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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과 신앙생활 (고후 4: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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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신앙생활 (고후 4:17∼18)


고난이나 고생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평안과 안락한 삶을 원합니다. 또 하나님도 할 수만 있으면 평안과 안락한 삶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원만한 인간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자녀를 기를 때도 너무 오냐 오냐 하고 길러 놓으면 행실이 없는 고약한 자녀들이 되고 말 때가 많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변화를 받아야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장성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고난은 필요 불가결 합니다.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어야 영적으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로써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아담으로부터 받은 교만과 오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해서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자손들도 똑같은 유전자를 받아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DNA가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나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겠다는 그러한 습관이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허약과 무력과 절망적인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고난이 다가와서 그 허위의 가면을 벗겨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만과 오만의 가면을 쓰고 있는데 이 가면을 무엇으로도 벗길 수 없습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가면이 벗겨지고 자기의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자신의 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고난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31편 23절에 “너희 모든 성도들아 야훼를 사랑하라 야훼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에덴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교만이 마귀를 만들었고 마귀가 들어가면 영락없이 교만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 등을 돌리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교만한가를 주님께서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이 드러난 이후에도 교만을 깨뜨리는 망치로써 고난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고난만큼 우리를 깨뜨리는 힘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욥기 33장 16절로 17절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도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고난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는 방망이가 되고 우리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라는 유명한 신학자에게 한 사람이 “왜 인간에게 고난이 주어지는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잖아도 타락한 인간이 고난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교만하겠는가?” 그러면서 “인간은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이 있다. 고통은 귀머거리와 같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확성기와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고난은 그 당시에 괴로우나 그것이 와서 교만을 깨뜨리고 눈에 꺼풀을 벗겨 주고 가면을 벗겨 주고 자기가 얼마나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절망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만들어 주는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함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10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선생과 그 일행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엄청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언도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인간의 무력함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고난인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내가 얼마나 힘이 없고 무능력하고 내 힘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고난이 다가와 건강을 잃고 의지하던 생활에 낭패를 당하게 되면 인간이 허무맹랑하고 안개와 같은 것을 깨닫게 되고 회개하고 두손들게 됩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게 하고 기도하게 만드는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아니하고 교회도 나오지 아니하고 기도는 절대로 안 하던 사람이 고난 당하면 하나님을 찾게 되고 회개하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별도리 없이 고통스러우니까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그 길을 찾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평소에 새벽기도 안 나온 사람도 고난 당하면 새벽기도 하고 더 괴로우면 산기도 하고 철야기도 하고 금식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고난을 통해 체험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넘어지고 고통 당하고 괴롭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해서 주님께 울고 나오면 주님의 위로가 하늘에서 성령으로 임하여서 마음을 푸근하게 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고 큰 힘과 용기를 얻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해야 주님의 위로를 체험할 수 있게 되고 위로를 받아야 신앙에 깊이를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절로 5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이 넘치면 위로도 넘친다는 것입니다. 환난이 넘치면 하나님의 위로도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해서 주님께 부르짖고 깨어져 기도하고 나올 때 하나님은 오셔서 우리를 품어 주시고 그 옷자락으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 등허리를 두드려 주시고 어루만져 주셔서 위로하여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체험하게 하는 길은 고난 받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세상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함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으므로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악한 자의 손아귀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와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잔뜩 넣어 주고 하나님을 생각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 근처에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원수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진을 물리치고 마귀가 친 그물을 잘라내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고난인 것입니다. 육체가 깨어지고 허물어지고 고난을 당해야 우리는 비로소 육체를 바라보던 눈을 돌이켜 우리 속에 있는 영원한 영혼을 바라보고 영혼을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면 하늘나라는 멀어지고 하늘나라가 들어오면 세상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 세상 자랑은 육체를 꽉 들어 잡고서 절대로 영혼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영혼과 분리시키고 하나님과 분리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분리 시켜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을 쫓아내고 우리 영혼이 살아 일어나서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은 고난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우리가 육체를 떠나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정신을 잃어 버리고 세상의 죄 있는 사람에게 고난의 매가 와서 때리면 세상이 허무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하고 놀았습니다. 서로 밀고 당기고 싸우고 할퀴고 하다가도 부모님이 부르면 다버려두고 달려 가는 것처럼 주님께서 호루라기 한번 부시면 모든 것 다 버리고 이 땅을 등지고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잠깐 후에 이 땅을 떠나서 주님 만나야 될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이 땅에 붙어서 이 땅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고난을 보내어서 고난이 우리를 징계해 주는 것입니다. 고난의 매가 때리면 정신을 차립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정신이 빠져 있습니다. 고난의 매가 들어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때야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성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 당하여 괴로워지면 성경을 찾아서 읽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와이에서 집회할 때 집회 장소로 이동 중 운전해주던 부목사 한 사람이 차 안에서 내게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학생 시절에 아편 중독자가 되어서 대학을 졸업 한 후 전문적으로 아편 장사를 했습니다. 하루는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어떤 목사님이 예수 믿고 천당 가자고 고함치기에 콧방귀를 뀌었는데 전도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전도지를 받아서 호주머니에 구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편 장사를 했는데 하루는 아편을 너무 많이 맞아서 정신이 아뜩하고 숨이 턱에 차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완전히 죽음의 공포가 꽉 들어찼습니다. 의지할 곳 없고 당장 죽게 되어서 이리저리 살펴 보니 방구석에 내가 던진 그 전도지가 구겨져 있길래 그것을 조금씩 읽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주의 말씀이 기록되어서 “주님 내가 주를 믿겠사오니 나를 중독에서 살려 주시고 지금 심장이 멎을 것 같은데 살려 주십시오”라고 고함을 치니까 몸 속에 팡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쳐다 보니까 마귀 세 놈이 천장에 가서 딱 달라 붙었습니다. 몸에서 마귀 세 놈이 터져 나가서 천장에 붙었다가 새까만 눈으로 두리번 두리번 살피며 도로 들어 오려고 만발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놀라워서 “주님이시여 살려 주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고함을 치니까 얼마 있지 않다가 휙 하고 마귀 세 마리가 떠나 갔습니다”라고 간증했습니다. 

그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편 중독에서 해방을 얻고 그는 새 사람이 되어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그 때부터 회개하고 신학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어 하와이에 복음 증거하러 왔다가 그 교회 부목사가 되어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말로 다할 수 없는데 자기가 당한 고난이 아니었으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지 아니했다는 그런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를 더 굳세게 만들어 주시고 강하게 만들어 주시고 터가 견고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4. 그리스도를 닮게 함

조각가가 돌이나 나무를 찍어내어 형상을 만드는 것처럼 고난의 끌이 우리를 찍어내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9절로 10절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옛사람과 그 행위를 어떻게 벗습니까? 고난이 다가와서 옛사람의 껍질을 벗겨내고 옛사람의 낡은 의복을 벗겨 내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 예수 보혈을 믿고 구원 받으면 성령이 오셔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변화시키고 고난이 와서 고난의 능력으로 우리를 변화시켜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안 당하고 살면 참 좋겠지만 고난이 와야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얻고 예수님의 믿음, 소망, 사랑을 얻고, 예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우리가 마음속에 얻기 위해서는 고난을 겪어야 예수님을 끌어 안고 예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 회개하고 자복하면 날로 속 사람이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속 사람은 잠들게 되고 죽게 됩니다. 고난이 오니까 자꾸 하나님을 찾게 되고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고 속 사람이 살아나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게 많은 고난이 허락됩니다. 더 새롭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채워주기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고 회개하고 주님께 의지하게 만들려고 고난의 채찍을 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버려 놓으면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냥 평안하고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기도하는 것도 그치고 성경 읽는 것도 그치고 주님 찾는 것도 그치고 세상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고난이 있어야 회개하고 부르짖고 기도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날에 종로에서 큰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난 이후로 서울이 불타고 아직 복구가 안되었을 때 종로 네거리에 불탄 자리가 많은데 거기에 천막을 치고 부흥회를 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왔습니다. 회개하고 병든 자들이 나아서 간증을 하고 뛰고 구르고 좋아하니까 목사님 한 분이 설교를 마친 후 나를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안수 좀 해주십시오”그래서 기도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나도 목사님처럼 폐병 걸려서 피를 토하되 죽지는 않도록 안수해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무슨 그런 망발된 소리를 합니까?”라고 물으니 “목사님, 저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우리 부모님이 예수를 잘 믿어서 나는 아무 고생함이 없이 자라서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돈을 대어서 교회를 지어 주어 목사가 되었는데 목사가 되고 난 다음에 이론만 알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도 모르고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한 적도 없고 마음이 뜨거워 진 것도 없고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도 안 나오고 눈물도 흘려 본적이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런데 목사님을 가만히 보니까 폐병 걸려서 피를 토하고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찾다가 불도 받고, 성령도 받고 병도 고침 받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체험도 얻게 되니 얼마나 설교가 힘이 있는지 몰라요. 나도 힘있는 설교가 되기 위해서 폐병 걸리게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어야 영광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안 당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병들어 봐야 신유를 체험하고 사업을 망해봐야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외로워 봐야 하나님의 위로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현세는 눈에 보이나 천국은 우리 안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유혹을 받고 끌려갑니다. 그러나 고난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허물어지고, 허무한 것을 깨닫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주목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잠깐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한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영혼은 영원하지만 육체는 70∼80년이면 허물어 지는 것입니다. 영원히 천국에 가든지 지옥에 가는 것은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속에 있는 영혼인 것입니다. 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깊어지기 위해서는 깊이 기도해야 되고 깊이 믿어야 하고 깊이 헌신해야 되는데 이렇게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고난의 손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아무도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끝은 향상된 신앙이요, 헌신이요,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위로요, 은혜의 체험이 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고 고난 받을 때 구하면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고난 당하는 형제, 자매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앞으로 기도할 때 고난에서 건져 주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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