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석] 가정과 가문을 위해 울며 씨를 뿌립시다 (행 16:29~34)

  • 잡초 잡초
  • 489
  • 0

첨부 1


가정과 가문을 위해 울며 씨를 뿌립시다 (행 16:29~34) 

 
추석에 하는 일

오늘은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입니다. 자, 그렇다면 추석특집으로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 집안은 추석에 모이면 보통 뭘 합니까? 사람들에게 조사해보니 “밥 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또 밥 먹고”가 1위였습니다. 가정주부들이나 며느리들에게는 별로 안 좋은 기억이지요. 솔직히 이런 식으로 추석을 보내면 가정주부나 며느리들은 너무 힘듭니다. 그러니 우리 남자 분들 아무리 경상도 사나이라도 일을 좀 도우세요. 이젠 남자들 부엌 들어가는 것이 흠 될 일 아닙니다. 물론 여러분 중엔 목사의 말에 별로 동의가 안 되는 분도 계시겠지만 추석이니 명절이 중노동 하는 괴로운 시간이 안 되도록 우리 부인들과 딸과 며느리들을 조금이라도 도울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저는 적어도 우리 교회 성도들은 고리타분하지 않고 좀 열리고 깨인 어른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추석에 대한 두 번째 기억이 바로 “하루 종일 TV 보기”라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적어도 가족이 모여 좀 즐거운 이야기도 하고 윷놀이라도 하며 친목을 다져야 할 텐데 하루 종일 집구석에서 추석 특선 TV 프로그램만 보다 명절 다 보내는 집안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밖에 기껏해야 “전 가족 친목도모 고스톱” 아니면 “성묘와 벌초” 혹은 “추석 성묘 미리 하고 추석 연휴에 여행 가기” 정도라고 하니 참 답답한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어요. 다른 건 다 하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이 빠진 것입니다. 바로 온 가족이 모여 신앙공동체로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추석은 TV 보기나 고스톱 치기 좋은 때가 아니라 온 가족이, 나아가 온 가문이 한 자리에 모여 신앙적으로 하나 되고, 신앙 공동체로서 함께 영적인 일체감을 갖는 가장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기회를 무의미하게 밥 먹고 TV나 보다가 헤어지는 시간으로 허비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의 가정 공동체

성경은 신앙 공동체로서의 가정이나 가문의 의미를 참으로 중요하게 봅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철저하게 가정 중심 공동체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아간의 도적질’ 사건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분명 가나안을 점령할 때 남녀노소 모든 사람과 가축까지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우상숭배가 전염될까봐 그토록 철저하게 진멸하라 하신 것입니다. 또한 성 안에 있는 재물은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절대 개인이 갖지 말고 하나님께 모두 바치라고 했는데 아간이라는 자가 그 명령을 어기고 재물을 착복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아이 성에서 크게 패한 후 범인을 찾아내는 장면이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데 온 이스라엘 ‘민족’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후에 그 중에 제비를 뽑으니 열두 지파 중 유다 지파가 뽑힙니다. 그 유다 지파 중 제비 뽑아 세라 ‘족속’을 뽑습니다. 그 다음 세라 족속 중에서 삽디 가족이 제비 뽑히고 그 가족 중에서 아간이 뽑혀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순서를 보면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철저하게 가족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순서를 거꾸로 보면 더 이해하기 쉬운데 먼저 한 남자가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가족’(family)을 이룹니다. 그 다음에 이 가족이 여럿 모여서 대가족 형태의 족속(clan)을 이룹니다. 이것을 ‘씨족’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이 족속들이 모여 열두 지파(tribe)를 이룹니다. ‘부족’이라고도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이 열두 개의 지파가 모여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가족 중심으로 민족이 이루어지다 보니 각 가족마다 가장이 있고, 또 족속과 지파를 이끌어 가는 어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이끌어가는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도 있었던 것이고요.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 이름이 본디 ‘아브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이란 ‘한 가족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가장(家長)입니다. 또 그의 아내 사래도 그 뜻이 ‘한 집안의 어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의 이름을 아브람과 사라, 즉 열국의 아비와 어미로 바꾸십니다. 그만큼 이들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이들을 통해 한 가정이 점점 더 커져서 큰 민족을 이루고 마침내 열국, 세상 모든 민족을 다스릴 민족으로 성장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공동체에 있어서 가장과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의 선민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탁월한 민족의 지도자도 있었지만 민족을 구성하는 단위인 ‘족속’과 ‘가족’들 모두 그 집안의 가장과 어른들을 통해 신앙을 잘 지켜나갔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결국 가정과 가정이 모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즉 무수히 많은 가정들이 모이고 모여 대한민국 전체를 이루고 있는데 만약 이 가정들이 건강하면 대한민국 전체도 건강할 것이요, 가정이 약해지고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 나라 민족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가 큰 위기를 맞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가정이 붕괴되고 가족이 해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가정이, 나아가 그 가정이 모인 가문이 중요합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도 너무나 중요하고 더욱이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더욱 중요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일어난 일

이제 오늘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납니다. 그 여종은 귀신의 힘을 빌려 점을 쳐서 주인이 큰 이익을 얻고 있었는데 그만 그 여종이 두 사람을 끈질기게 쫒아오면서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괴롭히는 바람에 바울은 그 여종을 도와 귀신을 쫓아내게 됩니다. 그러니 큰 수입원이 떨어진 주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점쟁이라고 다 똑같은 점쟁이가 아닙니다. 저 서울 미아리 고개에 점집, 무당집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평범한 점쟁이가 아니라 우리나라 1,2위를 다투는 재벌들만 찾아가는 재벌 전담 점쟁이나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줄을 서는 정치인 전담 점쟁이도 있다는데 이런 점쟁이는 한 번 점 봐주는데 최소 수백 만 원에서 수천 만 원까지 된다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만약 제가  그 점쟁이를 찾아가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고 귀신을 쫓아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그 사람으로 먹고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가만히 안 놔둘걸요? 똑같은 현상이 지금 바울과 실라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종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고발해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날 밤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려버립니다. 죄수들은 이게 왠 떡이냐 하며 다 도망가고 마는데 이를 본 간수는 칼을 빼어 자결을 하려 합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죄수를 도망하게 한 간수는 그 죄수가 받은 형량만큼 벌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받을 벌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그만 칼을 빼서 자결하려 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이 간수가 정말 자살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분명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도망한 것은 하나님이 바울과 실라를 풀어주기 위해 일으키신 일인데 아마 사람들은 간수가 죄수들을 다 풀어주고 자기도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되는 것이지요. 또 자살한 간수도 안 됐지만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됐겠습니까? 

나중에 이 간수가 예수 믿게 될 때 간수만 아니라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고 예수 믿게 되는 것을 볼 때 이 간수는 한 가정의 가장이며 아마도 모든 수입까지도 책임 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요즈음처럼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만약 간수가 자살을 했다면 그 가족 모두 파탄을 맞게 되었을 것입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지고 나아가 죄수들을 풀어주고 자살한 비겁한 죄인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이나 받고 살게 되었겠지요. 이 얼마나 간수 자신에게나 온 가문에게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런데 간수가 칼을 빼서 자결하려는 순간 바울이 크게 소리 지르며 말립니다. 그러자 간수는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묻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는 “선생님들, 도대체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살겠습니까?” 하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랬더니 바울은 그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간수가 사는 방법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오직 주 예수를 믿는 것뿐이듯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도 예수 믿어야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으리라”가 아니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한 점입니다. 그래서 32절부터 보면 정말 바울이 그 집에 가서 그 집 모든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간수와 함께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이 빌립보 감옥 사건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영적인 가르침을 주는 사건입니다. 첫째, 우리도 다 이 간수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데 이런 죄인이 예수님 믿고 구원 받는 것 외에는 살 길이 없다는 복음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입니다. 둘째, 우리 기독교는 물론 ‘내가’ 구원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혼자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내 온 가족이 함께 예수 믿고, 함께 구원 받고, 함께 천국 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에서, 혹은 우리 가문 전체에서 나 한 사람이 예수 믿게 된 것은 나로 인하여 온 집안이, 온 가문이 예수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예비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 복음화, 가문 복음화의 사명입니다. 셋째, 이렇게 되기 위해 나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본문에 보면 그 집 가장인 간수가 믿으니 온 가족이 믿게 됩니다. 물론 가장의 권위로 “오늘부터 우리 집은 모두 예수 믿는다”고 선포했겠지만 아무리 가장이라도 이게 가능합니까? 더욱이 그 당시에는 이런 권위가 좀 통했을지 모르지만 요즘 같이 가장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는 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우리가 평상시에 잘해야 합니다. 

요즘 세상이 어찌 된 셈인지 남편이 믿는다고 아내가 무조건 교회 따라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 신앙의 자유를 존중한다며 남편은 교회 나와도 아내는 안 나오거나 성당이나 절에 다니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아내가 믿는다고 남편이 당연히 따라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또 부모가 믿는다고 자녀가 옛날처럼 무조건 순종하고 교회 나옵니까? 아니지요. 그러니까 점점 더 가정 복음화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자유로워지고 서로를 존중한다는 구실로 가정 안에서 권위가 없어지고 기강이 해이해 지다보니 가정 복음화는 더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가정 안에서 가족들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너무 중요합니다.

먼저 가장인 아버지요 남편은 한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영적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임명하신 가정 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성경에서 영적 권위를 아버지에게 준 것은 남편과 아버지들이 그 가정을 영적으로 잘 이끌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가장이 바로 서서 영적으로 그 가정을 이끌어 가면 그 가정이 다 복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 것처럼 가장이 영적으로 책임을 다하면 온 가정이, 가문이 다 복을 받지만 반대로 영적 가장이 잘못하면 온 가정의 복을 까먹게 만들고 맙니다. 얼마나 중요한 사명입니까?

또 아내와 어머니는 가정 안에서 역할이 이렇습니다. 가족들 밥해 먹이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살림 잘하고 애들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아내와 어머니의 사명은 기도하는 아내,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정 안에서 가장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뒤에서 기도로 뒷받침 해주는 아내의 영적 내조 없이는 어렵습니다. 또 아버지가 자녀들을 위해 축복기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머니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기도하고 또 낳아서도 품에 안고 기도하는 그 기도가 자녀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자녀들의 역할은 이렇습니다. 아들과 딸뿐 아니라 사위, 며느리 모두 한 가정의 자녀로서 그 가정의 신앙의 맥을 이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집안의 대를 잇고 신앙의 맥, 영적인 대를 이어간다고 여긴 장자뿐 아니라 모든 아들과 딸이 모두 이 영적인 대를 이어가야 합니다. 자녀가 여럿인데 그 중에 어떤 자녀는 예수 잘 믿지만 어떤 자녀는 부모 곁을 떠나 타지에 나가서 공부하거나 취직한 후에 예수 안 믿게 되었다면, 또 시집 장가 간 후에 신앙을 잃어버렸다면 부모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과연 그 가정을 정말 예수 믿는 온전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집안은 그래도 장남이 믿으니 됐지, 자녀들 중 반타작은 했으니 이만하면 예수 믿는 가정이지”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라는 말이지요. 사위나 며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룻이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후 역시 과부가 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시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며느리들이 안쓰러워 나를 따라오지 말고 각자 살 길을 찾아 가라고 하는데 두 며느리 중에 오르바는 그렇게 했지만 룻은 말을 안 듣고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룻기 1장 16절입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요즘 이런 며느리 감 있습니까? 있으면 좀 소개해 주세요. 당장 우리 며느리 삼게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요즘 며느리들 시어머니 예수 믿는다고 같이 신앙생활 잘 안 합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더 어렵고요. 하지만 며느리와 사위가, 또 아들과 딸 모두가 이렇게 가문의 신앙을 잘 따라주고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다면 정말 복 받은 가정입니다. 또 복 받을 가정이기도 하고요. 여러분, 우리 가정, 우리 가문, 어떻게 해야 복 받은 가정이요 가문 될까요? 부모 모두 건강하게 장수하고 자녀들 모두 성공하고 잘 사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온 가정이 다 예수 믿어 구원 받고 부모와 형제, 자녀들, 그리고 사위와 며느리까지 온 가정이 다 신앙생활을 잘한다면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코 쉬운 일 아닙니다. 그러기에 더 복된 일인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 가문을 위해 뿌립시다

이제 마지막으로 “온 가족 중에 나만 예수 믿는다,” 혹은 “온 가문 중에 우리 집만 교회 다닌다”는 분들 이야기를 잠시 하지요. 이런 분들 참 예수 믿기 너무 힘듭니다. 어떤 분이 제게 그럽디다. “목사님, 명절이 되어도 부모님 집에 가기 싫어요. 온 집안이 다 불교, 유교라 제사 지내야 되는데 우리 집만 예수 믿어서 제사상에 절 안 하니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형제들, 가족들하고 말을 해도 너무 안 통해서 참 힘듭니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러면 안 됩니다. 안 만나면 편한지 모르지만 그래서는 평생 전도 못합니다. 평생 가정 복음화, 가문 복음화 불가능합니다. 힘들지만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섬기세요. 구박도 받고 눈치도 봐야 하고, 때로는 자존심 구기는 일도 있고 더럽고 치사한 꼴도 보겠지만 그럴수록 더 겸손해지고 더 낮아지고 더 머리 숙이고 섬기고 더 굳은 일 앞장서서 열심히 하세요. 그래야 역사가 서서히 일어납니다. 

비록 너무 힘들고 오랜 세월이 걸릴 수 있지만 이렇게 씨를 안 뿌리면 열매 없습니다. 그리고 잘 섬기고 열심히 일하는 것뿐 아니라 안 보는 데서 눈물 뿌리세요. 너무나 힘든 일이기에 더군다나 눈물의 씨를 뿌리지 않으면, 기도의 씨를 몇 동이씩 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사명감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왜냐? 온 집안에 나 혼자만 믿는다, 온 가문에 우리 집만 믿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명이요? 가정 복음화, 가문 복음화의 사명 말입니다. 이 사명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합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면 나는 가족 전체와 가문 전체의 기도 후원을 받는 든든한 처지가 됩니다. 이 일이 어렵다고 못하고 시간 오래 걸린다고 못하면 평생 예수 믿어도 가족과 가문 눈치 보며 믿어야 하고 평생 내 마음에 무거운 짐을 안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해야 합니다. 사명감으로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추석에 가족들 모이거든 먹고 설거지하고 또 먹고 하는 일보다, 추석 특선 TV 프로그램 보는 일보다, 고스톱 치고 수다 떠는 일보다 내 가정 위해, 내 가문 위해 함께 예배드리고, 온 가족이 함께 눈물의 씨를 뿌려봅시다. 그것이 어렵다면 가족들 안 보는 데에서라도 남몰래 눈물의 씨를 뿌립시다. 이 씨를 눈물로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이것이 이번 추석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