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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라 (시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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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라 (시 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시편 121편 1∼2절)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과 시련을 안 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 시련과 고난이 올 때 누구를 바라보아야 도움이 오겠습니까? 우리가 우상과 사신을 바라보겠습니까?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야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우리가 참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1.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과 베드로

 한번은 예수님께서 수많은 군중들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고 군중을 다 흩어 보내신 후 제자들을 독려해서 배를 타고 먼저 가버나움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던 중 풍랑을 만나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밤중에 주님께서 물위로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유령인줄 알고 혼비백산하여 고함을 쳤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용감하게 “주시어든 날 명하사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라고 말하니 예수님께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는데 예수님이 아니고서야 물위로 걸어갔다가 빠지면 다시는 생명을 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용감하게 예수님을 바라보고 저벅저벅 물위로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이 물위로 걸은 처음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광풍이 불어오고 물보라가 치니까 베드로는 그만 예수를 바라보던 눈을 돌이켜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차자 물에 가라앉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놀라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하니 주님께서 손을 붙잡아 일으키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가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볼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도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볼 때 기적이 일어나지만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을 바라보면 기적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바람과 파도를 바라볼 때 베드로는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바라볼 것이냐, 바람과 파도를 바라볼 것이냐. 이것이 운명을 결정하는 갈림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30절로 32절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아야 되는데 왜 바람을 보았습니까? 똑같은 눈으로 예수님을 볼 수도 있고 바람을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기적이 일어나지만 바람을 보면 불안과 공포가 들어와서 물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지 말고 눈을 들어 항상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2.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우리는 눈을 들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우리의 삶 속에 항상 바라봐야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죄악의 파도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이 꽉 들어차 죄악의 파도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를 멸하시고 죄악의 파도 위를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우리가 죄악의 파도에 빠질 때 파도 위를 걸어오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손을 내밀면 예수님은 우리를 끌어 내어 주시고 죄를 이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고 형벌을 받아서 몸을 찢기고 피를 흘려 다 청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악을 청산해 버렸기 때문에 죄가 아무리 우리에게 다가와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죄를 이기고 죄 위를 걸어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밖에는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습니다. 어떠한 종교도 철학도 수양과 도덕도 죄악의 파도를 걸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를 죄의 파도 위로 걸어갈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세속과 더러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시각각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여서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라보면 예수님과 우리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라봄을 통해서 주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여 기적을 일으켜서 세속과 마귀를 이기고 그 파도 위를 걸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합니다.

마귀가 세속과 재앙의 파도를 가져오지만 예수님은 이를 멸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세속과 마귀의 파도 위를 걸어가게 만들어 주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가 눈을 예수님께 고정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의지하면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를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질병의 파도 위를 예수님이 걸어오십니다. 병은 축복이 아니라 형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병을 축복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고 우리에게 벌을 주시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는 병이 없었습니다. 죄 지은 결과로 병이 이 땅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병을 짊어지므로 형벌을 대신 당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병을 짊어지고 채찍에 맞아서 온 몸에 상처를 입으므로 죄악의 대가뿐 아니라 질병의 대가도 다 지불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혼의 구원 뿐 아니라 치료의 복음입니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하시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병의 대가를 지불하고 병의 심판을 받아서 다 청산해 버렸기 때문에 어떠한 병의 파도 위로도 걸어오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희망과 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병을 바라보면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내가 실로 너희 연약함을 짊어지고 너희 병을 담당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하여서 우리도 병을 짓밟고 병의 파도 위를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다 우리 때문에 당하셨습니다. 우리 죄와 병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고난 당하여 심판을 받으시고 마지막으로 운명하시기 전에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완전히 청산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가 담대하게 죄도 물리치고 병도 물리치고 마귀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청산해 버리고 우리는 부채가 없습니다. 마귀가 억지로 죄의 부채를 어깨에 짊어지게 하고 세상과 부패를 가져오고 질병과 고통을 우리에게 짊어지우게 할 때 우리가 고분고분 짊어져서는 안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병은 물러갈지어다. 너희 죄악은 물러가라! 너희 세속은 물러가라! 유혹은 물러가라! 나는 너와 상관이 없다. 예수님이 너를 멸해 버리고 너를 이기셨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로 행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보시고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꾸짖은 것처럼 우리가 죄악의 물, 세속의 물 질병의 물에 빠져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은 이미 물위로 걸어갈 수 있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약속의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기적을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기적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기적으로 죄악을 이기고 세속과 마귀를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우리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적에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저주와 낭패의 파도 위를 걸어오십니다. 이 땅에 저주가 얼마나 많고 낭패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사랑과행복나눔 운동을 해보니 너무나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많습니다. 나라가 나서도 도울 수 없는 고통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도울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주님이 오셔야 저주와 가난의 파도를 짓밟고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기는 삶은 예수님의 손을 잡고 가는 삶입니다.

2000년 전에 이미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복이 주어졌습니다. 새삼스럽게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 쥐어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소유하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꿈꾸고 실천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낭패와 실망을 당하겠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같이 계시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불황의 파도가 휘몰아쳐도 예수님은 파도 위로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불황의 파도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함께 불황의 파도 위를 걸어서 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몇 해 전 한 대학의 연구 결과 신앙 생활은 영혼을 살찌게 할 뿐만 아니라 삶을 부요하게 만들어 준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존너선 구르버 박사는 자신의 논문에서 신앙이 있는 사람은 노동시장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신앙이 없는 사람들보다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므로 성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결과를 과학적 통계로 증명했습니다. 

즉, 그는 연구를 통해 교회 출석률이 두 배가 되면 소득이 9.1% 늘어나고, 생활고로 인해 정부에 원조를 구하는 구제요청이 16% 감소하며, 이혼률도 4%로 줄어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저주와 낭패의 파도 위로 오시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이 땅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며 파도 위를 걸어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가난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낭패와 실망, 좌절과 절망의 파도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능력을 의지해서 자신도 파도위로 걸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스스로 설 수가 있게 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저주와 가난의 파도 위로 걸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신 것은 그냥 장식품으로 목에 걸거나 벽에 붙여 놓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께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고 사망의 파도 위를 걸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예수 안에서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형식과 의식이 아니라 능력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이긴 예수님의 승리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여서 우리로 하여금 변화된 삶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생각이 희망으로 변화되고 꿈이 변화되고 믿음이 변화되고 말이 변화되고 삶이 변화되고 기적이 일어나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3.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편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괴롭습니까? 태산 같이 큰 문제를 당하여 숨도 쉴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목을 조여 오는 때 산을 향하여 눈을 들었습니다. 산에 있는 산당과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의 목상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서 나를 도우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121편 3절로 4절에 보면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우리를 지키시고 실족하지 않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하나님을 재발견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발견하고 아버지의 품에 안기면 세상에 태산 같은 어려운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품에 품어 주시고 실족하지 않게 지키시고 졸지 아니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아버지를 발견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만 깨닫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 굉장한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남으로 천지가 캄캄하고 아무것도 안보여도 성경은 “주께서는 나와 같이 계신다. 주의 지팡이가 나를 인도하고 막대기가 나를 보호해 주신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21편 5절로 6절에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낮에 일어난 사건과 밤에 일어난 사건을 주님께서 다 동시에 지켜서 우리로 하여금 해를 받거나 파멸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밤의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야훼는 우리의 피난처요, 우리의 요새요, 우리를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믿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이라는 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을 말하는데 환난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말합니다. 고난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지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난은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전쟁은 환난입니다. 지진은 환난입니다. 큰 홍수는 환난입니다. 유행병은 환난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환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고통을 통하게 하지만 환난은 다가오면 우리는 파멸되고 맙니다.

시편 121편 7절로 8절 밀씀에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변화 받기를 원하시지 환난을 통해서 파멸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환난에서 우리를 지켜 주셔서 우리가 파멸 당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에 대한 진정한 도움은 태산 같은 권력이나 돈이나 세상의 능력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야훼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문제의 태산만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도 계십니다. 빚쟁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계신 것입니다. 병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계십니다.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예수님의 사람이요, 천국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살지 혼자 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죄악의 물에 빠지지 마십시오. 세속의 물에 빠지지 마십시오. 병의 물에 빠지지 마십시오. 저주의 물에 빠지지 마십시오. 사망의 물에 빠지지 마십시오. 물위로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물위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잘 때도 바라보고 깨어날 때도 바라보고 앉아도 바라보고 일어나서도 바라보고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 놓으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마음속으로 묵상하며 감사하십시오. 

주의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주의 권세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손을 내밀어서 건져주신 것처럼 오늘 주의 능력이 우리의 손을 붙잡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혼자 인생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하여 언제나 플러스 인생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문제보다 크신 야훼 하나님을 바라볼 때 십자가에서 못박혀 몸 찢기고 피흘려 우리의 죄와 저주와 질병을 도말하시고 사망을 철폐하신 권세와 능력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게 하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단순한 종교인이 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는 자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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