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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의 빛과 소금처럼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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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과 소금처럼 (마 5:13~16)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째가 되던 1948년 9월이었습니다. 뉴욕에서 서부의 로스앤젤레스로 달리는 특급열차 속에 이누가이 미찌꼬라는 일본인 유학생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몬로비아에 있는 폐결핵 요양소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폐병이 심해 축 늘어져 있는 그녀에게 승무원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몬로비아 병원에 간다고 대답하자 승무원은 난감해 하였습니다. 몬로비아 역은 이주 작아서 특급열차가 서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찌꼬양 역시 그 사실을 알고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열차 안의 확성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습니다.“승객 여러분, 이 열차 안에는 몬로비아 병원을 찾아가는 한 일본인 유학생이 타고 있습니다. 이 열차는 몬로비아 역에 서지 않지만, 몸이 아픈 그녀를 위해 철도청 본부로부터 임시 정차할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잠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승객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놀라운 호의에 감동받은 일본인 여학생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몬로비아 역에는 역장과 구급차가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는 여학생에게 승객들이 말했습니다.“용기를 내세요. 빨리 나아야 돼요.”

이 여학생은 생각했습니다.“아,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그녀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이런 따뜻한 친절과 사랑이 살아 있음을 보고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빛과 소금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본문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을 가리켜“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빛과 소금에 비유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一. 소금이 맛을 내듯 삶에 감화를 주어야 합니다. 

본문 13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고대사회에서 매우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태양과 소금보다 더 유용한 것은 없다.”고 노래할 정도로 소금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일반적으로 소금에는 세 가지 역할이 있다고 말합니다.

1. 소금은 순결을 상징합니다.
로마 사람들은 소금이 순수한 태양과 바다에서 왔기 때문에 소금의 흰색을 제일 순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순결의 모범이 되라는 것입니다. 순결한 것은 아름답고 건강합니다. 따라서 순결한 것은 오래갑니다. 우리는 양심의 순결, 정조의 순결, 더 나아가 신앙의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이 순결이 인생도, 가정도, 사회도 아름답게 하고 건강하게 하며 번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부패하고 썩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패의 마지막은 버림입니다. 짓밟히는 천대입니다. 멸망입니다. 그것은 쓰레기이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부패하면 인생을 망칩니다. 정의가 부패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신앙이 부패하면 그로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짓밟히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떠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 되어 나도 살고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되어 부패를 방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3. 소금은 음식의 맛을 냅니다.
설렁탕 국물이 아무리 진국이라 할지라도 소금을 넣지 아니하면 맛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맛을 내는 소금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삶의 의미를 잃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의 행복을 모르고 허무와 허탈 속에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의미와 목적이 분명합니다. 기쁨과 웃음이 있고, 보람과 만족이 있고,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세상에 맛을 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프란시스가 어느 날 거리에 설교하러 나간다고 해서 여러 제자가 큰 기대를 가지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수도사들은 몹시 실망을 했습니다. 성프란시스가 그날 거리에서 한 일은 어떤 행인의 신세타령을 들어준 일, 과일을 수확하는 농부의 일손을 도와준 일, 퇴비를 싣고 가는 마차를 밀어 준일 등이었습니다. 한 제자가 불평조로 말했습니다.“명 설교를 들을 것으로 믿고 기대하였는데 설교를 한 번도 안하시다니 실망입니다.”성 프란시스가 대답하였습니다.“나는 오늘 열 벌 이상 설교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일상생활에서 약한 자를 붙들어 주고, 힘든 자를 도와주고, 한숨 쉬는 자를 위로해 주는 것이 바로 살아 있는 설교라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하는 설교, 이것이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이 되는 길입니다. 가정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끼치며 사는 것이 바로 세상의 소금된 삶인 것입니다.

소금의 특징은 음식물에 넣으면 녹아서 형체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맛을 냅니다. 만일 소금이 녹지 아니한다면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는 소금과 모양이 유사한 사금이 있습니다. 사금과 소금의 차지가 무엇이겠습니까? 녹는 것입니다. 모양이 흡사한 소금과 사금을 음식물에 넣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소금은 녹아서 형체가 사라져 음식의 맛을 냅니다. 반면 사금은 음식을 씹는 사람의 이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열두 명인데 열한 제자는 모두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생명을 바쳤습니다. 요한 사도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명, 가룟유다는 겉모습은 제자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는 마치 사금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가룟유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녹지 않았습니다. 아집으로 가득했습니다. 가지를 위한 욕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자기의 욕망을 위해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길이라면 못할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철저한 자기중심의 사람, 철저한 이기자가 가롯유다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살맛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방법이 무엇입니까? 내가 녹아져야 합니다. 내속에 나를 비워야 합니다. 그리하면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며 기뻐하게 됩니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행복해 합니다.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들에게 소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방법은 내가 녹아져야 합니다. 자존심도, 욕심도, 성질도 녹아져야 합니다. 그리하면 녹아진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행복해 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나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二. 어두운 곳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본문 14~15에“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 된 삶으로 어두운 세상을 밟히고, 길 잃은 자들에게 길을 안내하라는 것입니다. 불 꺼진 등은 있으나 마나합니다. 등은 항상 불이 켜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의 가슴속에 사랑의 불, 진리의 불이 항상 타올라야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몇 년 전부터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이장현 씨(49세)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한 가지 경험한 것을 말했습니다. 어느 날 서대문에서 손을 흔드는 여대생과 할머니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여대생은 “할머니를 동대문 이대부속병원까지 모셔다 드리세요.” 하면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었습니다. 택시기사는 할머니에게 “참 예쁜 손녀를 두셨네요. 참 좋으시겠어요.”라며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손녀가 아니야. 지하철역 앞에서 처음 만났어. 길을 잃었다고 하니까 내 손을 잡고 택시를 잡아 주더라고. 그러면서 할머니, 예수 믿고 오래오래 사세요. 하면서 조심해 가시라고 하지 뭐유.” 할머니는 그날 아침 침을 맞으러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고 오전 내내 시내를 헤매다가 그 학생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내릴 때 택시기사는 그 만원을 할머니의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고 뿌듯했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선행은 다른 사람의 선행을 일깨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빛의 속성입니다. 빛이 들어가는 곳은 어느 곳이나 밝아집니다. 그리고 빛은 더욱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입니다. 어두운 곳을 비추며 살아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의 순종이 또 다른 선을 불러옵니다. 빛 되신 주님의 빛을 받아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살아가는 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三. 빛된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 16절에“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나를 드러내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하자 미 의회는 국방장관 스탠튼과 모든 장성들의 이름을 의사당 벽에 조각하여 그 명예를 역사에 길이 남기자고 발의하였습니다. 그러자 스탠튼 장관이 말했습니다.“아니요, 벽에 세길 글자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시편 118편 23절이어야 하오.”이 시편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그렇습니다.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전쟁의 승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려 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난 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역도의 장미란 선수, 유도의 최민호 선수를 비롯해서 많은 선수들이 승리하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겸손한 모습입니까? 

우리가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가면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가면 사회가 변화됩니다. 
우리가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가면 이 빛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가면 하나님께 큰 영광이 돌아갑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 모두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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