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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핍박속의 기적 (행 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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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속의 기적 (행 12:5~19)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사도행전 12:5-19

왜 착한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가? 왜 의로운 사람은 고생하고 불의한 사람이 잘 되는가? 욥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한 번쯤은 품게 되는 질문입니다. 종교들과 철학자들이 노력해왔지만 만족스런 대답을 찾기 힘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좀 더 고생을 합니다.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당하는 일반적인 고생을 똑같이 합니다. 예수를 믿든지 안 믿든지 감기에 걸리지요.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비슷한 고난을 거치게 됩니다. 기독교는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고난이란 없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큰아들이 대학을 가기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된 가정을 심방한 적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불안과 두려움을 보이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 아들이 대학 4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내도록 기도해주세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기도는 응답이 안 됩니다. 대신 이런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지혜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어려움을 통해 더 성숙한 아들이 되어 돌아오게 하소서.” 

예수 믿는 집의 자녀라고 도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더 있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한 번 더 참아야 되고 핍박과 미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위대하고 순수하고 정의롭고 선하신 예수님도 비난과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에게도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월급을 받으면 세금을 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거기에 더해서 십일조를 냅니다. 안 믿는 사람에 비해 소비할 수 있는 돈이 10% 적습니다. 그래서 더 큰 지혜와 판단력과 검소한 생활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당하는 고난 중에 '이념적 고난'이 있습니다. 이념의 차이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본문의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죽었고 베드로는 잡혀 감옥에 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는 것은 이념적 고난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안 믿는, 이 타협할 수 없는 차이로 많은 갈등을 겪습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이 하는 짓은 무엇이든지 밉습니다. 잘 해도 밉고 웃으면 얄미워요. 그러나 이념이 같은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좋습니다. 동지가 나쁜 짓을 해도 이념으로 서로 통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갑니다. 이념이 달라서 주고받는 고통은 실로 대단합니다.

또 ‘정치적 고난’이 있습니다. 정치가들은 자신의 권력과 인기몰이를 위해 약자들을 핍박하고 고생시킵니다. 예수님도 정치적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잡혀온 예수님에게 세 번이나 질문하고 대답을 들은 후에 유대인들에게 “이 사람은 순수한데 왜 죽이려고 하지? 나는 이 사람의 죄를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만약 이 자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을 시이저에게 불충성한 사람이라고 보고할 거요!”라고 협박하자 빌라도는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 “그러면 너희가 죽여라. 나는 죽이지 않겠다.”며 예수님을 넘겨주었습니다. 이것은 소수를 핍박해서라도 대중의 인기를 얻고자 애쓰는 포퓰리즘(populism), 즉 대중영합주의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야고보가 죽임 당한 것을 유대인들이 보고 좋아하자, 로마정부는 베드로도 죽이기로 작정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포퓰리즘이 발동한 것이지요. 그러자 초대교회 성도들이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5절에 보면, “베드로가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습관입니다.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꾸준히 기도합니다. 여기서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는 표현은 꾸준히 계속해서 기도를 드렸다(constant prayer)는 뜻입니다. 핍박이 있으면 핍박이 끝날 때까지, 고난이 있으면 고난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만 고생합니다. 스트레스로 마음고생이 너무 심해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일도 공부도 아무것도 제대로 못합니다. 평화가 없고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 찹니다. 예수 믿어도 기도는 안 하고 계속 걱정근심만 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마음이 돌아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아픔과 슬픔과 고통, 해결 못할 문제들을 놓고 계속 부르짖어 기도한다면 문제는 남아도 마음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아무 문제나 놓고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 내 능력을 넘어서는 문제가 생길 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일일이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며 감사기도는 하더라도, “내게 물 마실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그 때 주저 말고 바로 하나님께 가져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문제는 자기가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면서 본인은 안 해요. 아내에게만 기도시키는 남편도 있지요. 내가 먼저 기도하고 그 다음에 사랑방에서, 선교회에서, 위원회에서, 기도 모임에서 함께 기도할 때 거기에 평화가 있고 응답이 있습니다. 

기도는 최후의 수단이 아닙니다. 걱정할 것 다 하고 고민할 것 다 고민하고 울 것 다 울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가보고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기도나 해 볼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에게 기도는 첫 번째 수단입니다. 쓸데없이 방황하며 돌아다니지 말고 여러분의 고난을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간섭하십니다. 

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 속의 모든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믿고 기도하라. 그대로 되리라!”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쓸데없이 고민하고 방황할까봐 성경에는 기도하라는 말씀이 9백 번이나 나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안 주시려고 하는데 조르고 졸라서 겨우 하나를 얻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악한 부모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왜 안 주시겠느냐!”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또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리리라!”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리라. 네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14). 그런데 아하스 왕은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사람도 자꾸 달라고 하면 귀찮아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구하는데 나까지 구하면 하나님이 힘드시잖아요. 나는 기도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지요. 저도 어릴 때 통성기도를 하면서 ‘이렇게 시끄러운데 내 기도소리가 들리겠나?’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내 눈이 내 성전에 있고, 내 귀가 이 성전에 있다. 이 성전에서 구하는 것은 내가 보고 듣고 응답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이 기도를 합니까? 응답을 받아 본 사람들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고 응답을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겨우 한 두 번 기도하고 그만뒀으니까요. 그러나 일생동안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본문에 보면 기도 후에 여러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7절).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보통 때는 육을 가진 사람이 그 형상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영적인 존재가 육적인 존재로 변화해서 사람들의 눈에 보인 이야기들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저도 돌이켜 보면 제 일생에 한 번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운전 중에 너무 피곤해서 깜빡 졸다가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절벽에 걸렸어요. 한 바퀴는 절벽에 떨어지고 절벽 위로 세 바퀴가 걸려있었어요. 겨우 살아난 것이지요. ‘아, 하나님의 천사가 나를 도와주셨구나!’ 다른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할 일이 많으셔서 수많은 천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3분의 1이 사탄과 함께 타락해서 지구로 쫓겨나 악령이 되었습니다. 악령의 임무는 인간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게 하고 세속화시키고 거짓말하게 하고 탐심을 내게 하는 것이지요. 예수 믿는 사람을 고생시키는 것도 사탄의 전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은 하나님이 택한 자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려고 한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니면서 삼키려고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방심하면 사탄이 그냥 물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혈과 육이 아니라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령과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어디서 나타납니까? 하나님께서 선한 천사들을 보내어 악령의 세력과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보내어 돕게 하시고,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내 인생과 여건을 움직여주시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들입니다. 여러분이 평생 기도한 사람이라면 이런 간증을 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천사를 보내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천사를 보내어 악한 세력과 싸우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쇠사슬을 풀어주셨습니다.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7절). 우리에게도 쇠고랑처럼 우리를 묶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건강의 쇠고랑이 나를 묶습니다. 돈의 쇠고랑이 나를 꼼짝 못하게 묶습니다. 인간관계의 쇠고랑이 무거워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환경의 쇠고랑이, 때로는 불안한 마음의 쇠고랑이 우리를 심리적으로 묶어놓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쇠고랑이 있는지는 몰라도, 여러분과 가족이 힘을 모으고 사랑방과 위원회와 선교회, 신앙의 동지들이 힘을 모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쇠고랑이 풀려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파수꾼의 눈을 어둡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을 어둡게도 하시고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것이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 눈을 뜨게 하시고 제 마음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신비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할 때 여러분의 눈은 뜨이고 적들의 눈은 감겨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도 이렇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은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10절). 천사가 늘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 천사를 보내시고 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닫힌 문을 여는 열쇠는 기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 기도를 합니다.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여, 비를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응답될 것을 기대하고 바로 우산을 들고 나가야 되겠지요. 기도하면 응답이 올 것을 믿으십시오, 기대하십시오.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언제 나타날 것인지 희망과 기대감으로 기다리며 믿음으로 사시길 원합니다.

베드로는 감옥을 나와 마가의 다락방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린 여자 아이가 나왔다가 너무 놀라서 문도 안 열어준 채로 기도하던 무리에게 달려갔습니다. “베드로가 왔어요.” “너 미쳤구나!” 그들은 지금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까? 베드로 보호해주시고 석방시켜달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된 것을 보고 “너 미쳤니?” 했다는 것은 기도는 하되 응답될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모두들 놀라고 부인했습니다. ‘혹시 베드로의 천사인가?’ 우리는 의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안 됩니다. 

엘리야는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자 머리를 무릎 사이에 대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비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리고 종을 시켜 구름이 오는가 보게 했습니다.
“구름이 안 보입니다.” 
“그래! 다시 기도하자.” 
“아, 저기 검은 구름이 보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기도했는데!” 기도했기 때문에 검은 비구름이 올 것이라고 기대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대하는 자에게 구름을 보내주십니다. 그 기대감 때문에 인생이 재미있습니다. “내가 비록 능력이 없고 부족하고 연약하고 고난 속에 있어도 기도하기 때문에 잘 풀릴 것이다.” 이 기대감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낙심하고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된다는 믿음과 기대감을 갖고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체험하면 어떻게 되나? 나와 이웃과 내가 속한 공동체의 믿음이 성장합니다.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17절). 다른 곳이 어딘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거기 있으면 잡혀 죽으니까 아마 로마로 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은 고난을 겪을 뿐 아니라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을 좀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저는 열심히 기도하므로 베드로가 경험하고 초대교회가 경험했던 그 기적의 은혜를 경험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의 삶에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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