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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음 세대를 위하여 씨를 뿌리자 (행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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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하여 씨를 뿌리자 (행 2:17) 
 
 
'내나무'의 유래

옛날에 부르던 동요 중에 ‘나무타령’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 노래를 몰라서 정말 노래하고 싶지만 부르지는 못하고 가사만 읽겠습니다.

      청명 한식에 나무 심으러 가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 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편 내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너하고 나하구 살구나무
      이 나무 저 나무 내 밭두렁에 내나무

이 ‘나무타령’에 나오는 나무들은 모두 진짜 나무 이름입니다. 오리나무, 스무 나무, 밤나무, 뽕나무, 가래나무, 구기자나무, 피나무, 쪽나무 등 다 실제로 있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 나오는 ‘내나무’는 듣도 보도 못한 나무요 혹시나 해서 식물도감까지 찾아보아도 없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내나무는 실제로 있었고, 여러분 중에도 혹시 이 내나무를 본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이런 풍습이 있었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그 아이 몫으로 나무를 심는데 딸을 낳으면 논두렁에 오동나무 몇 그루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습니다. 이렇게 자녀의 탄생과 더불어 심은 나무가 그 아이에게 있어 ‘내나무’인 것입니다. 딸이 장성하여 혼례 날짜를 받으면, 십 수 년 동안 자란 이 내나무를 잘라 장롱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오동나무 장롱이 유명한 것입니다. 

또 아들의 경우, 내나무는 나무의 주인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자라게 둡니다. 60년 안팎 자란 내나무는 우람한 나무가 되게 마련인데 그 나무는 나무 주인의 관을 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나무와 잣나무 관을 많이 쓴 것입니다. 지금은 이 ‘내나무’라는 풍속이 사라지고 이름조차 생소해지고 말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물려줄 재산도 변변치 않았지만 내 자식 대를 위해, 혹은 그 자식의 자식을 위해 선조가 나무를 심어 가장 요긴하게 쓰도록 물려주는 이 지혜야 말로 진정한 자식 사랑, 후손 사랑이 무엇인지, 또 내 후손을 위해 우리는 어떤 투자를 해야 할지 일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인 것입니다.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란?

우리 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부임후 지난 5년 동안 제가 줄곧 고민한 문제입니다. 또 올해부터 우리 교회 목적을 “말씀 위에 든든히 건 건강한 교회”로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야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역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정말 좋은 교회, 정말 건강한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 모든 세대가 조화를 이루는 교회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지요. 교회 안에 나이 든 사람만 있으면 안정감은 있지만 미래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생활이나 신앙이 모두 안정된 분들이기 때문에 교회가 아주 안정감은 있겠지만 문제는 이 분들이 계속해서 30년, 50년 씩 교회를 이끌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결국 세월이 흐르고 이 나이 든 세대가 물러나게 되면 그 교회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게 됩니다. 아무도 교회를 지킬 사람이 없는데 무슨 가능성이나 미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나이 든 세대만 교회에 가득하면 지금은 편하고 좋을지 모르나 그 교회는 미래가 없는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 안에 젊은이나 어린이만 있으면 미래는 밝지만 그들이 제대로 서기까지 교회를 바로 세우고 끌어갈 버팀목이 없게 됩니다. 어떤 목회자는 이런 실수를 합니다. 젊은 목회자가 처음 교회에 부임해서 “우리 교회는 이제 젊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이제 청년 중심, 또는 어린이 중심입니다. 청년부와 교육부를 집중 지원하겠습니다.” 이 말만 봐서는 뭐가 잘못이겠습니까? 

물론 청년도 많아야 하고 교회학교도 발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 든 세대를 경시하고 소외시키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이 너무 청년과 어린이들만 중시하는 모습을 보며 나이 든 세대, 기성세대는 깊은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교회를 잘 섬기며 지켜온 자신들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보면 교회가 어려워지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 너무 젊은 사람 일색이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늙은이(좋은 의미에서)와 젊은이,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 구세대와 신세대가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하고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짧은 한 구절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함께 읽지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 말씀은 요엘서 2장 28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요엘서를 읽어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내용은 거의 비슷한데 젊은이와 늙은이의 순서가 바뀌고, 약간씩 낱말이 다릅니다. 요엘 선지자는 마지막 때, 종말 때가 되면 하나님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구약시대의 성령은 아무에게나 부어진 것이 아니라 선지자나 사사 등 특별한 하나님의 종들에게만 부어졌는데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이 성령을 만민, 즉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실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런데 이 요엘의 예언이 언제 성취됩니까? 바로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때 성취됩니다.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처럼, 불의 혀처럼 강력하게 임하셔서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부어지고 그들은 방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방언소리를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 “저 사람들 대낮부터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자 베드로가 일어나 설교하는 중 그는 이 요엘서 말씀을 인용하면서 “너희도 잘 아는 요엘 선지자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예언한 것이 오늘 성취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강림을 체험한 것이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성령이 강림하시면 교회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물론 방언도 하고 하루에 삼천 명씩 예수 믿고 세례 받는 역사도 일어나지만 정말 중요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너희의 자녀는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여기 나오는 ‘예언,’ ‘환상,’ ‘꿈’은 모두 구약시대에 특별한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방법입니다. 

‘예언’이란 말 그대로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일이지요. ‘환상’은 선지자들이 자주 보던 것으로 하나님이 환상 중에 계시를 보여준 것입니다.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자다가 꾸는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으로 꾸게 하시는 꿈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언, 환상, 꿈 세 가지는 구약시대에 성령이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만 부어진 것처럼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만 보던 계시의 수단인데 이제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성령이 만민에게 부어지니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신비한 비밀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누가 깨닫고 그 신비한 비밀을 누가 알게 된다는 것입니까? 세 종류가 나옵니다. ‘너희의 자녀들, 너희의 젊은이들, 너희의 늙은이들’입니다. 이 세 부류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세대를 통틀어 말한 것입니다. 즉 앞서 말한 것처럼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세대,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 구세대와 신세대, 쉽게 말하면 저 막 태어난 간난아이와 유아부부터 시작해서 저 장년부, 노년부, 은퇴하신 분들에게까지 이르는 교회의 전 세대 말입니다. 이 모든 세대가 성령 강림과 충만함을 받아 모두가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고, 꿈으로 계시도 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은혜를 체험하고 커다란 영적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된다는 뜻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에 성령이 임하셔서 모든 성도가 성령 충만하게 되면, 어린이와 자녀 세대는 말씀의 사람이 되고, 젊은이 청년들은 환상, 비전을 품게 되고, 늙은이, 즉 기성세대 구세대는 꿈을 꾸게 된다.” 여기서 늙은이들이 꿈을 꾼다는 말씀에 주목해봅시다. 늙은이들이 도대체 무슨 꿈을 꿉니까? 다시 젊어져서 생생하고 멋진 총각, 날씬한 아가씨가 되는 꿈인가요? 아니지요. 돈 벌고 출세하는 꿈인가요? 나이 들어서 다 은퇴하는데 무슨 돈을 벌고 출세를 합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 기성세대, 구세대가 꿀 꿈은 오직 하나입니다. 앞에 나온 것처럼 우리 자녀들과 젊은이들, 다음 세대를 세우고 키워 교회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꿈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정말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이 큰 비전을 보고, 이렇게 다음 세대가 우리의 뒤를 이어 교회를 이끌어가고 아름답게 성장시키는 꿈입니다.

미국의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3년 수십만 명이 운집한 워싱턴의 링컨 기념광장에서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I have a dream, 나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언젠가 조지아의 언덕 위에서 노예였던 자들의 후손들과 노예를 소유한 자들의 후손들이 형제애로 모인 식탁에서 함께 앉을 수 있게 되리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내 네 명의 아이들도 언젠가 피부색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개성으로 판단 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이 감동적인 연설은 흑인인권운동이 불붙게 해서 마침내 흑백평등을 이끌어 냅니다. 한 흑인 목사의 꿈이 거대한 미국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기성세대도, 나이든 세대도 꿈을 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령이 임하시면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된다는데 우리도 꿈을 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 세대를 향한 꿈, 우리 교회의 미래를 향한 꿈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특히 기성세대와 나이가 드신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세 성전 건축도 단순히 좋은 건물 세우는 것이나, 남들에게 자랑하고 내세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 기성세대가 이 꿈을 가지고 다음 세대를 품고 키우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건축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헌금이 제일 문제라고들 합니다. 저도 헌금문제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헌금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며 동시에 투자입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입니다.

여러분, 지금 건물 20여 년 동안 우리 세대가 참 잘 써왔습니다. 이 건물에서 받은 은혜, 여기서 흘린 눈물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 교회당 건물이 우리 세대를 품고 키워준 것처럼 우리 다음 세대에도 그런 곳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건물을 그대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건물을 물려주려 합니다. 지금 기성세대인 내가 편안하게 잘 쓰려고 건물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벅차지만 잘 투자해서 다음 세대를 품고 그들이 잘 쓸 수 있는 건물을, 새 건물은 최소 50년은 쓰도록 만들 것이니 향후 50년은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정말 ‘잘’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불어 여기에다가 눈물의 씨를 뿌리고 눈물의 기도를 투자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 기도원에 가서 조용히 기도하는 가운데 제 머릿속에는 2009년 계획과 무엇보다 교회의 미래와 특별히 건축 생각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원에서 며칠을 보내는 동안 하나님은 제 머릿속에서 그 복잡한 생각을 다 지우게 하시고 오직 한 낱말만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바로 ‘기도’라는 낱말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사업 하나 시작해도 기도하고, 작은 일 하나도 기도로 시작하면서 그 큰일을, 교회의 미래가 달린, 너희 다음 세대 모두가 달린 그 엄청난 일을 어찌 기도로 시작하지 않으려느냐?”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이런 선포를 할 것입니다. 이제 9월 중에 건축허가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예정대로 건축허가가 떨어지면 5천 시간 기도 작정을 선포할 것입니다. 이 5천이라는 숫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오천 명의 숫자를 상징하며 또한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을 뜻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 주일 어른 출석 인원은 청년 포함해 700명 남짓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체 재적이 아닌 교회를 잘 다니고 있는 출석재적이 1,000명 정도일 것으로 예측합니다. 또 우리 교육부에 출석하는 아동까지 다 합해서 출석재적을 세면 아마 1,500명까지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른, 학생, 어린이 합해 1,500명, 1인당 3시간에서 4시간씩(그 이상이면 더 좋고) 투자하면 5천 시간은 넉넉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방법은 나중에 알려 드리겠지만 아마 내가 기도한 분량을 각자 스티커로 붙여나가서 5천 시간이 채워지면 종료하는 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가 끝나면 12월 중으로 건축헌금을 작정하려고 합니다. 헌금 작정을 위한 5천 시간 기도가 아닙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5천 시간 기도입니다. 눈물의 기도를 5천 시간 이상 뿌리고 투자한 다음 비로소 교회를 건축하고 내 소유를 드리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공표한 대로 절대 의도적이고 무리한 헌금 요구를 안 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스스로 기쁨으로 해야만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교회의 위대한 미래를 위해서 두 가지를 투자해야 합니다. 기도와 물질입니다. 5천 시간, 아니 그 이상의 기도를 투자하고 물질과 헌신을 통해 다음 세대와 미래를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왜요?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돈 많은 성도 몇몇이 큰돈을 턱턱 내서 하는 일도 아니고 힘 있고 능력 있는 몇 사람이 도맡아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기성세대만 하는 일도 아니요, 반대로 젊은 세대만 하는 일도 아닌 오늘 말씀대로 자녀들과 젊은이들과 늙은이들 모두가,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세대와 모든 성도가 다 하나가 되어 꿈을 공유하고 이루어나갈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더불어 지난 다섯 주 동안 나눈 “울며 뿌리는 씨”라는 주제도 마무리합니다. 설교 첫 머리에 나무 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말씀을 맺으면서 나무 심는 이야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노인의 나무 심기”입니다.

한 백발노인이 뜰에 나와 어린 나무를 심고 있었습니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청년이 이를 보고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르신, 나무는 왜 심으십니까?” “그야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지 않겠나!” 노인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습니다. 청년은 노인의 말이 우습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럼 이 나무에서 언제쯤 열매를 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아마 몇십 년쯤은 있어야 할 걸세.” 청년은 노인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상상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노인장께서는 그 때까지 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 과수원에는 열매가 풍성했었네. 그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내 할아버지께서 심으셨던 나무들이 열매를 맺은 것인데 나는 그 열매를 먹으며 자랐다네. 지금 내가 나무를 심는 것도 같은 이유라네. 내가 죽고 난 먼 훗날 나의 후손들이 이 열매의 단맛을 보기만 바랄 뿐이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 교회의 미래를 위해 어떤 나무를 심으시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투자를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심는 나무 한 그루가, 오늘 우리가 뿌리는 눈물의 씨 하나가 다음 세대를 세우고 키워서 교회의 미래가 활짝 열리는 날을 꿈꿔야 합니다. 

미래의 교회와 그 교회를 섬길 다음 세대들이 신앙의 선배인 우리를 기억하며 이런 좋은 선배들, 선견지명을 가진 앞 세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세대가 꾸어야 할 꿈입니다. 이 꿈에, 이 미래에 여러분이 함께 동참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고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I have a dream, 나는 꿈이 있습니다, 나는 성령 안에서 꿈을 꿉니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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