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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사람들이 가는 길 (왕상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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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는 길 (왕상 2:1~4)


할렐루야! 
오늘은 추석 명절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귀히 여기고 찾으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자리에서 누구를 만나든 
예수 향기 풍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

어떻게 살든, 어디에서 살든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정해진 길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죽음은 죄의 값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로마서 5장 12절에
“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셔서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그러나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먹을 수 있게 하셨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 ”(창2:17)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 ”(창2:17) 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와가 주는 ‘금지된 열매’를 먹었습니다.(창 3:6)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창 3:23)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가 죽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인간의 족보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아담으로 시작하는 이 족보에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누구를 낳았고 몇 년을 살았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었더라”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죽었더라”
1. [창 5: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2. [창 5: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3. [창 5: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4. [창 5: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5. [창 5: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6. [창 5: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7. [창 5: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8. [창 5: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신앙생활면서 가족들이 교회에 나오게 애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 어떤 분이 자기 남편이 교회에 안나오니까 
어떻게 하든지 나오게 하려고 하다가 그 해에 남편 생일이 주일이라서
연초부터 ‘금년 생일날 교회에 가자’고 했답니다.
꼭 한번만 생일에 교회에 가자고 해서 그 날 교회에 나왔답니다.
그분은 ‘오늘만 버티면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설교시간에 비장한 각오를 하고 앉아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생일 축하시간에 “오늘 생일인 분 일어나라”고 하는 말에 
교회에 처음 나와서 망설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부인과 아이들도 옆에서 계속 일어나라고 해서 마지못해 일어났답니다.
그날 최고의 생일 축하를 받고 감동이 되어서‘지금 갈등 중’에 있다고 합니다.

어떤 자매님이 남편을 끈질기게 설득해서 교회에 나오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결국 그 남편은 교회에 한번만 가기로 약속을 하고 함께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러니 그 자매님은 자연히 예배시간에 
‘찬양대는 무슨 찬양을 할까? 목사님의 설교는 어떤 내용일까?’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성경본문이 창세기 5장이었는데 내용이 
“누가 누구를 낳았고 몇 년 살다가 죽었더라”하는 이야기만 반복되었습니다.
더욱이 “죽었더라”하는 말이 8번이나 … 그 자매는 실망을 해서 
‘하필이면 오늘 따라 죽었더라 죽었더라 계속 죽었더라만 하실까’하고 낙심이 되어 
남편의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3주 후에 남편은 교회에 등록을 했습니다. 
자기 손으로 등록카드에 이름을 쓰고 등록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부인은 남편이 등록을 하니 너무 좋아서 예배를 마친 후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기로 결심을 했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남편이 말하기를 
“3주전에 ‘죽었더라 죽었더라’하는 그 말이 내 마음에 와 닿으면서 
‘너도 죽을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면 안되겠다 내가 예수 믿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도 여러분 중에, DVD로 말씀 듣든지 
인터넷 접속자들 중에 그런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들도 ‘어느 날’ 성경에 나오는 그 사람들처럼 
“죽었더라”로 마침표를 찍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

그러나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9장에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히 9:27)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삶이 있다고 구원의 소망을 갖고 살지만
어떤 사람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한 탤런트가 자살을 해서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사람은 13,407명입니다. 
하루에 36~37명이 자살한 것입니다. 
이는 주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살이 늘어난 원인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가족붕괴와 
유명인이 자살하면 모방 자살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꼽고 있습니다. 
1994~2005년 자살 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유명 인사가 자살로 사망한 뒤 
한 달 평균 137명이 더 자살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외국에서 보기 힘든 일가족 동반 자살도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자살 세 건 가운데 한 건이 동반자살이라고 합니다. 
<‘자살 바이러스가 번지는 한국 사회’2008. 9. 9 중앙일보 참조>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인간에게 죽음이 끝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 …

오늘 본문은 죽음에 임박한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유언은 인생을 마무리할 때 하는 마지막 말입니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지혜를 남기는 마지막 말이기 때문에 유언은 값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유언’에 대해
‘재산을 분배하기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주변 나라가 두려워하는 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의 인생길이 항상 평안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왕이 되어서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아들에게 쫓겨 가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생의 굴곡 중에도 다윗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에 맞는(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 (행 13:22)
“ …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 13:22)

그런 다윗이 자신의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아들에게 
어떤 유언을 남기고 싶었을까요?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통치기술이나
부강한 국가를 이루기 위해 경제 정책은, 국방정책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윗은 “모든 사람이 가는 길”, 죽음이 있음을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왕상 2:2)

보통 사람들은 지금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죽음이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다가
느닷없이 닥치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며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가는 길, 죽음의 길에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향, 하늘에 있는 것이라 …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에게 하
늘나라의 시민권을 허락하셨습니다. (빌 3:20)
우리가 부족하고 죄와 뗄 수 없는 삶을 산다 할지라도 …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에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기만 하면 그 성의 주인공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이 땅에 살다가 죽어 구천에 떠돌 귀신이 아닙니다.
<구천 : 땅속 깊은 밑바닥이란 뜻으로,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가는 곳을 이르는 말> 

여러분, 우리가 죽으면 구천에 떠도는 귀신이 됩니까?
그래서 먹을 것도 못 먹고 살다가 
명절에 자식들이 제사상이나 차려줘야 밥 먹습니까? 
자기 먹을 것 하나 해결 못하는 그런 귀신을 뭐하러 믿습니까?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 천국을 향해 가는 여행객입니다. 
천국 가는 여행객을 순례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입니다.

세계를 돌며 여행하던 몇 명의 여행객이 폴란드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마을을 지나던 이들은 폴란드에게 
가장 존경받고 있는 랍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랍비를 보기 위해 그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랍비는 여행객을 친절히 자기의 집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랍비의 집에 들어온 여행객들 깜짝 놀랐습니다. 
유명세에 비해 집도 좋지 않았고
인생 대부분을 한 마을에서 보낸 것 치고 살림살이도 거의 없었습니다. 
집에 있는 가구라고는 성경을 공부하는 의자와 책상, 침대가 전부였습니다. 
여행객들은 랍비에게 보이는 가구가 전부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여행객들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제 눈에는 여러분들의 가구도 보이지 않는데요? 여러분의 가구는 어디 있나요?”
여행객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우리 가구는 당연히 집에 있지요. 여행하면서 어떻게 가구를 들고 다녀요?”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저도 여러분들과 같이 이 땅에 잠시 머물고 있는 여행객일 뿐입니다.”
<생명의 삶 플러스, 2008년 7월호 참조>

여행객이 짐이 많으면 힘들고 고생입니다.
여행 다닐 때 욕심을 부려서 필요 없는 이 것 저 것을 들고, 끌고, 
이고, 다닌다면 그 여행은 괴로움만 더할 것입니다. 
여행객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이 땅의 것에 집착하면
하늘 본향으로 향하는 길이 힘든 고생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3장에 
“ …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하며 …
오지로, 위험한 곳으로 선교하러 / 봉사하러 떠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정하지 못합니다. 위험한 데 왜 가느냐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 ‘홍향임’이라는 여자 청년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선교사로 가겠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전에 한번 갔다가 풍토병에 걸려 돌아온 적이 있어서
제가 어떻게 하든지 못 가게 했습니다.
고집이 얼마나 센지 어려운 과정을 제시하고 
그것을 마쳐야 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과정을 다 이수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가게 되었습니다. 파송예배를 보면서 왕복 비행기표를 주었습니다. 
혹시 힘든 일이 있으면 돌아올 수 있게 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가서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보내왔습니다.
그곳에서 어린이 선교를 하며 살겠다고,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딸이 아프리카 선교를 떠나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어제 저녁에 전화벨이 울리는데 이상한 번호가 떴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홍향임’선교사였습니다.
명절이라 목사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전화했다는데 저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웬일이냐, 건강하냐, 별 일 없냐?’며 물었는데 
아무 일 없다고 안부인사 드린 것이라고 하더군요.

여러분, 그 청년이 이해가 되십니까?

한심하게 사는 것 같아보여도, 천국이 있으니 … 약속된 나라가 있으니 …
새 하늘과 새 땅이 보장되어 있으니 … 
힘들고 외롭고 어려워도 위의 것을 바라보며 …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을 믿고 참고 견디며 …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지키라 … 그리하면 … 형통할지라

하늘 본향을 향해 가는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 …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2~3) 고 했습니다.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유언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을 강한 왕국으로 발전시킬 수 있음을 체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에게 대장부가 되어 / 강하고 담대하게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개인의 삶 속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려면 대장부처럼 강해야 가능합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에게는
끊임없이 공격하는 적, 사탄이 있습니다. 
때로는 교인들 때문에/교회 때문에 상처 받습니다.
그리고 섭섭하지만 목회자 때문에 상처 받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신앙생활 하던 사람 때문에 상처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지 못하게 하고 …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지 못하게 하고 …
구원의 방주에서 싸우게 하고, 구원의 방주에서 뛰어내리고 싶게 하고
천국 가는 길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사탄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고 사탄을 이기려면 대장부처럼 강해야 하기 때문에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어라”라고 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일에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헤어질 때 인사가
“승리하세요”, “승리하세요”, “승리하세요”입니다.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한 말씀을 남겼던 것처럼
여러분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나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감사
천국의 소망을 나누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일가친척들이 모일 때 예수 믿는 사람답게 행동하고
예수 믿는 사람답게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기며 살 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처럼 믿음의 길을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친척들 만나 흔들리고, 친구들 만나 흔들리는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명했던 것처럼 
“너는 대장부가 되어라”라는 음성을 여러분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추석에 
- 감사의 대상은 조상귀신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 인사의 대상은 제사상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어른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 음식 나눔의 대상은 조상이 아닙니다. 조상귀신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이 셋 있습니다.
첫째, 해 저물 때 갈 곳 없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둘째, 마음 둘 곳 없는 사람이 불쌍합니다. 돈이 많으면, 재산이 많으면 무엇 합니까? 
마음 둘 곳 없는 사람이 불쌍합니다.
셋째, 죽어서 갈 곳 모르는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

우리는 위의 것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땅의 것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고 기죽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성을 바라보며
가슴 펴고 당당하게 값진 것을 가진 사람답게 / 천국 백성답게 /
순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는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본향을 향해 가는 여행길에 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여행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가는 우리들,
그러나 본향을 향한 길이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며 어느 곳에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한 삶을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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