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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적으로 순결한 신앙 공동체 (계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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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적으로 순결한 신앙 공동체 (계 14:1~5)


오래 동안 우리 교회의 표어는 1) 전 성도 성수주일, 2) 전 성도 십일조, 3) 전 성도 전도인, 4) 전 성도 선교사로 정하고, 그러한 성도들이 되기를 힘써 기도하고 가르쳐왔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수주일로, 온전한 십일조 생활로 증명이 되어야 하고, 이웃 사랑 역시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로, 선교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꼭 그렇게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해서 주님께 인정받는 참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육체적으로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신부님이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커브를 돌아갈 때 왼쪽에 있는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쪽으로 몸이 기울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신부님이 ‘주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얼마를 가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기울게 되었는데 그쪽에는 젊고 예쁜 자매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렇게 말 하였다고 합니다.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 이야기는 웃기 위해서 만들어진 농담일 수도 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모든 사람들은 이성과의 관계에서 그릇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괜찮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 교만의 병에 오염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목석이나 쇠로 된 로봇트가 아닌 이상에는 넘어질 가능성을 누구나가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집단적인 심판을 받았던 최초의 도시가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동성연애가 보편화 되었던 음란한 도성이었습니다. 하늘에까지 사무친 이러한 죄악으로 인해 결국에는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모든 사람들 속에 내재한 타락성이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는 현상이 성적인 타락입니다. 그런데 현시대의 성적 타락상은 가히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를 향해 혼전순결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메시지로 들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최근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미국의 한 여대생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자신의 처녀성을 경매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국내에서만도 하루 평균 500개씩의 음란 사이트가 생성되고 있다고 하며, 이 사이트들을 통해 배포되는 국내외 음란 동영상은 하루에 1,000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온 나라가 음풍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성적 타락은 청소년 문제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T. V 드라마는 불륜을 소재로 하여 안방을 침투하고 간음을 조장하여, 이 사회를 온통 병들게 하고 가정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부부를 교환하는 스와핑 클럽이란 것이 생겨나기도 하고, 수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기독교인들의 가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소돔과 고모라를 훨씬 능가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은 이러한 세태를 탓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부끄러움을 간직해야 할 처녀들까지도 야한 모습이나 옷차림을 즐기며 섹시하다면서 옛날 같으면 입에 올리지도 못할 말을 예사롭게 합니다. 

간음이란 기혼자가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 이외의 이성과 맺는 불법적인 성관계입니다. 이러한 간음은 거룩한 성전인 몸을 더럽히는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죄는 영혼을 파괴하는 마귀의 최대의 무기입니다. 간음죄는 육체와 정신적인 순결을 동시에 잃어버리게 하는 커다란 죄인 것입니다. 성적인 타락은 무서운 전염병과 같고 사망의 씨앗 되는 암세포와 같습니다. 이 죄를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 형벌을 받는다고 성경은 경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그룹 비치 보이스의 한 멤버가 미국의 새들백 교회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한창 인기가 있을 때 수백 명의 여성과 육체관계를 맺고, 마약을 하며 쾌락에 빠졌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느 날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함께 성경공부를 하던 자매와 교제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성도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 교회 안에서 교제를 시작했다고 하니 염려가 되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걱정하는 성도들을 향해 그는 그 자매와 교제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육체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던 성도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비치 보이스의 멤버처럼 이미 순결을 지키지 못했더라도 믿음을 가진 그 순간부터 제2의 순결을 지켜간다면 그는 깨끗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육체의 순결도 지키기를 바라며, 이미 육체의 순결을 잃어버린 성도들도 믿음으로 제 2의 순결을 굳게 지켜서, 우리 몸을 모든 예배시간마다 산 제사로 드리는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영적으로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을 보면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들은 이 구절을 숫자적으로 해석하고 십사만 사천 명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숫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십사만 사천에 대한 설명) 어린양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1)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 경험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성경험을 말한 것이라면, 결혼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결혼 제도를 창설하신 하나님은 불의한 하나님이 되고, 혼인을 선한 것으로 여기도록 권면한 성경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여자로 더불어’라고 하였으니 여자가 구원받지 못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결혼하면 구원 받지 못한다거나, 구원은 남자의 전유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어린 양과 더불어 시온 산에 서 있는 십사만 사천은 모두 남자들이 됩니다. 그러나 천상의 승리한 교회를 상징하는 십사만 사천에 남자만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명백히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은 정절 있는 자란 상징적 의미로서, 이는 신앙의 정절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여자는 사단이나 우상 또는 세상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즉 구원받은 성도는 사단이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세상을 사랑한 일이 없고, 오직 자신을 지켜 하나님과 어린 양만을 사랑하고 섬긴 순결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2) 어린양이 어디든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첫 번째 특징보다 좀더 적극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신뢰를 시사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의 말씀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순종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님의 약속을 믿고 십자가의 길이라도 갑니다. 순교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셨으니 그들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편안하거나 안락한 길이 아닙니다. 실제로 어린 양은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처형당했습니다. 물론 그의 길이 죽음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 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의 길은 ‘죽음을 통한 생명의 길’ 곧 ‘역설의 길’이었습니다. 십사만 사천은 바로 어린 양이 걸었던 이와 같은 길을 뒤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길을 버리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뒤따릅니다. 

3)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구별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익은 열매는 자신에게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때 처음 익은 열매는 구별과 온전한 헌신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하였다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고 헌신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에 대하여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그 조물 중에서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하셨다고 하였으며, 예레미야도 동일한 의미로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첫 열매가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4)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입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사단의 행위를 용납하거나 따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입니다. 또 흠이 없다는 것은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 것을 뜻하며, 또한 성령의 장중에 사로잡혀 점점 더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 힘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어린양 예수님과 함께 시온 산에 서 있는 십사만 사천은 정절이 있는 자라고 했는데, 야고보서에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란 본래 자신의 남편에 대한 정조를 지키지 않고, 다른 남자와 부정한 행위를 하는 여자를 가리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의 언약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 즉 부부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기하고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선지자들은 영적 간음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정죄하였습니다. 

야고보는 그들을 가리켜 또한 ‘세상과 벗된 자들’이라고 하였고, 이처럼 세상과 벗된 것 역시 간음죄로 규정하며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매우 강열하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은 동반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 역시 세상과 벗이 되고 짝하면 안 됩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이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장차 시온 산에서 새 노래를 부를 십사만 사천에 포함되는 자입니까? 위의 구원받은 성도의 네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 특징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녕 우리 교회는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없는, 그야말로 일편단심 주님만을 사랑하고 믿고 따라가는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신앙적으로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반드시 정통신학을 계승한 올바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박아론 박사는 정통 신학이란 “우와 같은 기도원적 신비주의도 아니고, 좌와 같은 자유주의적인 신신학도 아닌 개혁주의 보수 신학이다.”고 정의 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신비를 빼버리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비주의 종교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꿈을 믿는다든지, 누구의 예언을 믿는다든지, 지금도 계시를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따르면 절대로 안 됩니다. 잘 믿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은, 모두가 이 기도원적 신비주의에 미혹되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 성도들은 좌와 같은 자유주의 신 신학에 물이 들면 절대로 안 됩니다. 자유주의 신 신학이란 어떤 것인가? 에 대하여 지난 6월 우리교회에서 간증을 했던 류태영 박사의 저서 “꿈과 믿음이 미래를 결정한다.”에서 보여 주고 있는데 잘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였다. 한국에서 어떤 분이 오셨는데 모 대학 신학대학원 원장이었다. 신학박사이며 목사님으로 교계 지도층 인사였다. 그분과 함께 홍해에 갔다. “류 선생, 여기를 이스라엘 말로 뭐라고 하나요?” “예 ‘얌쑵’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예. ‘얌’이란 말은 우리말로 바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쑵’은 갈대라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홍해는 갈대의 바다라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무릎을 탁 치면서 아주 크게 깨달은 표정으로 “그러면 그렇지!”라고 했다. 나는 “무엇이 그래요?”하고 물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가리키자 바다가 갈라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건넜다고 했는데, 그것이 말이 되나요?”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바다가 갈라질 수 있나요?” “하나님이 하시면 되지요” 그분의 요점은 ‘얌쑵’이 갈대 바다이니, 물이 조금 밖에 없는 갈대바다에 길이 생겨나서 그곳으로 건너갔을 것이라는 추론이었다.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거의 기절초풍할 뻔했다. 신학대학 원장이며 신학박사요 목사가 그런 말을 하다니......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시면 예수님이 바다에서 물 위를 걸어 가셨다는 것도 안 믿겠네요?” “당연하지요.” “정말 안 믿나요?” “류 선생과 지난주에 함께 바닷가에 갔잖아요. 걸어가면 그림자가 바다로 늘어지는 것을 보고, 자기 선생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제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지요. 사람이 어떻게 물 위를 걸어서 갈 수 있나요?” 그 말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 충격적이라서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중요한 대목을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물어보지요.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도 안 믿겠네요?” “그것은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을 해서 호적을 올리러 가는 중에 베들레헴에 들른 것이고, 약혼한 이후니 다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이지요. 저절로 임신을 할 수 있나요? 동정녀 그게 말이나 되나요?” 우리 집 사람이 옆에서 그 말을 듣더니 나에게 속삭였다. “여보! 저 사람 우리 집에 오지 못하게 해요” “한국에서 학생들을 그렇게 가르치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의 교인들은 무식해서 못 알아들으니 안 한다고 했다. 이런 것이 신신학학을 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다. 이스라엘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어느 주일 같은 기숙사 학생에게 교회에 가자고 했더니, 교회 가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종합대학의 신학대학을 나오고 구약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교회에 예배드리러 안 간다는 것이다. “신학대학을 나와서 지금 구약성서의 고고학을 공부하는데 교회를 왜 안 가나요?” “교회는 뭐 하러 가나요. 갈 필요 없어요.” “그러면 신학은 왜 공부하나요?” “죽으면 천국 간다고 가르치는 무식한 목사들이 전도하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서죠” 그 사람은 박사 공부를 마치고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신학교 교수를 하고 있다. 그 뒤 신앙으로 귀의했을지 모르지만 답답하고 답답한 일이었다.

어떤 목사님이 성지 순례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다니다가 그분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예수님이 태어난 곳에 갔을 때였다. “여기가 예수님이 태어난 곳이란 건 어떻게 알죠?” “무슨 말씀인지요?” “예수님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란 무슨 증거가 있나요?” “성경이 말하고 있지요” “관광객으로 돈 벌려고 만들어 놨겠지” 그분도 죽으면 천국 간다든지, 영혼이 있다든지 하는 말은, 무식한 것이라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그러면 목사님은 무엇을 믿나요?” “나는 가나한 사람을 도와주어라. 원수를 사랑하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이런 것이 좋아요. 나는 그런 인간 윤리 사상을 믿는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존재는 믿긴 믿나요?” “믿지만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고, 죽으면 천국 간다. 성령이 역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식쟁이들이 하는 것이지요, 류 선생은 그걸 믿나요?” 성경을 성경으로 보지 못하고 단지 한 권의 책으로 인식하는 그런 사람들을 접하면서 내가 보수적인 신학대학에서 올바른 성경 공부를 한 것이 너무 감사했다.> 

여러분, 바로 이러한 사상이 소위 자유주의 신 신학이란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사단의 무리들의 주장을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대신 우리 교회는 신. 구약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본분에 대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고,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순수 복음 신앙을 굳게 간직한,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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