)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라고 명령(마 28:10)하신 갈릴리로 갔습니다.(마 28:16~17)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다시 사명을 받고(요21:15~17)
죽기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요21:18~19) 

물론 유다도 죄 지은 것에 대해 후회는 했습니다. 
그래서 심한 죄책감에 목매어 죽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후회」와 「회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후회(後悔) : 뒤 후, 뉘우칠 회 /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 
이전에 자신이 내린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는 감정. 
회개(悔改) : 뉘우칠 회, 고칠 개 /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

가룟 유다가 죄에 빠져 죽음의 길로 갔던 이유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님을 이익의 대상/이용할 만한 사람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돈이 생기는 대로 자기 주머니를 챙겼습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예수님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사업의 밑천으로 생각합니다.
(예수 믿어야/교회 다녀야 사업이 잘 될 것 같아서 …)
-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진학이나 취업하는데 필요한 가산점으로 생각합니다.
-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결혼의 혼수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정치적 발판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심심풀이로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취미가 아닙니다. 심심풀이가 아닙니다. 

분당 만나교회(김병삼)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사님의 어린아이가 집에서 
‘심심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이라고 찬양 하더랍니다.
그 집사님이 ‘신실하신 하나님이야 ~’라고 했더니
아이가 ‘심심하신 하나님이라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하더랍니다. 
아이가 “신실하신 하나님”이란 말을 ‘심심하신 하나님’으로 알아들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이 심심하십니까?
여러분 오늘 심심해서 교회에 오셨습니까?
신앙생활은 심심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유다가 예수님께 부름 받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팔 생각을 했겠습니까?
살다 보니,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기 것을 챙기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에 사탄이 들어가 역사했던 것입니다. 
범죄 한 유다도 죄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죄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죄를 자백하면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보통 사람들은 유다처럼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고 혼자 죄책감에 사로 잡혀 괴로워합니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면 
‘저는 죄가 많아서 … 염치없어서 … 부끄러워서 …
어떻게 다시 제가 교회에 나가겠어요?’하며
주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내 판단대로, 내 고집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벌하실 것 같다고 불안해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죄에 대해서는 기억하시지도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10:17)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 ”(시103:12) 했습니다. 
-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
-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던 바울
- 사람을 잡아다 노예로 팔아먹었던 노예상 뉴톤 … 등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가볍기 때문에 용서받은 것이 아닙니다.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회개하고 용서 받은 확신을 가지고 용서받은 사람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중에 누가 연약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들 중에 누가 죄 없이 살고 있습니까?
세상 풍파에 흔들리고, 죄의 유혹을 받고,
때론 예수님을 교회에 두고 혼자/내가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앞에 나와 무릎 꿇는 사람 … 
죄를 고백하고 용서 받은 확신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났으나 예수님과 동행했으나 
자기 생각 / 자기 판단대로만 하여 실패했던 가룟 유다 같은 인생이 아니라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잘못한 것은 그 때 그 때 회개하고 하나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자기가 정의의 사자가 되어 분을 내고, 폭언을 하고,
폭력을 행하는 자는 결국 자기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유다처럼 자기 죄를 자기가 심판하여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어떻게 사십니까?
가룟 유다같이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 하는 소리를 듣는 자가 아니라 
“참으로 잘 태어났다”,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야. 사람 같은 사람이야.” 
“평안한 사람이야. 믿을만한 사람이야.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야. 
그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인데 참 좋은 사람이야”라는 
칭찬 받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에 복된 자리의 주인공이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만났으나 예수님과 동행했으나 
아무 은혜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 못하고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유다와 같은 삶이 아니라 참으로 복된 삶,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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