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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드온 승리의 비결 (삿 7: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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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승리의 비결 (삿 7:13~23)
      
  
전쟁은 이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기지 못할 전쟁은 하면 안됩니다.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외교를 통해야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갈 때 자기의 일만 군사로 저 이만으로 오는 자를 이길 수 있을지를 먼저 헤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이길 수가 없다면 사신을 통해서 화친을 청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승산이 없을 때는 타협이라도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데에 뜻이 있지 않느냐, 그건 지는 사람이나 하는 변명입니다. 
  
이차대전 미군 지휘관이었던 조지 패튼은 ‘조국을 위해 죽겠습니다.’ 이런 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쟁은 조국을 위하여 죽음으로써 이기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적군으로 하여금 자기 조국을 위하여 죽게 함으로써 이기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운동경기도 마찬가지에요. 운동경기도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사람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사람은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이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 그 말은 경주에서 이기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으니 너희도 이기기 위해서 경주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참여하는데 뜻이 있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됩니까? 그것은 민망하지 말라고 지어낸 변명일 뿐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적어도 자기 나라에서 일등을 했기 때문에 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나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나라에서 최고인 선수를 내보내고 예선을 치르고 거기에 이겼기 때문에 올림픽에 나가서 경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림픽 자체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도 자기 나라에서만큼은 일등을 해 본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맺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애썼다고 상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열매를 보시고 상을 주십니다. 천국에는 애석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천국에는 열매를 맺지는 못했지만 노력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한다,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 버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좀 가혹하시지 않느냐,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맺으라고 나무를 심으십니다. 열매를 얻기 위하여 나무를 심으십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하나님이 심으신 목적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다가 멀리 무화과나무가 있는 것을 보시고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셨는데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으니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나무를 저주하셨지요. ‘다시는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 저주하셨더니 그 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버렸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좀 가혹하시지 않느냐, 그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를 맺기 때문에 무화과나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무화과나무가 아닌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에 무화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은 강자를 칭송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논리가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강자와 약자 논리가 왜 여기에 등장합니까. 강자이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고 약자이기 때문에 전쟁에서 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비교했을 때 더 강자였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지금은 몸무게 체급별로 겨루게 돼 있지만 원래 유도의 원리는 몸집이 작은 사람이 몸집이 큰 사람을 넘어뜨리는 운동입니다. 그게 유도의 비결입니다. 그게 묘미입니다. 어떻게 몸집이 작은 사람이 자기보다 몸집 큰 사람을 넘어뜨리느냐?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도의 ‘유’자는 ‘부드러울 柔’입니다. 부드러움을 통해서 나보다 강한 사람을 넘어뜨린다는 논리인데 이건 유도뿐만이 아니고 인생의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나의 연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 승리하는 것은 자신이 강자이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케 되는 것이 그것이 비결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때로는 너무 당연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서 그것을 거부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궤변에 불과합니다. 

기드온이 전쟁에 나갔다는 것은 승리할 것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에 기드온이 승리할 것 같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를 보내지도 않습니다. 다만 아무리 하나님이 보낸 전쟁이라도 이기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있으면 준비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준비한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님들 중에 ‘믿습니다! 라고 외치고 개척의 문을 열어 보니까 그 앞에 낭떠러지가 있더라.’ 이런 고백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믿는다고 해서 준비를 안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길 줄 믿고, 잘 될 줄 믿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하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말하기를 ‘너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 있느냐 나는 나의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보이리라’ 이것은 나의 준비함으로 나의 믿음을 보이리라 이렇게도 의역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차대전에 미국이 전쟁에 참여한 시기가 1941년입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했기 때문에 1941년 12월에 미국이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노르망디에 상륙작전을 감행한 시기는 1944년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삼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간 다음에 유럽 본토에 공격을 감행했다는 얘기인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느냐? 준비하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승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노르망디에 상륙을 감행한 다음에는 일 년도 되지 않아서 전쟁이 끝났지요. 그러니까 준비한 대로 결과를 거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승리의 비결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 
  
첫째는 하나님이 기드온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부르셨다는 사실에서 이미 승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심, 이 자체에서 우리는 최후 승리와 성공과 또 열매를 확신할 수 있어야 됩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기드온을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쓰신다는 얘기요, 하나님이 쓰신다는 말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보장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또 ‘너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시리라’ 이러한 성경구절에서 칼빈은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성도의 견인, 그 말은 성도들은 결국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아주 중요한 교리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도 받고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결국은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칼빈의 다섯 가지 교리 중에 마지막 교리인 ‘성도의 견인 - Perseverance of the Saints’, 아주 중요한 교리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이미 결과가 보장된다는 얘기입니다. 목사로 부름을 받았다면 하나님이 쓰실 줄을 믿어야 됩니다. 목사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승리하게 할 것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드온은 하나님이 자기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불러 세우셨다는 사실 자체에서 우리는 잘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이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승리를 꿈꿀 수 있어야 됩니다. 

첫 칼을 칼집에서 뽑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는 승리의 검을 휘둘러야 됩니다. 마음속에서 승리의 검을 휘두르고 승리를 꿈꿀 수 있을 때에 실제적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역사하는 원리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믿음을 통하여 자기가 꿈꾸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그릴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을 얻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밤하늘을 쳐다보게 하시고 ‘네 후손이 이렇게 많으니라’라고 그의 마음속에 장차 크게 번성할 이스라엘 민족을 꿈꾸게 하셨어요. 그리고 그대로 된 것입니다. 만약에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마음속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전투에 나가면 안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패배합니다. 마음속에 승리가 보이고 승리가 손에 잡히고 승리의 함성이 들려야 됩니다. 그리고 승리하는 길이 보여야 됩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겠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분명히 될 것이다. 문제없다, 이것은 누워서 떡먹기이다, 반드시 잘 될 것이다.’ 이런 마음의 확신이 있다는 것은 그건 하나님이 이미 돕고 계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기드온이 말하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나님이 미디안을 이스라엘 손에 붙였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첫 전투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항아리 속에 감춘 횃불이 뜻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 횃불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상징합니다. 항아리는 사람을 뜻하고 횃불을 성령을 상징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십니다. 성령, 이것은 영적인 파워를 말합니다. 이건 비밀이에요. 영적인 파워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항아리 속에 감춘 횃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인 것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은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비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삼

손에게 있어서 그의 머리카락이 힘의 비밀이었던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승리의 비결,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 세상 사람이 알 수 없는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도 그 비밀을 가지고 전쟁에 나갔어요. 
  
예전에 제가 태권도 도장에 다닐 때 사범님이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나만의 비밀 테크닉이 있다, 그러시더라구요. 그건 가르쳐 주지 않는데요. 왜냐하면 그것까지 가르쳐 주었다간 제자들이 자기를 이기려고 할 테니까. 자기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 테크닉이 있다, 사실 그건 반칙이지요. 그것도 가르쳐 줘야 진짜 사범이지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와 같은 능력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항아리를 깨뜨려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항아리를 부수고 그때 횃불이 나타난 것처럼.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데 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느냐? 우리 자신을 깨뜨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을 깨뜨린다는 말은 나를 부인한다, 내 자신을 내려놓는다, 내 뜻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그게 항아리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지시만 그 성령의 능력을 더 많이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항아리가 깨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전히 고집스럽고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여전히 자기의 뜻을 고집하기 때문에 항아리가 깨지지 않으니까 그 속에 있는 횃불이 드러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옥합을 예수님께 가져온 여인이 옥합을 깨뜨렸더니 그 안의 향유 향기가 풍겨 나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옥합 자체는 비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향유는 더 귀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옥합을 깨뜨려야 향유를 부을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이 비밀도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돼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기게 하는 것,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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