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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을 향한 네비게이션(2) : 영원한 나라 (마 6: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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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향한 네비게이션(2) : 영원한 나라 (마 6:13~33)

 
우리 시대를 풍자하는 말 중에 “인생은 짧고 할일은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오늘 날의 날로 분주해지는 인생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자주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할 상황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 몰라 하며 시간만 죽이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우리 시대의 인기 있는 경영 컨설턴트요 베스트 셀러 작가인 켄 블랜챠드가 쓴 저서 중에 ‘굿바이 허둥지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밥은 ‘허둥지둥 팀장’이란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딸의 댄스 경연대회가 언제인지도 아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무심한 사람이고, 직장에서는 매사에 의욕을 잃고 지각 잘하고 맡겨진 일들을 마감시한에 쫓기게 되어야 간신히 허둥지둥하며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사장의 경고를 받고 그는 ‘최고 효율성 책임자’(Chief Effectivess Officer)를 만나 수업을 받게 됩니다. 그녀와의 대면을 통해서 허둥지둥 팀장은 자기 인생의 최악의 문제가 우선순위의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중요한 일에 대한 의식이 없이 이 일 저 일에 원칙 없이 매달리는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허둥 지둥의 라이프스타일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그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했던 일은 ‘우선순위’(priority)를 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이천년전 산상수훈의 교훈을 통해서 이미 이 우선 순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여기 이 말씀에서 사용하신 ‘먼저’(proton, first)라는 단어가 바로 우선순위를 강조하는 말씀이지요. 요즘 말로 하면 "First things first"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나라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순간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들은 다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고 그 나라에 속한 모든 것은 사라질 것들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중국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한 문화 평론가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개/폐회식에 대한 평가를 통해 ‘거대한 열등감의 발로’라는 소감을 남긴 분이 있었습니다. 결국 사라질 헛된 것을 거대하게 포장하여 과시해 보려는 중국의 몸부림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마6:13은 소위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기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주기도의 중요한 기도 제목의 하나는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의 현실속에 임하도록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본문은 이 주기도를 마무리하는 대목인 13절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로 기도하라는 권면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영원하며 그의 권세도 영원하고 그 나라의 영광도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들은 아무리 힘있는 나라도 역사속에서 결국은 다 소멸되어 갔지만(애굽, 바벨론, 파사, 그리스, 로마)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그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요. 

금년(2008년)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금 메달을 따고 우리의 국가가 연주될 때 우리는 얼마나 감동을 먹었습니까? 그런데 그 중에 적지 않은 선수들은 단순히 대한민국만이 아닌 이 영원한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고 있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부심을 안겨다 주는 일이었습니까?(태능 선수촌 기독 신우회의 발표에 의하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 총 금메달 13개중 6개, 전체 메달 31개중 14개가 그리스도인 선수들에 의한 것유도 최민호, 수영 박태환, 사격 진종호, 태권도 황경선, 역도 사재혁등) 아무래도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을 대표적으로 감동시킨 것은 역도 장미란의 마지막 기도 세리모니였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런 기도 세리모니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그녀가 하나님의 나라에 영광을 바치는 삶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의도하신 주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를 구하는 삶의 방식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의 완성된 천국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오늘은 그 영원한 나라의 영광을 미래가 아닌 오늘의 현실 속에서 드러내고 살수 있느냐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삶의 방식-두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1.예배의 우선순위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으로 어떤 유형의 삶을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주목해 보십시오. 세상 나라의 삶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라고 그는 지적하십니다. 실제로 오늘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염려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가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마6:32에서 이런 라이프 스타일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먹고 마시고 입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도 먹어야 살고, 마셔야 살고, 입어야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본문 33절은 32절의 이방인의 삶과 달라야 한다는 뜻에서 ‘그러나’(그런즉, But, 희랍어 de)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먹고 마시고 입는데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더 중요한 관심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더 중요한 관심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주일에 갑자기 우리에게 어떤 떼돈 벌 일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날이 주를 위한 구별된 날로서 주님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일의 경배를 포기하고 돈 벌러 갔다고 하십시다. 그것은 당신의 우선순위가 돈이며 결국 당신이 맘몬교의 신도이며 당신은 본질적으로 돈을 예배하는 사람인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벌수 있는 떼돈을 포기하고 주님을 경배하는 편을 선택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당신은 주일의 경배로 당신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이며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 6:24의 교훈의 핵심이 아닙니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실제로 우리는 예배를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어근은 worth로서 가치의  뜻을 갖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당신이 전심을 다하여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당신의 우선순위는 분명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배의 우선순위는 중요한 것이고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주일 성수의 전통을 신앙의 중요한 습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사실은 주일 성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우선순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방인들이 먹고 마시고 입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전능자요 전지하신 우리의 삶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먹고 마시고 입는 자들인 것입니다. 옳습니다. 우리도 먹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먹기 위하여 먹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기 위하여 먹습니다. 마시기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기 위하여 마십니다. 입기 위하여 입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기 위하여 입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예배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들임을 증명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런 예배의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는 인생-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되도록 구하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삶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왜냐하면 의야 말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는 순간 성경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의롭다함’(칭의, justified)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선언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살아가는 삶의 시작이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제가 섬기는 레노바레 운동을 지도하는 달라스 윌라드 박사는 오늘의 기독교가 이렇게 많은 신자를 갖고도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원인을 그의 명저 ‘하나님의 모략’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죄 사함을 위해서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새 인생을 위해서는 예수를 믿지 않고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천국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지 않는 때문이라고, 사후의 삶을 위해서는 예수를 믿지만 오늘의 삶을 위해서는 예수를 믿지 못하는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그는 참 성경적 신앙은 용서 이상의 신앙이어야 하고천국에 들어감을 보장하는 보험이상의 신앙이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그는 심지어 입만 열면 보혈을 통한 죄사함을 간증하면서도 지금 여기서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여 살 생각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뱀파이어 크리스쳔’(잊혀진 제자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성도들일까요? 제가 아는 어느 성도 두 분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 이 대목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한분은 지난 정권에서 감사원의 요직에 있으면서 잠간만 눈을 감고 어떤 사건을 마무리 해주면 팔자를 펼수 있을 것이라는 상사의 회유를 거절한 것으로 상사의 눈총을 받아 결국 정부의 요직에서 물러난 분이 있습니다. 

또 한분은 중국 물건을 수입을 하는 중소기업 CEO이시었는데 그가 수입한 상품을 단 한번만 눈을 감고 국산 상품으로 원산지 둔갑을 하자는 간부들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고 결국 회사의 문을 닫아버린 고지식한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은 결과적으로 망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 중의 한분은 그의 아내가 시작한 의류 사업이 의외의 성공을 거두어 그는 지금 여러 이웃을 섬기고 선교의 사역을 후원하며 보람찬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또 한분은 전문인 선교 훈련을 받으신 후 지금은 선교지에서 보람과 흥분으로 선교사의 삶을 살고 계시고 자녀들의 성공으로 큰 위로를 누리고 계십니다. 이 두 분의 삶에 공통점이 있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것은 두 분이 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인생의 우선순위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두 분에게 그들이 직접 구하지 않았던 복을 누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나라를 잘 통치하도록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재물과 영광의 복까지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본문 33절의 약속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 아닙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면 우리의 날마다의 삶에서 하나님의 의를 분별하며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딤후3:16의 말씀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이 바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는 네비게이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과 성령의 네비게이션을 따라 예배의 우선순위, 그리고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한 바른 삶의 우선순위를 붙잡고 영원한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한날 한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한 평생 예배자로, 그리고 예배에 합당한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도전입니다. 그러면 정녕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이것을 인생의 우선순위로 삼고 사시겠습니까?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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