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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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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21~27)


오랫동안 <교회 성장>이라는 월간잡지를 만들어서 목사님들을 섬겼던 한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십여 년 동안 그 일을 하다가 몇 년 전에 분당지역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론에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새신자양육, 그리고 교회성장 등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고 책도 내고, 또 인정도 받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3년 동안 목회를 열심히 하고나서 내린 결론이 무엇인가 하니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자기가 많이 연구하고 책도 썼지만 실제목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쓴 책 중에 <뒷문을 닫아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새가족이 앞문으로 들어와서 뒷문으로 빠져나가니까 뒷문을 잘 닫아야 교회는 성장하고 부흥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분은 말합니다. 개척교회를 한 3년 해 보니까 앞문으로 들어오기는 하는데 뒷문이 열려있어서 나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적인 것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늘 느끼는 갈등이 이것입니다. 내가 지식적으로 믿는 것과 실제적으로 삶에 적용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아멘! 그렇습니다. 저 말씀에 나도 동감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힘들고 어려워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아는 것 따로, 믿는 것 따로 인 것입니다. 어떤 분이 대구에 갔더니 음식점의 이름이 <따로국밥>이더랍니다. 국밥은 알지만 따로국밥이 무언가해서 들어가 봤더니 간단하더랍니다. 국 따로 주고, 밥 따로 주는 것이 따로국밥이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적으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면 그건 분리된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영을 이론적으로 오랫동안 연구해서 수영학박사가 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나 그가 정작 자신이 물에 빠졌을 때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면, 아니 그 물에서 헤엄쳐 나올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면 그의 수영에 관한 지식은 한갓 허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내가 물에 빠졌을 때 내가 헤엄쳐 나올 수 있는 기술이 내게 있어야 그는 온전하게 이론과 실제를 구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에도 한번 그런 이야기를 드렸습니다만 여우와 토끼가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여우님! 어디 갔다 오셨어요?” “내가 1년 동안 세상 구경을 하고 왔는데 내가 많은 것을 배워서 왔단다.” “무엇을 배워서 오셨어요?” “내가 위험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지.” 위험한 일을 당했을 때에 대처하는 수백 가지의 지식과 기술을 배워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토끼 너는 위험을 당할 때 어떻게 하니?” 토끼가 머리를 긁적이며 “저는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는 것 밖에 없어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위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니?” 그런데 토끼와 여우가 대화하고 있는데 사자가 으르렁 거리며 나타났습니다. 사자가 여우를 향해 달려오는데 여우는 자기가 알고 있는 수백 가지의 기술 가운데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그만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알고 있는 토끼는 뒤도 안 돌아보고 36계 줄행랑을 쳐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나를 구원할 수 없다면, 그것이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면 어찌 그것이 진정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것이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믿음의 예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11장 6절에 보니까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수님도 늘 제자들의 믿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하는 경우는 늘 그들이 믿음이 부족할 때에 책망하셨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닷가를 건너는데 예수님은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풍랑이 일어오는데 처음에는 제자들도 견딜 만 했습니다. ‘우리도 뭐 웬만큼 바닷가에서 뼈가 굵은 사람들인데 이 정도 풍랑쯤이야’ 그런데 웬걸. 나중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혼비백산해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풍랑을 향하여 꾸짖으셨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 말씀 한마디에 풍랑이 잔잔해집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정말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풍랑 가운데서도 우리가 보호받고 살아날 것을 믿었을 터인데, 그들은 곧 죽을까봐, 두렵고 무서워 떨었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풍랑 속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물 위로 건너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반가워했고, 베드로는 “내가 물 위로 걷게 해 주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를 향해 건너오라”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가다가 바람이 부니까 겁이 나서 그만 빠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적은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백부장이 자기 종의 병을 위하여 예수님께 “우리 집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내 하인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내 믿음이 정말 위대하도다. 내가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유대인 중에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가나안 여인이 와서 예수님께 자기 딸 구하면서 그 모든 수모를 무릎 쓰고 예수님께 구할 때 “나는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네 믿음이 크다”고 예수님은 칭찬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늘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은 이론적인 믿음, 지식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삶에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풍랑과 싸워야 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 앞에 자녀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부르짖어 간구해야 하는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이런 믿음이 있느냐?” 

일본에 유명한 신학자 중 우찌무라 간조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고 있는 지방에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아들 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비를 오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두 아들이 아멘 하고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아들 둘이 학교를 가는데 작은 아들이 아빠에게 “아빠! 우산 좀 주세요!” 깜짝 놀랐습니다. “야! 이놈아. 이렇게 하늘이 투명한데 뭔 비가 오겠니? 우산을 뭐 하러 가져가니!” “아빠가 비 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잖아요.” 둘째 아들은 정말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비오길 위해 기도했으니까 비가 올 줄로 기대하고 우산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우찌무라 간조 목사님은 얼마나 부끄러운지 자기 자신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들에게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정작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기도고, 응답은 응답이고, 따로국밥입니다. 기도 따로, 응답 따로. 아니 기도한다고 내 삶이 변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좀 나아지겠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이론적인 믿음입니까? 실제적인 믿음입니까? 관념적인 믿음입니까? 아니면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입니까?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75세 아브라함이 부름 받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게 네게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 자녀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번성할 것이고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네 몸에서 큰 민족이 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위해서 고민하고 소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는데 아브라함이 그를 손님으로 알고 잘 대접했더니 천사가 음식을 먹고 나서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내년 이맘때쯤에 이 가정에 자식이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정작 아브라함은 믿지 못했습니다. 부엌에 있던 사라는 그 이야기를 듣고 피식 웃어버렸습니다. 웃긴다는 것이죠. ‘내가 지금 나이가 90이 다 되었는데, 내가 지금 여성으로서의 기능이 다 파괴되었고, 이미 경수가 끊어졌는데 내가 어떻게 아들을 낳습니까?’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을 낳는다고 하면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그래서 웃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모습입니다. 정말 무엇을 이루기 위해 기도했지만 이루어지길 기대하지 않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내가 아는 믿음과 내가 실제로 적용하는 믿음이 너무나 차이가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그런 한 여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르다의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남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의 집은 베다니에 있는데 베다니는 지도상으로 보면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가 베다니에 들어가셔서 쉬기도 하시고 음식도 드시고 교제도 나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선교여행 중에 있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오빠 나사로가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색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유 있게 “그것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얼마 후에 “이제 우리 오빠 나사로가 드디어 죽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또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오셨습니다.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마르다가 너무 섭섭했습니다. ‘예수님이 좀 일찍 오셨더라면 우리 오빠가 죽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늦게 오셔서 우리 오빠가 죽고 이것 참.’ 뭔가 원망의 빛이 역력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한 말씀 하십니다. “네 오라비가 살 것이다.” 참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죽어서 장사 지낸지 나흘이나 지났는데 “네 오빠가 다시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다는 이걸 못 믿었습니다. 성경을 한번 보실까요? 21절부터 23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그런데 마르다는 이 말을 못 믿었습니다. 

24절에 보니까 “마지막날에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부활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이가 들거나 병들어 죽으면 오래 뒤에 이 땅에 메시아가 오실 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하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지금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종말 때 우리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을 내가 아나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르다는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인 지식에 불과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여기서 지금 내가 나사로를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마르다 에게 다시 강조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내가 이것을 믿느냐?” 다시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잘못된 믿음을 교정시켜 주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믿음을 실제적인 믿음으로 바꾸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애쓰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 마르다를 데리고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덤가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시더라”라고 나옵니다. 왜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나사로가 죽은 게 너무 안타까워서?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곳에 조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위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오셔도 ‘설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날까?’ 그들은 기대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불신앙이 너무 안타까우셔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통분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야! 돌을 옮겨라!”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유대인은 사람을 매장할 때 우리같이 땅을 파는 것이 아니라 동굴 속에 사람을 매장합니다. 그리고 동굴 입구를 큰 돌로 막습니다. 그리고 그 돌문 입구에다가 회칠을 해서 여기는 무덤이다 하고 표시를 합니다. 그것으로 장례가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십니다. 39절 성경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돌을 옮겨놓으라고 했더니 마르다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댑니다. “벌써 죽은 지가 나흘이나 지났고, 냄새가 나나이다. 아니 죽은 송장은 꺼내서 뭐하시려고 그러세요?” 마르다는 아직 믿지 못합니다. 

물론 27절 성경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라고 했지만, 그건 머리로 믿는 것이지 삶 속에서 믿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도 그 정도 고백은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칭찬해 주셨는데 그 베드로가 곧 계집종 앞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저주까지 하면서. 그의 믿음은 지적인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의 삶 속에 적용되는 실질적인 믿음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마르다도 그렇습니다. “돌을 옮겨놓으라”고 했더니 “아니! 뭘 하시려고요?” ‘아니! 예수님이 왜 이러시나? 죽은 송장 꺼내서 어떻게 하시려고?’ 믿음이 없습니다. 오늘 여기서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 그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불 신앙적으로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무 답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또 한 말씀 하십니다. 

4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예수님은 안타깝게 여기면서 마르다를 꾸짖는 것입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왜 네가 불순종하느냐? 왜 네가 거부하느냐? 네가 믿고 순종할 때 네가 기적을 볼 것이다.”

여러분!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면 누구에게 영광 돌리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네가 믿고 순종해서 돌을 옮겨 놓으면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고,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순종으로 완성되어 집니다. 오늘 마르다는 순종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마지못해 돌을 옮겨놓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면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말씀하실 때 죽었던 나사로가 베를 동인 채로 걸어 나온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이 이렇게 마르다와의 긴 대화 속에서 마르다를 깨우쳐 주시기 원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네가 실질적인 믿음을 가져라!” “지금 여기서 기적을 일으키는 그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라.” 하는 것입니다. 막연히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먼 훗날에 내게 좋은 일이 있겠죠.” 그렇게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는 가를 믿으라고 오늘 주님께서는 마르다를 교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믿는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고 여러분의 인생에 승리와 성공을 줄 것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그냥 “예수 믿으면 좋은 거지 뭐” “뭔가 이 불안한 세상에 믿는 것이 있으면 좀 듬직하잖아. 잠도 잘 오고, 죽어도 천당 간다니 얼마나 좋아” 그런 믿음입니까? 주님 말씀하시는 믿음은 물론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믿음이요 구원을 주는 믿음이요 죄 사함을 주는 믿음이지만, 동시에 오늘 나의 삶의 현실에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열왕기서에 보면 시돈 지역에 가뭄이 와서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고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해 양식이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네가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라 그러면 한 여인이 너를 공궤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갔더니 마침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여인이었습니다. “내게 물 한 그릇만 주시오.” 했더니 그가 물을 뜨러 가려고 합니다. 다시 불러 이야기 합니다. “내게 떡 한 덩이만 만들어 주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 여인이 하소연을 합니다. “우리 집에는 지금 양식이 없고 밀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밖에 없어서 이것 가지고 떡 만들어 우리 아들하고 나하고 마지막으로 먹고 죽어야하는 판인데 어찌 우리에게 떡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참 엘리야가 염치없이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엘리야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말을 그대로 순종하여 밀가루와 기름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엘리야를 대접했을 때 엘리야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근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끊어지지 않고, 병에 기름이 줄어들지 않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믿고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 삶에 기적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잘 되길 원하면서, 복 받기 원하면서, 사업에 번영을 원하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말라기 3장에 보면 “네가 내게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그러면 내가 네 창고에 참으로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줄 것이다.” 

여러분! 그 말씀을 듣고 ‘아 참 좋은 말씀이지.’ 하면서도 우리는 행함이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에 많은 문제 앞에 놓여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일 것이다.” 믿고 나아가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참 좋지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는데 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람의 장군 나아만이 자신의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저 요단강에 가서 7번 몸을 씻으라. 그러면 깨끗해 질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종들의 권유에 못 이겨 결국 7번 요단강에 몸을 담글 때, 순종할 때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음을 입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고 순종하셔야 합니다. 따라해 보십니다. “기적은 믿고 순종할 때 따라온다.” 여러분! 지식적으로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순종이 따라와야 합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쓰인 책인데, <Hey God>라고 포글리오라는 사람이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자기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부모들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미국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미국에 와서 아버지가 할 일이 없으니까 철도 노동자로 일을 했습니다. 늘 생활이 근근합니다. 늘 생활이 부족합니다. 어머니는 독실란 크리스천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은 스파게티를 잘 만들어서 먹습니다. 로마에 가면 제일 먼저 먹는 것이 스파게티입니다. 그런데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스파게티 재료가 1인분 밖에 없습니다. 마침 집에 돈도 떨어져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식구가 7식구인데 남편이 자기 친구들을 4명이나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좀 맛있게 배불리 먹게 해 줘요!” 하고 부탁을 합니다. 남편에게 가서 집에 양식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 남편 성격이 보통 포악한 것이 아니라 잘못 말했다간 난리가 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부인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는 정말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경책 위에 스파게티 재료를 올려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제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여 주옵소서, 우리 가정에 먹을 것을 공급해 주옵소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듯이 만나의 역사를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옵소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곤 정말 믿음대로 그 스파게티 재료를 냄비 속에 넣어서 끓였습니다. 아들이 옆에서 보니까 요만큼 밖에 안 돼서 어떻게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믿음이 좋아서 접시를 11개를 놓았습니다. 그리곤 끓여서 스파게티를 건져서 놓는데 냄비에 보면 또 스파게티 그만큼이 또 있습니다. 또 건지고 또 건지고 11개 접시를 다 채웠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과 손님들까지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에이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분은 자기만 보기엔 너무 놀라워서 그것을 책으로 기록해서 남겨두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가능했는데 오늘 우리의 삶에는 불가능할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나아가 전쟁을 할 때에 해를 멈추게 명령했더니 해가 중천에 한나절 동안 머물러서 전쟁을 끝낼 수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성정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비오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또 그가 기도했더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놀라운 약속의 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책입니다. 여러분이 이 약속을 믿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서에서 말합니다.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내게 주시는 약속으로 믿고 기도해 보십시오. 

야고보서 5장에 보니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 보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합니까?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1장 24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기도하십니까?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루어진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성전을 건축할 때 예전에 정말 이 건물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구건물 아닙니까? 그 건물을 우리는 헐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이 여기 세워질 것을 미리 믿음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소망하십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그리고 받은 줄로 믿고 기도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은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할 것이다.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법칙입니다. 믿음에는 놀라운 역사가 따라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믿음의 세계에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가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구하고 믿고 기대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 이런 놀라운 기적들이 날마다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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