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라 (왕상 17:1, 왕상 19:18)

  • 잡초 잡초
  • 335
  • 0

첨부 1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라 (왕상 17:1, 왕상 19:18)

 
지난 주 울산 법원 앞에 있던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그 부근에 있던 생선가게에 난입하여 싱싱한 생선 한 덩어리를 물고 달아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가 난 생선가게 주인이 그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변호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약에 어떤 고양이가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훔쳐갔다면 그 고양이 주인에게 돈을 요구할 수 있는 거요?"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만원 내슈.  댁의 고양이가 우리 가게에 와서 생선을 훔쳐 갔수."

이 변호사는 말없이 생선가게 주인에게 돈을 내줬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생선가게 주인은 변호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변호사 상담료 10만원 청구함!"

사람은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나도 그렇게 대접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고 존귀하게 대하면 상대방도 그렇게 나를 사랑하고 존귀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을 아주 하찮은 존재로 여기면 나도 그렇게 취급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 상대적으로 관계할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관계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나에게 어떻게 하든 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를 잘 하셔야 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형제와 이웃을 만나셔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좀 손해도 보셔야 합니다.  억울해도 참으셔야 합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가 없는 사람, 손해도 보기 싫고, 억울하면 못 참는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지구를 떠나라!"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인간 관계에서 많은 맹세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맹세에 대해서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는 하늘로도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다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 경우만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분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고 살아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함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유명한 엘리야 선지자의 기도문입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것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과거에만 존재하셨던 어떤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섬기는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존귀하신 분이시지만, 우리와 구체적으로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존재적 확신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허공을 잡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에 대한 자기 신앙을 분명히 하십시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은 오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던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오늘도 우리들을 위하여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행하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확신시켜 주는 그 사람에게 강하게 나타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강하게 믿는 자에게는 강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깊이 믿는 자에게는 깊은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강하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더 깊이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더 뜨겁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엘리야는 이 말을 통해 하나님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신 존재의 문제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의심 없이 증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나타나기를 구하는 갈급한 간구입니다.
"하나님, 오늘도 사람 앞에 설 때 내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 증거 되는 것을 원할 뿐입니다."
이 얼마나 다급하고 진실하고 현실적인 기도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엘리야와 같이 진실하고 현실적인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 내가 사람들 앞에 설 때에 내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 증거 되기를 원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보여지기를 원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행복한 아내는 얼굴의 표정과 행동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의 말과 표정에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 앞에 설 때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증거되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이처럼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어떤 현실적인 사건들이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느껴지고 보여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을 증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중에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하나님이 가셔야 할 곳에 하나님의 대리자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을 대신할 사람들을 택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생생하게 살아 계심에 대해 눈이 멀어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세우십니다.
 
"주여, 이런 메신저가 되게 하시고, 이런 하나님의 온전한 메시지가 되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는 한 형제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부르십니다.  그래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 형제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 형제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이 증거 되어 져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힘들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도전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의 삶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증거들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살펴보고 또 보아도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가 없다면 우리는 지금 거짓된 종교놀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전과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기만하는 죄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때 참으로 많은 것들이 필요한 줄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간단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병든 자를 일으키고 역사하는 힘이 있는 믿음의 기도, 성령의 능력 외에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들에 대한 확신이 정말 나에게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기도와 성령의 능력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는가?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이것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고백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드린 우리의 기도는 응답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자유와 해방과 치유의 기쁨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목회자인 저의 고백을 말씀드리면 제 삶에서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너는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일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의지하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일어나 가능한 일들로 성취해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공의 진짜 비밀은 무엇일까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는 확신과 지금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열정을 갖는 일입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내 인생에 가장 귀한 사람, 하늘 나라까지 같이 가야 할 사람, 하나님이 내게 짝지어주신 파트너라는 확신을 가지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는 확신이 있으면 성공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일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에 대한 열정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시간에 대한 열정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옆에 있는 분들의 얼굴을 가만히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였군요.  제 옆에 앉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정의 원어는 '신이 내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정이란 내 의지와 감정과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정이란 하나님의 영이 나를 감화 감동함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것입니다.  오늘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쪼록 여러분이 하는 일들 위에 하나님의 신이 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에게, 여러분이 쓰시는 시간 위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예배는 세상을 창조한 에너지와 결합하는 시간입니다.  그 창조적 에너지가 우리들에게 오기에 힘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때의 표정과 갈 때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올 때의 눈빛과 갈 때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올 때의 열정과 갈 때의 열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의 이 변화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전에 오기 전에 있었던 모든 부정적이고 나약했던 것들은 다 사라지고 새로운 열정과 비전을 품고 이 전을 나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 '황금연못'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던 캐더린 햅번이라는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영화 배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자들이 캐더린 햅번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찍는 영화마다 성공하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때 캐더린 햅번은 이렇게 딱 한 마디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에너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들에게는 삶의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에게는 에너지가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창조적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는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령한 힘이요, 하늘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저의 생애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취하여 에너지의 근원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저만 만나면 살맛이 없던 사람에게 살맛이 나게 하시고, 열정이 없는 사람에게 열정이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는 힘들어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살맛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살맛을 찾게 해 주어야 합니다.  열정을 잃어버리고 인생의 꿈과 비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꿈과 비전을 회복시키고, 그래서 그들 속에서 열정이 불같이 일어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희망입니다.  내가 희망입니다.  희망인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더 큰 희망을 보게 해 주어야 합니다.  믿음의 성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교회가 세상 속에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일어나 돌을 던질 것입니다.  희망을 찾지 못한 그들은 결국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희망입니다.  그래서 옆 사람에게 이렇게 한 마디 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거룩한 것에 붙잡혀 열정적으로 행동할 때에만 진정으로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왜 거룩한 열정이 필요할까요?  인간은 수많은 장애물에 얽혀 사는데 이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제일 큰 힘이 열정이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으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열정이 있으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인간의 성공은 사람과 일이 남긴 자국인데 혼자서는 절대로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남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 불행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남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열정입니다.  삶의 열정이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삶의 아무런 의욕이 없는 사람을 사람들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인생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복된 거룩한 열정'이라고 합니다.  믿음을 의지하는 열정의 센서가 성령의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무서운 열정을 보십시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것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왕 앞에서 목숨을 걸고 한 이야기입니다.  이 놀라운 열정! 이 담대함!  이 자신감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확신과 열정의 능력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확신과 열정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2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도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칠흙 같이 어두운 밤에 열심히 배를 저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물위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이 놀라움과 두려움에 "귀신이다.  귀신이다"라고 소리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 소리를 듣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간청을 합니다.
"주님이시군요.  주님, 저도 물위를 걷게 해 주세요"
 
그래서 베드로가 주님만 바라보고 물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만 바라보고 걸을 때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파도가 주님보다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큰 파도를 보는 순간에 베드로는 파도에 정복되고 말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용기의 원천인 주님으로부터 눈을 떼는 순간 우리는 모든 용기를 잃고 맙니다.  베드로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가장 급박한 기도, 신약 성경에서 제일 짧고 위대한 SOS 기도를 합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베드로의 급박한 기도에 주님께서 오시더니 손을 잡고 건져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로 결심을 하였다면 정말로 예수님만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만 바라볼 때에는 힘이 솟습니다.  희망이 넘칩니다.  열정이 불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환경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넘어지기 시작합니다.  좌절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오직 예수님에게만 고정시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들 중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사도 바울처럼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십시오."  이 말은 바울이 로마의 어느 휴양지에서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로마의 어느 고급스러운 파티장에서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굶주림과 매맞음과 곰팡이 냄새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지하 감옥에서 울려 퍼지는 승리의 노래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구요?  그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주님의 사심을 바라보며,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며 외치는 승리의 노래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진수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봄으로써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확신과 열정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어리석은 넋두리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힘들고 어려울 때 불평과 원망으로 투덜거리는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거짓 선지자 850명과 싸워서 이깁니다.  그는 그 큰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도 이세벨의 도전에 위협을 느끼고 도망을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루는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넋두리 기도를 합니다.
"주여! 이제 넉넉하오니 제 생명을 취하옵소서!"
850 대 1의 갈멜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영적 혼란과 혼돈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제는 끝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기도에서 자기를 구해야 합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열정이고 좋은 일이고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라며 자기 연민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능력에 붙들리게 해달라고 강청해야 합니다.
"주여,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권능의 채움을 받게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잘못하면 어리석은 기도를 하는데, 그럴 때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의 어리석은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기 연민에 도취되어 어리석은 기도를 드릴 때 결코 응답하지 마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여정이 항상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 항상 맑은 날만 있다면 사막이 되고 마는 것처럼, 인생 여정이 항상 맑은 날만 있다면 그의 삶은 무미건조한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흐린 날도 있어야 합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날들이 합력하여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때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넋두리나 늘어놓는 그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확신과 열정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소홀히 하는 위험성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남에게도 소홀히 합니다.  자기애를 가지십시오.  사람이 자기 집착에 빠져서는 안되지만 자기애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기 집착은 자신의 연민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말합니다.  자기 집착은 부정적인 자기 연민에서 시작이 됩니다.  때문에 자기 집착에 빠지면 한 발 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애는 다릅니다.  이것은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에서 시작이 됩니다.  이 자기애는 자신을 사랑함에서 넘어서서 이웃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로 나아가게 됩니다.  때문에 자기애는 보다 더 큰 비전을 향한 중요한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혹여 어떤 분은 이렇게 반문하실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세상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사랑하되 부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긍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잘못된 가치관에 사로잡혀서 끊임없이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자기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결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진을 빼앗아버리고 열정이 식어지게 합니다.  결국 이런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대부분이 부정적인 단어들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안 돼"
 
자기 안에 있는 진을 빼앗아버리는 모든 악한 영들로부터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소중히 하십시오.  제가 자신을 소중히 하라고 하니까 얼굴에는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값비싼 옷을 사 입고, 손가락에는 다이아반지를 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엘리야가 앉아 있던 로뎀나무는 빗자루를 만드는 나무입니다.  빗자루는 쓸모 없는 것을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축 처지고, 마음까지 지치고 탈진하고 열정도 쇠잔하고 고갈된 상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진이 빠지도록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피곤에 절어있는 만성 피곤증 환자는 하나님도 기피하십니다.  의욕을 상실한 사람은 하나님도 외면하십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서 지쳐서 쓰러졌을 때 하나님께서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시며 천사를 동원하여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먹고 나니까 그 지침과 피곤이 다 물러가고 40일 밤낮을 걸어서 호렙산에 들어가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쉬어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돌아서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주저앉아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아주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양식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확신과 열정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숨겨 놓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지쳐서 동굴에 숨어 있다가 하나님께 발견됩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숨어 있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똑같은 음성을 듣게 됩니다.
"너는 어찌하여 숨어 있느냐?  너는 어느 때까지 네 믿음을, 네가 받은 복을 숨길 거냐?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거냐"
 
엘리야는 말합니다.
"하나님, 저만 남았는데 저 혼자 어떻게 합니까?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엘리야야!  아니다.  너와 함께 할 숨겨놓은 세상의 사탄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 우상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 7천 명이 있느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에 엘리야는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숨겨 놓은 7천명이 있으니 이 일을 다 이루겠나이다."
확신을 회복한 엘리야는 끝까지 하나님의 일에 열정을 바쳐 일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 혼자 있게 하지 않습니다.  고독한 아담을 위해서 하와를 보내셨던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믿음의 동역자를 보내주십니다.  혼자인 줄 알았던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순결한 믿음의 사람을 7천명이나 숨겨놓으셨습니다.

"하나님 나 혼자 남았습니다.  나 혼자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교만입니다.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주위를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와 함께 할 동역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를 위하여 숨겨놓은 믿음의 동역자를 보여주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어떠한 경우에라도 주님만 바라보며 열정과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며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진정한 하나님의 메시지로 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