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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의 샘 (빌 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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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빌 1:12~21
제목 : 기쁨의 샘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하고 귀한 삶이라 할지라도 재미가 없고 기쁨이 없으면 그 삶은 큰 속박과 짐이 될 뿐입니다. 재미만을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즐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 역시 즐겁고 낭만적인삶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안에서 늘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기쁘게 삶을 대하는 것과 억지로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은 천국과 지옥처럼 다릅니다. 우리의 예배 역시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들릴 때 축제의 예배가 되지, 천국 가보겠다는 노력으로 드린다면 정말 힘들고 슬픈 일일 것입니다. 
   
지금쯤 한창 올림픽으로 중국의 수 많은 경기장은 텅 비어있을 것입니다. 뜨거웠던 열기의 현장은 이제 텅빈 객석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이 마치 여름철의 한줄기 분수처럼 솟아났다가 이내 사그라지고 거품만 남게 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참된 기쁨의 샘을 발견하고 아무리 사막 같은 메마른 인생이라도 오아시스처럼 늘 기쁨의 샘이 터져 나오는 축복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쁨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며, 그 분의 뜻입니다. 늘 기쁨 가운데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바울의 형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13절을 보면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 바울은 옥중에 매인 신세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내가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고 말을 합니다.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로 도리어 복음 전파에 전진이 된 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바울은 옥에 갇히고 무거운 쇠사슬로 손목과 발목이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복음 전파에 진보가 있음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로 기쁜 일이 있어야 기뻐하고 좋은 일 있어야 기뻐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바울은 옥중 에서도 기뻐했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다보면 바울이 갇혀 있었던 지하의 옥도 방문하게 됩니다. 당시 지하의 옥들은 쇠사슬을 벽에 달아, 죄수들을 양 손목을 그 쇠사슬에 걸어 서 있게 하여습니다.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만일 우리의 삶이 이런 옴짝달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듣는다면, 과연 기뻐할 수 있을까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들이 우리의 환경을 둘러싸 버릴 때가 있습니다. 바울 역시도 그러했습니다. 그 역시도 원치 않은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통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안에서 복되게 살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기뻐하고 기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들도 기뻐하라’고 말입니다.
   
바울은 또한 몸이 갇힌 고통만이 아니라 사람들로 인한 괴로움도 있었습니다. 17절에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투기하고 증오하고 분쟁함으로 옥에 갇힌 그를 조롱하고 괴롭혔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친구를 만나 많은 은혜를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조롱과 비판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나 또는 무의식적으로 행한 이야기들로 인해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의도적으로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물론 빌립보 교인들이 그를 위해 기도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왔지만, 지금 바울의 주위에는 투기와 질투로 괴롭게 하는 사람들에 싸여있습니다. 바울을 세워주기 보다는 헐뜯으며 근심과 상처를 주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당부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바울이 가지고 있는 기쁨의 샘의 근원이 주위환경이나 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가 처해 있는 장소도 아니었으며 주위 사람들도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의 기뻐하라는 당부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한” 신앙을 발견합니다. 괴로움을 더하게 하는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모든 상황이 불리한 듯해도 기뻐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임을 보여줍니다. 옥에 갇혀 있고, 발목이 잡혀 있으며 우리의 손이 자유를 얻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 나를 해치고 괴롭히고 분쟁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샘이 우리의 환경이나 여건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샘이 거기에 있다면, 그것은 영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18절에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기쁨은 환경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밤이면 늘 아픔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한 암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그 환자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지난밤 아무런 통증 없이 편한 잠을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왜 그랬을까를 조용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한 치료를 받은 것도 없고, 그저 그날 저녁 늦게까지 TV에서 코미디언들이 나오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정신없이 웃다가 너무 피곤하여 잠이 들어버린 일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가 밤사이 단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웃음에 있었습니다. 웃으면 엔돌핀이 생겨나서 모든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의학 보고서가 있지만, 그보다도 하나님께 본래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면 기가 제대로 흐르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면 우리 몸에 흐르는 기가 막힙니다. 그러기에 항상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쁨으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기쁨의 샘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메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은 무엇을 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이루신 놀라운 사건을 통해 우리 속에 터져 나옵니다. 
   
   
바울이 기뻐하고 기뻐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복음이 증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2절)” 바울의 기쁨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전파가 진전되어진 데 있었습니다. 17,18절에, “참으로 하든지 괴로움을 더하든지 순수하지 못함으로 하든지 다툼으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어져 가기에 내가 기뻐하고 또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니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영적인 눈을 가지고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이 옥에 갇힌 것으로 인해 염려하고 있을 때 바울은 오히려 옥에 갇힘으로 시위대 안과 밖에 복음이 증거되어지는 사실로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정에 있는 평안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에 주신 일들이 번영함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하박국 선지자처럼 여러분의 창고가 가득하지 않고 우리의 소나 양이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복음이 선포되는 일로 기뻐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를 전도하여 그가 은혜를 받을 때, 자신이 은혜를 받는 것보다 더욱 기뻐합니다. 복음의 확장을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성입니다.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널리 증거 되며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것으로 기뻐하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바울의 삶의 목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내게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아니한다” 
   
“내가 담대하여 복음을 전하노니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20,21절)”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공연히 왔다가 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목표를 주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때로는 시련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통해 삶의 기쁨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이 없을 때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우리의 삶이 흔들리고, 우리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우리 삶의 기쁨을 회복하는 근원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위하여 크게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직장은 바로 사명의 처소라 했습니다. 다 우리가 바울처럼 이방인을 위한 사도겠습니까? 다 우리가 목사요 선교사겠습니까? 우리가 다 학자요 우리가 다 위대한 정치가요 예술가겠습니까?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위하여 여기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산이 가로막히고 사람들의 비방이 닥쳐오고, 우리의 걸음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우리의 삶의 목표를 이룰 때, 더욱 큰 기쁨이 우리 안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에게 기쁨의 샘은 복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는 우리가 잘 아는 우물가의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가 나옵니다. 그 여인은 남편 다섯과 살았으나 지금의 남편도 자기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네게 물을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나에게 물을 달라 하였을 것이고 네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고 그 속에 샘이 되어 솟아나리라” 그렇습니다. 복음은 솟아나는 샘이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고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영이 우리 마음에 부음 바 되어질 때 우리 마음이 그치지 않는 기쁨의 샘이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샘의 뚜껑을 열어 놓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기쁨의 샘을 닫아버리고 다른 샘을 파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파는 샘의 물은 마시면 또 목마를 것이요, 또 다른 샘을 파기 위하여 우리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허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의 샘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진정한 기쁨의 샘으로 나오셔서 여러분의 얼굴이 늘 기쁨과 감사로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로 선교를 하러 갔습니다. 선교사는 너무 많은 부족들을 심방하여  피곤에 지치게 되었습니다. 해는 질 것 같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 쉬려고 하는데 추장이 보낸 전령 하나가 뛰어왔습니다. 그 전령은 문을 두드리면서 오늘 저녁에 자기 부족에게 와서 은혜로운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 때 선교사는 부족민 중에서 글을 아는 사람이 성경의 한 장을 택해 읽고 그들끼리 예배드릴 것을 권하며 정중히 추장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추장이 보낸 전령은 아주 지혜롭게 대답 했습니다. “선교사님, 우리는 성경을 읽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읽으려고 합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편지인 우리를 읽으려 하고, 그리스도의 향기인 우리의 삶에서 무엇인가 느끼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 세상의 빛이며 소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어떤 향기를 맡고, 무엇을 읽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얼굴과 삶을 통하여 기쁨의 샘이 마르지 않는 구원의 확신과 위대한 능력을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멋진 그리스도인들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보람찬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롬 1장 16절과 고전 1장 18절의 말씀처럼, 복음은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어지나 믿는 우리에게는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성벽을 헐어버리고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들을 헤쳐 버리고 기쁨과 감사로 말미암아 거룩한 하나님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될 때, 어찌 우리 속에 기쁨이 솟아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주목하십시오. 여호와를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마음에 기쁨이 메마르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에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기대와 간절한 소망을 바로 여기에서 찾았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한국 교회를 통해 우리 백성,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저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과 그리스도안에 있는 기쁨을 읽고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원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 위대한 축복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누가 우리를 끊으리요 환란이나 핍박, 위험 칼날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 그 아무 것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도하심, 보호하심을 믿는 가운데, 우리 마음에 메마르지 아니하는 기쁨의 샘이 늘 솟아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때 우리의 영혼도 육체도 주님 안에서 강건하여져 우리의 샘에서 넘쳐나는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운 뜻대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가슴 속에 있던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 우리 가슴 속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복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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