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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칭찬받는 사람 일곱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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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받는 사람 일곱 (행 6:1~7)


[역사 오버랩]

오늘 3부 예배시간에, 장로 7인 선택을 위해서 공동의회로 모이려고 합니다. 공동의회를 앞두고 기도하고 소원을 가지고 교회를 그려봅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124년 된 한국교회와 그 절반의 역사를 가진 66년 된 우리교회를 오버랩(overlap)시켜보았습니다(영화를 보면, 한 화면에 다음 화면이 겹치는 장면 있잖습니까?).

60여 년 전 한국교회가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60년 뒤인 오늘의 한국교회의 영상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한국교회 60년과 120년이 오버랩 되면서, 우리교회 60년과 120년은 어떻게 오버랩이 될까 생각하니, 그 궁금증이 컸습니다. 

60여 년 전 한국교회는, 光復直後時代였습니다. 광복의 기쁨도 있었지만, 당시 교회는 그리 Happy하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교단마다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 광복 후 교회재건운동을 하면서 심각한 분열의 아픔을 겪는 시대였습니다. 아시는 대로, 일제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된 70여명의 목회자와 교계인사들 중 50명은 감옥에서 순교합니다. 나머지 20여명은 광복과 더불어 출옥합니다. 해방이 되자, 출옥한 목사와 교계인사들이 자신들을 ‘출옥성도’라고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닙니다. 신사참배하며 현실에 편승하였던 목회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을 정죄하고 징계하는 것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면서 광복 후 채 1년도 되기 전에, 재건교회운동이 일어나면서 교회 안에는 분열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가슴 아픈 역사의 오점을 남기는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사가 민경배 교수님은, “그 때 한국교회는 누가 義人이고 누가 罪人이고 편 가르고 판단하기보다는, 출옥성도나 그렇지 못한 성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맨 밑바닥에서 참회했어야 했다면서(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씻지 못할 통한의 아픈 역사를 남기고 말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합동측 충현교회 김창인 원로목사님이 3년 전에, 교계원로들의 참회기도모임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해방직후 재건교회운동을 하면서, 신사참배하던 목사들을 마귀당이라고 하고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면서, 그런 자신의 과거 행동과 신앙을 “말도 못할 교만이었다”면서, 교회분열을 막지 못한 자신의 죄를 참회했습니다.

교회의 분열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의 6․25남침전쟁으로, 오늘까지 민족의 분열이 고착되고 말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교회는 민족분열의 참화慘禍에 목메어 울지 않고, 그 혼란의 때에 교회도 분열을 고착시키는 수치의 역사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폐허와 같은 상황 속에서 교회는 ’60, 70년대에 󰡔회복의 희망󰡕을 선포하면서 성장을 거듭합니다. ’8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장과 함께 세속화에 휩쓸렸습니다. 빠르게 제도화 되면서, 교회 안에도 건강한 리더십보다는 기득권층이 형성되는 교회가 되면서, 시대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99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교회에 던져진 최대의 화두는 교회개혁이 아니었습니까? 

[역사의 주권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역사의 교훈을 얻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수레를 보면, 수레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한쪽 바퀴는 오른쪽으로 돕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쪽 바퀴는 왼쪽으로 돕니다. 서로 반대로 돌지만 수레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굴리시는 역사의 수레바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이, 오래 전에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님들을 만났을 때 한 말을 보십시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이집트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萬民의 生命(열국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45, 4-5; 50, 20-21).

요셉은 형님들의 증오와 미움을, 용서와 화해로 푸는 구원의 길을 보여준 겁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해석할 줄 안 것이지요. 교회에도 요셉과 같은 역사를 보는 지혜와 용서와 화해의 복음이 필요했던 거지요.

60여 년 전 한국교회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어느 정도는 그것을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교회가 되긴 했지만, 분열의 痕迹을 남겼고, 교회 안팎으로부터 개혁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120년을 내다보면서 60년 뒤, 우리교회 영상이 그려지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계십니까? 어떤 변화를 기대하십니까? 어떤 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까? 다음 세대들이 우리교회를 어떻게 아름답게 가꾸어주었으면 좋겠습니까? 어른들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계승해주었으면 좋겠습니까? 그 꿈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사랑 속에서 우리의 미래가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부흥의 때,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함]

지난주일 저는, 예수님의 열망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시던 예수님은 탄식하셨고, 가슴아파하셨습니다. 그 탄식이 예수님의 열망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 열망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세우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2사도들을 부르셨지요. 여 제자들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제자들을 보면, 그리 변변한 사람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의 기초를 놓는 초석들이 되지 않았습니까? 오순절 성령강림 후, 그들은 초기예루살렘교회를 세워가는 기둥 같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뻗어가는 福音의 水源池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았을 때, 그들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말씀 그대로, “처음은 微弱하였지만 그 나중이 昌大해진 사람들”입니다(욥 8, 7). 

그런데, 사도행전 6장 말씀을 보면(3년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120명으로 시작된 예루살렘교회가 20,0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합니다. 그 때, 12사도들뿐만 아니라 120여명은 예루살렘교회를 끌고 가는 핵심적인 지도자들이 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12사도의 지도를 받던 120여명의 사람들은 공식적인 리더십그룹은 못되었습니다. 교회가 조직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깁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가 부흥하자 예루살렘교회 안에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구성원들이 다양해지고, 요구들도 다양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루살렘교회 안에 일어난 갈등은, 선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들입니다. 惡한 일을 도모하는 자들에 의해서 일어난 분쟁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구제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일꾼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일꾼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12사도 외에는 그 누구도 일꾼으로 세움 받은 적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사도들이 나서서 가난한 자들에게 매일 구제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00여명이 되는 교회에, 가난한 자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당시, 예루살렘에는 타국에서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들(헬라파 유대인들)이 죽음을 앞두고 예루살렘 가까이에 묻히고 싶어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와서 사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홀로 된 가난하고 힘없는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Js교회가 부흥하여 20,000여명이나 되었을 때),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대상)에서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구제문제로 갈등이 생긴 겁니다. 구제를 안 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구제하면서 생긴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일손이 부족해서입니다. 12사도들이 그 일에 매달렸으니, 오죽했겠습니까? 12사도들이 아무리 열심히 구제한들 (1) 역부족이요, (2) 더 큰 문제는, 사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기도하는 일과 말씀전하는 일을 소홀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갈등과 위기가 동시에 찾아온 겁니다.

그 해결책은,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것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도들이 즉시 제안합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놓고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합니다(행 6, 2-4).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이방인 출신)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예루살렘교회가 선택하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이때부터 교회 안에 안수직이 시작된 겁니다(구약시대의 기름부음과는 다른 직제).

그런데 여기 보십시오.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실 때, 변변치 않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세우시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가르치시고, 권능을 주시고, 또 보내시면서 일꾼을 만드셨습니다. 기초부터 가르치시고, 그들에게 위대한 임무를 부여해서 보내셨습니다. 

▶ 그러나 예루살렘교회는, 부흥하여 일꾼이 필요하자, 아무나 일꾼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이미 준비되어 있는 사람을 일꾼으로 세웠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겁니까? 교회가 그만큼 부흥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교회 공동체 안에는, 공식적인 일꾼으로 세움을 받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일꾼이 될 만한 신실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공동체가 그런 신실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세우기만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늘 이렇습니다/개척자는 처음부터 하지만, 계승자는 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의 말씀대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평판이 좋은 사람) 일곱을 택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일곱 중 하나였던 스데반은, 12사도들과 같이 훌륭하게 복음까지도 전하는 위대한 일꾼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전한 복음의 내용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때부터, 예수님에게 이르기까지 역사를 다 꿰뚫고 있습니다. 통찰력을 가진 인물입니다(歷史의 意味를 아는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가 된 인물입니다. 그의 인물됨과 평판은, 단번에 그를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사람 중 하나로 세움을 받게 했습니다. 스데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일곱 사람이 다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출 18장, 모세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움: 온 백성들 가운데 능력 있는 사람들; ①하나님 두려워하는 사람, ②진실하며, ③불의한 이익을 탐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께서 80년 동안 모세를 훈련시키신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그들이, 예루살렘교회의 일꾼이 되어 일하게 되자,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專務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道에 복종하니라”(행 6, 7).


[120년 미래역사의 분기점에 선 우리 교회]

우리 교회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교회에서 앞장서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갈 신실한 일꾼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 장로님들께서 최선을 다해서 교회를 잘 섬기고 계시지만, 우리교회도 자칫하면 예루살렘교회처럼, 일꾼기근현상으로 인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교회라 생각합니다. 

교회를 보다 더 힘 있게, 적극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어른들이 닦아 놓으신 믿음의 길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다음 세대를 품고 세우고 축복하는 교회되기 위해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평판이 좋은 장로님들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7분은 꼭 뽑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교회는 이미 일하시는 장로님들보다도 은퇴하신 원로은퇴장로님들이 더 많습니다. 원로은퇴장로님들의 배후의 기도와 교회사랑도 귀하지만, 십자가를 걸머지고 일하실 장로님들이 더 많이 계셔야 힘 있는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교회는, 65주년을 분기점으로 65주년기념교회를 개척설립하여세웠습니다. 담임목사도 파송했습니다. 북방선교를 위해서 공산권국가에도 예배당도 건축했습니다. 금년에도 또 북방선교를 위해서(어느 장로님의 목적헌금으로 교회가) 공산권국가에 예배당건축하는 일을 조용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11월에는, 캄보디아에 세계선교사를 파송하려고 합니다. 

오늘, 장로 7분 선택을 위한 공동의회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우리교회 120년 미래역사를 개척하는, 새로운 물길을 수축하는 흐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이미 한국교회에서도 책임 있는 교회입니다. 서울강북노회에서 가장 앞서가는 교회입니다. 노회의 크고 작은 일에, 우리교회가 가장 큰 책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역을 복음화하고, 축복해야 할 교회입니다. 한국교회를 섬기는 교회, 이 시대와 역사를 축복해야 할 使命이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옛날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하시지 않으셨습니까? 列國, 萬國을 가슴에 품고 축복하는 아버지가 되라는 使命을 주시면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세우셨고,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만의 조상이 아닙니다. 열국을 축복하는 열국의 아버지입니다. 

우리교회를 사랑하시는 여러분께, 사도들이 예루살렘교회 교우들에게 부탁하여, 일곱 일꾼을 세운 것과 같이 간곡하게 말씀드립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온 무리(제자들이)가(사도들이 제의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는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세웠던 것처럼, 우리교회 120년 미래역사를 세워나갈 일곱 분의 장로님을 꼭 선택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우리교회의 未來의 福이 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우리교회를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교회부흥과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꼭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한 교회, 열국을 축복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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