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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뜨거운 선교 공동체 (막 1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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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선교 공동체 (막 16:14~18)


지난 주일에는 새로운 시대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다섯 가지 표어 중 첫 번째인 ‘순결한 신앙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1)육체적으로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자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소돔과 고모라를 훨씬 능가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육체의 순결도 지키기를 바라며, 이미 육체의 순결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믿음으로 제 2의 순결을 굳게 지켜서, 우리 몸을 모든 예배시간마다 산 제사로 드리는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2)영적으로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자고 했습니다. 어린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 있는 구속받은 성도들은 
(1)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사단이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세상을 사랑한 일이 없고, 오직 자신을 지켜 하나님과 어린 양만을 사랑하고 섬긴 순결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2)어린양이 어디든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신뢰를 말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하는 것입니다. 

(3)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하였다는 것은, 성도들이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헌신한 것을 의미합니다. 

(4)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입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사단의 행위를 용납하거나 따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입니다. 

또 흠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 것을 뜻하며, 또한 성령의 감화로 점점 더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 힘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라고 하면 반드시 이러한 특징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3)신학적으로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자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반드시 정통신학을 계승한 올바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정통 신학이란 “우와 같은 기도원적 신비주의도 아니고, 좌와 같은 자유주의적인 신신학도 아닌 개혁주의 보수 신학이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신비를 빼버리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비주의 종교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꿈을 믿는다든지, 누구의 예언을 믿는다든지, 지금도 계시를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따르면 절대로 안 됩니다. 잘 믿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은, 모두가 이 기도원적 신비주의에 미혹되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 성도들은 좌와 같은 자유주의 신 신학에 물이 들면 절대로 안 됩니다. 오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다거나, 예수님이 물 위를 건넜다든지 하는 이적을 믿지 않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어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윤리도덕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신. 구약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본분에 대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고,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순수 복음 신앙을 굳게 간직한,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의 두 번째 표어인 ‘열렬한 선교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며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부터 금요일 까지 제주도에 있는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금번 총회 중 가장 뜻 깊었던 일은 장로교 합동, 통합, 기장, 합신 4개 교단의 전 총대들이 수요일 밤 한 자리에 모여서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린 일입니다. 제주도에는 한국인 최초 일곱 명의 목사 가운데 한 분이었던 이기풍 목사님의 선교로 복음이 전파되어 백년이 된 지금은 340여개의 교회로 크게 성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다음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장로교 선교사였던 언더우드의 기도문입니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 뿐입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실로 가슴이 뭉클한 기도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강대현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미얀마와 같은 곳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심정이 이와 꼭 같을 것입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빛이 되리라.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쓴 '동방의 등불'이란 시입니다. 

물론 이런 시를 통해서 우리가 한국인 된 자긍심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시의 내용처럼 우리나라가 동방의 빛, 세상의 빛이 되는 나라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한국 역사의 발자취 속에서 한국이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일은 오늘날의 IT산업, 전자산업의 발전과 함께, 한국이 세계에 끼치고 있는 기독교적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복음을 받은 지 120년 만에 세계에 다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국가가 되었고, 해외 선교를 주도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 민족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동안 뜻있는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성서 한국’ ‘통일 한국’과 함께,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과제를 ‘선교 한국’으로 정해 왔습니다. 진실로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의 마지막 주자로 주님께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선교 한국’ ‘선교 국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일은 무엇일까요? 

1. 교회의 지상 과제는 복음 전파 곧 선교입니다.

15절에 보면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최후 명령이 나옵니다. 곧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은 복음의 세계 전파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흔히 ‘지상 대명령’(Great Commission)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은 여기서 선교의 방법과, 선교의 대상, 선교의 내용을 분명하게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선교의 대상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함에 있어서 인종이나 피부 색깔, 종교, 문화 등 그 어떤 것도 편견을 두지 말고 모든 지역에 보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은 어떤 특정한 신분, 제한된 지역에만 복음을 전하는 편협한 복음 전파를 명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만민’ ‘모든 족속’ 곧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들, 즉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고, 민족의 담장을 허물고, 정치와 이념을 초월하며, 신분을 불문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인간적인 편견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인 주님의 사랑이 어찌 인간적인 편견 때문에 장애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 대속 제물로 희생시키신 목적은, 어떤 특정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은 우리는 먼저 우리의 굳게 둘러쳐진 담장을 열어야 하며, 우리의 편협한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입을 크게 벌려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백색인에게도, 황갈색인에게도, 가난한 자에게도, 부자에게도, 문명인에게도, 미개인에게도 차별을 두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에는 전혀 차별이 없습니다.

현재 전 세계 수많은 교회와 선교 기관들이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지만, 아직도 구원 얻지 못한 이들이 40억이 넘는 현실은, 선교사들의 수가 턱없이 모자람을 실감케 합니다. 교회는 예배당을 건축하거나, 인테리어를 현대 감각에 맞게 새것으로 교체한다든지, 여러 편의 시설을 세우는 그 어떤 일들보다도 선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성도 또한 그리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선교에 무관심하거나 이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임무를 외면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교회와 개인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지라도 주님의 칭찬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너희는 가서”라는 주님의 명령에도 유념해야 합니다. 주님은 인간 구원이라는 원대한 사역에 우리의 손과 발과 입술을 빌리시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한 마음만으로, 기도만으로, 선교의 대열에 서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능동적으로 신발 끈을 단단히 동여맨 다음 우리가 속한 가정과, 우리가 활동하는 지역과 사회, 그리고 좀더 넓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횃불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가라!’는 주님의 명령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이 명령을 받은 우리는 어떤 이유, 어떤 해석도 필요 없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2. 구원의 유일한 통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음의 차이가 무엇인지 나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된다는 이 선포는 모든 사람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이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와 신들이 있어서, 사람마다 자기가 믿는 신들과 자신이 속한 종교에 충성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종교, 어떤 신들도 사람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모든 사람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든지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고,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확고하게 단언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을 위한 유일한 통로가 되십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고 또 덕망이 높다 하여 인간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지성과 인격을 갖춘 세계적인 명사가 되고, 제아무리 착하고 선하다고 칭송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는 정죄를 당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모든 사람이 비난하고 욕하는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 사건이 이 사실을 입증하여 줍니다. 그는 일생 동안 나쁜 일을 하면서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혹자는 왜 꼭 예수 그리스도만이라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공자도 있고 ,석가도 있고, 모하메드도 있는데 왜 꼭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이 가능한 가 의문을 가지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무죄하신 분으로서,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구속 사역을 완수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종이나, 종족, 피부 색깔, 생활 습관 등은 각기 다를지라도, 구원에 이르는 방법은 동일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게 됩니다. 여기에는 세상이 의인이라고 칭송하는 사람이나, 죄인으로 정죄한 사람이 모두 포합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이름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정녕 예수님께 대한 믿음 여부는 구원과 멸망의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써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복음 전도자의 상급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서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설 때 자랑할 수 있고, 또한 우리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 전파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영혼을 구하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영혼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러한 영혼 구원의 방편이 복음 전파인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 전파가 장차 주님 앞에서 유일한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영혼 구원에 수고한 자들을 위로하고 칭찬하실 것이므로, 그것은 우리의 기쁨이 되고 영광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는 모든 자랑이 다 무익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 복음 전파만큼은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 전파와 선교하는 일에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그의 일사각오의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우리 모두 복음 증거 하는 일에 사도 바울의 이러한 일사각오의 정신을 본받아 힘써 전도하고, 힘써 선교하는 충성된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전도 혹은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주님의 명령은 어떤 그리스도인도 거역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단호한 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 혹은 선교가 주님의 명령이고, 성도의 당연한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는 놀라운 주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곧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고, 또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를 가리켜 체험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누가 남의 말만 듣고서 생명을 걸고 예수를 믿겠습니까? 예수 믿고 죄 사함의 확신을 얻고, 평안을 맛보고, 혹은 병 고침을 받고, 또는 물질의 축복을 받고, 기도의 응답을 받아 보고, 그래서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는 것 아닙니까? 저는 선교하는 일과 관련해서 우리 교회가 받은 축복의 체험을 확신 있게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하는 일을 조금 열심히 했더니, I M F와 같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많은 교회들의 헌금이 보통 30이상 감소되는 중에도, 우리 교회는 오히려 220평의 주차장 부지를 마련했던 놀라운 체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토록 넓은 장소에, 이토록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게 된 것도, 단 한 가지 우리 교회의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복 주심이요 갚아주심이요 보상이요 상주심이라고 저는 확신을 합니다. 또한 우리 민족이 이만큼 잘 살고 번영하게 된 것도 똑 같은 이유라고 믿습니다. 전 세계에 선교사를 제일 많이 파송한 미국이 초일류국가가 된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는 생사화복의 대주재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개인과 가정과 국가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선교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임을 여러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한분밖에 없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선교사로 보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교하는 개인과 가정에 복을 주시고, 선교하는 교회에 복을 주시고, 선교하는 나라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모이면 예배하고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전성도 전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교회 성도들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선교 헌금에 동참하여 열렬한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보내는 선교사들이 다 되시기를, 이 땅에 선교사로 오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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