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이 기업이 되게 하라 (신 10:8~9, 벧전 1:3~4)

  • 잡초 잡초
  • 1388
  • 0

첨부 1


하나님이 기업이 되게 하라 (신 10:8~9, 벧전 1:3~4)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다른 지방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죽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급히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유산을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유서를 썼습니다. “모든 재산을 종에게 남긴다. 아들에게는 아무 것이나 하나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준다.” 유언장을 본 종은 급히 아들에게 연락하여 아들을 오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유언장을 보고 아들은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유언장을 들고 랍비에게 갔습니다. 랍비는 유언장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아버지는 참 지혜로웠습니다. 종이 유산을 탐내 철없는 아들을 죽일까봐 종을 안심시키려고 아버지는 모든 유산을 종에게 준 것입니다. 랍비는 말했습니다. “너는 그 종만 너의 것이 되게 하면 된다. 종의 소유는 다 주인의 소유이니까.” 모든 것이 다 필요 없습니다.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이 내 것이 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천하보다 생명이 귀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인 온 우주 보다 지으신 하나님이 더 위대하십니다. 하나님 한 분을 얻으면 세상에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합니다. 광야생활이 끝났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십니다. 가나안을 힘겹게 정복한 백성들은 땅을 분할하여 각 지파에게 기업으로 땅을 나누어줍니다. 이때부터 그들은 농사를 지었습니다. 땅이 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땅이 없을 때가 훨씬 은혜로운 때입니다. 땅이 없을 때는 만나도 메추라기도 물도 풍성했습니다. 모자람이 없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일을 해야 먹을 수 있습니다. 땅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직접 주셨는데 이제는 수고를 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각 지파가 땅을 기업으로 분할을 받을 때에 레위지파만은 땅이 없었습니다. 예로부터 땅은 소유가 아니라 소명입니다. 일을 위한 터전일 뿐이지 재산이 아닙니다. 땅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땅이 없으므로 그 이상의 은총을 주십니다.
 
8절에는 “그 때에”라고 합니다. 아론이 죽기 훨씬 이전인 출애굽 제 2년 2월입니다. 성막이 출애굽 제2년 1월에 완성되었으므로 이 때 이미 성막이 완성되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도와 하나님께 헌신한 레위인들을 구별하여 성막에서 수종드는 직무를 공식적으로 맡게 하였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은 이유는 농사를 짓는 일보다 더 중한 성막을 위해 일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가운데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도시인 파홈은 시골의 땅을 사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 원하는 만큼의 땅이 있으면 누구도 부럽지 않고 악마 두렵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촌장에게 가서 땅을 사고 싶다고 합니다. 촌장은 하루 동안 가지고 싶은 만큼의 땅을 걸어 다닌 후 표시하여 해가 질 때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표시한 땅을 모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파홈은 부지런히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다녔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쉬지 않고 다닙니다. 옆을 지나다 보니 연못도 탐이 났습니다. 풀밭도 탐이 났습니다. 작은 숲도 탐이 났습니다. 어느 하나 가지고 싶지 않은 땅이 없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에 간신히 출발점으로 돌아왔으나 지쳐 쓰러져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파홈에게 남은 것은 자기가 묻힐 만한 크기의 땅이었습니다. 이 때 악마가 파홈이 차지한 땅을 보고 웃었습니다.
  
땅이 기업이 되면 욕망이 생깁니다. 욕망이 기업이 되면 결국 망해버리고 맙니다. 세상은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에 늘 부족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가 너희의 기업이 되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업이 되면 땅이 부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땅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성별된 사람이 되고 땅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레위지파를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8절에는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이르니라”고 합니다. 레위지파는 하나님이 특별히 세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기업이 되십니다.
  
레위 지파에 대한 특별한 뜻을 아십니까? 하나님을 레위지파를 계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전쟁에 나갈 자들을 헤아릴 때에 레위지파는 제외되었습니다(민 1:49). 레위지파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3:12).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고 하십니다(8:14).
  
특별히 레위 지파가 성막 봉사의 직임에 선택되었습니다. 레위 지파 가운데서도 고핫, 게르손, 므라리 후손들로 하여금 구분하여 성막 봉사의 직무를 분담시켜 줌으로써 일의 능률과 질서를 도모하였습니다.
  
레위지파가 하는 일의 첫째는 “언약궤를 메게 하며”라고 합니다. 고핫 자손의 직무는 언약궤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하는 일입니다. 가나안 들어갈 때도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 제일 앞장섰습니다. 훗날 다윗은 이를 무시하고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 운반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둘째는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라고 합니다. 레위지파는 성전에 들어가서 봉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셋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지파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축복권을 가진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축복권은 저주권과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중한 일이고 바쁜 일입니다. 얼마나 일이 많은지 땅을 경작할 시간이 없으니 안 주신 것입니다.
  
요즘에도 목회자의 업무는 언제나 분주합니다. 내가 내 시간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에 따라 정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업무과중이 될 때가 많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일중독에 빠지고 스케줄 오프 증후군이 생깁니다. 수첩을 펴 보았을 때 일정표에 빼곡히 할 일이 채워져 있으면 안심하고 스케줄이 없으면 불안감이나 고독감을 느끼는 병입니다. 이런 병에 걸린 목회자가 점점 늘어갑니다.
  
스트레스 관리니 스트레스 회복이니 하는 말은 현대의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중독은 심각한 중독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건강을 돌볼 겨를도 없이 일에 매달려야 합니다. 일이 삶입니다. 존재로서의 인간(human being)인데 일하는 인간(human doing)인 듯이 살 때가 많습니다.
  
레위지파가 성막을 섬기며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성막을 정성껏 섬기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땅을 기업으로 받아 농사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가 목회 외에 다른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회만 섬긴다고 하더라도 바쁜데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목회자는 세속적인 직업을 따로 갖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한 사람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세요. 누가복음 10:40에는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라고 합니다. 41절에 예수님은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라고 하십니다. 42절에는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많은 일이 아니라 한 가지만이라도 잘 하기엔 시간이 없습니다. 힘이 벅찹니다.
  
세상에는 중요한 것(Importance)과 위급한 것(Urgency)이 있습니다. 땅을 분할 받아 경작하여 소출을 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막을 섬기고 백성들을 예배하게 하는 것은 위급한 일입니다. 레위인에게는 더 좋은 편을 주셨습니다. 더 위급한 편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고 섬김만 하게 하셨습니다.
  
레위인이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까?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레위인을 다른 지파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성막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84:10에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우리 교회를 잘 섬기는 현대의 레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세상에서 기업이 없지만 하나님이 기업이십니다.

9절에는 “그러므로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고 합니다. 레위인에게는 분깃이나 기업은 없지만 하나님이 기업입니다.
  
레위지파는 종교적 직무에만 전념하게 하였습니다. 대신 실수로 살인한 자를 위하여 피신하게 하기 위하여 만든 6도피성과 42성읍 즉 48성읍을 레위지파에게 주셨습니다(민 35:6). 그들은 농사일을 하지 않지만 다른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거주지의 생필품들을 공급하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생활에 걱정이 없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분깃’이란 히브리어로 ‘헬레크’란 말인데 동산(動産)과 관련된 할당물을 말합니다. ‘기업’이란 히브리어로 ‘나할라’인데 부동산(不動産)과 관련된 상속물입니다. 영어성경에는 ‘분깃’을 ‘몫’(part, portion, share)이라고 번역하였고, ‘기업’을 ‘상속 재산’(inheritance)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동산이나 부동산이 없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레위인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가장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동산과 부동산의 주인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면 모든 것이 나의 기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부자 같지만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였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을 일러줍니다. 반면에 성경은 가난한 것 같지만 부요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울입니다.
  
바울은 가난한 자 같으나 부자였습니다. 고린도후서 6:10에는 바울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합니다. 바울에게 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기업으로 가진 자는 모두가 이렇게 부요합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레위지파는 분깃도 기업도 없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자입니다. 하나님 한 분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란 말은 눈에 보이는 기업은 없으나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충실한 자의 생계를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유산문제는 항상 해결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명절 때마다 살인사건이 납니다. 형제간에 부모가 물려준 동산, 부동산 때문에 시비가 되고 싸움이 됩니다. 재산은 인간에게 필요하지만 항상 문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잘 사용하면 복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집안의 화가 됩니다.
  
땅은 동양인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토지’를 생명같이 생각합니다. 펄벅의 ‘대지’나 박경리의 ‘토지’를 보세요. 동양인에게 땅의 중요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해줍니다. 조상이 물려준 땅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종로 5가 우리 교회의 땅이 있습니다. 114년을 지켜온 땅입니다. 도심권의 교회들이 강남으로 옮길 때에도 우리 교회는 옮길 생각도 안 한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이 성지인데 어딜가?”라고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순교의 각오로 지킨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분깃이나 기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분깃이나 기업의 주인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기업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땅이어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한분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끔은 남편 대신 보험금을 택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남편 명의로 보험금을 들어놓고 누구와 짜고 남편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려고 합니다. 아내 대신 보상금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거의 탄로가 납니다. 보험금 대신 쇠고랑을 찹니다. 세상에서 아무 것도 없어도 남편만 있으면 된다, 아내만 있으면 된다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세태가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아무 분깃도 기업도 없지만 하나님이 기업이십니다. 모든 기업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업이 다 내 것입니다. 고대 문화에는 종의 소유는 내 소유입니다. 아버지의 소유는 내 소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 사이의 나의 신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복음성가에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주님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업이시면 다른 모든 것을 다 포기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것과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바꿀 수 있습니다.
  
천국의 비유를 보세요. 값진 보화가 있는 밭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팔아 밭을 삽니다. 밭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어떤 진주장사가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자신의 모든 것 다 팔아 값진 진주 하나를 삽니다. 이 가치가 천국입니다. 내게 필요한 단 하나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분깃이 없어도 좋습니다. 기업이 없어도 좋습니다. 동산이나 부동산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기업이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모든 것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결론

‘희랍인 조르바’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지중해의 섬 크레테에 광산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한 영국인 작가가 배를 타러 가다가 희랍인 조르바를 만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영화의 내용 중에 보면 한 젊은이가 죽습니다. 조르바는 이 영국인 작가에게 “젊은이가 죽는 이유가 무엇이오?”라고 묻습니다. 이 작가는 “잘 모릅니다”라고 하자 “책을 읽으면 뭐해! 죽음의 이유에 대해 대답할 수도 없으면서 무엇 때문에 책을 읽어요?”라고 소리칩니다. 그 때 영국 작가는 “그것에 대하여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의 괴로움을 책은 말해주지요”라고 합니다. 세상의 책은 죽음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에 대해 말해줍니다. 성경은 모든 해답을 줍니다. 세상의 동산도 부동산도 인간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분깃도 기업도 다 인간의 궁극적 해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궁극적 해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한 분 외에 세상에는 다른 해답이 없습니다. 세상의 책은 이 사실을 일러주지 못하지만 성경에는 분깃도 기업도 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기업인 것을 알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전부인 것을 알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1:4에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들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줄까요? 여러분의 동산입니까? 부동산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유일한 기업이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신령한 의미의 레위지파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이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자녀를 신령한 레위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분깃과 기업의 신비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