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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의 이름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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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의 이름 (민 21:4~9)


당신은 능력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물질 만능주의에 시대에서 능력은 아마도 물질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돈에 울고 돈에 살고 돈이 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현실이 아마도 능력이라는 것에 가장 이상적 능력을 물질에서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능력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아마도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나 삶의 패턴에서 정해질 것입니다. 물질이 능력이라 말하는 자들은 살면서 느끼는 것이 늘 돈의 능력이 었던 것입니다. 돈의 능력이 너무도 풍부해서 나를 바꾸고 나의 삶을 멋지게 하고 나에게 행복의 모든 조건을 갖추게 할 것 같은 것입니다. 
  
공부를 삶에 최고의 능력으로 아는 자는 많이 알면 인정받고 많이 아는 것이 능력이 되었던 것을 많이 접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무엇이 능력인가에 대한 생각은 다양하지만 현재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을 능력이라 합니다. 
물질만능주의에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결혼조건입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결혼조건을 보면 다들 능력있는 남자를, 능력있는 여자를 최고의 조건을 뽑고 말을 합니다. 
  
성격도 좋고, 학벌도 중요하고, 생긴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능력이죠!! 여기서 능력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돈을 벌어 올 수 있는야 이것입니다. 얼마나 나를 세상의 물지로 풍요롭게해서 세상의 사람들이 가지는 것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느냐 이것입니다. 오늘 날의 능력은 쉽게 돈입니다. 돈이 능력이고 돈이 결혼조건의 최고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할 상대방에 물질적 조건, 물질에 능력이 한 사람의 결혼을 결정하는데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팽배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누가 얼마의 십일조를 하고 누구의 사업이 잘되고 어느 집사가 돈을 잘 벌고 어느 가정이 잘 살더라... 배부분의 고백들이 돈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집이 잘산다 하면 다들 좋은 집 좋은 차를 생각합니다. 
  
오늘 이러한 물질 만능주의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사람들 보다 탁월하고 물질을 뛰어 넘는 감격의 삶을 살고 최고의 능력의 삶을 살 수 있는 귀한 은혜를 나누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이후 이들은 에돔으로 들어가려하는데 에돔왕이 막음으로 인해 아주 가까운 거리를 에시온 게벨을 통해서 북쪽으로 우외를 하는 먼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이 시점입니다. 
"이 박한 식물을 우리가 싫어하노라." 백성의 원망이 시작이 됩니다. 직선으로 가면 되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불평의 제목이 되고 원망이 됩니다. 지금의 상황뿐 아니라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불평과 원망을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에 이 박한 식물은 무엇일까요? 만나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만나를 하잖은 음식이라고 불평을 합니다. 만나란 단순이 이들에게 먹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입니다. 먹을 것이 없고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이들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 사람이 직장에서 승진을 한다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다고 해도 그 승진에 나의 수고 나의 헌신만이 영향을 주었다라고 생각을 하면 그에게 물신양면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은 무엇이 됩니까? 
  
우리가 흔히 연말에 텔레비전에서 보는 시상식을 보면 많은 후보들이 상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연기자가 상을 받았습니다. 이 연기자가 자신의 상을 나의 수고요 나의 탁월함이요, 나의 노력이라 수상의 소감을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면 그 어떤이도 이 눈물에 감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자신이지만 이 수상을 위해 나를 위해 노력해 주신 여러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 상을 받기에 너무도 부족한 자신을 토라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면 보는이나 받는이나 얼마나 감사한 것이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이들이 불평한 만나는 기적의 산물입니다.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음식입니다. 하늘에서 먹을 것이 떨어집니다. 일반적인 은혜가 아니라 초월적인 은혜입니다. 처음 광야에서 만나를 먹을 때 얼마나 흥분하며 하나님에 사심에 감격했겠습니까? 이 광야에서 우린 굶어 죽는 것이 당연하데 하늘에서 먹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구나 나의 민족을 위해 나를 위해 하늘에서 먹을 것을 주시는 구나!!
  
만나는 귀한 음식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만나를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이것은 쉽게 우리에게 늘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불평이고 원망입니다. 한 사업가가 사업에 실패를 합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는데 실패합니다. 사람은 실패합니다. 실패해야 합니다.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업가가 이 사업의 실패로 말미암아 자신의 모든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따기고 심지어 하나님을 저주합니다.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잘못됫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이 부분에서 하나님은 화가 나신 것 같습니다. 
이들에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들에게 불뱀을 보내십니다. 불뱀을 통해 많은 자들이 죽고 아파합니다. 원망하며 불평할때에 가지고 있던 건강의 은혜 가정의 은혜가 파괴되어지고 자신들의 형편에 더 큰 어려움이 오자 이제 이들이 모세를 찾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 질병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치유의 문제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은 어떠한 답을 말합니까?
우리 크리스찬은 나의 고통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는 혹시 나의 죄 때문이 아닌가라는 물음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질문은 올바른 치유를 이룹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회복되어라. 눈을 떠라. 깨어있으라 말씀하십니다. 회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나의 아픔 나의 그릇됨 나의 부족함 나의 죄를 깨닫는 진단이 있어야 합니다. 환자가 자신이 환자임을 자각해야 병원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환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문제를 가진 자들입니다. 아무생각 없이 살아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이고 매일 매일 회복을 이루어야 하는 자들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에게 원망하여 고통에 이르렀으니 ...
 
여기서 중요한 것이 우리가 범죄 하였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마음을 돌이키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말을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회개하고 돌이켜 회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올것이요"
  
인생에 새로운 날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치유 받기를 원하십니까? 자신의 죄를 직면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에 이어 하나님의 처방을 수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들이 진단을 하고 처방을 합니다. 진단이 정확해야 합니다. 
  
뱀에 물려 병들고 죽어가는 백성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기도에 하나님이 처방을 합니다. 하나님의 처방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해 달아라."입니다. 이상한 처방입니다. 이 이상한 처방에 복음의 본질이 숨어 있습니다. 이 이상한 처방이 중요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를 찾아와 거듭남의 물음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광야의 뱀과 같이 인자의 예수님이 십자가에 들리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유비입니다. 비슷한 다른 것으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백성을 위해 장대위해 놋뱀을 다시 하나님이 죄를 범한 인류가 십자가위에 예수님을 허락하신 하나님.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살게 되리라 이것이 유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놋뱀은 처방입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인류를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다시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마다 살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를 바라보는 자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처방을 믿음으로 믿고 사는 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3장 16절"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불뱀에 물린 자들중에 놋뱀을 바라보라는 소식을 듣고 무슨 뱀이냐 내가 지금 뱀으로 고생하는데 무슨 뱀이냐라고 고백을 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능력을 의지할 것입니다. 아는 의원도 찾아가보고 돈을 주고 약을 사먹어 보고 어떤이는 자신이 아픈지 조차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능력을 원하고 그 능력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놋뱀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긍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이름이 능력입니다. 예수이름에 능력이 나타나고 새삶이 새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무슨 놋뱀을 본다고 나의 병이 낳겠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어찌보면 너무도 쉬운 치료법입니다. 너무도 쉽게 얻는 생명입니다. 
  
이 말씀을 불뱀에 고통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유를 하면 하나님이 불뱀에 신음하고 아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사 녹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치유되리라" 일 것입니다. 
복음은 십자가의 죽으시고 다시사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드리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죄인 됨의 고백이 필요하고 진단하고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처방을 전파해야 합니다. 장대위에 놋뱀을 바라보는 자들마다 살아납니다. 라고 전파를 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뱀에게 물린 내가 또 뱀을 보느냐 아는 싫다 라고 고백하며 죽어갔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방법 사람의 방법을 가지고 씨름하다 죽어갑니다. 그러나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모세가 들고 있는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고통이 떠나고 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사람은 체험한 자는 이제 이 사실을 이 은혜를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광야에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임을 전하고 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살아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행 2:47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 공동체로 말미암아 날마다 구원의 백성이 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고백하며 광야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참된 능력을 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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