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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벨을 지키는 자가 되자 (창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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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을 지키는 자가 되자 (창 4:1~9)


오늘은 창세기 4장의 말씀을 설교하겠습니다. 

아담과 하와 부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후에 가인과 아벨을 낳습니다. 하와가 가인을 낳고 말합니다. 1절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와가 가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창3:15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을 생각하면서 감사했을 겁니다. 또 해산의 수고를 하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를 생각하면서 후회했을 겁니다. 
아벨의 뜻이 허무입니다. 자식 이름치고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지었을까요? 부부생활도 허무합니다. 자식 키워놓고 보니 허무합니다. 죽어라고 일하며 살아왔는데 돌이켜보니 사는 것도 허무합니다.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허무해 집니다. 삶의 중심에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사는 게 허무합니다. 허무주의에 빠집니다. 우울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가인은 농업, 아벨은 목축업을 하였습니다. 최초의 직업입니다. 땀을 흘려 일을 해야 했을 겁니다. 하와는 해산의 수고를, 가인과 아벨은 노동의 수고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수고 속에도 여전히 해산의 축복, 일의 축복이 있습니다. 수고보다 훨씬 더 축복을 누리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1. 예배의 성공자와 예배의 실패자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그냥 예배를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예배를 드리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길 원한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원했습니다. 
어떻게 예배를 드립니까? 가인은 농산물을 제물로 드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제물로 드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아벨은 예배 성공자가 되고, 가인은 예배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도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으십니다.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다 찬양을 합니다. 어떤 사람의 찬양은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찬양은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기도도 헌금도 봉사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나는 기도했는데, 헌금 했는데, 봉사했는데 하나님은 안 받으시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사1:11-13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지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회개하지 않는 죄를 가지고 드리는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마5:23-24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사람관계가 막혀 있으면 먼저 풀고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배를 방해하려고 꼭 주일 아침에 부부싸움을 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우리 자녀들의 예배를 방해하려고 꼭 주일 아침에 부모가 야단칠 일을 만든다는 사실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이 곡식 제물은 안 받으시고, 고기 제물만 받으실까요? 레위기에 보면 곡식 가루로 드리는 소제도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히11:4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아벨이 믿음으로 드린 제물은 그의 죄를 씻어주는 제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벨을 의로운 자라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하나님 품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찬양이 보혈로 씻음을 받아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 기도가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이런 예배를 드릴 때, 예배를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가인의 예배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가인은 믿음 없이 그냥 자기 방식대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나는 내 방식으로 예배를 드린다. 나는 내 방식대로 찬양한다. 나는 내 방식대로 기도한다. 내 방식대로 봉사한다. 조심하십시오. 가인의 예배가 될 위험이 많습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예배를 받으시려고 우리중에 임재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 태도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요?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내가 종교적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예배를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가짜 예배입니다. 
가인의 예배입니다. 예배 실패자가 됩니다. 마귀가 틈타서 삶을 실패하게 조종합니다. 
예배 실패자가 된 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2. 예배에 실패하면 삶이 실패에 빠진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점점 깊어집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하나님과 만남이 실패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막힙니다. 그러면 사람과의 관계도 점점 막힙니다. 삶이 점점 막히게 됩니다. 

가인이 하나님이 자기의 예배를 거절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5절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이 화를 내셔야 할 상황인데, 자기가 화를 냅니다. 죄인의 모습입니다. 잘한 사람은 화를 잘 내지 않거든요. 

예배를 성공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회복을 경험합니다. 치유가 일어납니다. 안색도 변합니다. 얼굴색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예배에 실패하면 아무 감동도 없습니다. 앉아서 설교를 판단이나 합니다. 짜증이 납니다. 상처 받았다고 합니다. 뭔 시험이 들었다고 합니다.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예배를 거절당하는 거절감정을 느꼈습니다. 거절감정이 상처의 근원이 됩니다. 가인이 화를 냅니다. 안색이 변해버립니다. 상처에서 분노가 솟아납니다. 
거절을 많이 당한 사람은 상처가 많습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분노가 마음에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화를 잘 냅니다. 

가인이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즉시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회개하면 화가 식어집니다. 
분이 식어집니다. 성령님이 마음을 만져 주십니다. 남이 잘못해서 화가 났다면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화가 식어지고 분이 풀립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약한 사람에게,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화풀이 합니다. 잘못은 자기가 하고, 아벨에게 화풀이 합니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식입니다. 아벨을 시기합니다. 질투합니다. 미워합니다. 
그 화를 분을 오래 품고 있으니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침내는 아벨을 들로 불러내어 살인을 합니다. 우발적인 살인이 아닙니다. 계획된 고의적인 살인을 하고 맙니다. 

화를 품고 있으면 미움이 커집니다. 그러면 마음으로는 여러 번 살인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형제를 살인한 자’라고 선고하십니다. 
분을 품고 있으면 죄가 그 사람을 졸졸 따라다닙니다. 미움을 품고 있으면 죄가 그 사람을 붙잡게 되고 맙니다.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왜 가인이 이렇게 인생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까? 예배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실패하면서 분노, 미움, 살인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막히게 됩니다. 하나님과 막히면 사람과도 막힙니다. 그러면 인생이 막히게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인처럼 예배에 실패하지 마십시오. 예배마다 예배의 성공자들 되시길 사모하십시오. 


3. 아벨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이 가인에게 찾아오십니다. 가인에게 오셔서 물으십니다. 9절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모르셔서 이렇게 물으실까요?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부인합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죄는 부인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해야 씻음을 받습니다. 죄를 회개하면 자유케 됩니다. 그러나 가인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래서 버림받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심판과 저주에 매여 사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가인의 이 대답 속에는 또 다른 미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아벨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나는 아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삽니다. 나 사는데 방해가 되면 아벨이고 뭐고 없어요.’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너는 경쟁자일 뿐입니다. 남이 잘되는 건 싫습니다. 배가 아픕니다. 시기심이 생깁니다. 이유 없이 미워합니다. 남이 안 되더라도 내가 잘되면 좋습니다. 

가인의 이 대답 속에 오늘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가인의 후예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의 아우 아벨은 누구입니까? 우리 가족입니다. 우리의 VIP는 우리의 아벨입니다. 우리의 도시는 우리 교회의 아벨입니다. 우리나라와 열방의 모든 족속도 우리에게 맡겨주신 ‘아우 아벨’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성도들아!! 너의 아벨은 어디 있느냐!!’ 가인처럼 대답하시겠습니까? ‘모릅니다. 관심 없습니다.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나는 나 살기도 바쁩니다.’ 가인의 후예의 말입니다.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주님! 제 아우 아벨은 저의 마음속에, 제 사랑 속에, 제 기도 속에, 제 섬김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 VIP는 항상 사랑과 섬김 속에 있습니다!! 이 지역은 항상 제 관심과 기도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 민족과 열방도 저의 비전과 기도 속에 있습니다!!!’ 
아벨을 책임지고 기도하며 섬기며 나가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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