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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일성수의 중요성 (시 73: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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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성수의 중요성 (시 73:27~28) 


신앙생활은 주님과 원수 된 사람들이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과 가까워진 이후의 생활을 말합니다. 

엡 2:16에 보면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을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기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받은 후에도 주님과 멀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마치 자녀가 육신의 부모와 혈육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 집에 살아 너무나 가까운 사이이지만 서로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먼 관계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자신을 위한 사건으로 받아드려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다니지만 하나님과 거리가 먼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편기자는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할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 주변에는 주님을 멀리 떠난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그들을 보면서 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12절에 보면 악인들 즉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항상 평안하게 보이고 재물도 더욱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이 망해야 하는데 오히려 소위 말하는 성공의 자리에 앉아서 권력과 재물을 누리며 큰 소리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면 하나님을 잘 믿는 자신은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실족 할 뻔 했습니다. 2절을 보면 “나는 거의 넘어질 뻔 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 하였으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잠시 신앙의 회의를 품게 됩니다. 

13절에 보면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살아계신 것 맞나?’, ‘나는 신앙 생활하면서 결국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해 할 수 없는 악인의 번영을 이해하게 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다보니 악인들이 미끄러운 곳에 서있으며 그들이 갑자기 망하게 될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악인의 최후를 깨닫고 난후에 담대하게 외칩니다.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그렇다면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성경에 보면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옵니다. 저는 몇 주 동안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주일성수에 대해서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출 20:8에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기억’이란 히브리어 ‘자칼’인데 그 뜻은 ‘뚫다’, ‘깊이 감동하다’라는 뜻으로 ‘마음 깊은 곳에 되새긴다’라는 내용입니다. 주일성수는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기는 계명입니다. 

우리들은 토요일 안식일이 아닌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시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들이 주일을 지키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면서 안식일을 지켰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는 더 이상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주일이기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그날을 하나님 앞에서 안식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콘스탄틴 황제가 강제로 태양신을 섬기기 위해서 주일을 제정했다고 하는데 태양신하고 아무 관계없습니다. 주일예배는 로마시대 교회가 주일로 공포하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날을 기념하던 것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어디까지나 성경을 통해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행 20:7을 보시면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라고 말씀합니다. 드로아 교회는 주일 날 주의 만찬을 시행하고 바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전 16:2에서는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주일날에 헌금을 모아서 하나님께 드릴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는 주일날에 헌금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주일날에 말씀을 듣고 헌금을 하고 주의 만찬을 시행하고 성령의 계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일요일이 바로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주일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성도들이 주일을 지켜야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 번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는데 그 중에 6번은 주일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 후 사도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일을 지키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가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1566년 완성된 스위스 개혁교회 신앙고백에서는 주일 성수에 대하여 말하길 “신앙이 시간과 관련되어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시간을 적정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훈련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 개인의 신앙은 성장하지도, 단련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점을 고려하여 주일이 사도 시대 이후로 쭉 지켜져 왔기 때문에 그 날에 신앙훈련을 쌓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 현대교회가 주일을 지키는 이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1643년 완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것인데 기록하기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자기가 지난 보통 시간의 일부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 중에 기록된바 적극적이고 도덕적이며 영속적인 계명은 모든 시대를 걸쳐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앞에서 모든 사람이 안식일을 성결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칠일 중의 한 날을 정하셨다. 만물이 창조된 시대부터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일주일의 마지막 날을 예배일로 지켰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일주일의 첫날을 예배일로 지켰다. 이 날을 이름하여 성서에는 주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날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지켜질 것이다”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날이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지만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주일을 바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여호와의 정하신 날입니다.

시 118:24에 보면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날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 특별한 날입니다. 이 하루를 지킴으로 우리는 우리가 거룩한 자라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예배드리고 은혜 받는 날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주님이라고 했다. 주일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주님은 이날을 구별해서 예배하는 자에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믿는 자들은 주일에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 한 주간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밥을 먹고 힘차게 생활하듯이, 자동차가 주유를 하고 힘차게 달리듯이 성도는 주일에 은혜를 받고 그 힘으로 한 주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성막 제도를 보면 안식일 마다 떡을 반드시 바꾸라고 말씀합니다. 안식일 마다 신선한 떡을 성막에 놓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자의 심령에 진설병을 주일날은 바꾸는 것입니다. 내 영혼을 새로운 말씀으로 채우고 그 말씀의 힘으로 한 주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주일에는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을 만나고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할 일이 많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끝내고 주일은 지켜야 합니다. 

오래 전에 북한에서 목회 했던 김순동목사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부모는 믿지 않고 순동이만 10리쯤 떨어진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15세 때,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까 아버지가 쟁기를 손질하시면서 “내일은 밀을 베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장마는 곧 온다고 하는데 품을 살 수 없고 마음이 급해지신 아버지가 내일은 교회가지 말고 함께 밀을 베러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순동이는 3년 동안 한 번도 주일에 빠지지 않았는데 큰 걱정이 되었습니다. 

순동이는 기도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녁을 일찍 먹고 아버지가 갈아 놓은 낫을 들고 밀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밀을 열심히 베었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밀을 베었습니다. 아침까지 밀을 벤 순동이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바로 교회로 갔습니다.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들을 찾을 수 없던 아버지는 순동이가 일하기 싫어서 아침 일찍 교회로 도망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순동이의 부모님은 할 수 없이 둘이서만 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누가 밀을 모두 베어 놓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순동이의 고무신 발자국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순동이의 부모님은 “이런 아이를 교회에 못 가게하고 밀 베러 가자고 하였구나”라고 하면서 집으로 와서 옷을 갈아입고 교회로 갔습니다. 

순동이는 부모님이 온 것을 보고 자기를 잡으러 온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순동아, 오늘부터 너를 따라 교회 다니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순동이는 울면서 “이제 우리 아빠 엄마도 함께 천국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며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15세의 어린 소년이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밤을 새워 일을 했는데 요즘은 신자들은 조금만 급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기보다는 급한 일을 따라가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일 예배는 늦어도 나와야 됩니다. 늦어도 “아유 늦었다” 하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그거 다 마귀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축도할 시간이라도 다녀 와야겠다’라고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찾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다녀와야 되겠다”하고 다녀와야지 “아이고 예배시간 지났네!” 그리고 안오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일 신앙은 건강한 신앙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쉬는 날입니다.

원래 안식을 뜻하는 ‘샤바트’라는 히브리어의 단어의 의미는 6일 동안 하던 일을 쉬라는 뜻입니다. 무조건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안식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6일 동안 노동하는 일을 쉬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고 마지막 날에는 안식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쉬면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주일을 지켜면 결국은 큰 이익을 보게 됩니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 주일을 쉬지 않는 사람들은 당장에는 큰 이익을 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안식일은 육신의 모든 것을 쉬는 날로 하나님이 제정하셨습니다. 어느 교인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빼앗아 돈도 못 벌게 하고,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게 만드시는 분이라’고 불만을 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날을 오히려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는 날로 만드신 것입니다. 놀랍게도 사람의 육체적 리듬이나 정신적 리듬은 7일 만에 하루를 쉬는 것이 좋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로열 아카데미에서 사람이 일을 하다가 며칠 만에 하루 쉬는 것이 좋은가, 여러 각도에서 연구해 보니 결론은 7일 만에 한번 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주동자들은 무신론자들인데, 혁명이 끝난 후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10일 만에 하루를 쉬는 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결산해 보니 10일 만에 휴일제는 전 국가적으로 40%나 결손을 내고만 것입니다. 

소련의 공산당들도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서 7일 만에 하루 쉬는 것을 8일 만에 하루 쉬게 함으로 1일 노동량도 늘릴 겸 주일날 교회 가는 것을 막으려는 술책을 폈습니다. 후에 계산해 보니 전국가적으로 생산지수가 30%나 떨어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7일 만에 하루 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질서이며 인체나 정신의 리듬입니다. 7일 만에 하루 쉬는 것이 쉬지 않고 계속 일만 하는 것에 비해 더 큰 능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1913년 10월 17일 영국을 침략했습니다. 그날 아침이 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웰링톤 장군의 반격으로 완전히 참패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반역한 히틀러는 주일날 아침이 하나님을 믿는 영국 사람들에게는 쉬는 날이니까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망했습니다. 

1941년 12월 18일 진주만을 일본이 습격했습니다. 주일 아침 다 군대가 쉬는 날 예배하는 날이기 때문에, 그런데 결국 4년 후 원자탄으로 저들은 심판을 받아 항복해버렸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아침 북한군은 남침했습니다. 그런데 이북은 완전히 초토화 되어버렸습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의 날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날이고 예배하는 날인데 이 날을 침략하고, 반역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도전할 때 하나님은 가만 두지 아니하고 그 전능하신 손을 펴셔서 저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주일은 쉬는 날입니다. 


주일은 복 받는 날입니다. 

창 2:2에 보면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일에 복을 주십니다. 주일은 축복의 날입니다. 인간의 축복은 일한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체는 어디에도 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이날을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시 85:12에 보면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땅이 산물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민족이든지 주일을 잘 지키는 민족은 모두 다 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국 텍사스주 콜로라도 주립대 등 3개 대학의 공동연구진이 9년 동안 2만 2천명을 대상으로 "신앙생활과 수명"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은 불신자보다 수명이 7년 정도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인구학 전문지인「데모그라피」에 "종교와 수명"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82세인데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75세였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인에 비해 조기 사망할 위험이 높게 나타났으며 교회 참석 회수가 높을수록 조기 사망 위험이 적었다고 연구진은 발표했습니다. 이런 발표에 대해 의사학회는 신앙생활에서 얻는 마음의 평화는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을 주고 이것이 건강에 도움을 주므로 장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으면 마음속의 독이 빠집니다. 마음속에 있는 모든 스트레스가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주일성수 잘하는 성도는 장수합니다. 지글러는 그의 책 『감사합니다, 하나님』에서 보험회사의 말에 따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5-7년을 더 산다고 합니다. 매우 흥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이처럼 삶에 많은 유익과 기쁨과 행복을 주어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그 신앙생활의 중심에는 주일성수가 있습니다. 

옛말에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의 순리를 따라 행하면 흥하지만 거스려 행하면 망한다는 뜻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하늘의 순리, 순리 중의 순리입니다. 말씀의 법도를 따라가면 반드시 흥하고 거스리면 반드시 망합니다.

미국 초기 캘리포니아에 사금이 널려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동부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달려갔습니다. 그중 황금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은 주일에도 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가서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일에는 꼭 쉬었고 꼭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쉬지 않고 달렸던 사람들보다 쉬면서 달려온 청교도들이 목적지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쉬지 않고 달리던 사람들은 무리해서 오다가 사람도 병이 나고 짐승도 병이 났습니다. 그러나 주일을 지킨 사람들은 사람이나 짐승 모두가 건강하여 더 빨리 도착하였을 뿐 아니라 사금도 더 많이 채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데는 시험도 많습니다. 이날이 거룩하고 복된 날이기 때문에 마귀가 어떻게 하더라도 못나가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길을 막습니다. 그럴지라도 믿음으로 이겨내고 기도로 이겨내서 주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생각하고 절대 타협하지 말고 좀 손해를 보더라도 주일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이 군대에 갔을 때, 그 부대에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교회에 한 사람도 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김삼환 목사님은 “나는 교회에 나가야 합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니까 부대에 교회가 없기 때문에 못 나간다는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님은 “나는 교회에 나가야 됩니다. 못 나가는 건 부대의 사정이고 나는 나가야 됩니다”라고 하고는 교회에 나갔는데 그 일로 엄청나게 맞아서 입원을 했습니다. 입원을 했는데도 작대기를 짚고 목발을 짚고 입원한 친구들을 다 데리고 교회를 갔습니다. 

그랬더니 전 부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환자가 다 없어진 것입니다. 신고도 안하고 환자가 다 없어졌으니 야단이 나고 부대가 발칵 뒤집혀졌습니다. “어디 갔다 왔느냐?”, “교회에 갔다 왔습니다”고 했더니 환자들을 엎드리게 하고는 때리는 사람이 지칠 정도로 때렸습니다. 그래서 맞고 장기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맞았던지 서서 대변을 볼 정도였다고 합니다. 살이 다 터지고 살과 옷이 붙어버릴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아파서 조금도 숙일 수가 없었고 똑 바로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문제는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볼 때 앉을 수가 없으니 똥을 누면 힘을 못 주니까 그냥 흘러내려오는 것입니다. 힘이 있으면 뚝 떨어지는데 힘을 못 쓰니까 계속 줄줄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그걸 닦지를 못해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주일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통치하실 때 초대 비서실장이 김중권씨입니다. 그분이 장로님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되시고 나서 장로님에게 비서실장을 좀 해 달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장로님께서 “저는 안 됩니다. 저는 노태우 대통령을 모셨던 사람이고 제가 또 영남 사람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고락을 같이 한 사람이 해야지 저는 전혀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그 자리를 하겠습니까?”라고 했는데도 꼭 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계속 거절했더니 김대중 대통령께서 집에까지 오셨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거절을 못 하고는 “정 그러시면 한 가지만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나는 장로입니다. 주일은 교회에 가야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를 부르시면 안 됩니다. 이 날은 하나님이 부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비서실장을 해야 합니다. 나는 매 주일 하나님께 예배 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이것을 허락해 주시면 제가 하고 그렇게 안하면 제가 못합니다. 주일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안 부르겠다고 약속하십시오”라고 약속을 받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대통령을 모시는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대통령을 모시기 위해서 얼마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주일을 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대통령을 모시는 일 보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성수주일 신앙을 지키십시오. 에덴동산은 마귀에게 빼앗겼지만 우리는 주일을 빼앗기면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주일은 지켜야 합니다. 의지를 사용해서 주일을 지키십시오. 예배와 겹치는 모든 일은 유혹이요 시험입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거나 더 급한 일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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