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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합시다. 나도 한 사람 (요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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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요 1 : 35 - 42
제 목 : 전도합시다 나도 한사람 

어떤 교회 집사님이, 새 생명 축제가 시작될 쯤 되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고마운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잊을 수 없는 사람들, 나를 나 되게 하기 위해서 많은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    또 자신의 친구들까지 하나 하나 기억을 더듬어보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한 사람을 기억해냈습니다.  그가 누구이겠습니까?  그 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준 친구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데리고 교회에 가 준 친구, 자신이 예수 믿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그 친구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 대접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그 친구를 불러내서, 서울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그 음식을 먹고, 나중에 고백하기를, “내 일생에 이런 음식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나 되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 내 인생에 운명을 바꾸어 준 사람, 내 인생에 최대의 복을 받도록 인도해 준 사람,   그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나를 전도해 준 사람인 것입니다.  아멘!!!  사람이 이 세상에서 받는 복 가운데 최상의 복은, 바로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는 복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바로 전도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실천한, 최고의 신앙 행위이며,  인생에 축복을 전해주는, 최고의 은혜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선사업은 못하고, 인생에 큰 업적은 못 남길지라도, 내가 한 사람을 전도해서, 그 사람이 예수 믿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만든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을 한 것이나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전도를 통해 구원 받은 한 생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한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 그것이 바로 전도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당신의 삶에 있어서 분명한 일과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새벽에 일어나면, 먼저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무엇을 했습니까?  온 마을을 다니면서 전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막 1 : 38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무엇을 위하여 왔노라?   전도하러 왔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아멘!!  

그래서 예수님 가시는 동네마다, 수천 수만의 군중이 따랐습니다. 
그 곳에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았고, 병들었을 때 고침을 받았으며, 배고픈 자들은 떡을 먹고, 주님의 권능에 감탄하면서 주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두 종류의 무리를 보았습니다. 
하나는 떡 얻어먹고, 병 고침 받고 돌아가는 무리를 보았고, 하나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자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 주님이 베푸신 수많은 기적의 역사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기적을 보고 구원받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을 보고, 감탄하며 환호성을 질렀으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 6 : 26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저 한 끼 배부름으로 먹고 떨어지는 인생....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그래서 주님의 사역을 가만히 보세요.  기적은 수많은 무리들에게 나타내셨지만, 전도는 무리를 모아 하지 않으시고,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서 하셨던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수가 성 우물가의 한 여인을 전도할 때도 그러하지요.  
미리 그 우물곁에 가 계셨습니다.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 불쌍한 여인을  만나기 위한 목적...  믿습니까?   

그녀가 물 길러 올 때에, “나에게 물 좀 달라” 하면서, 그녀와 일대일로 관계를 형성하신 후에 전도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영생을 주는 복음의 말씀은, 여인의 마음을 감동했고 급기야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시 여겼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나는 메시아를 만났다” 외치며, 온 동네에 복음을 전하는 여인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인생이 영생의 복음으로 변화되었다는 증거는, 바로 전도하는 일인 것을, 알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확실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전도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아직도 나는 복음으로 변화되지 못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복음으로 인한 구원의 확신이 없이, 그저 허다한 무리와 같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하루 하루의 은혜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생, 앞에서 말했던 먹고 떨어지는 인생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의 삶이 똑같습니다.  변화가 없어요.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은 오늘 같을 것이고,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이, 그저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 별로 기쁘지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성을 지나면서,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를 개인적으로 만나 복음을 전하시고, 그로 하여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습니다.   

그때 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자신이 이제까지 목숨과 같이   아끼던 재물을 다 내려놓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또 토색한 것의 사배를 갚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의 재산은 남는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보세요.  그가 얼마나 기뻐합니까?   수가 성 여인과 마찬가지로,   인생에 참된 기쁨을 알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전도하는 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가 성의 여인 목숨과 같던 물동이를 버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인생의 최고의 가치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삭개오도 마찬가집니다.  그가 생명과 같이 여기던 모든 물질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물질 가난한 자를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 구제가 자신의 이름으로 한 구제이겠습니까?  아니지요?  주의 이름으로..자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제한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기쁨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큰 권능과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얼마든지 그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해서 예수 믿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예수님 당신도 사람을 전도하는 데는, 그것으로 안 된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맨투맨으로, 개인적으로 만나서 전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기도하며, 전도해야 할 우리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어떤 집회나, 권능을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초청 집회나, 성령 집회 등이 필요치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전도를 한 후, 그들에게 초청 집회에 참여하게 만들고, 또 성령 집회를 통해 치유의 능력을  체험하게 만들 때, 비로소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지, 평소에 개인적인 만남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교회로 초청해서 몇 번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사람이 변화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천국 복음을 외치니까, 수많은 유대 군중들이 세례 요한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 가운데는 안드레와 요한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세례 요한이 광야를 거니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예수 그 분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임을 증거 한 것입니다.   그때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들이 예수께로 나아갔다기 보다, 세례 요한이 그들을 예수께로 보내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안드레와 요한, 이들이 세례 요한이 말한 예수님을 향해 주저 없이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그들이 예수님과의 한 번 만남으로 인해, 그 분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까?   그러나 그 이전에, 그들과 늘 함께 하며 복음을 전했던, 세례 요한의 영향력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그들과 평소에 관계를 맺어갔던 세례 요한 때문에, 그들이 예수를 바로 바라볼 수 있었고, 또한 그 분과 바른 관계를 맺어갈 수 있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 계신 곳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 저들이 대망하던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인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를 만난 그들은 너무나도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도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우리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만난 메시아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할렐루야!!  

그래서 안드레는 누구를 전도하게 되었습니까?  자기 형 시몬에게 가서 “형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한번 가보시죠.” 하고서는, 자신의 형을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또 누구를 데려 갔겠습니까?  
그의 형제 야고보를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안드레가 데려갔던 베드로, 또 요한이 데려갔던 야고보, 이 두 사람의 특징의 무엇입니까?   성질이 더럽다는 것입니다.  성격이 급하다는 것입니다.  
앞뒤를 안 가립니다.  물불을 안 가립니다.  욱하는 한 성격의 소유잡니다.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확 불 싸질러 죽여 버립시다.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극히 온순한 주님의 어린 양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 다시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안드레는 전도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선지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전도의 능력을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다만 자기 형을 예수에게 데리고 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몬은, 예수님에게서 무슨 대단한 설교를 들은 것이 아닙니다. 
굉장한 기적을 본 것도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을 만나보라는, 동생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순종했을 뿐이었는데, 그가 오늘날 2천년 역사의 교회를 반석 위에 세워 놓은,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전도, 오늘날도 우리 가운데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안드레와 요한과 평소에 복음으로 관계를 맺어갔던 세례 요한과 같이, 또 베드로와 야고보와 평소에 가정에서 사랑으로 관계를 맺어갔던 안드레와 요한과 같이, 관계 전도를 통해서 오늘날도 이런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진행형인 것입니다.  또 전도는 지속형입니다.  끊임없는 관계를 통한 산물인 것입니다.  이런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하는 계획을 실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이 무엇입니까?   내 주변에 있는 그 사람이,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 내 이웃, 그들이 바로 나와 복음으로 관계를 맺어가야 할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내 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복음 전하라고 내 곁에 두신 것입니다.  내가 굳이 멀리 안 가도 됩니다.  내가 굳이 사람들을 찾아 먼 길 가지 않아도 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나와 함께 생활 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왜입니까?  내 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께서 영생주기로 작정된 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관계 전도인 것입니다.   이것이 고구마 전도의 원리인 것입니다.  
복음으로 찔러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만 믿습니다.  아멘!!  
행 13 : 48절에 보세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아멘!! 

전도해서 안받는 사람은, 붙잡고 사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가 되었으면 거두는 것이고, 때가 안 되었으면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냥 우리는 그들과 관계만 잘 맺어 가면서,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뒤의 일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정하시고 나는 인도하고, 하나님은 심고 나는 거두는 것이다.”  아멘!! 
내가 전도하는 것은 심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쉬운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관계를 맺어가는 그 사람이 영생을 얻기로 작정된 사람인가?  아닌가?  
어떻게 확인해 볼 수 있습니까?   말씀 앞으로 데려 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찔러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나, 특별한 초청 집회에 데려오는 것입니다.   왜?  확인해 보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평소에 관계를 복음으로, 사랑으로 맺어갔던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일날 예배에 모시고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새 생명 축제와 같은 초청 집회에 모시고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 때 말씀을 통해, 그 영혼이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초청 집회 때 전하는 그 말씀을 통해, 그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생에 은혜와 진리가, 능력과 축복이 충만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의 관계 속에서 미처 주지 못했던, 아니  우리는 결코 주지 못할 선물, 인생에 가장 위대한 선물인 영생을 얻는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기대하며 우리가 매 주일마다 그 분들을 전도해서 모셔오는 것이고, 또한 새 생명 축제 때 이루어지는 두 번의 초청 집회에 그 분들을 모셔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그을 어찌 전도의  역사를 아는 성도라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전도는 두 가지 원리를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주변의 사람과 관계를 맺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는데,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와 보라” “Come and see” 라고 말하고, 데려 오는 것입니다.  종국에는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생명 축제와 같은, 초청 잔치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 초청으로 인해 얼마나 위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베드로가 주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한 번 설교를 통해 3천명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 야고보는 열 두 제자 중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화 되리라고 누가 상상인 들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역사를, 하나님은 이들을 전도한 안드레와 요한을 통해 이룩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능력을 많이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많이 배운 것도 아닙니다. 돈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고위층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전도한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이 변화 받아, 장차 이 땅에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인생의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생에 이보다 더 위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전도는 하나님께 최대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성도들의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아멘!!   또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영광이 뭡니까?  많은 사람이 나를 통해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곧 전도하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100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 한 마리를 들 가운데 잃었다.  그 한 마리를 찾아 들로 산으로 헤매다가 그 양을 찾았다.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돌아와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한 생명을 찾아내는 전도의 기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하나님의 기쁨이요, 천사의 기쁨이요, 나의 기쁨이요, 모두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를 통해 누릴 수 있는 기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칠십인 전도대를 만들어서 둘씩 각동 각처로 보냈습니다. 
저들이 전도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하는 자는 하늘나라 생명록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아닙니다.  축복의 책, 상급의 책에 기록된 이름인 것입니다.   그 이름의 기록 때문에, 하늘에서도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게 되는 것이고, 이 땅에서도 백배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이런 별과 같은 축복, 한 생명 살리는 전도를 통해서, 저 천국에서도,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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