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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국교회를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립시다 (딤전 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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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를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립시다 (딤전 3:14~15)
 
 
천재지변이냐, 인재냐?

우리나라에 아직 올림픽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최근 신문에 난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인 8월 30일, 중국 쓰촨 성에서 또다시 진도 6.1의 지진이 발생, 22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친 사건입니다. 

그런데 지진이 휩쓸고 간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무너진 건물 더미를 파헤치다가 눈물을 짓고 말았습니다. 무너진 벽돌을 걷어내자 한 엄마가 9살 난 딸을 온몸으로 감싸 안은 모습으로 숨져 있었습니다. 모녀가 단란하게 저녁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는데 집이 무너지자 본능적으로 딸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 안은 엄마의 손에는 젓가락이 쥐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중국 사람들은 “올림픽으로 세계에 위상을 떨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천재지변을 막을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죽음은 인재(人災)다”라며 정부를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정반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난 6월 14일 일본 동북부 이와테 현과 미야기 현에 진도 7.2 규모의 엄청난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쓰촨 성 지진이 진도 6.1이었으니 얼마나 엄청난 지진입니까? 그런데 이 엄청난 지진에도 사망 9명, 실종 13명, 부상자 233명으로 인명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고 가옥 피해도 12채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일본의 내진설계가 가장 큰 몫을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진도 6에서도 무너지지 않도록 건물의 내진설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중국 쓰촨 성에 일본처럼 강도 7.2의 지진이 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반대로 일본에서 쓰촨 성에 일어난 강도 6.1의 지진이 일어났다면 과연 7만 명이 죽은 대재앙이 되었을까요? 그러기에 이번 쓰촨 성 지진은 천재지변이며 또한 인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괜히 이렇게 내진설계가 발달된 줄 아십니까? 일본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지진이 너무나 자주 일어납니다. 그 수많은 지진으로 인해 얼마나 엄청난 피해를 겪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아픈 경험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너무도 지진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내진설계니 재해방지니 하는 시스템이 그리도 발달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아픔과 고통 속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인 것입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

디모데전서와 후서, 그리고 디도서를 묶어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인 디모데와 디도가 목회를 하고 있을 때 목회 잘 하라는 교훈을 적어 보낸 편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를 쓴 이유가 나옵니다. 바울은 당시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제자 디모데에게 빨리 가서 직접 만나 목회에 대해 말해주기를 원했지만 혹시나 어떤 이유로 인해 지체될 것을 대비해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는 이 디모데전서에 어떤 내용을 기록했는지가 나오는데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목회자 디모데가 어떻게 해야 좋은 목회자가 될 것인지를 기록한 것이 바로 디모데전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바울이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하지요.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제가 사는 집은 ‘이하준네 집’이고, 홍길동이 사는 집은 ‘홍길동이네 집’입니다. 거기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 ‘누구네 집’인지가 정해지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는 누가 사나요? 하나님이 사십니다. 교회를 ‘하나님이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계속해서 뭐라고 나옵니까?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죽은 신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 영원하신 분이 거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영원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 또한 영원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요. 

더불어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기둥’이란 그 집을 떠받치는 지주(支柱)를 뜻합니다. 이 기둥이 무너지면 집도 무너집니다. 또한 ‘터’는 기초(基礎)를 뜻합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집도 무너집니다. 그래서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한 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붙잡는 일입니다. 진리를 떠받치고 그것을 지키고 수호하는 일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이런 뜻입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 누가 지키겠습니까? 내가 사는 집 내가 지켜야 하듯 교회는 교회의 주인인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교회를 넘보지 못합니다. 교회를 침범할 수 없습니다. 어떤 도적이, 어떤 원수가 쳐들어와도 걱정 없습니다. 또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그 진리가 무너지지 않는 한 진리를 떠받치고 있는 교회 역시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가 결코 무너지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교회를 흔드는 자들

그런데도 요즈음 보면 교회, 특히 우리 한국교회를 흔들려는, 나아가 무너뜨리려는 수많은 시도를 보게 됩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웬 안티기독교 사이트가 그리도 많은지요. 또 기독교에 관련된 기사만 떴다 하면 벌떼처럼 그 밑에 댓글을 답니다. 거의 한 결 같이 ‘개독교’요 ‘먹사’라는 원색적 표현을 쓴 비난의 글입니다. 지난 주 필리핀 선교여행 중 서울 꿈꾸는 교회 담임목사님 내외와 부목사 두 분 등 열 명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교단, 저의 출신 노회인 서울관악노회에 속한 교회요 저의 선배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이 소식이 올라온 바로 그 밑에 이런 원색적인 비난의 글들이 수없이 올라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렵지만 그대로 옮겨봅니다.
“개독교 먹사들 한꺼번에 뒈지니 온 국민이 기뻐하겠다.”

 물론 다는 아닐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의 악의적인 글이겠지요. 하지만 남의 집 강아지가 죽어도 이렇게는 안 쓸 것입니다. 목사요 사모이기 이전에 열 명의 우리 국민이 이렇게 비참한 사고를 당했는데, 그 가운데는 6살 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까지 있는데 이렇게 밖에는 못 쓸까요?

요즘 방송들은 또 왜 그리 기독교를 싫어하는지요. 다른 종교들에 비해 너무나 편파적인 시각으로 기독교를 공격하고 교회의 비리니 목사의 비리니 하며 너무나 의도적으로 교회를 깎아내리는 것이 저처럼 둔한 사람 눈에도 분명히 보입니다. 요즘 온 나라가 불교계에서 제기한 종교편향 문제로 떠들썩합니다. 장로 대통령이 연일 얻어맞고, 경찰청장이 물러나야 한다 하고, 마치 온 국민에게 기독교는 아주 못된 종교요, 너무나 독선적이고 편향적인 종교인 양 그렇게 채색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설교 시간에 한 말 때문에 연일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립니다. 이럴 때 자칫 말 한마디 잘못 하면 제 이름도 종교편향 명단에 오르내릴 위험이 있겠지요. 그런데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제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릴만한 유명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혹 그렇게 되어서 제게 온갖 비난과 협박이 온다 해도 할 말은 할 겁니다. 왜? 여러분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종교편향은 안 됩니다. 엄연히 기독교가 국교도 아닌 나라에서 무조건 기독교만 유일한 종교여야 한다면 그것은 진짜 종교편향입니다. 다른 종교에 대해 말할 때 조심할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분은 하고 삽시다. 대통령도 자기 종교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과거 불심이 대단했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이 땅에 커다란 절과 불상을 세우고 청와대에 서있는 불상 앞에서 불공을 드려도 누구 하나 종교편향이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사찰이 막대한 관람비 수입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라는 이유로 정부예산으로 유지보수 하는 것을 종교편향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그들이 종교편향의 주범이라며 그토록 물러나라고 외치는 경찰총장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요 과거에 불교신자였습니다. 대통령은 공인이지만 자신이 믿는 신앙을 고백할 권리가 있고, 자기가 섬기는 교회는 못가도 청와대에 목사 초청해 예배드릴 자유도 있고, “대통령 직보다 장로 직이 더 소중하다”고 말할 자유도 있습니다. 그것도 방송이나 공적인 자리가 아닌 예배석상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도 늘 이런 고백 하지 않습니까? 또 아무리 힘 있는 종교라 해도 내놓고 법을 어길 권리는 없습니다. 수배자들을 숨겨주고는 경찰관이 높으신 스님 차를 검문했다고 경찰청장 물러가라 요구할 권리도 없고, 범불교도 대회 하는데 집회 신고 안 하고 서울광장을 무단 사용할 권리도 없습니다. 우리는 나라의 법도 안 지켜도 되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누군데 감히 건드리냐는 식이라면 그런 분들은 존중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 말 틀렸습니까? 그만 합시다. 다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아니면 무신론자든, 그 누구든 지금 기독교가 눈엣 가시 같고, 꼴 보기 싫은 종교로 보일는지 모릅니다. 유난히도 요란 떠는 종교요, 남을 도무지 배려할 줄 모르는 배타적인 종교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 땅에서 뿌리 뽑아야 할 적으로 여겨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집중포화를 때리면서 그렇게 교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닙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과거에 교회사를 통해 수없이 일어난 일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교회를 흔들 자가 누구랴

오늘 설교 후에 부를 찬송가 210장을 찾읍시다. 교회의 영광을 찬양한 곡입니다. 1절만 볼까요?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 흔들 자가 누구랴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 근심 없도다

그렇습니다. 2천 년 교회사를 통해 볼 때, 그리고 한국 땅에 복음이 들어와 120년이 넘도록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원수들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시도했습니다. 수많은 핍박과 박해가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재산을 빼앗기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고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불 지르고 무너뜨리고 심지어 교회를 이슬람 사원으로, 불교의 사원으로 바꾸기까지 하면서 교회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제가 터키 이스탄불에 갔을 때 아야 소피아, 성(聖) 소피아 성당이라고 부르는 교회가 이슬람의 사원으로 바뀐 것을 보았습니다. 1453년 이 도시가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되자마자 술탄 메메드 2세는 성 소피아 대성당으로 가서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고 외치며 천 년 이상 이어온 거룩한 교회당을 이슬람의 사원인 모스크로 바꿀 것을 명령합니다. 성당 내부에 있던 모든 십자가는 떼어지고 기독교의 성화들은 석회로 덮입니다. 그 후 네 개의 모스크의 첨탑이 세워져 이 거룩한 교회는 이슬람의 사원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이 정도면 아무리 지독한 예수장이라도 다 두 손들고 항복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교회를 뿌리 뽑고야 말겠다고 큰소리친 자들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교도들과 독재자들이 그랬고, 공산주의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해서 교회가 없어졌습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상식적으로 보면 벌써 교회는 사라졌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박해와 핍박이 심하면 심할수록 교회는 더욱 번성하고 발전했습니다. 왜요? 왜 그랬겠습니까? 그 답은 찬송 210장 1절 가사 대로 이 땅의 교회는 시온성과 같아서 말씀의 기초 위에 주님이 친히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반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반석 위에 세운 교회는 절대로,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아니, 무너뜨리기는커녕 흔들 자도 없습니다. 독재자, 공산주의, 이교도와 반 기독교적 세력까지 세상의 모든 원수들이 다 에워싸도 그 누구도 흔들 수 없기에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모든 교회의 원수들은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을 통해, 그 교묘하고 끈질긴 훼방과 공작을 통해 교회를 넘어뜨리거나 교회를 흔들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요? 만약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끈질기게 잡아 흔들면 아무리 튼튼한 건물이라도 조금씩 금이 가게 마련이고 그렇게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무너집니다. 하지만 교회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듯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도 영원합니다. 그것을 사람이 흔들어보겠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착각입니다. 여러분, 걱정 마십시오. 그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아무리 훼방하고 박해해도 안 무너집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욱 커지고 강해질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위기라고요? 예, 잠시 위기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기가 와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십니다. 안 흔들립니다.

마지막 한 가지만 덧붙입니다.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눈물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교회 안 무너지게 해달라는 기도는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이런 기도는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니까요. 다만 우리의 기도는 한국교회가 이렇게 교회를 흔들려는 무리들 앞에서 더욱 당당하게 서고, 그럴수록 더욱 건강한 교회가 되고, 더욱더 선한 영향력을 주변에 끼치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바로 서면됩니다. 그들의 공격에 화를 내거나 맞받아치거나 변명할 필요 없습니다. 앞서 저도 잠시 변명도 했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만 바로 서면됩니다.

우리가 안 믿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일은 사라져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교회가 점점 세속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 교회를 지배하는 것이 ‘세속화’입니다. 미국 새들백 교회 릭 워렌 목사는 교회 중에는 ‘인물, 즉 사람이 이끄는 교회’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하면서도 실은 특정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되고 그들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 중요시되는 교회입니다. 

‘전통이 이끄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해보려 할 때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전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렇게 해왔습니다.”라며 반대하는 교회입니다. 

‘재정이 이끄는 교회’도 있답니다. 모든 일을 재정이 좌우하는 교회가 되면 우리는 늘 “재정 없어서 못 합니다” 소리만 하면서 아무 것도 못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재정 다 마련한 후 일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프로그램이 이끄는 교회’도 있고 ‘건물이 이끄는 교회’도 있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되었던, 재정이 되었던, 프로그램이나 건물이나 전통이 되었던 간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교회를 지배한다면 세속화 된 교회입니다. 의외로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 대신 이런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더 앞세우는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세속화 되고, 교회가 윤리적 도덕적으로 세상에 본이 되지 못하고, 교회 지도자들인 목사와 장로들이 누구보다 더 인간적이고 자기 욕심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고, 교단과 교회 안에서 각종 인간적인 다툼과 권력싸움이 일어나는 한 교회가 무너지지는 않을망정 결코 건강하고 영향력 있는 교회는 될 수 없습니다. 무너지지만 않으면 됩니까? 아니라는 말이지요. 세상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서서 그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 길이 옳은 길이라고, 우리가 그 옳은 길을 지금 가고 있다고, 그러니 당신들도 우리처럼 이 옳은 길을 함께 가자고 말할 자격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를 둘러싸고 흔드는 무리가 물론 잘못 되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터무니없고 거짓과 중상모략까지 동원해 우리를 싸잡아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없는 기회가 되어 교회가 더 건강해지고, 바로 서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부터 날마다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날마다 부르짖어 교회를 위해 눈물의 씨를 뿌리십시다. 그러면 결코 한국교회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타락하거나 영향력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물이 있는 한 말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달리 어떤 나라들은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는데도 별로 교훈을 못 받는 나라가 있습니다. 해마다 장마철만 되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렇게 혼이 나면서도 교훈을 못 받습니다. 아픔을 겪으면 반드시 그 아픔만큼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실패를 경험하면 그 실패를 딛고 다시는 실패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실패만큼 성장해야 성숙한 사람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겪는 이 위기와 아픔 속에서 오히려 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더 기도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더 하나님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더 건강하고 능력 있는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그 누구도 우리를 흔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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