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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굳세게 서라 (갈 4:21 ~ 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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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게 서라 (갈 4:21 ~ 갈 5:1)


오늘은 본문의 마지막 부분을 중심적으로 보고 싶다. 5장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그 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가 되셨고 우리 죄의 대속물이 되셨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죄와 사망에 묶여 있던 우리들이 자유함을 얻은 것이다. 그 자유는 참으로 큰 댓가가 있는 자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멜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 해방 선언을 한 후에 모든 흑인 노예들이 자유함을 얻었다. 자유하는 법에 의해서 그들은 자유의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유의 특권이 부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동안의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은 쉽게 그 특권을 누리지 못했다. 어떤 이는 자유 선언이 무엇인지 무지해서, 혹 어떤 이는 꿈인지 현실인지 너무 감격이 커서, 또 어떤 이는 누군가의 공갈과 협박에 의해서 그 특권을 현실로 옮기지 못했다. 남북전쟁을 치루는 중에 이 선언이 선포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공갈과 협박에 시달리며 그들의 주인에 의해서 여전히 control 되는 삶을 사는 자들도 많았다. 

이것은 지금도 흑인이 백인들을 향해서 노여워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으로 아직 자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과 같은 노예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유가 선포되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비극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이것은 오늘 날까지도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것보다 훨씬 더 큰 아픔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는데 우리는 자꾸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 참으로 큰 아픔이 되고 있다.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보자.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완전히 방탕한 삶을 살았다. 가진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그는 거지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어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한다. 그는 아버지 앞에 이르러 자신을 아들로 생각하지 말고 종으로 여겨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씻기우고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주며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키신다. 그리고 그 탕자를 위해서 큰 잔치를 배설한다. 아들은 자신이 모든 right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습이다. 이것은 매우 감동적인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다음 날의 상황을 이렇게 한번 가정하여 보자. 다음 날 자리에서 일어난 탕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죄가 워낙 크기 때문에 도저히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가락지도 빼고 새 옷도 벗어버린다면 어찌 될 것인가? 다시금 종으로 살겠다고 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아버지의 큰 아픔이 될 것이다. 본문의 갈라디아인들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그들은 다시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감당할 수 없는 아들의 축복을 주셨는데 우리는 이것을 의심할 때가 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인가? 이러한 의심은 두려움으로 바뀌게 되고 주어진 환경과 주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마침내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powerful한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잃고 망각하다가 마침내 두려움과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들의 모습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아들은 명분과 특권을 가진 사람이다. 사역반의 마지막 과정에서 암송하는 로마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의 해방을 선포하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었고 그것을 피할 길이 없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해방의 길을 마련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해방을 통해서 우리에게 두 가지의 은혜를 주셨다. 

(1)우리로 하여금 영의 사람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추구하며 그로부터 오는 능력을 가지게 하셨다. 

(2)아들의 명분과 spirit을 주셨다. 그로써 자녀됨을 확증하게 하셨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살게 하셨다. 또한 모든 환란을 이기게 하셨고 그 환란 가운데서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게 하셨고, 고난 중에도 찬양하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셨다. 우리는 해방되었다. 아들의 명분과 형상을 회복시키시고 이기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 모든 어려움 앞에서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가 이 약속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강력하게 붙잡고 있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갈라디아인들은 스스로 쓰러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자녀된 명분을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의와 희락과 평강과 능력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아들이 되었다면 우리는 이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사도 바울은 역사의 한 인물과 한 예화를 소개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역사상 가장 큰 조상이며 믿음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75 세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와 그를 축복하셨다. 그에게 복을 주어 창대케 하고 그와 그의 가족으로 하여금 온 민족의 축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11년이 지나고 그는 흔들리고 말았다. 그들의 눈에는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 계산을 하였다. 그 약속이 자신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당시 관례에 따라 여종인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았고 그가 첫째 아들인 이스마엘이 되었다. 그는 혈육을 따라 낳은 아들이었고 매우 자연적인 방법으로 얻은 아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만 자녀의 축복을 주시기 원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방법이 아닌 그 분의 약속의 실천으로만 역사를 이어가신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100세 되고, 사라가 90세가 되어서 그들은 약속의 아들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 되었고 그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었다. 29, 30절을 다시 보자.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축복은 오직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신다. 왜 사도 바울은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이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나님은 능력과 약속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혈육을 통해서 얻은 아들이 아니라, 오직 약속을 통해서 얻은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은 계속 언약을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온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마태복음 3:8-9을 보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는 것이 혈육과 혈통과 전통으로 가능하다면 이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주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 이제 회개하고 나아오라는 것이다. 

당시의 율법학자들은 할례를 통하고 율법을 통해서 구원 받으니 이 길로 나아오라고 가르쳤다. 그 때에 사도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언약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했다. 그 언약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12을 보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약속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power와 right을 이야기하고 있다. 

로마서 8:16을 보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이다. 

요일 3:1을 보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친히 찾아오셔서 자녀 삼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랑의 약속을 계속 이루고 계시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통해서 우리를 참 아들 삼아 주셨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살아 있기에 그에게 나아오는 사람을 사랑으로 자녀 삼아 주시는 것이다. 내 생각과 종교의식으로는 그것이 틀린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 약속대로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천지를 지으신 주님의 약속은 온 우주를 지배하는 진리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자녀됨을 믿으라. 그리고 이렇게 외쳐보자.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흔들리면 불안하고 떨리게 되며 아들로서의 특권과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약속을 굳게 잡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두 가지의 도전을 권면하고 싶다.

(1)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이기는 자가 되라.

아버지가 도와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다리고 앙망하라. 반드시 그 분의 도우심이 올 것을 믿으라. 요한복음 16:33을 보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미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주님은 계시록에서 ‘믿는 자들은 이기는 자들이다’라는 말을 세 번 주시고 있다. 이기는 모습은 믿음을 가진 자들의 증표이다. 

빌립보 4:13을 보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간증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 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믿음을 가지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두려움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가? 아버지이다. 그 자리에 찾아오시는 아버지가 필요하다. ‘내 손을 잡아라.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너를 도우리라’라고 말씀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아버지가 계시다. 주저 앉지 말자. 포기하지도 말자.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손길과 도움을 믿는 사람이다.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믿자. 그리고 지금의 환경을 넉넉히 이기며 나가자.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말자.

(2)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능력으로 전진하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분의 음성과 가슴의 맥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희미하게 알 때는 사명감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아들이 되었다면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능력으로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로마서 12:1을 보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인해서 아들 됨을 알았다면 우리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큰 기쁨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 할 수 있는가? 다음 절을 보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새롭게 되어 훈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여기에 power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power는 그 분의 뜻대로 우리 삶을 드릴 때에 생기는 것이다. 삶의 power는 하나님의 뜻의 wave를 분별하고 그 wave를 탈 때에만 가능하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라. 아들로서 하나님의 wave를 타고 그 뜻을 분별하라. 파도를 거슬러 수영을 하면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 하지만 파도를 타면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2기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중요한 일을 많이 하게 하셨다. 이제 다음 주에는 4기 개척교회가 South Bay지역에서 시작된다. 돌아보면 가장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 문제 때문에 일을 중단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문제와 상관이 없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할 때에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신다. 

지금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려운 때이다. 이 때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진리가 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이 환경 속에서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녀들이 되어지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은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잊지 말라. 어려울수록 더욱 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존귀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아멘. (김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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