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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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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수 1:1~9)

 
한동안 세간에서 밥솥 시리즈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통치 스타일을 밥솥과 연결 지어서 풍자한 이야기인데, 지난주일 저녁에 보니까 인터넷에 한 신문기자가 최신판을 올려놓았더군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돈을 빌려 가마솥 하나를 장만했으나 정작 밥 지을 쌀이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어렵사리 농사지어 밥을 해놓았지만, 정작 본인은 손도 못 대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은 이 밥을 먹으려고 솥뚜껑을 열다 손만 데었답니다. 그 밥을 

전두환 대통령이 다 해치웠습니다. 일가친척까지 불러다가 솥을 깨끗하게 비웠습니다. 남은 게 누룽지밖에 없는 걸 안 

노태우 대통령은 물을 부어 그것마저 혼자 다 퍼먹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래도 남은 게 없나 박박 솥바닥을 긁다가 구멍이 나자 아예 솥 째로 엿장수에게 엿과 바꾸어 먹었다고 합니다. 빈손으로 시작한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이 모아준 금과 신용카드 빚으로 미국(IMF)에서 전기밥솥 하나를 사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10V용인 미제 밥솥을 220V ‘코드’에 잘못 끼워 홀랑 태워먹고는 “코드가 안 맞다”고 5년 내내 불평만 해댔다지요. 그러고 나서 밥짓기의 달인이라고 자처하면서 나타난 사람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밥을 나만큼 잘 짓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면서  큰소리를 쳐놓고는 고장 난 전기밥솥을 고칠 줄 알았더니 장작불 위에 올려놓고 지금도 신나게 부채질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의욕과 추진력은 있어 보이지만, 무엇인가 시대에 뒤떨어지며 백성들의 정서를 질 읽지 못하는 그의 리더십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역대 대통령들을 단 한 줄의 글로 풍자하는 글을 읽으면서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표현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의 경제를 부흥시킨 점은 인정하지만, 그는 여러 차례의 긴급조치를 통해서 백성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으려 시도한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대통령은 한 탤런트가 자기와 외모가 비슷하다고 해서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 활동을 못하도록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기자들은 마음대로 글을 쓸 수가 없었고, 있는 사실조차도 제대로 알리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변명 비슷하게 가끔씩 하는 말이 ‘신문기사를 그대로 읽으려 하지 말고 글과 글 사이, 또는 줄과 줄 사이... 이른바 기사의 행간을 읽어야 시대를 알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주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비하면 지금 우리들은 많은 언론의 자유를 향유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렇게 역대 대통령을 풍자하는 글을 읽으면서 언제 우리가 진정 존경하고 자랑할 만한 대통령을 가진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벌써 제17대 대통령이라고 하지요. 여러 인물들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지만, 진정 백성들을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섬기려고 했던 분들은 별로 많지를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때 우리는 우리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국운이 이것 밖에는 안 되는 모양’이라면서 자조 섞인 한탄을 하면서 보낸 시간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시간들을 사람들과 함께 모이면 갖가지 이유를 들어가면서 대통령과 현실을 비판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저도 여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그런 경험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그래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대통령도 시원치 않은 것 같고.. 여러 가지 일들이 되어가는 모습이 참 실망스럽고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태로 가면 나라가 벌써 망해버렸어야 하는데... 어쨌든 망하지는 않은 채로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노릇입니다. ‘그래서 한참을 현실을 비판하다가도 그래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해...’ 이렇게 말하면 모두가 공감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망해도 벌 써 망해야할 이 나라가 그래도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 힘의 원천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한 번 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높은 교육열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열은 세상 어느 나라여 비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런 교육열의 결과로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목표를 정해 놓으면 남보다 빠르게 달성하려고 하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밥을 먹어도 빨리 먹고 집을 짓거나 길을 닦거나 다리를 놓아도 적은 돈을 가지고 적은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 내는 기술이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우리보다 머리 좋고 교육열 높은 나라들... 우리들 보다 목적 지향적이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가지 직면했던 전쟁과 수 없는 많은 위기들... 여기에 비해서 우리의 지도자들이 보여주었던 무능함과 많은 약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오늘 우리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참으로 어려운 고비와 위기가 많았는데... 우리의 지도자들조차 무능하고 때로는 부패하기까지 하였는데... 그래서 우리가 더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에... 그 손길에 이끌려서 우리가 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오늘을 바라보면서 가져야 할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에 우리는 오늘과 같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아무런 염려나 걱정이 없이 우리의 앞길을 헤쳐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마음속에 품기를 바라시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수아를 함께 읽었습니다. 아마 이 때의 여호수아는 눈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이스라엘을 이끌던 모세는 이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주어졌던 사명이 이제는 여호수아에게로 넘어 왔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정말 중요한 자리에 지금 서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막 광야를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광야 생활이 다 끝났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일이 그들 앞에 놓여있습니다. 그것은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요단강은 지금 우기가 되어서 건너기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도 힘들지만 그 다음 부터가 더 큰 문제입니다. 가나안이 누구도 살지 않는 빈 땅이라면 그 땅을 차지하는 일은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가나안 곳곳에 이스라엘 보다 더 발달한 문화와 군사력을 가진 사람들이 터 잡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순순히 땅을 내어줄 까닭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들과 싸워서 이겨야만 가나안을 차지할 수가 있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이것은 이스라엘이 빈 광야를 지나서 여기까지 온 것과는 비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다시 광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이러한 일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의 입장에서는 눈앞이 캄캄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여호수아를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시는 말씀 중에서 참으로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5절) 

여호수아의 불안감 중의 하나는 모세와 같이 완벽한 지도자의 공백을 자기같이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과연 자신도 모세처럼 그런 지도자 노릇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대목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세의 그 탁월한 지도력.... 이것은 처음부터 그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면서 얻어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허물과 약점이 참 많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제는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으니 이전에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이제는 여호수아를 지키시면서 그가 어디를 가든지 결코 그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수아가 훌륭한 지도자로 설 수 있는 비결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여호수아처럼 그렇게 큰 인물은 아니라고 하여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이 ‘하나님은 항상 나를 지켜주시며, 결코 나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기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 때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그러했듯이 요단강을 건널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 어떠한 장애물이 있어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헤쳐 나갈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요즈음 세상에서 쉽게 되는 일이 없는 것을 우리는 잘 알 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나 성취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마침내 우리는 가나안을 차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신 다는 것을 언제 어디서든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주어진 일을 앞에 두고 잔뜩 위축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을 때에 나타난 변화는 어떤 것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에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요? 
   
먼저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러 일으켜 주셨습니다.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아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강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먼저 모세의 죽음을 언급하십니다. 모세의 죽음은 그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게 참으로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우리는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하나?’ 이런 걱정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고 어쩌면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그러니까 모세가 상징하는 과거의 세대는 물러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에게 열리는 새로운 세계를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여기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요단강 건너 저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들 모두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에비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이 땅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얼마 전에 수원근처에 살고 있는 한 분과 통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근처가 다 헐리고 신도시로 개발이 된다는 것인데 그 분은 기대에 부풀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거기는 참으로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마치 그곳이 신도시가 된 것처럼... 그 분위가 눈에 보이고 몸에 느껴지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인간이 계획하고 만들어갈 신도시에 대하여도 이렇게 푸르른 꿈을 가지게 한다면... 하나님은 앞길이 참으로 막연하고 답답하기만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신도시를 브리핑하십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서 너희들이 들어  가서 살게 될 곳은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곳이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게 될 땅은 얼마나 넓고 광활한 곳인지... 너희들 정말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비전을 여호수아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 모두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미래를 긍정하며 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주 좋고 넓은 세상을 미리 계획하시고 만들어 놓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물리친 엘리야에게서도 그런 희망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3년 동안이나 가뭄을 겪게 한 후, 바알의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불러들인 엘리야의 목적은 바알보다 여호와가 더 우세하다는 것 단지 그것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단비를 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그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적인 승리를 거둔 후에, 그는 다시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땅에 엎드려 고개를 두 무릎 사이에 묻고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비를 간구하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사환을 시켜서 바다 쪽 하늘을 보게 합니다. 무슨 비의 징조가 없는지... 그것을 살피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다시금 엘리야는 엎드려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는 사환을 통해서 하늘을 쳐다보며 징조를 구합니다. 그렇게 하기를 일곱 번을 거듭한 끝에 저 편 하늘에서 손만한 작은 구름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엘리야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하였습니다. 그 작은 구름 속에서 불덩이처럼 뜨겁고 메마른 대지를 다 적시고도 남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희망적인 세계관입니다. 

오늘은 비록 모든 것이 메마르고 다 타들어가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비를 내리셔서 메마른 땅을 사람들이 살기 좋은... 생명이 충만한 곳으로 바꾸어 가신다는 믿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데에는 아주 작은 손만한 구름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과 희망을 우리들은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엘리야가 가졌던 희망이 우리들 모두의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많지는 않아도...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그렇게 큰 것은 아니라고 하여도... 우리가 가진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도 그렇게 큰일을 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항상 자신감 있고 당당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여호수아를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거듭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을 하나님은 이 대목에서 세 번이나 거듭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6절에서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하셨고 7절‘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더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기 전인 9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결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기를...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이렇게 세 번이나 거듭해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싸움을 앞에 놓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어렵고 힘든 현실을 받아들일만한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가지는 것... 그리고 여기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인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깨워 주시는 것이지요.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담대함과 자신감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을 살면서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비결이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하실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강함과 담대함의 비결이 있는 것이지요. 내가 남보다 가진 것이 많아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강해서... 우리의 담대함과 강함의 비결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나는 약하고 두려움이 많지만...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기에... 나는 어디에 있어도 두렵지 않고..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도 않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사도 바울의 역설적인 고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능력 있고 효율적인 주님의 일군이 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육신의 가시... 질병을 없애달라고 주님께 간곡히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를 하여도 문제가 해결되지를 않았습니다. 그 때에 주님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하나의 역설인 것이지요. 내가 약할 때.. 그 때가 실은 강한 순간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약함 때문에 더 겸손할 수 있고, 더욱 더 간절하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라고 고백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나 자신에게 있는 것 때문에 강하고 담대할 수 있다면... 우리들 중에 누가 그럴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자신감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우리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오히려 우리의 약함에 있습니다.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붙잡아 주지 않으신다면 이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더더욱 이제까지 살아 온 것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기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에... 우리는 약한 중에도 강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두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두려운 마음... 이것조차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에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 현실을 헤쳐나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로지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소중한 특권입니다. 이러한 은총이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에 충실한 삶을 권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7b-8) 

생각해보면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에 그들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 가운데 담겨진 하나님의 소원과 비전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희망하셨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그렇게 살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셔서 그들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소원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유효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 ‘여기에는 나는 나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사는 일에 내 인생 전체를 바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약속이 전제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가장 소중한 삶의 원칙으로 생각하고 그 말씀을 일고 깨닫고 삶을 통해서 말씀을 실천하면서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또 다른 모험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기 보다는 저마다의 욕심이나 이익을 추구하면서 사는 세상이니까요. 그만큼 우리는 세상의 경쟁에서 뒤로 쳐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이나 정체성도 내어버리고, 마치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라도 신앙인으로서의 자존심과 명분을 벗어던지며.. 세상에서 최고가 되는 것보다는... 좀 가난하고 곤고하더라도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일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이들을 결코 세상에서 망하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일.. 그것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는 길이며, 평탄하게 걸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세상이 메마르고 곤고해 갈수록 ‘하나님은 왜 나를 남다른 믿음과 축복의 세계로 부르셨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으며 그것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던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길이 형통하고 평탄하게 되는 것이며, 세상을 살리는 길인 것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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