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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과실을 많이 맺으려면 (요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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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을 많이 맺으려면 (요 15:1~9)


1.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도 파랗고 부쩍 높아졌습니다.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도 서서히 물러가고 성큼 성큼 다가오는 가을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누가 계절이 가고 오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면서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1:14)고 하신 말씀대로 때가 되어 점차 가을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절을 따라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께서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창1:11-12)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그 열매 맺는 것을 보시고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뿐만 아니라 인생들에게도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아름다운 꽃만이 아니라 열매를 찾으십니다. 제아무리 풀이 무성하고 꽃이 아름답다 해도 그 열매를 볼 수 없다면 허무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이렇게 외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아름답고 좋은 열매입니다. 아름답고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가 좋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7:16-19, 눅6:43-45)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시면서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도록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 쏟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지 아니하고 전혀 쓸모 없는 “들포도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를 이사야 5:1-7에서 이렇게 기록하셨습니다.

내가 사랑하여 가꾸는 포도원을 노래하겠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름진 언덕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있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네. 사람들아, 이제 너희는 나와 나의 포도원 사이에서 한 번 판단하여 보아라. 내가 나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무슨 일을 하려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울타리를 걷어치워서, 그 밭을 못쓰게 만들고, 담을 허물어서 아무나 그 밭을 짓밟게 하겠다

한마디로 좋은 포도 열매를 맺기를 기다렸지만 들포도를 맺음으로 그 포도원을 몽땅 허물어 짓밟히게 하여 황폐하게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에 대한 더 구체적인 하나님의 심판으로 경고했습니다. 포도나무가 열매 외에 구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포도나무는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포도나무는 나무 자체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나무가 그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결국 불에 던질 화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에스겔15:1-8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포도나무가 다른 모든 나무에 비해 나은 점이 있느냐? 거기에서 무슨 물건을 만들 목재가 나오느냐? 그것으로 나무 못을 만들어서 무슨 물건을 거기에다 걸어 둘 수 있느냐? 그것은 땔감으로 불 속에나 던져 버릴 것이다. 그것이 물건을 만드는 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포도나무가 온전할 때에도 무슨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없었거늘, 하물며 그것이 불에 타고 그을었으니, 무슨 쓸모가 더 있겠느냐?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좋은 포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를 내가 불 속에 땔감으로 던져 넣듯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인생들을 불 속에 던지겠다.” 


2. 오늘 본문 말씀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참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그 농부”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리고 인생들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하는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가지가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참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참 포도나무”가 맺게 되는 ‘참 포도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바로 모든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인격과 성품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 포도나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가지가 되어야만 참 좋은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을 보겠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열매는 포도열매입니다. 포도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만 합니다. 인간은 참 포도나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어야만 아름답고 좋은 참 포도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참 포도열매를 맺으려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라는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거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참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들포도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했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아니고서는 결코 ‘참 포도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세상에서 자신의 힘과 노력, 지식 등으로 여러 가지 많은 열매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른 바 지식의 열매, 사업의 열매, 권세의 열매, 명예의 열매, 선한 일의 열매 등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과 무관하여도 선하고 착한 인격과 성품을 이루고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열매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어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예수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좋은 열매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즉 내 인격과 성품 안에 거하시므로 이루어지는 열매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름다운 열매인 것입니다. 예수만이 참 포도나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없는 인격과 지식은 무용한 것입니다. 예수 없이 가꾼 성품과 배운 지식은 오히려 악용될 소지가 많은 것입니다. 예수 없이 이룩한 인격과 성품, 그리고 부귀영화는 결국 가라지 운명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되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들포도 열매’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입니다. 인생의 추수 때에 보면 빈껍데기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73:1-20)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만이 목걸이요, 폭력이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며, 마음에 기대한 것보다 더 얻으며,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하나님, 주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말하면서 살아야지”하고 말했다면, 나도 주의 백성 가운데 한 사람처럼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들이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고, 공포에 떨면서 자취를 감추며, 마침내 끝장을 맞이합니다.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아무리 유익한 것일지라도 다 해(害)로 여겼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예수 믿지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았어도 잘 되었다고 기뻐하거나 안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빛좋은 개살구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한대로 갚아주시고 일한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계22:12) 예수 믿고 말씀대로 했더니 더 힘들고 어렵고 별로 좋아진 것이 없다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15:16-17)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낫고,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예수 믿고 말씀에 대한 순종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에서 볼 때 축복인 것입니다. 그 실패는 좋은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한 가지치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것은 어느 것이고 실패가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예수 없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었다 해도 예수 안에만 있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만 인생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마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인생의 추수 때가 있습니다. 이 한 낫을 들고 인생들을 추수할 때(심판의 때) 아름다운 열매들이 다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참 포도나무가 되시는 예수님께 끝까지 남아있고 머물러 있고 붙어있는 사람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 열매를 더 풍성히 맺도록 하기 위해서 가지치기하는 아픔이 있다 해도(본문 2절) 끝까지 말씀대로 살며, 성령을 따라 행하시고 사시는 믿음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성령을 따라 행할 때에 인격과 성품에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베드로 후서 1:4-11에서 말씀하신 “신의 성품”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말합니다. 

(벧후1:4-11)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의 열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하나님 나라에는 좋은 열매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고, 가라지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열매가 있어야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축복들의 열매들만 요구하지 말고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열매, 인격과 성품의 열매,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야 영원한 축복입니다. 말씀과 성령이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게 될 때 영원한 성령의 열매들을 맺을 수 있습니다. 


3. 마지막으로,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8-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과 성령에 순종하여 ‘과실을 많이 맺으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전도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이 되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사도들은 “(행 5:42)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참 포도나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도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전도를 위해 12제자들을 세우셨고 그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 3:14)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그리고 요한복음 15:16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분명히 항상 전도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믿음을 주신 목적은 바로 전도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도 이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선택하신 목적은 예수 십자가의 아름다운 사랑과 그 덕을 선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진정한 제자가 되도록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가장 기뻐하시는 열매입니다. “신의 성품”, “성령의 열매”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통해 맺어지는 것처럼, 전도의 열매 역시 순종하시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전도를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순종하여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맺도록 하십니다. 순종하여 전도하면 성령의 나타남으로 그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도 여러분께서 말씀에 순종하여 전도하면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성령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 

(요15:26-27)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고전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전도는 사람의 말이나 지혜, 능력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형편과 수준에서 순종하여 전도하면 성령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성도는 매일 전도지 일곱 장씩을 어김없이 배부하며 살아가고 있노라고 말했습니다. 일곱이 완전을 나타내는 숫자이기에 일곱 장을 전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적은 양 같지만 1년이면 2,555명에게 복음을 전하는 셈이 됩니다. 그 중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는 앉아 있는 사람에게만 전도지를 준답니다. 앉아 있으니 읽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는 전도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이름을 적은 카드를 성경책 갈피에 끼워두고 새벽마다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평균 3개월 내에 기도해준 그 대상이 신앙생활하더라고 간증합니다. 

어떤 성도는 말주변이 없어서 말로 전도는 못하고 마음으로만 교회에 나오기를 기도하면서 매주 한 번씩 찾아가기를 1년 동안 계속했더니 드디어 교회에 나오게 되더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도는 전도하려는 대상이 살고 있는 이웃집 대문을 지난 때마다 그 집을 향해 십자가를 마음속에 그리면서 기도했더니 얼마 후 자진해서 교회에 나오더랍니다. 어느 권사님은 한 가정을 60번을 찾아가서 전도했더니 60번째 왔다는 말을 듣고 감격하여 한 번만 가서 예배드리겠다고 하더랍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자기는 사람을 딱 보면 안답니다. 이 사람이 예수 믿을 건지, 안 믿을 건지를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을 것 같으면 전도한답니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든지 전도해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든, 어떠한 형편에서든 순종하여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성령의 능력과 권능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딤전 4:1-5)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과실을 많이 맺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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